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95)
가짜 용사 이야기-195화(195/310)
시즌 3 : 3화
용사(勇士)라는 꿈의 새는 알을 깨고 나왔다. 그 시작은 검술 훈련에서 비롯되었다.
– 카미, 검술이란 말이지? 손으로 하는 게 아니야.
그 훈련 속에서, 계절도 함께 움직였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시들고, 겨울이 녹아내리고, 1669년의 봄이 꽃피워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라미네아는 나무 베기라는 단순한 동작에서 검술의 핵심을 짚어 주었다.
– 신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야 해. 그렇기에 보법이란 모든 검술의 근간이 되지.
호흡을 정돈한다. 손아귀에서 묵직하게 존재감을 발하는 철검의 무게감.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또 익숙하다.
참격을 위해 검날을 머리 옆으로 끌어당기는 동작도, 그리고 참격을 위해 발을 내딛는 동작도.
– 몸의 근력, 체내의 마력, 그리고 원심력, 관성, 그 모든 힘의 흐름을 칼날 하나로 모아야 해. 지금은 마력이 아니라 근력의 흐름에 집중해보자.
지면을 내리찍은 발은 중심축이 된다. 그 축을 토대로 몸에 미세한 회전을 일으킨다.
이 회전에 상반신 전체의 근육이 반응한다. 모든 근육의 힘이 칼자루를 타고 칼날로 전달된다.
따악…… 나무 밑동으로 깊숙이 파고든 칼날이 뭉툭한 쇳소리를 토해낸다.
“어? 어엇?!”
여태껏, 나무의 표면조차 뚫지 못하던 칼날이 줄기에 반쯤 박혀 고정된 광경.
저도 모르게 탄성과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물론 라미네아의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그 표정을 바로 감춰버렸지만.
“카미, 아주 잘했어! 바로 지금 그 감각이야! 기억해둬. 잊으면 안 돼.”
“말 안 해도 그럴 거거든요.”
그런데 어찌나 단단히 고정됐는지, 아무리 용을 써도 칼은 나무에서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도와줄까?”
바로 그때, 오기로 힘을 더 준 순간, 칼이 빠졌다.
정확히는 반쪽만 빠졌다.
그러니까 칼날의 반쪽은 나무에 두고 온 채였다.
“엇…….”
“엄…….”
고통스러운 적막이 흘렀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파손시켰을 때, 어떤 반응과 체벌을 받았는지…….
그 공포와 긴장감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먼저 떨리기 시작했다.
“푸, 풋, 푸하하하하하하핫!”
그러나 훗날, 몇 번이고 떠올려 봐도 그 순간에는 어떤 체벌의 목소리도 없었다.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
그 기억 속에는 오직, 당신의 맑은 웃음소리만으로 가득했죠. 너무 웃으셔서 눈물이 맺히셨을 정도로.
“우리 카미, 힘이 장사구나? 그냥 쇠를 빠개버리네. 이거 앞으로 만날 남자들이 벌벌 떨겠어.”
“아니, 이건요, 어…….”
“괜찮아, 괜찮아! 다 알아. 카미 잘못이 아니라는 거. 검이 낡았으니 부러질 때가 됐다 싶었어. 마침 잘됐네.”
“마침요?”
“카미가 처음으로 나무에 칼을 박는 데 성공하면 잠시 도시에 들를 예정이었거든. 자, 일단 씻자. 멀리 나가야 해.”
안녕(安寧), 그 슬픈 인연의 아름다운 시작 (3)
기원력 1669년 4월 20일.
중서부 대도시, <센트럴노스>.
엘레아노르 대하를 가로지르는 ‘레인스피어’ 대교(大橋)에 위치하여, 북부와의 교역으로 큰 이익을 얻는 무역 도시다.
“사람이 바글바글해요.”
“전승절이 가깝잖니.”
대륙은 어느덧 최고의 축제 기간, 즉 전승 주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4월 24일, 전승절.
전승절이란 빛의 군주들인 <온 것들>이 <잊혀진 왕들>을 몰아내고 세상에 첫 여명을 밝힌 날을 뜻한다.
전승 주간은 이를 기념하는 축제로 열흘 동안 이어져 4월, 즉 봄의 끝을 장식해왔다.
<센트럴노스> 또한 그 축제 준비로 평소보다 인파가 들끓었다. 라미네아는 이를 두고 생명력이 넘친다고 표현했다.
“근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여자의 외출에 대단한 이유가 어딨겠니! 당연히 축제 기념으로 맛있는 걸 먹으러 온 거지!”
새로웠다. 참철제도에서 온 튀김과 면발, 북부에서 온 설빙, 동부에서 유명한 버팔로 토마호크…….
전부, 처음 경험하는 것들…….
불을 뿜는 광대, 분수대에 앉아 피리를 연주하는 음유시인, <온 것들>의 마지막 전투를 그리는 인형극까지.
“나는 테르시아, 거미 군주 너를 빛의 이름으로 봉인하겠다!”
테르시아의 인형이 빛을 뿜자, 거미 군주의 인형이 불타기 시작하며 아이들이 환성을 내지르는 소리도.
“크아아아악~! 대체 그 힘은 뭐란 말이냐아아아앗!”
유치한데, 유치해서 웃기고, 웃겨서 즐겁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본 적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처음 겪어본 일 같기도 했다.
“인형극은 재밌니?”
“누, 누가 재밌대요? 그냥 남들 다 보니까 대충 보는 척하는 거지.”
“후후, 아까는 너무 웃어서 숨도 못 쉬던 것 같은데…….”
“흐, 흥! 누가 그랬는데요?”
“잠시 보고 있으렴. 나는 제철소에 금방 다녀올 테니.”
처음 보고, 처음 듣고, 처음 해본 것들이 어쩜 이리도 많은지…….
잔뜩 먹고.
잔뜩 듣고.
잔뜩 보았다.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그렇기에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전부 꿈이 아닐까?
순간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 꿈의 중심이 없어졌다.
스승님이 곁에 없는 것이다.
다시, 홀로 남겨지는 공포가 온몸에 오한으로 쇄도해들었다.
‘아니, 아니야…….’
호흡이 가팔라졌다.
어느새 다시,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이후의 모든 삶처럼.
멍하니 라미네아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과 몇 번이고 부딪혔는지…… 그러다가 넘어질 뻔하던 그 순간에.
“카미, 왜 그래? 누가 쫓아와? 소매치기라도 당했어?”
다시, 흑암에 잠겨가는 세상에 빛이 돌아온 것 같았다. 호흡이 정돈되고 떨림이 멎는다.
항상, 당신은 항상 그랬다.
내 작은 신음조차 들으셨다.
다급히 따라오셨는지, 스승님의 머리카락 또한 바람에 날려 엉망이었다. 근데 그 손에 웬 칼이 들려 있었다.
“아, 이거? 아이 참…… 깜짝 선물로 주려 했는데 들켜버렸네. 설마 이걸 빨리 받고 싶어서 자작극을 벌인 거야?”
“뭐…… 뭔데요?”
“선물이야. 카밀라가 제자가 된 걸 기념하는 선물. 비단으로 감싼 다음에 주려 했는데.”
그것을…… 그 태도(太刀)를 멍하니 받아들었다.
새하얀 칼집에 깃든 칼날의 길이는 카밀라의 신장과 비슷할 정도로 길었다.
칼날 위로 물결무늬가 우아하게 일렁이며 중천의 달빛을 비꼈다. 북부의 명물, 한철(寒鐵)로 만든 명검의 징표였다.
“엘레아노르 대하 이남에서 제일 싸게 한철을 구할 수 있는 게 여기거든. 델프레드랑 헤어질 때 여기 제철소에 미리 의뢰를 넣어달라 했지.”
“이거…… 어…… 저한테…… 그러니까, 저 주시는 거예요? 저 가지라고요?”
“응, 오늘이 카미 생일이잖아?”
“그걸 어떻게…….”
“왜 모르겠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태어난 날인데.”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칼날 위로 끝없이 떨어지던 눈물의 물소리를.
“어, 어라…… 왜…… 왜지……?”
왜 웃어야 하던 순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웃어야 하던 그 순간에 눈물이 쏟아졌던 것일까.
눈물이…….
세상이 부옇게 부서지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떠올릴 때에도 미소의 틈새로 눈물이 배어 나오게 되는, 그런 기억이 있다.
“울지 마, 카미.”
바로 이게, 그런 기억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몇 번이고 있을 텐데.”
어머니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던 걸까.
선물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선물에 담긴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 선물과 함께 전해진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마다 이렇게 울면, 탈수증에 걸려버릴걸? 곧 4월도 끝나고 여름이 오는데 말이야.”
평생,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1669년의 4월은 그렇게 마지막 주를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4월이 끝난다.
그렇게 5월, 여름이 시작된다.
한 해의 사계절 중 가장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청춘의 계절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청성(淸聲)의 빛이 형체를 입었다.
맑고 찬란한 그 빛은, 천공의 탑이라고도 불리는 법황청 꼭대기의 천궁(天宮)에 단숨에 올랐다.
마지막 삼신룡, 광룡 하라데리만이 누런 비룡들의 수발을 받고 있는 곳으로.
「성하(聖下).」
청성의 백룡 미른가디아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자, 광룡의 눈이 힘겹게 열렸다.
「그래, 네가 오니 기쁘구나…….」
「전장의 일이 화급하여 감히 본체가 아닌 분신으로 하여금 천궁을 범한 무례를 용서하소서.」
「네 일에 일절의 무례도 없다. 말하라.」
청성 미른가디아는 삼신룡 중 장녀, 수룡 예리세리카의 자손이자 제자이며 혼과 의지의 계승자였다.
그렇기에 청성의 위명은 높았다.
그렇기에 광룡은 청성을 아꼈다.
지금처럼, 어떠한 기별도 없이 광룡을 즉각 독대하는 일이 앞선 모든 설명을 증명한다.
「마(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부족 별로 이루어지던 침탈은 이제 집단적 광기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나이다. 여러 점이 뭉쳐 선을 이루고 있사옵니다.」
「통합을 말하고자 하느냐?」
「예. 누군가가 마족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세계수를 통해 미래의 세계점들을 내다보았사온데, 거기에 빛이 있었사옵니다. 심연에 잠긴 빛이었나이다.」
청성은 이렇게 ‘순백의 꿈’을 통해 세계선을 내다보았다.
세계선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미래의 편린을 추측해보는 것으로, 이는 본디 수룡 예리세리카가 행하던 일이었다.
하라데리만은 누이를 그리워하면서 입을 열었다.
「네 말이 어렵구나. 정확히 고해보아라.」
「성검, 요니울란이었나이다. 요니울란을 가진 자가 통합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었사옵니다. 짐작 가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요니울란, 요니울란……?」
광룡 하라데리만은 떠올렸다.
어린 유년의 날, 아버지의 곁에서 형제자매와 함께 싸우던 나날에…… 모든 격전의 선봉에 서던 다섯 용사(勇士)의 뒷모습을.
그들 중 네 번째 용사, 엘디아 뮤(04), 뤼카엘 예레 요니울란. 요니울란은 그분께서 다루시던 진성검의 검명.
‘그러한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버지께서 먼 미래의 싸움을 예비하기 위해 엘디아들을 각 론델에 흩어두셨는데…….’
소식의 진위를 구별해야 하는데, 헌데 그분들과 접선할 방도가 어디에도 없다…….
내 직접 몸을 움직인다 해도 론델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이거늘, 지금 나는 눈꺼풀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우니…….
하라데리만이 고통스러운 탁음을 흘린 뒤 말했다.
「나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뤼카엘 본인일 리는 없으니, 그분께서는 심연의 대적자였느니라. 심연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건 가당치 않다.」
「예,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세상의 불이 꺼져가고, 하늘이 소란스러우니, 참일 가능성 또한 열어두어라.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극도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성하.」
「내 탄식한다, 빛이, 빛이 사그라져가는 이 땅에서, 내가, 저 병들고 아픈 이들을 친히 보살피지 못하고…….」
양손을 모아 공손히 읍하는 청성의 분신이 광입자로 흩어져갔다.
「광룡께서는 누리의 아버지로서 창세의 빛을 온 세계에 전하셨거늘 누가 성하를 책망하겠나이까. 이 시대에는 제가 기도하고 빛의 씨를 파종하겠나이다.」
기원력 1669년 5월.
바야흐로, 세계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