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76)
가짜 용사 이야기-176화(176/310)
#72 :
[11. 엇갈리는 운명] 빛의 계승자, 어둠의 계승자 (6)“……아수라 실혼경이라, 내가 모르는 버그가 또 있었군. 설마 엘리트 소서러인가?”
거신 0식의 전성관을 통해 엘리트 아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놈은 소서러 주제에 검을 쓰지. 엘리트 나이트는 이미 죽었고. 무엇보다 두 놈은 다 남자였다. 너는 대체 누구지?”
발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변의 대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철근처럼 무거워진 몸속에서는 심장이 날뛰었다.
[신격(神格)을 갖춘 자는 언행에도 초월의 힘이 깃든다고 한다.]네 번째 종말의 때, 이킬라스의 신을 대면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무력감을 느꼈었지.
그런가.
이번에도 엘리트 아처의 격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번 외우주의 사도들은 정말 성장 속도가 말도 안 되는군.
‘……떨고 있다.’
발레린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회귀석은 이제 없다. 죽으면, 죽는다.
‘이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대체 언제쯤, 진정한 죽음을 통해 이 고통에서 벗어나나 생각하기도 했었건만.
공포.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때 삼두룡 아수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두려워하지 마라.」
3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메아리치며 공명했다.
「우리들이 그대를 지킬 테니까.」
……고맙습니다, 아수라. 발레린은 심호흡과 동시에 마도 장갑을 꼈다.
잘 알고 있다.
외우주의 사도들을 상대할 때, 이런 소소한 위력 증강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이것은 단지, 결의를 다질 수 있게 해주는 용도였다. 마법을 처음 배우던 그날의 결심이 떠오르니까. 이 세계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 그대의 주결이 온전치 않다. 전투는 우리에게 일임하도록 하라.」
“아닙니다.”
발레린이 얼굴의 붕대를 풀어 헤치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쏟아야 합니다. 외우주의 사도들에게는.”
붕대는 멋을 위해서도, 신비주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만(卍)자의 눈동자, ‘엘 타론’의 힘을 억누르기 위함이지.
이것이, 나의 마지막 싸움이다.
엘 타론의 힘은 필멸자의 지각을 드높은 천상까지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그 시력과 수명을 대가로 받아간다.
아수라가 탄식을 흘렸다.
「그래, 이게…… 그대의 마지막인 건가.」
* * *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꿈은 난잡했고, 슬펐다.
들국화가 흐드러진 언덕에서 형과 함께 신나게 뛰놀던 일곱 살 시절.
디지털 수학 경시대회에서 일등을 수상했을 때, 어머니가 사주셨던 자장면의 맛.
그리고 산소호흡기와 링거 등의 생명 유지 장치들로 온몸을 뒤덮은 어머니의 모습…… 그때 병실에서 나던 소독약의 냄새.
뇌에 부설된 브레인폰이 어머니의 마지막 의식을 모니터로 옮겨주었다.
[선생님…… 우리 철이…… 저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데 어떡해요…… 우리 철이는요…… 정말 똑똑하고…….]삐이이이이이이이…… 어머니가 죽었다는 신호가 울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 속에서 숨을 헐떡이자, 뒤에서 의사가 말했다.
“이 세계는 게임입니다.”
“당신 누구야.”
의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위생 마스크를 내렸다. 나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 의사의 정체는 놀랍게도 리샤르 후였다.
“멍청한 놈.”
리샤르 뒤에 서 있던 간호사가 돌연 낄낄거렸다.
혼란스러웠다.
간호사도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순간 배틀로얄 설명회를 주재하던 미소녀 관리자가 떠올랐다. 간호사와 관리자는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샬류안.
「이건 배틀로얄이에요. 배ㆍ틀ㆍ로ㆍ얄! 게임 따위에 과몰입 할 거예요?」
리샤르가 건너편 병상으로 건너가 그 커튼을 젖혔다. 거기에 한 남자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흐음, 어머니를 살리고 싶단 말이지? 그러면 이리로 와봐라.”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놈을 뒤따라갔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는 바로 용병 영주 아르츠레히드였다.
“이놈을 죽이면, 네 어머니가 살아날 것 같은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꺼져! 네가 대체 왜 여기 있는데?”
“내가 지금 장난질이나 치는 것 같냐?”
그러더니, 리샤르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군용 대검이었다. 피비린내와 쇳내에 절은 대검. 내가 통일 전쟁 때 사용하던 바로 그 대검이었다.
리샤르가 내게 칼자루를 건넸다.
“그 칼로 몇 명이나 죽였지?”
“……몰라, 닥치고 꺼져!”
“너는 이미 수백 명을 넘게 죽였잖아.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서. 흐음, 한두 명 더 죽인다고 문제 될 게 있나?”
리샤르가 갑자기 아르츠레히드의 환자복을 찢어발겼다. 아르츠레히드의 얼굴이 계속 변화했다. 요르한 3세가 되었다가, 샬롯이 되었다가…… 사쿠라이가 되었다.
“여기서 나가라고! 어떻게 들어왔지? 의사! 간호사! 뭐 하는 겁니까! 여기 미친놈이 들어와 있다고!”
“사람의 심장이 어딘지는 알겠지. 게임이랑 다를 거 하나 없어. 여기를 찌르면 돼.”
리샤르가 아르츠레히드의 심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건너편의 어머니를 가리켰다.
“뭐가 더 소중한데? 넌 이미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봤잖아.”
샬류안이 우산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키득거렸다.
「설마 데이터로 구현된 게임 NPC가 더 소중하겠어요? 호감도조차 시스템으로 구현된 거에 불과한데.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피가 이어진 가족이 더 중요하죠. 당신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위선 따위는 집어던져 버려.」
……위선?
“그만해, 제발.”
머리를 움켜잡고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대검을 던져버리고 싶은데, 손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이 떨어지질 않았다. 샬류안이 거듭 재촉했다.
「죽여야 한다니까, 이 새끼야?」
그러자 팔이 저절로 들렸다.
대검이 매섭게 번득였다.
「이 세계는 애초에 게임이거든요. 당신 어머니만 현실이죠. 이걸 부정한다면 당신은 단순히 현실도피를 하는 멍청이인 것뿐이에요.」
리샤르가 피식 웃었다.
“그렇군. 사실 어머니가 귀찮았던 거지? 알겠다. 사실 그냥 죽어줬으면 싶었던 거지? 어떻게 보험금이라도 타먹을 작정으로?”
“닥치라고, 이 새끼야!”
“그렇다면 행동으로 증명해.”
어느새 심장까지 나아간 대검을 간신히 못 움직이게 고정시켰다. 샬류안이 까치발을 들어 귀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속삭였다.
「망설일 게 뭐 있죠? 알잖아요. 이 세계는─」
“─제발, 그만하라고!”
그러나 끝내 그 강제력을 견디지 못하고 대검의 칼끝이 살갗을 헤집고 심장으로 향하던 그 순간, 누군가가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 사내가 말했다.
“……게임이 아닙니다.”
박현수, 박현수였다.
박현수가 그 우악스러운 힘으로 칼을 내 손에서 빼서 다른 곳으로 던져주었다.
나는 숨을 미친 듯이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박현수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렇죠, 에델 씨?”
그러자 샬류안이 킥킥 웃었다.
「저건 우리 엘리트 소서러한테 뭔 개소리래?」
리샤르가 폭소를 터뜨렸다.
“엘리트 소서러, 너 정말 다 포기할 거냐? 소원을 이루는 것도, 초월을 이루어 왕이 되는 것도?”
그때, 저만치 멀리 내던져진 칼에서 나올 수 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빠, 아저씨랑 같이 우리를 찾으러 와줘요.”
머리가 광기로, 광란으로 미쳐버리기 직전에, 혼미했던 꿈결의 메아리가 사라지고 현실이 각성한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으며 너무나도 추웠다. 오한 속에서 미쳐 날뛰는 호흡을 추슬렀다.
젠장…….
뭐 이딴 꿈을…….
그런 꿈을 꾸게 된 배경이 바로 눈앞에서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성도, 캐슬베이아.
이틀 동안 기다렸다.
이틀 내리 기다렸다.
그러나 누구 한 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성벽 위로 오르는 사람들의 숫자만 늘어났다.
이 멍청한…….
살 기회를 줬건만…….
내 주위로 드넓게 깔려 있던 심연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연의 왕들의 목소리가 그곳에서 일렁였다.
[음, 허, 허……, 이제 변덕의 시간을 마치고 그릇을 채울 때가 왔노니…….] [본좌는 이미 준비가 끝났노라.] [느흐흐흐흐흐…… 마침내 새로운 생명들을 거둘 때가 왔구나. 탐스럽도다, 세상이여.]켈렉─샼, 슈’율큘라.
그리고 네이갈라스까지.
세 <잊혀진 왕들>의 군세를 모두 총집결시켰으니 심연은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대는 아직도 망설이는가? 인간성의 잔재가 참으로 깊도다.]꿈속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아르츠레히드의 모습과, 산소호흡기를 쓴 어머니의 모습이 번갈아 뇌리를 스쳤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파르르 떨리며 피가 흘렀다.
그러나 이제는 피를 흘리는 것조차 나의 권한이 아니라는 듯, 심연이 부글거리며 찢어진 부위를 순식간에 메웠다.
“하, 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런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실성한 듯이 웃다가, 고통스러운 한숨으로 모든 망설임을 끊어냈다.
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
이 미친 배틀로얄에 초대장이 오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러니 정말, 정말로 더는…… 망설이지 않으리.
“셋 다 내 지시를 따라라. 지금부터 캐슬베이아를 무너뜨릴 거니까.”
* * *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으나, 그들은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달렸다.
예상과 달리, 선착장은 피난민들로 북적거리지 않았다. 대신 선착장 반대편의 언덕으로 향하고 있었다.
흑염의 악마들이 도시를 박살 내고, 요정병들이 학살을 자행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왜 달아나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현수가 한 요정 소년을 붙잡고 물었다.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몽둥이를 든 소년은 임전 태세였다.
“달아나라니? 여긴 고향이야! 신성한 땅이라고……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지!”
소년은 그대로 달려갔다.
신태엽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신화시대 역사에 따르면, <온 것들>이 <잊혀진 왕들>의 속박으로부터 첫 요정을 해방시켰던 장소라고 해.”
끄끄끄끄끄끄끄…… 그때 하늘에서 섬뜩한 울음소리가 났다.
흑염의 괴조였다.
고개를 돌리며, 선착장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빙룡 스케사리가 하늘로 솟구쳐서 괴조를 불타는 상태 그대로 얼려버렸다. 신태엽이 외쳤다.
“잘했어, 사리사리 스케사리!”
“SSSSSSSSAARIIIIIII!”
현수는 숨을 허덕거리면서 목에 걸린 회귀석을 꽉 움켜잡았다. 이대로 떠나는 게 과연 옳은가?
– 네 만용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야.
– <타르키리텐>으로 가라, 박현수.
현수의 손길을 받은 회귀석이 휘황하게 빛났다. 그 빛이, ‘절망의 기억’을 보여주었다.
발레린이 겪어온 회귀의 삶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것이다.
– 이 길에…… 과연 끝이 있는 것인가?
– 앰버, 날 용서하지 마라.
–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세계를 위해서다. 이해해줘라.
연인도 죽이고, 가족도 죽이고, 숭고한 뜻을 지닌 동료의 시체를 밟아 가면서까지, 발레린은 달려 나갔다. 개인의 감정을 버리고, 오로지 세계만을 위해서. 그러나 거기에는.
– 오직 절망뿐이었어…….
수천수만 번의 죽음을 넘었으나, 절망밖에 보지 못했단 말. 그 애달픈 말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되던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로우!”
“네, 배를 구했습니다. 나이트 페이스들로 노를 저으면 됩니다.”
크세리니아의 외침에 로헤이리츠가 한 군용 갤리선의 갑판 위로 올라섰다.
“바로 닻을 올려. 출발하자.”
현수가 배에 오르지 않고 자리에 우뚝 멈춰 서자 샬롯이 물어왔다.
“어서 올라, 이럴 시간이 없다!”
“안 갑니다. 발레린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안 갑니다. 아니, 못 갑니다.”
신태엽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매형, 내가 진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은데…… 엘리트 플레이어는 그냥 클래스 자체가 달라. 저놈이 탄 건 거신 0식이라고! 최종 레이드 직전에서나 쓸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놈 상대로 지렁이랑 다를 바가 없어.”
“박현수, 너에게는 더 큰 사명이 있다. 인간과 요정의 재결합, 타르혜 론델 말이다. 그리고 베르켄시아의 계승까지. 발레린 왕제는 그래서 목숨을 건 거야!”
“그렇기에 갈 수 없단 겁니다!”
현수가 움직이지 않자, 로헤이리츠가 뱃머리에서 뛰어내려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박현수가 가지 않겠다네요.”
가이네이브가 상황을 설명했다.
로헤이리츠가 현수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힘은 쥐뿔도 없는 게 지금 제정신이냐? 저 상황이 안 보여?”
종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고,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지는 지옥도. 하지만.
“로헤이리츠, 발레린을 구해야 합니다.”
“그 머저리는 구할 필요가 없다. 구해야 하는 건 너 같은 조무래기겠지.”
“발레린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 세계를 부탁한다고도 말했죠.”
이제야 발레린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낯익었던 까닭을 알겠다. 닮았기 때문이야, 정철과.
– 보고 싶다.
발레린의 기억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은 이 말이었다.
– 파멸의 날에, 파멸이 오지 않고, 태양과 달들이 떠오르는 걸 보고 싶다.
절망밖에 보지 못했으나, 발레린은 꿈꾸었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세계를 보고 싶다. 나는 거기에 없어도 괜찮다. 그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 발레린의 기억 위로, 왜 성도의 대관식에서 정철이 했던 말이 포개지는 건지 알겠다.
–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필시, 같은 싸움을 해온 거겠지.
똑같은 싸움을 하고, 하고, 또 하는 나날 속에서, 결국 체념했었던 거겠지.
– 현수 씨가 보게 해준 성도 퀘스트의 새로운 종장,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그때 아이같이 웃던 정철의 미소는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이 세상의 ‘해피 엔딩’을 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 딱 둘 있다면, 바로 그 두 사람 아닐까?
직감했다. 지금 여기서 발레린을 버리면, 언젠가는 정철 또한 버리게 될 거라고.
“세계를 구했다고 칩시다. <잊혀진 왕들>도, 외우주도 사라진 세계입니다. 그런데 발레린이 없어요. 그 자리에 발레린이 없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수백만 번을 죽어 가면서까지 헌신한 사람이, 정작 그 세계를 보지 못한다는 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상관없었다. 현수 혼자라도 갈 것이었으니까. 침묵을 깬 것은 신태엽의 기분 좋은 한숨이었다.
“매형은 옛날 철이 형아를 떠올리게 만든다니까. 좋아…… 내가 도와줄게. 발레린한테는 마법을 좀 배웠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내 치료가 전투에 도움이 될 거다. 박현수.”
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겐…… 위험합니다, 샬롯.”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이냐, 박현수. 나는 구제 기사단의 단장이자 어엿한 기사이니라.”
현수가 우물쭈물하는데, 하늘을 돌며 괴조들을 사냥하던 스케사리가 크게 짖었다.
“우리 사리사리 스케사리도 도와주겠대!”
로헤이리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불현듯 박현수의 세상이 흐릿해지면서 수평선이 사라진 대신 바닥이 시야 가득 솟구쳐 올랐다.
“……기분 더럽군. 저 머저리는 네가 도우러 온 미래까지 보고 온 모양이다. 그래서 나한테 널 이렇게 제압해서라도 데려가라 부탁하더군…….”
숨을 쉴 수가 없고…….
아, 발레린…….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서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고…….
“……저 귀쟁이를 도우러 가는 건 나 혼자면 족해. 나는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 하지만 너 같은 머저리를 짐짝처럼 달고 갈 생각은 없어…….”
강대한 마력과 외우주의 힘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소음과 흔들림이 아득해져 간다…….
의식이 점점 멀어진다…….
닻줄을 푼 배가 바다로 끌려가듯…… 발레린이 없고, 정철이 없고, 오직 나만 있는 미래로…….
“……그럼 로우, 조심히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