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86)
가짜 용사 이야기-186화(186/310)
#82 :
[11. 엇갈리는 운명] 빛의 계승자, 어둠의 계승자 (16)박현수의 등장은 신태엽보다는 엘리트 플레이어인 파울 리드에게 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바로 저것이다…….」
VVIP의 음성이 뇌리에 직접적으로 들린다.
저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다.
창세신이 거느리던 태고의 빛.
저 손에 칼의 형태로 집약된 여명(黎明), 저것이 바로 겔드하리아의 마지막 파편, 베르켄시아이기에.
‘저게 진짜 베르켄시아인가…….’
저걸 찾으려고 이 게임을 미친 듯이 탐사하던 시절이 파울에게도 있었지만, 이제 그에게는 그러한 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요토스, 그 천한 것이 간섭하지 못하게 막겠다. 그사이에 넌 저것을 갈취해 내게 바쳐라…….」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어려울 것은 없었다.
거신 0식과 흑염성 레이블헤인의 조합에서 비롯된 힘은 엘리트 어쌔신도 압도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야 할 텐데?’
쫓을 수가 없다고?
속도가 빠른 건 알고 있었다. 알카이오스의 기술은 위상 전환, 육신을 벼락으로 바꾸어 광속에 이르는 힘이다.
하지만 알카이오스를 수십 번은 토벌해본 입장에서 그 궤적을 쫓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사방에서 폭발하고 휘몰아치며 솟구치는 흑염이 저 빛의 속도에 전혀 닿지 못한다.
빗나갈 때마다, 빛이 거신 0식의 관절부에 스며들면서 경고문이 통제 모니터에 붉게 떠오른다.
거신 0식의 장갑조차 뚫는다고?
‘진정해, 진정해라.’
엘리트 어쌔신은 이보다도 더 날쌨다. 그놈과의 전투에서 쌓은 데이터를 활용하면 그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 꿰고 있단 말이다!”
하나의 보스 몬스터로서, 공략당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네가 가진───!”
엘리트 아처가 느낀 바는 아주 적확했다.
박현수가 이곳에서 반복한 죽음은 146회. 그 146번 동안 박현수는 싸우고 죽었고 또 죽은 동료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다 죽었다.
그 146번의 절망을 반복하면서 분석하고, 연구하고, 탐사하여 최고의 길을 찾아냈다.
“───‘패턴’은!”
수없이 많은 길이 뻗어 나가는 교차로, 거기에 포개지는 길 하나하나를 다 가보고 올바른 길을 찾아내듯이.
“까불지 마라…….”
거신 0식은 건재하다.
타격을 입고 있긴 하지만 메인 엔진은커녕 서브 엔진조차 손상을 입지 않았다.
“……지금 누구 앞에서 패턴을 논하는 거냐!”
오대천사(五大天使).
성배 전쟁 말기에 성배를 깨부수려는 플레이어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들.
– 이계의 존재들아, 결국 성배를 깨뜨리고 종말을 앞당기고자 하느냐.
오대천사에 대한 정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고대의 전쟁에 <온 것들>을 섬긴 용사(勇士)들이었다는 설정만이 알려져 있을 뿐. 참고로 미친놈들만 쓰는 성검 샤릴리온의 초대 검주도 오대천사 중 하나였단 설정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설정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알카이오스가 유일하게 작중에서 보스로 등장하는 필두 대천사로서, <황녀를 위하여> 레이드 난이도 TOP 3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보스라는 게 중요하지.
‘그렇기에 연구했다.’
눈을 깜빡인 한순간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박현수가 번개로 변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거신 0식의 사각에 나타나 베르켄시아를 내찌른다.
‘이런 자잘한 패턴은 미끼.’
거신 0식의 방호 포탑이 반격하는가 싶으면 이미 번개로 변해 사라져 있다. 그리고 다시 사각에 나타나는 식이었다.
‘딜 타임을 만드는 방법은.’
파울 리드의 명령에, 흑염의 악몽이 면(面)을 제압하며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에 맞서서 박현수가 검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창공이 전율했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크기의 천둥이 천공을 물들이기 시작한 그 순간이 승패의 갈림길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광역기를 사용했을 때 발생한다. 바로 저게 딜 타임 패턴.’
패턴의 이름은 바로 ‘최초의 벼락’. 엘리트 아처의 분석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거신 0식의 전 포구에 흑염의 힘이 공급된다. 육신에 충만하게 깃든 권능이 강제로 빠져나가는 이상야릇한 기분.
거신 0식은 빨아들인 힘을 증폭시켜 발포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 딜 타임에 끝내주마.’
그러나 현수는 알고 있었다.
파울 리드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걸.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죽었으니까.
알면서도 똑같이 움직인다.
왜냐면 또 알고 있으니까. 이게 승리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걸.
[경고.] [경고.] [경고.]엘리트 아처는 당황했다.
박현수를 삼켰어야 할 흑염의 파도가 일절 일어나질 않았다. 대신 조종실의 모든 모니터가 붉게 명멸하고 있었다.
‘무슨……?’
수십만 마리의 벌레 때문이었다.
대상을 갉아 먹어서 공허의 영역으로 추방하는 벌레들의 힘 때문이었다. 공허충이다.
‘저놈이 어떻게 살아 있지……?’
두 가지 충격이 엘리트 아처의 뇌리를 관통했다.
하나는 로헤이리츠가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 정체불명의 술사와 함께 밟아 죽였을 텐데?
그리고 또 하나는 공허의 위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숫자도 비상식적으로 많았다.
‘거신 0식의 장갑이 버티질 못한다고?’
박현수가 결정타를 날리지 않고 시간을 끈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엘리트 아처의 노림수에 걸려든 듯이 결정타를 꺼내든 이유도 이것이었다.
저건 로헤이리츠지만 로헤이리츠가 아니다. 지금 저 몸에 깃든 존재는, 저 몸을 이끄는 존재는…… 마지막 빛의 군주 중 하나.
‘바로.’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트 아처를 공략하기 위한 최강의 이벤트.’
공허충에 의해 장갑 내면의 접합부가 드러난다. 그러기 무섭게 해당 부위로 크세리니아의 냉기가 파고들어 거신 0식의 움직임을 봉쇄에 가깝게 둔화시킨다.
“은혜(恩惠).”
그때.
바로 그 순간에.
박현수는 기도하듯 베르켄시아를 양손으로 쥐고 하늘 높이 세웠다. 그리고 간절하게 읊는다.
“평강(平康).”
온 세상에 땅을 펴고.
하늘을 두르고.
그 모든 피조물들에게 빛을 깃들인 창세신들의 다섯 가지 성질(性質)을.
“진리(眞理).”
아이가 부모에게로 돌아오듯이.
그 목소리 가운데, 베르켄시아의 칼날 위로 빛의 메아리들이 모이고 또 모여든다. 광대한 빛의 칼날이 되어 이 세계에 새로운 새벽을 밝힐 때까지.
“공의(公義).”
그때 엘리트 아처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하나의 망향(望鄕),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
그리고 그건 또 공포, 이 충만하고 압도적인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그 모든 걸 품으며 그들 중 가장 높은 것, 사랑.”
엘리트 아처는 조종실의 해치를 열었다.
막아라.
저걸 막아야만 한다.
거신 0식이 무력화되었다면 직접적으로 권능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막아라.
저걸 어서 막으란 말이다.
그 절박한 떨림이 자신의 생각인지, 자신의 혼에 실을 매단 절대자의 속삭임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해치 너머로 빛의 결집을 목도했다.
만병기장 할바론이 직접 만들고 사용했던 유물 머스켓을 총집에서 꺼내 적을 겨눈다.
흑염의 힘이 탄알의 형태로 결집되며 공이치기가 뒤로 젖혀진다.
엘리트 아처로서 투사체의 명중률 보정을 88%까지 받을 수 있으며, 터뷸런스는 그 이름대로 난기류를 일으킬 정도로 강대한 위력 보정을 받았다.
이 초대구경 탄환에 적중 시 일대 전체가 흑염에 사멸한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서 베르켄시아의 심장을 꿰뚫으려 하였으나.
“그렇겐 안 되지!”
“SHiraakkkkkkkk!”
부적 열두 장이 커다랗게 전개되며, 하늘을 뒤덮는 불길을 만들어낸다.
부적을 사용하여 마법 연산의 시간을 극한으로 축소하는, 이러한 실전적인 마법의 사용법은 리븐델 학파의 특성.
바로 이 화염의 궁창이, 학파의 창시자였던 대마법사 오르보스가 고안한 5성 마법 천염격(天炎激).
“5성 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화염의 불길을, 그 일점(一點)을 탄환이 정확하게 관통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순식간에 다섯 장의 장막을 모두 꿰뚫은 탄환은 박현수에게로 내달리다가 다시 한번 장애물에 가로막혔다.
서리의 폭풍.
유년기와 성년기의 중간에 놓인 용왕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이 곧 폭풍이 되어 탄환의 궤도를 어지럽히고 느리게 붙든다.
“이 땅에 새벽을 밝혀라.”
안 돼.
거신 0식은 움직이지 않는다. 삐걱거리다가 마침내 무릎을 꿇으며 막대한 진동이 탑승해 있던 엘리트 아처를 덮친다.
“비켜…….”
안 돼.
무게중심이 무너진다.
두 번째 총알을 흑염의 권위로 새로이 엮어서 삽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되었건만, 중심이 무너지면서 조준선도 흐트러졌다.
“……비키란 말이다!”
안 돼.
무너지면서도 다급히 총구를 정확히 조준하였으나, 시야 가장자리로 달려든 그림자에 의해 쇳소리가 솟구친다.
“이 하찮은───!”
안 된단 말이다.
청강검, 스케사리의 등에서 뛰어내린 샬롯 칸드라군의 검격이 터뷸런스를 쳐내며 잠깐의 시간을 번다.
“───NPC들 따위가아아아아!”
바로 그 잠깐이 승부의 기로였다.
“타르혜 론델.”
세계의 종말 속에서, 닿지 못해왔던 일격. 선대 봉화지기들은 끝내 넘지 못했던 절망.
이것이,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만약 보고 있다면, 보여주고 싶었다.
절망의 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 너머 어딘가에 세워져 있을 낙원에 빛이 내리비치는 광경을.
“광명의 칼날.”
광명의 칼날은 베거나 찌르는 용도가 아니었다.
[카듀엘 : 굳이 설명하자면, 정화의 물결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현수가 칼을 휘두른 순간, 맹렬히 타오르던 검강이 갑자기 빛의 파도로 변했던 것이다.
[카듀엘 : 외우주의 어둠을 일소하는 유일무이한 힘이죠. 이 힘은 강대하나 한계가 큽니다. 자신을 지켜줄 존재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힘이죠.]그곳에도 섭리를 주재하는 겔드하리아의 가르침이 섞여 있는 것일까.
빛의 파도는 차원을 고요하게 휩쓸었다. 두렵도록 섬뜩하던 레이블헤인의 흑염을 일소시키며, 불타는 도시에 생명의 빛을 비춘다.
흑염이 사라진 땅 위에서 생명의 숲이 우거지고, 레이블헤인의 권능으로 망자가 된 이들이 이성을 되찾고 돌아온다.
그리고 파울 리드.
엘리트 아처이자 한때 인간이었던 그만큼은 통렬한 비명을 내질러댔다.
현수는 파울 리드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까지 품어온 증오와 복수심조차도 광명의 칼날에 씻겨 나간 것일까.
빛의 파도라지만 근본은 빛.
정화 작업이 끝나자, 빛은 파도의 형상에서 벗어나 광입자로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현수는 상공에서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천천히, 파울 리드를 향해 걸어갔다. 원자로와 날개가 조명 역할을 해주었다.
파울 리드는 지면에 뻗어 있었다.
흑염으로 엮은 갑주가 흔적도 없이 소멸했으므로, 맨몸이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참으로 끔찍했다. 피골이 상접한 몸 곳곳에 핏줄이 불거져 나와 있었으니까.
“……끝을 내지 않고 뭘 하지?”
베르켄시아를 빼들고 머리맡까지 다가서자, 엘리트 아처가 입을 열었다.
“나를 원망하던 게 아니었나?”
“원망해, 지금도.”
“그래…… 쿨럭…… NPC 친구들의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겠지……. 자, 어서 끝내라…….”
파울 리드는 이전과 달랐다.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눈동자를 광인처럼 굴리지도 않았다.
차분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이성적인 말투를 쓸 뿐.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렇기에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왜…… 이런 짓을 벌여야만 했지?”
남부 요정의 대다수가 죽었다.
리샤르에 의해 북부의 흑요정이 궤멸하였으므로, 대륙이 멸망했듯 요정이란 종족에게도 미래가 없는 건 자명했다.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고…….”
파울 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수가 하릴없이 칼을 쳐들려 할 때, 파울 리드가 피를 토해내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디를 위해서.”
“신디?”
현수가 되묻자, 기이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신디…… 지금 신디라고 했나……? 신디가 누구지? 신디? 아……?”
엘리트 아처의 퉁퉁 부어오른 눈에서 갑자기 축축해지더니,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래…… 이제야 떠오르는군…… 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여동생…… 신디…… 신디…… 왜…… 나는…….”
파울 리드.
29세, 미국의 전직 프로게이머.
희귀병으로 죽어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배틀로얄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엘리트 플레이어로 선발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경쟁 상대가 문제였다……. 엘리트 어쌔신, 놈의 실력은…… 놈의 성장 속도는……. 놈을 볼 때마다 조급해졌다.”
“그래서 영혼을 바친 건가?”
“그분께서…… 힘의 대가를…… 요구했으니……. 살육의 순간마다 생각했다……. 이것만 하면 건강해진 여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네 공격을 받기 직전까지…… 잊어버렸었다. 왜지? 왜…… 나는 그저 광기에 몸을 맡기고…….”
현수는 이상한 환영을 보았다.
지금 이 앞에 쓰러져 있는 게 파울 리드가 아니라, 자신으로 보이는 환영을.
그리고 박혜림의 이름을 뒤늦게나마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지금 자신의 자리에 서 있는 건 정철이었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만약.’
처음에 정철을 못 만났더라면.
정철에게 이런저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더라면.
‘내가 지금 저기에 있었을지도 몰라.’
그렇기에 이렇게 말했다.
환영 너머의 정철에게 그렇게 말했다.
“광기가 네 눈을 멀게 했을 뿐이야. 그랬을 뿐이지?”
“광기에 눈이 먼 게 아니야. 사랑에 눈이 먼 거지…… 광기란 사랑의 뒷면이란 말도 있으니…….”
“어찌 되었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거 아니냐!”
“아니…… VVIP의 광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모두 내 선택이지. 만약 나에게 똑같은 선택권이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일을 벌일 거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너는…… 제정신이 아닌 거냐? 외우주에게는 창조의 권능이 없어. 모두 다 기만이었단 말이다!”
“그건 해봐야 아는 일이지.”
“해봐야 아는 일? 넌, 너는! 수십ㆍ수백만의 신디를 죽였다고! 그 죽음은 안타깝지도 않은 건가?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고?”
“뭐든지.”
눈앞의 환영이 뒤바뀐다.
이번에는 파울 리드의 자리에 정철이 누워 있었다. 이건 예감일까, 아니면 미래시(未來視)일까.
오직 평행선만을 그리는 이 대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되돌리기 위해 이 세상에 들어온 정철과 나눌 대화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만약…… 신디를 구하는 방법이 다른 모든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해도 나는 따랐을 거다. 나는…… 신디의 가족이니까……. 단 하나 남은…….”
“신디를 잊어버렸잖아! 또다시 잊어버려도 좋다는 거냐?”
“잊어버리긴 해도…… 잃어버리는 건 아니잖나? 그거면 돼.”
“진심이냐?”
“…….”
“진심이냐고, 대답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에 붙잡힌 베르켄시아가 파르르 떨렸다. 이건 자신의 떨림인가, 칼의 분노인가.
박현수는 끝내 베르켄시아를 역수로 잡아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잠시 후, 파울 리드가 눈을 떴다.
“……뭐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