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8)
가짜 용사 이야기-18화(18/310)
제18화
기원(起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1)
울프를 전송한 뒤, 카이센은 법황청 정원을 하릴없이 서성였다. 울프는 이렇게 말하고 떠났다.
– 곧 널 데리러 <위용검전>의 교관이 올 거야. 기다리고 있어.
용신의 정원은 금빛으로 아름다웠다.
철이 아닌데도 복숭아나무에 맺힌 복숭아들이 달큼한 향취를 그윽하게 토해 꿈속처럼 몽롱했다.
이 세상이 아닌 듯한 향기 속에서 카이센의 이목을 잡아끌었던 건, 멀리서 금빛으로 번쩍이는 신상이었다.
용현(龍賢), 레인 루드윅.
높이 14미터, 둘레가 25미터.
황금으로 만들어진 현자는 위엄차게 삼천세계를 굽어 살피고 있었다.
대좌에 굵은 글씨의 비명(碑銘)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실눈을 뜨고 비명을 들여다보았으나 카이센은 용언을 읽을 줄 몰랐다.
낯선 목소리가 그 용언을 읽어준 건 그때였다.
“인류가 신들께 바라왔던 모든 것, 신들이 인간에게 베풀어주길 원하던 모든 것을, 이 용현 레인 루드윅이 중개하여 이 땅에 베풀어 주었다.”
흠칫 놀라며 옆을 돌아본 카이센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백발이었다.
그 아래의 황금빛 눈동자.
구릿빛 피부로 보아 아드리온 대륙 출신이었으나, 그걸 제외하곤 카밀라와 라미네아의 신체적 특징이 비슷했다.
요컨대 페이쿼리어였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니?”
“…….”
“이건 말이야.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그 보상을 얻을 거라는 약속이야. 그 보상을 누구도 훔치지 못할 거라는 신들의 약속이지.”
이름 모를 페이쿼리어는 같잖다는 듯이 흥, 하고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르스 드라고니아, 할스 드라큐스. 용족에 의한 평화. 황금시대의 인류는 그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더군. 레인 루드윅은 황금시대를 잇는 은(銀)의 시대를 만들었고. 우리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대야.”
“누구……?”
“난 올리에르 듄 제라예라고 해. 998기 페이쿼리어 생도단을 맡고 있는 수석 교관이지.”
나중에 안 거지만, 듄 제라예라는 성(姓)은 전용 성검이 없는 결번이라는 뜻이었다. 황금의 눈이 카이센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나저나 진짜 남자가 올 줄이야…… 페이쿼리어 역사상 최초로군. 물론 아직 서임된 건 아니지만.”
“…….”
“붙임성이 없다는 말 자주 듣지? 가자, 네가 입교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참, 동기들을 만날 생각은 말아라. 넌 남자라서 기수에 정식 편입은 못 시켜. 사춘기 여자애들한테 자극이 클 테니.”
내 동기……?
페이쿼리어는 개인 교육이 아니었다. 기수별로 교육이 실시되며 그 지옥주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에게 성검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부여되었다.
“그나저나 카밀라 아래서 전쟁터를 4년이나 누비고 왔다고? 아니, 이제 5년을 채웠나.”
올리에르가 법황청의 상승회랑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도중에 마주치는 자들이 올리에르에게 예를 표했다.
“그거 참 고생 많았겠네. 그년 한 성깔 하잖아.”
“카밀라를 아십니까?”
카이센은 존댓말을 썼다.
전화(戰火)에 휩쓸린 구공화국을 떠나 이곳 칼날반도로 도망쳐오는 동안 울프가 거듭 예의를 지도한 덕택이었다.
“잘 알지. 어떻게 아는지는 비밀이고.”
“아, 예…….”
“얼굴에 있는 그 문신은?”
“어머니를 죽인 우루크가 새겼습니다.”
“네 어머니가 누군데?”
“……평범한 어머니셨습니다.”
“흠, 우루크가 평범한 여자 하나를 죽인 다음 그 아들에게 사냥감의 주박을 새긴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그것도 서열 1위 클랜인 발크루쉬가.”
아. 이 사람은 여기서 우루크의 실정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있구나.
교관이란 그런 거구나.
카이센이 침묵하는 게 재미있단 듯이, 올리에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쪽이야. 이 안으로 들어와.”
카이센은 그날 처음 권양기를 통해 운용되는 승강기에 탑승해 보았다.
“철망을 닫고…… 좋아, 여기 숫자 보이지? 22. 앞으로 네가 생활하게 될 곳이니까 기억해둬.”
용신의 궁전은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모든 곳을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기에는 늙은이들의 척추가 염려되었던 것일까.
키기기깅…… 쇠사슬이 감기는 소리를 끌며 승강기가 상승했다.
승강기 난간 너머로 보이는 용신의 도시는 점점 작아져가며 햇빛에 너울거렸다.
‘세상에.’
카이센의 눈이 크게 열렸다.
“그렇게 착 달라붙었다가 유리라도 깨지면 떨어져서 죽는다?”
이런 곳이 있구나.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어머니가 보았던 세상, 스승님이 보아온 세상엔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정신이 아찔해졌다.
“참, 카이센…… 아, 가지고 있군. 그걸 잠깐 줘볼래.”
올리에르가 주문한 것은 카이센이 허리춤에 고이 차고 있던 소검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을 교관에게 넘겨주었다.
“페이쿼리어 생도에게는 교육 기간 동안 폐도령(廢刀令)이 내려져.”
“폐도령이요……?”
“어. 칼은 갖고 있되, 절대로 뽑아서는 안 돼. 뽑는 순간 퇴교 조치야. 생도의 의지력과 자제력을 시험하는 기초적 심사지.”
올리에르는 품에서 삼끈을 꺼내더니, 소검의 칼자루와 칼집을 능숙하게 빙빙 감아 묶었다. 실수로 뽑히는 일이 없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말입니까?”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경우에는 참작이 이루어져.”
“생명의 위협에 준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도 말입니까?”
“너, 생각보다 재밌구나.”
올리에르가 삼끈으로 봉인된 소검을 돌려주었을 때, 쇠사슬 소리가 멎고 승강기도 상승을 멈추었다.
22층에는 각종 수련 시설이 마련돼 있었는데, 올리에르가 카이센을 웬 바위 앞으로 안내했다.
바위 깊숙이 칼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올리에르가 칼자루를 가리켰다.
“이 칼을 뽑아, 카이센.”
“?”
“이걸 빼내지 못하면 넌 1차 과정에서 탈락하는 거야. 요컨대 페이쿼리어가 되지 못하는 거지. 최대 시간은 두 달. 그 안에 못 뽑으면 끝이야.”
올리에르의 지도는 그걸로 끝이었다.
끝이라고 하면서 돌아서서 떠나니까, 무언가를 질문할 겨를도 없이 그저 바위와 마주 서야 했다.
이건 무슨 시험일까.
처음에는 근력 시험인 줄 알고, 어금니 하나가 부서질 때까지 이를 악물고 칼을 뽑으려 하였다.
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력을 시험하는 건가? 전신에서 마력을 순환, 마나체인과 마나하트를 이용해 칼자루를 움켜잡아도…….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거, 뽑을 수 있기는 한 거야?’
하루, 이틀, 닷새, 열흘, 보름, 그리고 한 달…….
서서히 초조감이 밀려왔다.
하루는 매번 해가 뜨고 달이 지는 하루로서 바스러져 가고, 우루크의 칼날은 온 천지를 피로 물들여가고 있는데, 내 시간은 이곳에서 멈춰 있다니.
“애초에 남자가 페이쿼리어라니, 말이 안 되지. 심지어 근본조차 불분명하다면서?”
“그리고 얼굴에 새긴 문신은 우루크의 문장이래. 불경해.”
이 바위 앞에서 칼자루와 씨름하는 동안, 또는 허기에 겨워 식당에 내려간 사이, 용사 수련생들에게서 저러한 비아냥이 들려왔다.
살면서, 남의 목소리에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 목소리들이 마음속의 의지를 점차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안 되는 건가?
어머니와 카밀라처럼 페이쿼리어가 될 수 없는 건가?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칼자루를 빼내려 했다.
손바닥의 살이 짓물러 터지고 피로 젖어도, 힘줄이 끊어질 것 같아도.
그럼에도 칼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한 카이센의 분투를 늘 멀찍이서 지켜보던 올리에르 듄 제라예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저 녀석은 글렀어, 카밀라.’
양산형 성검 디알레를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깨우지 못하다니.
디알레를 깨우는 과정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성검과 소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는 시험이니까.
저걸 깨우지 못한다는 건, 페이쿼리어에게 가장 중요한 ‘성검을 다루는 재능’이 아예 결여돼 있단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선택하고 키운 제자라고 하기에 큰 기대를 품었었는데…… 역시 남자에게는 무리였던 건가.’
페이쿼리어의 제자가 저걸 뽑지 못한다는 건 스승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일인데.
페이쿼리어의 제자들은 모두 하루 만에 저 과정을 돌파한다.
모범적 사례로 대영웅의 제자였던 카밀라는 단번에 끝냈다.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우수했던 너와 비교하면 네 제자는 내일이면 퇴출이야…….’
올리에르는 한숨과 함께 뒤돌아서서 승강기에 올라탔다.
‘젠장…….’
카이센은 결국 바위를 주먹으로 때렸다. 살이 찢어지며 핏물이 흘렀다.
‘젠장, 젠장, 젠장…….’
이대로 끝나는 건가?
셈하는 건 진작 그만뒀지만, 이제 머지않아 두 달이 다 될 텐데.
무엇 하나 진척되지 않았어. 조금이라도 빼냈더라면 희망의 빛이 보일 텐데.
‘그냥 하루라도 빨리 전장으로 돌아가는 편이…….’
그런 좌절을 품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도저히 바위로부터 뒤돌아서서 떠날 수가 없었다.
아라다만텔은 단순한 칼이 아니었다. 용사 된 자로서 갖게 되는 영예의 징표도 아니었다.
소년에게 있어서, 아라다만텔이란 다만 이음쇠였다. 이제는 끊어져서 다시는 채울 수 없게 된 두 사람과 이어지는 인연의 이음쇠.
– 그럼 아라다만텔을 부탁한다.
카밀라만 해도 이러한 유언을 남기고 떠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데 나는 지금…….
“힘으로 빼려고 하면 안 돼.”
저녁의 바람이 사뿐히 불어오는 가운데, 그 바람결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웬 소녀가 바위 옆에 서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빛 머리칼이 바람과 함께 청초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페이쿼리어의 백발과는 어딘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쪽을 초연하게 응시하는 소녀의 눈동자는 사파이어보다도 맑은 청색이었는데, 눈꺼풀조차도 새하얀 달빛으로 우아했다.
“뭐?”
소녀는 아름다웠다.
평생 이성에 관심이 있던 적이 없었으나 처음 본 순간에 가슴 한편이 떨렸다.
세상사를 순전하고 흠이 없이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에는 신비한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다만 묘하게도 환자복 차림이었다. 그 옷자락이 하늘하늘 너울거릴 때마다, 육체 곳곳을 감싼 붕대와 흉터가 언뜻 보였다.
“그건 속세의 칼이 아니야. 마음이 있고 이름이 있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이 모두를 설명하기보다는 신비, 신비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았다.
태양과 달, 별, 시냇물, 고목 같은 대자연처럼 신비한 소녀였다.
발소리조차 신비로운 소녀는 천천히 다가와, 바위에 꽂힌 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이쪽으로 상냥한 눈짓을 보내고는, 카이센의 손을 잡아 칼자루에 닿게 했다.
“먼저 이름을 말해. 누군가와 처음 대화할 때는 그렇게 하잖아?”
“……카이센.”
신비한 미색에 홀렸을까, 카이센은 스스로에게조차 어렴풋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소녀의 입 밖으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소리조차 신비로워서, 소리가 방울지며 굴곡지다 선율을 이루는 듯했다.
“내 이름은 타르시요야. 그런데 나한테 하란 게 아니라 이 칼, 디알레한테 하란 말이었어.”
머릿속에 절벽이 일어서는 듯한 쑥스러움이었다. 헛기침 때문에 일순 목소리조차 안 나왔다.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소녀로부터 시선을 돌려 칼을 바라보았다.
쇠붙이에 불과한 칼에게 이름을 말하라니, 그 이상한 제안을 되짚어볼 여유도 없었다.
“나는 카이센이다.”
그렇게 말한 순간.
아라다만텔을 뽑을 때마다 당신의 이름을 외치던 카밀라의 뒷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나는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다.
– 나는 리아 알터 타스알포다.
<아퀴타이나>에서의 대결 전에 리아 라일리가 똑같은 일을 했던 일도.
설마 그때 리아가 말한 기원(祈願)이라는 것이…… 이건가?
그 순간, 심장에 아픔이 내달렸다. 칼자루가 맥동하더니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니까.
“되, 된다고……?”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타르시요를 바라보자, 타르시요가 빙긋 웃었다.
“응, 됐어. 이제 네 마음을 성검에게 이야기해.”
“내 마음?”
“그게 바로 기원(祈願)이야. 기도하듯이, 네 바람을 전해봐. 그럼 성검이 대답해줄 거야.”
내 마음을 이야기한다고? 그러면 칼이 대답해?
타르시요의 말은 하늘하늘 날아갈 듯했고, 그 근거조차도 알 길이 없는 의문투성이였으나 청자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래도 혼잣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칼에게 말을 거는 거라고는 하지만, 영 겸연쩍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널 바위에서 빼내길 원해.”
“진심을 전해야 해. 왜 빼내길 원하는데?”
“페이쿼리어가 되어야 하니까.”
“어째서?”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러면 그렇게 말해. 내가 아니라 이 아이한테.”
죽은 스승의 육신을 불태울 때의 슬픔을 분노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이러한 순간에 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리.
카이센은 차가운 냉기를 발하는 목걸이를 움켜잡고 디알레에게 내밀었다. 그 목걸이가 말하여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며.
“내가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게 도와줘, 디알레. 난 되어야만 해. 반드시…… 부탁이야.”
그 울림에 담긴 진심이 닿지 않았는지, 성검은 아무런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디알레가 널 도와주겠대.”
아주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성검이 빛을 뿜어내기 전까지.
웅, 웅, 웅, 웅, 웅.
믿을 수가 없었다. 지각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동안 무슨 짓을 해도 미동조차 않던 칼이…… 웅, 빛의 파장을 뿜어내더니 바위로부터 빠져나오고 있었다.
칼집에서 칼을 빼낼 때보다도 부드럽게 손아귀에 잡힌 칼이 눈부신 빛으로 명멸했다.
“됐어?”
뜨겁고도 차가운 전율이 척추를 타고 하반신을 마비시켜, 칼을 양손으로 붙든 채 무릎을 꿇고 말았다.
“된다고?”
이제 페이쿼리어로서의 교육을 받을 수가 있어. 카밀라를 계승할 수 있어.
감격의 한편으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타르시요라는 녀석은 나를 왜 도와준 것이지?
모든 수련생들이 카이센을 벌레 보듯 했다. 남자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위용검전에 들어왔다는 시선을 보냈다. 어서 빨리 퇴출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째서?’
그러자 타르시요는 시선을 낮게 내리깔며 기묘한 대답을 보내왔다.
“샤릴리온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거든.”
“샤…… 뭐라고? 그게 누구야?”
“성검.”
“성검?”
“도와준 게 아니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뿐이지. 그러면 앞으로도 힘내, 카이센.”
삶에 봄바람처럼 흘러왔던 소녀는 올 때와 같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타르시요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이 만남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는 일도.
* * *
“디알레를 뽑다니…… 어떻게 된 거냐? 여태껏 손도 못 댔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타르시요가 알려 줬습니다. 기원하는 방법을요.”
“뭐라고?”
이튿날 상태를 확인하러 올라온 올리에르 듄 제라예가 눈썹을 치켰다.
기원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페이쿼리어의 직계 제자가?
제자가 된 순간부터 훈련시키는 게 기원인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럼 재능이 없던 게 아니라 그냥 방법을 몰랐다는 소리인가?
그것 또한 경악에 가까울 정도로 당혹스러웠지만, 더 황당했던 건 후자였다.
“타르시요라고? 그분께서?”
“왜 그러십니까?”
“어디 가서 함부로 그 이름을 꺼내지 마라. 이유도 묻지 말고.”
“왜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요.”
“묻지 말라 했을 텐데? 너라면, 흐음, 알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1급 함구령이 떨어져 있어서.”
“알 자격이 있단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그 문제는 그만 제쳐두고 날 따라와라. 그리고 누가 도와줬단 언질조차도 남기지 마. 첫 기원의 시험에서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는 건 엄격히 금지되고 있으니까. 교관조차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근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카이센의 질문에 흘끗 뒤를 돌아본 올리에르의 입가에는, 남들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흡족한 감정으로부터 우러난 미소였을 것이다.
이제는 죽어 먼저 저 드높은 하늘로 떠난 오랜 친구의 제자를 지도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슬프면서도 기쁜 일이었으므로.
“넌 이걸로 페이쿼리어가 될 자격을 증명했어, 카이센.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육성 과정을 시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