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9)
가짜 용사 이야기-19화(19/310)
제19화
“자.”
페이쿼리어 양성 기간은 통상 3년이다.
수석 훈련 교관 올리에르는 페이쿼리어 교육의 운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뗐다.
“페이쿼리어가 다른 검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챙!
올리에르의 칼날을 간신히 받아쳐낸 카이센은 고개를 갸웃했다.
“페이쿼리어와 일반 검사의 차이점이라면…… 그 어떤 검사보다도 강한 힘을 갖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하지만 내가 묻는 것은 다른 문제야. 왜 그런 힘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질문에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무자비하게 몰아쳐 오는 검격의 폭풍, 카이센은 거듭 물러섰다.
“카이센, 너는 카밀라의 제자였지. 카밀라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
“목표…… 말인가요?”
목표라, 기억은 캄캄했다.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기억나는 모습의 카밀라는 항상 싸우고 있었다. 인류를 위해서.
“그래! 페이쿼리어는 사명(使命)을 갖는다. 바로 인류를 수호한다는 사명이지. 그 사명이 있기에 페이쿼리어는 명예롭다. 그렇기에 강하게 ‘만들어질’ 자격을 얻지.”
올리에르의 말투는 딱딱한 것 같으면서도 상냥했다. 정을 주지 않으려던 카밀라의 밀어내는 말투와는 달랐다.
“다른 훈련생들은 3년 차 교육의 말미에, 용언의 힘을 몸에 깃들이기 위해 용령석(龍靈石)이라는 걸 삼키게 돼.”
용령석…….
그래, 기억났다. 들은 적이 있어.
카밀라는 팔다리 중 하나가 날아가거나 장기가 훼손되어도 그걸 순식간에 복구시킬 수 있었다.
늘 상비약처럼 지니고 다니는 용혈 혈청 덕분인데, 그걸 동맥에 주사하면 한순간 용의 초재생 능력을 가질 수 있던 것이다.
그 힘을 쓰기 위해서는 신체에 용령석을 깃들여야 한다는 울프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생명력을 신체 능력으로 전환시킨다’라는 용언이 새겨진 돌이지. 페이쿼리어의 힘의 결정체야. 그 과정에서 열에 아홉은 죽어.”
“한 명만 살아남는군요.”
“힘이 몸에 깃들면서 폭주하기 때문이야. 그걸 견뎌낸 생도들만이 살아남게 되지.”
“그렇군요.”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아도 높은 확률로 극위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페이쿼리어가 되지 못해. 놀라지 마라. 한 기수에 한 명의 수료생이 나와도 많은 거니까.”
거기까지였다.
올리에르의 칼날이 날밑을 올려쳐, 카이센의 손에서 칼이 빠져나가 허공을 날았다.
“극한의 확률로 수료식을 끝냈는데도 일반 장교 교육을 받고 전장으로 내보내지거나 법황청에 남아 훈련 교관이 되기도 해. 나처럼 말이야.”
페이쿼리어가 되든 못 되든 교육이 시작된 순간부터 세속과는 단절된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싸우는 도구가 됨으로써.
“명예와 영광을 찾아서 이곳에 온 귀족 나부랭이들은 대개 이 말을 듣고 <위용검전>을 떠나. 넌 어때?”
그들과 마찬가지로 당혹해할지 궁금했으나, 카이센의 얼굴은 그저 초연했다.
죽음과 전쟁이란 소년의 삶에서 늘 지척에서 명멸하고 있었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던 것이다.
그 옛날, 올리에르 옆에 서 있던 카밀라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뿐.
‘그래, 저 아이가 진짜 네 제자란 말이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겠는걸. 훗, 그렇다면 나도 약속을 지켜볼까.
기원(起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2)
「카이센을 월반시키겠다 했느냐?」
수석 교관 올리에르 듄 제라예는 법황청의 최상층인 99층인 용령전(龍靈殿)으로 향했다.
용령전에는 법황청의 다섯 기둥인 다섯 진룡이 기거하고 있었다.
천궁(天宮)이라 불리는 100층 옥상에는 광룡 하라데리만이 병든 몸을 요양하고 있었다.
요컨대 제국의 선제후들조차도 감히 출입할 수 없는 이 공간에 올리에르는 예외적 보고를 위해 이례적으로 들어온 셈이었다.
“아뇨. 월반 수준이 아닙니다. 곧 3학년 생도들이 받게 될 신체 강화 과정을 받게 하고자 합니다.”
추기경 요슈하르가 길게 늘어진 흰 수염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신체 강화 과정이라.」
용 대가리와 용의 꼬리가 달린 거구의 몸체는 인간형이었으며 황금의 비늘로 뒤덮여 번쩍였다.
「용령석을 그 아이에게 바로 투입하겠다는 말이냐, 올리에르 듄 제라예?」
“그렇습니다, 각하. 이미 검에 대해서는 가르칠 게 없습니다.”
「요한 울프 프로스트가 보증한 대로인가.」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니, 재능의 끝을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더 이상의 교육은 무의미합니다. 저조차도 가르칠 수가 없으니까요. 어서 전장으로 내보내야 할 재목입니다.”
수석 교관 된 자가 이렇게 극찬을 늘어놓는 후보생은 근 100년간은 라미네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문(文)에 대해서는 어떠하냐?」
“솔직히 그건 완벽하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제가 책임지고 교육시켜 놓겠습니다.”
추기경 요슈하르가 동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추기경 하곤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남아에게 용령석을 투입해 보았던 전례가 오래전에 있긴 하나 모두 죽고 말았다. 요슈하르, 괜찮겠느냐?」
「어찌하여 나에게 묻는가?」
「그대가 아끼던 아이의 혈…… 아니네. 가능하겠느냐, 올리에르 듄 제라예? 죽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구나.」
예상외로 흔쾌히 돌아온 추기경의 물음에 올리에르가 곧바로 예를 갖췄다.
“그 답은 제가 아니라 카이센이 보여줄 겁니다. 하지만 감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추기경 인라히트가 긴 숨을 들이마셨다. 다섯 추기경 가운데 그 혼자서만 황룡의 형태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침음하고 있었다.
「여름이 한창이다. 겨우 살아남아 칼을 쥔 위용사의 숫자는 단 넷. 빛의 아이들을 덮친 전황이 심히 다급하구나, 올리에르.」
“옳으신 말씀입니다, 각하.”
「용사의 끝자락을 배우는 이들 중에 선대 위용사의 제자만 둘. 거기에 카이센 그 아이까지 합한다면 셋이다.」
인라히트의 다음 말은 올리에르가 아니라 동족 추기경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모두를 여름 속으로 내보낼 수만 있게 된다면 전황은 뒤바뀔 터. 이 인라히트, 올리에르 듄 제라예의 간언을 받아들이겠다.」
* * *
“흠, 용령석(龍靈石)이 신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3년간의 수업으로 대충 알고 있을 거라 믿겠소.”
법황청 신성공방(神聖工房)에서 대표로 나온 야장은 큰 키에 허리가 곧은 늙은이였다.
이름이 스탠이라 했다.
평생 화덕을 보아온 눈동자는 짓물러 있었으나 그는 페이쿼리어 병기 공학에 있어서 대륙의 으뜸이었다.
“용령석이란 총 68가지 용언이 깃들어 있는 돌로, 신체 능력 · 반사 신경 · 회복 속도 등 다방면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갖지. 시범을 좀 보여주겠소, 경?”
997기 담당 교관인 켈리 듄 제라예는 신경질적인 인상에 안경 쓴 여성이었다.
997기, 즉 3학년 수업이었다.
켈리가 짧은 박수로 생도들의 이목을 모았다.
“마력을 손에 담지 않고 이 강판을 내려치면 내 손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부서질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켈리가 주먹으로 강판을 내리치자,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강판이 깊숙이 찌그러졌다.
“용령석의 힘을 가진 페이쿼리어라면 그 일반적인 경우에 속하지 않게 된다.”
“……!”
“물론, 이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너희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지. 페이쿼리어는 인류 최강의 병사지만, 그 병사가 되는 과정에서 아주 사소한 실수로도 죽곤 한다.”
“사소한 실수라 하심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증폭된 힘을 인지하지 못하고 등을 긁다가 등뼈를 부러뜨릴 뻔한 얼간이도 있었다는 걸 잊지 마라.”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997기의 수업이 진행 중이던 개조실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그게 바로 켈리, 네 이야기라는 건 빠뜨린 거 같구나.”
아니……?
들어온 건 수석 교관 올리에르 듄 제라예였고 생도들이 재빨리 예를 갖췄다.
켈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수석 교관, 무슨 일입니까?”
“아, 전달 못 받았나? 오늘 얘도 용령석 1차 투여를 같이 하기로 했거든.”
“1학년이 말인가요?”
올리에르의 고갯짓에 흑발의 소년, 카이센이 연구실 내부로 들어섰다.
소년, 소년이었다.
굵은 턱선에 강직한 어깨, 낯선 이성의 등장에 997기의 상위권 생도들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하, 저 녀석이구나…….”
“카밀라 님의 제자라, 분위기가 닮았네.”
“그렇다는 건 홍련 라미네아 님의 제자의 제자란 소리 아냐?”
이미 카밀라의 남성 제자가 <위용검전>에 입학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인페르노 라인이 돌파된 시기에 페이쿼리어가 많이들 죽어서, 997기에는 페이쿼리어의 직계 제자가 두 명이나 입교한 상태였다.
“스탠, 너는 전달받았겠지?”
“물론, 준비해 두었소이다.”
스탠이 긴 유리병이 빽빽하게 꽂힌 벌집 형태의 도자기를 꺼냈다. 그중 하나를 꺼내 보였는데, 안에서 꾸물거리는 구정물은 검고 혼탁했다.
“이건 용령석을 녹여낸 용액을 한계까지 희석시킨 액체이외다. 용령석을 주입하는 과정에는 사망률이 높지.”
“!”
“바로 그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총 다섯 번에 걸쳐서 예행 주입을 하는 거요. 점점 농도를 높여서 말이지요. 5차 주입 때는 농도가 원액의 5할쯤 될 거요.”
카이센의 페이쿼리어로의 탄탄대로가 끊어진 건, 바로 그 용령석 투입 과정에서였다.
올리에르가 유리병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고 카이센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개는 굳게 닫혀 있었다.
올리에르가 카이센과 시선을 마주쳤다.
“솔직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르겠다. 남자가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일이 없거든.”
“…….”
“하지만 너라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어. 선택은 네 몫이야, 카이센.”
“마시겠습니다.”
997기 생도들의 이목이 카이센에게로 와 꽂혔다.
결단이 저렇게나 빠르다니…….
죽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두렵지 않고?”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자연과 같았다. 늘 소년의 삶 속에 있었고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소년은 마개를 뜯었다.
녹슨 쇠를 녹여낸 듯한, 쇠 비린내가 올라왔다.
“마시겠습니다.”
소년은 올리에르를 한번 쳐다본 다음, 목을 젖히고 입 안으로 용액을 들이부었다.
“카이센!”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이센의 용령석 1차 투입 시도는 실패했다.
혈관이, 췌장이 차갑게 타오르는 듯한 격통 속에서 눈과 귀와 입에서 걸쭉하고 뜨거운 것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핏물이 응어리져 숨통을 막았다.
숨을 쉬지 못하여, 바닥에 고꾸라져 호흡을 힘겹게 깔딱거리던 카이센은 그대로 혼절했고 의무대로 옮겨졌다.
“어떻게 된 거야, 스탠! 제대로 희석시킨 거 맞아?”
“물론, 다른 생도들은 문제가 없었잖소.”
“수석 교관, 역시 남자를 페이쿼리어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1차부터 실패라니.”
“아니…… 아직 죽지는 않았잖아.”
죽지는 않았다. 그래, 죽지는 않았지. 붙은 건 목숨뿐이지만.
이틀 뒤에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 세계는 물감이 번진 듯이 흐릿했다.
시력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던 것이었다.
“카이센, 저 켈리도 예행 투입에서 시력을 잃었다가 최종 투입에서 다시 시력을 되찾았어. 너무 상심할 것 없다.”
“그건 5차였지, 1차가 아니었잖소.”
“스탠, 조용히 하고 임시로 안경이나 맞춰줘. 2차 투입 때까지 검술 훈련은 쉬어라. 이론 훈련은 계속 받고.”
그때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이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넌 용사가 될 수 없다고.
* * *
광룡(光龍) 하라데리만은 천궁에서 수백 년째 나오지 못했다.
법황청 최상층, 천궁(天宮).
높고 또 높아서, 하늘 너머 구름에 닿은 이곳을 사람들은 천궁이라 부르며 경외해왔다.
광룡은 천궁에 홀로 기거했었으나 이제는 비룡 신관들이 그 병 수발을 들고 있었다.
「그래, 온 세상이 신음하고 있구나…… 요슈하르.」
광룡은 황룡 군단의 수령이었다.
삼신룡 중 하나인 광룡의 허우대는 진룡(眞龍)보다 다섯 배는 더 컸다. 황금의 용린이 햇살을 튕겨내며 영롱히 빛났다.
진룡 요슈하르가 읍하고 절했다.
「신들의 불충이옵니다.」
「괘념치 마라. 충(忠) 하나로 펴질 수 있는 세상이었더냐.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은 안녕하더냐.」
「그 아이는 5년 전에 죽었사옵니다…….」
요슈하르의 늙고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광룡 하라데리만이 깊은 시름을 토했다.
「그러하더냐.」
「그러하옵니다. 지금은 그 아이의 혈육이 아라다만텔을 계승하려 정진하고 있나이다.」
「네가 전한 소식이 아프구나.」
「황송하옵니다.」
「용들의 나라는 무너졌느냐.」
「반년 전에 무너졌나이다.」
광룡이 기침 끝에 피를 토했고 비룡 신관들이 다급히 다가와 광룡의 입가를 닦았다.
요슈하르는 광룡의 치매에 두려움을 느꼈다.
광룡마저 승하하시면…… 인류는 하나로 엮이지 못하고, 심연이 신들이 떠나신 틈을 노려 다시 이 땅에 창궐할 터인데…… 아하, 세계가 무너지고 있구나.
광룡은 움직이지 못했다.
늘 용상에 누운 채 일월에 몸을 쪼였다.
왕의 심연이 남긴 깊고 또 악랄한 병마가, 수백 년 동안 신룡의 몸을 깊숙이 무너뜨리고 있었으므로.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과 샤론 알터 타스알포가 구출한 언약궤는 어떠하더냐? 신들의 자손들께서는 무사히 깨어나셨더냐?」
「두 분 모두 깨어나셨사옵니다. 달께서는 이곳에서 칼의 길을 걷고자 하시는데 그 육신이 심히 병약하신 것이 걱정되오며, 태양께서는 잠시 머무르다 떠나셨사온데 그 행방을 아무도 모르옵니다.」
「신들의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병세가 급하다. 이 하라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시간이 없다.」
「성하, 소신이 무엇을 하길 원하시나이까?」
「내 영혼의 파편을 너에게 더 나누어 주겠노라.」
삼신룡들은 스스로의 영혼을 균등하게 나누어서 각기 다섯 마리의 진룡을 낳아서 거느렸다. 그걸 더 나누어 주겠다고?
「성하, 옥체가 편치 않사온데 어찌 그런 뜻을…….」
「이를 라미네아의 아이에게 네 영혼을 내주려 할 때 더불어 전달해주길 원하노라.」
「성하.」
「나는 곧 죽으나 그 힘을 남기리니, 지극히 미약한 파편밖에 되지 않으나 훗날 인과에 창대한 파문을 일으키길 소원하노라.」
요슈하르는 광룡의 신통력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하려는지 당신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나이다.
검은 태양 카렌덴께 배운 마음가짐 그대로, 마지막까지 이 땅을 생각하시는 누리의 아버지이시여.
「성하의 원대로, 이 요슈하르가 열성을 다해 섬기겠나이다.」
요슈하르는 읍하고 물러갔다.
삼신룡 가운데 화룡(火龍)으로 불리던 벨’다키둔은 오래전에 아드리온 대륙에 화염의 장벽 <화염만리>를 세워내고 죽었다.
수룡 예리세리카는 세계수와 일체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이제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 땅에 빛을 밝혔다던 신들은 어디에도 없었고, 신들을 대리하던 세 신룡은 이제 모두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초입이었다.
천년(千年)의 황금기가 끝나고, 세상은 사방에서 어찌할 방도가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