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97)
가짜 용사 이야기-197화(197/310)
시즌 3 : 5화
지금까지…… 부모라 할 수 있는 존재에게 검술을 보여준 적이 있기는 했다.
둘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것밖에 모르던 어린 시절의 카밀라를 지극히 칭찬해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이복형제들이 검술을 배우는 걸 훔쳐보고, 그걸 선보였더니 도리어 역정을 낸 아버지.
“응시 번호 236번, 카밀라 플라워. 초급이군요. 시작하세요.”
여긴 어머니도 없어.
그렇다고 아버지도 없지.
그러니까 긴장할 필요 하나 없는 거야…….
– 초급 검정시험은 세 가지 단계로 나뉘는 시험이야. 첫 번째는 보법. 십문자도 보법 말고, 그냥 기초적 보법과 참격과 방어를 보는 거야.
라미네아가 일러준 대로, 사방에서 주먹만 한 불덩어리들이 날아왔다.
그 숫자는 총 열여섯 개.
팔을 쓰지 않고, 막지도 않고, 오직 보법만으로 열여섯 개의 불덩어리를 모두 피하고 라인까지 들어가면 합격.
카밀라의 발이 움직였다.
가장 효율적인 최단 경로로, 불덩어리들이 교차하지도 닿지도 못하는 공간을 내리밟는다.
“발동작이 경쾌해. 망설임이 없군.”
시험관들이 검사표 체크 항목에 만년필을 끄적거렸다.
“보법의 방향 전환도 엄청나게 자유롭고요.”
“합격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왔네요.”
라미네아는 펜의 윗부분이 남기는 궤적을 흘끗 보았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위표 하나 없고 모두 동그라미였다.
– 보법 시험이 끝나면 참격. 허수아비들이 여섯 기 일어서는데, 하나하나 베어야 할 지점이 붉게 표시돼 있어.
보법을 행하는 동시에 공세를 취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볏짚 허수아비들이 세 기였고 죽순이 세 기였다. 손목이나 발목, 또는 목 쪽에 마력의 선이 은은하게 빛난다.
이때 동작을 멈춰선 안 된다.
전진의 보법을 유지하면서 하나하나 차례로 확실하게 베어나가는 게 포인트.
– 전면 베기, 측면 베기, 후면 베기 실력을 테스트하는 거야. 서두를 필요 없어. 중요한 건 참격의 정확도와 깊이니까.
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강변 마을에서 나무를 베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눈 감고도 깔끔하게 베어낼 수 있었다.
허수아비들이 참격 유도선을 따라 정확하게 절삭되었다. 차례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시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격도 완벽하고.”
“왜 이런 아이가 열두 살까지 초급 자격증도 없던 거지?”
“플라워라는 성을 보면 어느 중부 귀족가의 서녀일 텐데, 처음 들어보네요.”
그런 속삭임을 증폭된 청각으로 엿들으면서 라미네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델프레드가 말했다.
“아주 입꼬리가 승천하려 하는구만.”
“요한이 저 나이에 리미테스(2성) 등위를 딸 때 너만 하겠어? 그때 입 찢어질 뻔했던 게.”
“마! 무슨! 저놈이 다 듣고 있는데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델프레드가 다급히 팔을 파닥거리자 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 단계인 방어…… 지면에서 솟구치는 얼음송곳들을 막아내는 시험도 카밀라는 완벽히 답파했다.
시험관들은 검사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모든 확인 항목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이건 뭐, 따로 채점할 필요도 없겠네요.”
초급 검정시험 합격의 증표는 철제 반지다.
칼을 녹여서 만든 이 반지는, 칼의 길에 들어선 초심자들을 쇠의 비린내로 축복하는 동시에 곧 맡게 될 피비린내를 예고한다.
라미네아가 접수처에서 반지를 수령해 왔다. 명주실로 반지를 꿰어 카밀라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건, 카미가 저 까다로운 시험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야.”
카밀라는 그 반지를 멍하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내가 다른 누구에게 인정을……?
하핫, 하고 나오던 헛웃음이 얼굴 전체로 미소로 번졌다. 카밀라가 급히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이건 웃은 거 아니거든요? 웃긴 무슨, 그냥 갑자기 코가 간지러워져서.”
시선을 돌리며 손사래를 치는데, 문득 이상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검도에 입상하신 건 언제였나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진지하고, 진솔한 음성으로.
쑥스러움을 감추려 무던히 애쓰던 카밀라는 망연한 얼굴로 두 손을 내려야 했다.
시선이 맞닿자 라미네아가 어딘가 들뜬 듯하면서도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카미가 용사가 되고…… 제자를 받게 되었을 때 말이지?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 오늘의 기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렴.”
안녕(安寧), 그 슬픈 인연의 아름다운 시작 (5)
전승절 축제 기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레인보우가든>은 중부의 수도답게 볼거리며 먹을거리가 많았다.
즐겁다.
즐거워.
그날 난생처음으로 극장이란 곳도 가보게 되었다. 동란기를 평정한 용사, 리스타 파티의 이야기를 다루는 극단이 와 있다는 것이다.
“린, 린! 정신 차려! 린, 제발! 프리데, 해주 주술을 외워, 뭐 하고 있어!”
리스타 파티의 이야기는, 어린이용 동화와 달리 슬픈 이별의 이야기였다.
“리스타, 내 힘으로도 안 돼. 이건…… 죽을지도.”
함께 땅끝까지 나아갔던 소년 대마법사 린의 희생으로, 동란을 평정하게 되는 이야기.
“나…… 죽고 싶지 않아…….”
“죽지 않아. 누가 죽게 한대? 의식을 잃으면 안 돼, 린!”
“아니, 그래서, 내가 불사의 술식을 만들었거든…… 나는, 여기까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 돌아올 테니까…… 꼭 이겨.”
교훈적인 내용이 강했던 동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돌아올 거야? 약속한 거지?”
“응, 약속…….”
그렇게, 암막이 드리워지면서 극이 끝났다. 배우들의 열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눈가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과연 유명 극단…….
연기력이 엄청나서 그런지, 꼭 저 상황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대마법사 린은 그렇게 죽고 돌아오지 못했다.”
대무녀 프리데를 연기한 배우의 독백이 이야기를 갈무리했다.
“그날 전쟁은 끝났다. 리스타는 죽는 그날까지 린을 기다리다 법황청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그 자연사는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눈물을 훔치면서,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갈채를 쏟아냈다.
그건 행복한 눈물이었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즐거운 이야기를 떠나보내는 그런 기쁨과 아쉬운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문득 슬픔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이런 걸 보신 적이 있을까? 즐기신 적이 있을까? 항상 리스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아니, 아냐. 카밀라는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잖아.
그래야 나중에 천국에서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한테 좋은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다.
지금은…… 이 모든 행복과 즐거움을 확실하게 기억해두자. 그래서 나중에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줘야지.
‘이것도.’
카밀라는 목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발하는 철제 반지를 소중히 품으며 미소 지었다.
많은 게 달라진 기분이었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주저앉아서 울 시간이라곤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벨르윈 저택으로 간다고?”
그날 저녁, <레인보우가든>의 역사 건물까지 배웅을 나온 델프레드가 물었다. 라미네아가 대답했다.
“어. 이제 우리 카미를 가족들한테도 소개해줘야지.”
벨르윈 저택은 루드윅 방백 가문의 본성이었다.
영지 중심부에 위치하며 중부의 수도 <레인보우가든>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서, 철도로 한나절이면 닿는 거리였다.
“게다가 여름도 시작됐잖아. 날이 점점 더워지는데 계속 노숙이나 할 순 없지. 우리 카미 피부 다 탄 것 좀 봐. 그래서 넌?”
“이 몸의 지식을 원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여기 <리바르덴> 마법학교에서 여름에 특강을 좀 해주기로 했다.”
“흠, 두꺼비로 변신하는 마법을 그렇게나 배우고 싶대?”
“닥쳐.”
스승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동안 제자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여기 남아. 스승님 곁에. 도서관에 책도 많고, 무엇보다 스승님은 내가 없으면 생활이 안 돼. 하루 만에 방이 두…… 돼지우리처럼 변해버리거든.”
“방금 두꺼비집이라고 하려 했지?”
“쉿. 비밀이야. 그나저나 벨르윈 저택이라…… 라미네아 님이 널 정말 정식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시나 보네. 거기서도 열심히 해. 너무 긴장하지 말고.”
“흥, 긴장은 무슨.”
인사를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었으나, 카밀라는 도의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
요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자, 카밀라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그 뭐냐, 고마웠다고, 밤마다, 그, 뭐시기 마법으로, 훈련, 계속 도와줬잖아.”
요한이 빙그레 웃었다.
“서로 돕는 거지 뭐. 친구잖아. 도움이 됐다고 하니 기쁘다.”
철도 저 너머에서 불어온 바람이 요한의 연청빛 머리카락을 흔들 때, 요한은 어디 환상 속의 생물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의 요한은 그런 미색을 가지고 있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모두 여자로 볼 정도로…….
근데 그때 넋을 잃었던 게 그 미모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친구라는 말 때문이었던가.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다음 순간, 역사의 전성관을 통해 역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중부 순행 열차, 중부 순행 열차 키탄 5호가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객차와 좌석에 착석해주시길 바라며…….”
요한이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객실에 착석한 카밀라가 차창 너머로 손을 겸연쩍게 흔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가슴속 너머, 영혼 깊숙이 추억(追憶)이란 이름으로 새겨진다…….
누군가와 철도역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그런 순간조차, 어째서 먼 훗날까지 그렇게나 찬란하게 기억되는 것인지…….
* * *
광명이 실체를 입었다.
뭉클거리도록 따스하게, 세상의 낮은 곳부터 어루만지는 빛. 역사는 그 빛을 뇌향이라 불렀다.
용현이 삼영룡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남긴 세 가지 기적 중 하나, 뇌향의 세츠넨.
‘아아…….’
금발의 숙녀가 되어 무인지경의 사구(砂丘) 위에 내려앉은 세츠넨은 침음을 흘렸다.
그 낡은 삿갓 위로 극남(極南)의 햇살이 거칠게 내리꽂혔다. 극남, 남방 한계선을 뜻한다.
삿갓의 그림자에 가려 그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십자 무늬 동공에는 수심이 진하게 서려 있었다.
‘결국…….’
그 시선은 수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수평선 가득, 감당할 수 없는 넓이로 펼쳐져 이글거리는 화염의 벽을.
‘불이 꺼져가고 있구나…….’
신화시대의 산증인인 화룡 벨’다키둔은 당신의 영육을 드넓게 펼쳐 화염의 장벽을 만들었다.
화염의 벽은 극남 너머, 불타는 사막으로부터 문명 세계를 지키는 경계선을 형성했다.
이 불가사의한 벽이 <화염만리(火焰萬里)>라는 이름으로 오랜 역사를 지켜왔건만…….
‘세상의 일들이 급하구나. 서둘러 방책을 마련해야겠다.’
<화염만리>가 있었기에, 마족의 침탈은 먼바다를 크게 두르는 해로(海路)에 의지하고 있었다.
<화염만리>가 있었기에, 마족의 약탈은 해안 지대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인류도 해안선에 방어를 집중할 수 있었다.
<화염만리>가 사라지는 순간 그 모든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굶주린 6대 마족이 세상에 피를 뿌리러 올 것이 분명한즉…….
‘…….’
그때, <화염만리> 건너편, 용암이 꿈틀거리는 사막 위에서 한 검사 또한 화염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네크론 잔당만 복종시키면 시작이다.’
이 토대부터 잘못되고 그릇된 세계를 끝장내고, 모든 것을 바로잡는 때가 온다.
징…….
그 등에서 칼 한 자루가 섬뜩하게 울었다. 보랏빛 기류가 주위의 대기를 물들이고 게걸스레 집어삼킨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라.’
빛이 어둠에 비치매, 어둠이 이기지 못했다던 시대. 저 검은 희망의 상징으로서 어둠을 베고 빛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검은 성검(聖劍)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총 여섯 자루가 존재했는데, 저마다 이름이 달랐다.
저 44개의 철편이 칼날의 형상으로 엮어진 성검의 이름은 요니울란, 6인의 어센시쿼리어 중 하나, 엘디아 뮤(04) 뤼카엘의 전용 성검이었다고 한다.
‘이 모순뿐인 세계를, 내 손으로 전부 다 끝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