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198)
가짜 용사 이야기-198화(198/310)
시즌 3 : 6화
– 리스타 파티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땅끝으로 떠났습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느껴진다.
그 바람결에…….
창가의 커튼을 어루만지는 봄바람보다도 더 포근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 그 앞에 수많은 절망, 고난이 있었지만 리스타 파티는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늘 바쁘게 살아가던 어머니와 함께하는 몇 안 되는 행복한 시간.
어머니는 방앗간 집의 처녀.
벨체스터 가문의 서출을 잉태하게 되면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홀몸으로 카밀라를 기르게 됐다.
– 카밀라, 살아가다 보면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될 거란다. 그때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렴.
어머니는 늘 용사의 동화를 읽어주셨다.
동화 속의 용사는, 용사들은, 무거운 갑옷과 칼을 차고 악몽 속으로 나아갔다.
힘없고 약한 다른 이들의 절망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렴.
어머니의 미소 속에서 배어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리고도 순진한 마음이 소박한 꿈을 품게 만들곤 했다.
– 그럼 엄마, 내가 엄마의 용사가 될게요!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칼을 다뤄본 적도 없었거니와 좋아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발언은, 그저 어머니의 짐을 대신 짊어주고 싶단 마음이 표출된 것이 아니었을까.
– 어머, 기뻐라.
하지만 그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병약한 몸이 과로 속에서 오래 살지 못하리란 걸. 그래서 용사의 이야기를 그렇게나 자주 들려주신 것이었나요.
– 이 쪽지를 갖고…… 벨체스터 가문으로 찾아가렴. 네 아버지는 거기 계신단다.
어머니는 카밀라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
그때가 여섯 살이었다.
눈부시고 찬란했던 삶의 봄이 끝나고, 긴 여름이 시작됐던 해가 바로 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카미, 일어나렴, 이제 다 왔어.”
눈이 부스스 뜨이는 동시에 꿈의 암막 또한 걷힌다.
철도의 떨림이 서서히 멎어가며, 부산스러운 움직임들이 객실 여기저기에서 일고 있었다.
카밀라는 차창 밖을, 튤립이 화사하게 꽃 핀 여름의 들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 여기가…….”
마도세가 루드윅 가문은 중부 전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땅, 튤립의 고장이라는 뜻의 시아스튤리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시아스튤리카, 튤립의 고장…….
오색창연한 꽃밭의 절반 가까이는 외부인과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으나, 중심부는 오로지 가문의 구성원들과 고용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 위대한 스승님께선 그딴 조건을 죄다 무시하는 게 가능한 루드윅 가문의 장녀다, 이 말이야.”
페이쿼리어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성씨도 버리고 상속권도 포기하게 되나 그렇다고 그 입지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카미는 꽃을 좋아하니?”
“아뇨.”
“왜?”
“그냥…….”
꽃은 엄마를 생각나게 해서 왜인지 싫었다. 그리고 이 시아스튤리카는 더욱…….
엄마가 한 번쯤 꼭 여기에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릴 때 죽은 엄마에 대한 말은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꽃이 참 좋아. 어느 정도냐면 내 돌잔치 때 내가 꽃을 집었다지 뭐니.”
“그럼 용사가 아니라 꽃집을 하셨어야 했던 거 아녜요?”
“꽃집이라, 그것도 참 재미있었겠네…… 내 이름도 청성 백부님께서 그렇게 지어주신 건데…….”
어딘가, 제삼자는 감히 닿을 수 없는 어느 날의 기억을 더듬는 라미네아의 눈빛은 기쁘면서도 슬퍼 보였다.
물론, 아주 잠깐뿐이었다.
다시 생글생글한 미소를 얼굴 가득 품은 라미네아가 카밀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좋아, 그럼 어디, 상견례를 드리러 가보자고.”
첫걸음, 용사의 마음 (1)
“아니, 큰아가씨?”
“라미네아 아가씨!”
“큰아가씨, 어떻게 기별도 없이 여기까지.”
큰아가씨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가문의 고용인들이 당혹을 금치 못했으나, 그 반응에는 긴장감보다는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다들 안녕. 오랜만이네요. 재키, 아들은 잘 있어?”
“예, 하하. 신경 써주신 덕분에.”
“그루엔, 손녀는 어때요. 속을 그렇게 썩인다더니.”
“아이고, 말도 마셔요. 아가씨가 혼쭐을 내주시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답도 없어요.”
주인과 고용인의 대화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끼리의 대화에 가까웠다.
달랐다.
벨체스터 가문에서 아버지와 이복동생들이 고용인들을 다루던 방식과는 너무나도…….
“라미네아!”
그때였다. 어디선가 물방울 수십 개가 날아들었다.
이 부자연스러운 탄속은 당연히 자연이 아닌 이능으로 빚어진 물질, 즉 수 속성 마법이다.
라미네아가 검지손가락을 부드럽게 세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물방울들을 다 터뜨려버렸다.
“안녕, 라디라디! 언니 왔어! 여전히 활기찬 인사구나!”
우아하게 찰랑이는 흑발에는 대현자의 후손으로서의 기품이 살아 숨 쉰다.
검은 눈동자에 붉은 눈.
이는 용현 레인 루드윅의 후손, 루드윅 가문의 소생들이 지니는 신체적 특질.
“그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벌써 10년째!”
흑색과 적색의 조화는 인물의 인상을 날카롭고 사납게 만든다. 백발과 금안이 상냥한 조화를 이루는 스승과는 대조적이었다.
라디스, 라디스 루드윅.
라미네아가 페이쿼리어가 되어 출문하면서 가문의 상속권을 모두 이어받은 차녀.
“아무 말도 없이 쳐들어오다니, 간땡이가 부었구나. 소문을 들으니 제자를 받았다던데 어떻게 우리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1년 동안 얼굴도 안 비치고!”
두 여걸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법대학 <델라이텐>의 기숙사에 있다고 했다.
“상의할 의무도 없고 필요가 없었지롱.”
“왜?”
“직접 보면 끝장나거든~ 심장이 터져버리거든~!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답니다, 짜잔~!”
라미네아가 카밀라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지금까지 스승의 다리에 매달리다시피 숨어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카밀라를 라디스가 유심히 쳐다보았다.
‘숨이, 숨이 막힌다…….’
어릴 적부터 쌓이고 퇴적되고 응어리진 아픔과 슬픔이 맥동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때의 긴장감과 공포.
또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또 어떤 말로 상처를 받게 될지……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때, 귀엽지? 끝났지 그냥?”
“진짜네.”
“그치그치?”
“그래, 이렇게 귀여우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냥 나한테 맡겨. 내가 언니보다 더 아껴줄 테니.”
“어머, 이 여우 같은 가시나 좀 봐. 어릴 적부터 언니 거라면 뭐든 뺏어 입고 뺏어 먹던 성격 못 버렸네.”
“뭐? 죽을래? 미쳤나! 간식 몰래 뺏어 먹고, 내 옷을 훔쳐 입고 나가서 멧돼지 사냥하다가 죄다 찢어 먹고 돌아온 건 내가 아니라 언니잖아!”
귀족의 대화라 할 법한 품위와 격식은 어디에도 없는, 그저 즐겁고 그렇기에 정겨운 대화.
“뭐 어때! 덕분에 엄마가 더 좋은 옷 구해다 줬잖아. 언니는 다 거기까지 내다보고 한 거란다. 호호호호, 언니한테는 다 계획이 있고 생각이 있어요.”
“퉤, 웃기고 자빠졌네.”
“이게, 이 녀석이 언니한테, 응?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언니가 동생 옷도 좀 뺏어서 입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라미네아가 캬캬캬 웃으면서 라디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씩씩대던 라디스가 결국 크크크 웃기 시작했다.
두 자매는 머지않아 서로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면서까지 웃기 시작하자, 가문의 고용인들도 따라 웃었다.
라미네아가 올 때마다 루드윅 가문의 주성 벨르윈은 이토록 웃음이 넘쳤다. 그렇기에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그런 소란을 단번에 잠재우는 호통이 들려왔다.
카밀라는 화들짝 놀랐다.
벨체스터 가문에 있을 때는 이런 상황에 누군가는 반드시 체벌을 받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라미네아야말로 누구보다 태연했다. 태연한 수준이 아니라 능청맞았다.
“엄마~ 나 왔어요. 배고파 죽겠으니 사과 좀 깎아주세요. 영양분 같은 거 필요 없으니 껍질은 다 깎아주고요. 껍질 아까우면 엄마가 드시면 되고요. 참, 마법으로 깎지 말고 손수 깎아주세요. 엄마 손맛이 그리웠어요.”
“이것아, 귀족의 품위는 어디에 두고 올 때마다 이러는 것이야.”
라디스가 킥킥 웃었다.
“엄마, 말이 좀 이상하네. 어디에 두다니? 누가 들으면 우리 언니한테 품위가 있던 적이 있었는지 알겠다.”
“야 씨, 너 진짜 그러다 죽어.”
“이제 너는 가문의 장녀가 아니라 용사이거늘, 언제까지 그렇게 아이처럼 굴 생각이냐.”
“딸은 엄마 앞에서 평생 아기라잖아요~ 응애, 나 아기 라미네아, 배고파, 사과 줘.”
라미네아가 루드윅 가문의 안주인의 어깨를 안마하기 시작했다. 안주인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다.
“그나저나 엄마, 소식은 들었죠? 보세요. 제가 직접 고른 제자예요. 카밀라라고 해요.”
그러자 루드윅 가문의 안주인, 한나 루드윅의 주름진 입가에 눈부신 미소가 맺혔다.
그리운 미소였다.
평생, 그리워해 온 미소였다.
어머니가 아무런 대가도 이유도 없이 그저 지어주시던, 그런 미소. 그런 미소가 눈앞에 있었다.
“그래, 네가 카밀라구나.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기쁘다. 라미네아가 폐를 끼치지는 않느냐? 막무가내인 성격이라 네가 피곤할까 걱정되는구나.”
“네? 아니, 아니요? 조금 그렇기는 한데, 아니, 전혀 그렇지 않고요. 오히려 제가 폐를…….”
한나 루드윅이 뒤를 흘끗 보았다.
고용인이 가져온 사과를 통째로 베어 물며 동생과 신나게 떠드는 맏딸에게로.
두 딸에게 시선을 주던 한나는 방그레 웃었다.
“장난기가 넘쳐서 덜떨어져 보이기는 하지만 심성은 너무나도 참한 아이란다. 라미네아를 잘 부탁한다.”
이것이, 루드윅 가문에서의 첫날이자 루드윅 가문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처음이었다.
분명 처음 이곳에 왔는데, 어째서, 고향처럼 정겹고 또 즐거운 걸까.
정말, 처음이었다.
이런 귀족 가문은…….
용현 레인 루드윅이 세상에 남긴 빛과 온기의 발자취가 이 저택뿐만 아니라 가문의 구성원 모두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했겠구나. 옷도 갈아입는 게 좋겠고……. 라미네아, 방을 안내해주어라.”
“어느 방이요?”
“자발의 방이지 어디겠느냐.”
벨르윈 저택……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니, 죽는 그날까지 카밀라는 그곳을, 그곳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했다.
카밀라의 침실은 3층에 있었다.
원래는 라미네아가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라미네아와 같은 방을 쓸 처지였다.
“제자와 스승은 본래 일심동체라 잘 때도 함께여야 해.”
“안 된다.”
“엄마, 저 사실 카미를 안고 자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거든요. 이거 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진짜고, 엄청 중요한 사안이야.”
“그럼 자지 말거라. 내 듣기로, 페이쿼리어가 되면 한 달을 안 자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 들었다.”
라미네아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
“아 엄마 진짜 이럴래!”
“이럴 거다.”
그런 억지를 한나 루드윅이 모두 묵살한 덕분에 각방을 쓰게 된 것이다.
카밀라의 방은 넓었다…….
남동향으로 시원하게 트인 창가를 통해 아침이면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원래 막내아들 자발 루드윅의 방이라는데, 현재 남부의 마법대학 <델라이텐>에 재학 중이라 빈방 이라 했다.
“자발은 학생회 부회장이거든. 내년엔 회장 되는 게 확정이야. 아빠를 닮아서 마법에 엄청 영민하거든. 나중에 소개 해 줄게.”
라디스는 물론이고, 그 저택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마법맹 맹주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마법사였다고 한다.
한나나 라미네아와 라디스는 마법의 재능이 그토록 특출한 편은 아니라는데, 대신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재능을 전부 물려받았다고도 했다.
“근데 별로 기대는 하지 마. 우리 눈에는 엄청 귀엽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그, 속된 말로 또라이거든.”
여하튼 각방을 쓰게 되면서 전속 시녀들도 붙었다.
존댓말을 듣는 게 부담스러워서 편히 말해달라고 했더니, 시녀들이 자기들을 언니라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녀들보다는 집사들과 어울릴 때가 많았다. 라미네아가 내준 숙제 때문이었다.
“근력, 마력, 인지 능력 모두를 발달시키는 훈련이 있어, 카미.”
“그게 뭐예요?”
“장작 패기야. 잘 봐. 처음에는 양손으로 시작할 거지만 나중에는 한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해.”
라미네아는, 모든 물질에는 ‘결합부’라는 부위가 존재하며, 이걸 칼의 세계에서 허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무는 나뭇결을 따라 분자의 결합 구조가 취약해지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이걸 마력시(魔力視)로 보게 되는 것이 훈련이었다.
그리고 그걸 단번에 쪼갤 근력과, 단숨에 마력을 이끌어 내는 집중력도 훈련의 일환이었다.
“이게 숙달되면.”
라미네아가 그루터기 위에 장작을 세우고는 도끼를 슬쩍, 장난스럽게 내리쳤다.
아니, 그냥 가져다 대기만 했다.
그랬을 뿐인데, 장작의 나이테를 따라 마력의 빛이 폭발했다. 그리고 결을 따라 장작이 십여 조각으로 쪼개지는 게 아닌가.
“이런 것도 가능해지지. 그런고로, 카미는 오늘부터 이게 될 때까지 장작 담당이야.”
벨르윈 저택에서의 여름, 카밀라의 낮 일상은 그렇게 장작을 패는 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근력만으로 장작을 패는 것조차 버거웠다. 정말 단순하게 보이지만 무엇 하나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본능에 가깝게 끌어내던 마력을 의지로 조절하고 발출하는 기초 훈련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연습에 전념할 시간. 닷새, 열흘.
촉각으로 전신의 근육을 꽉 묶는 듯한 감각, 이게 바로 쇄(鎖; 마나체인)를 끌어내는 감각이다.
이 감각을, 장작을 패기 위해 도끼를 머리 위로 쳐드는 그 한순간 모두 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중요한 건 속도였다.
속도와 정밀도와 위력 모두를 이 훈련 하나로 끌어낸다. 동시에 두 눈에 마력을 담아서 동체 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보인다.
마력으로 증강된 시야가 허점을 찾아낸다. 마력으로 증폭된 근력이 그 허점의 결로 도끼날을 인도한다.
딱……!
지금까지 장작이 이토록 말끔하게 절단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의 감각이 그제서야 느껴졌다.
“와!”
“해냈구나, 카미!”
어린 집사들이 자기 일인 양 기쁘게 소리쳤다.
1669년의 여름,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하며 친구가 된 장작 담당 집사들이었다.
장작 담당은 대부분 어리다. 신참이나 말단이 맡는 보직이란 모양이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왜, 귀엽고 좋은데.”
“야 인마! 난 귀엽다는 말을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
“흠. 그럼 카미카미라 불러야 하나? 큰아가씨처럼.”
“이 장작 패기가 사람한테도 통하는지 확인해볼까?”
“으악, 사람 살려! 도끼 살인마다! 카미가 미쳤어요!”
소년과 소녀들의 풋풋한 술래잡기(도끼를 곁들인)가 진행되려던 그때, 포근한 손길이 카밀라의 머리에 닿았다.
“해냈구나, 카미.”
카밀라는 참으로 이상했다.
저 목소리를, 저 온기를 같이 느끼면 갑자기 할 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는 게.
“네, 뭐…… 천재니까요.”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겨우 세 달밖에 안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핫, 겨우 이 정도로 놀랄 거예요? 이 천재님한테 장작 패기 따윈 준비운동도 안 돼요.”
“그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 오늘 카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열까 했는데. 없던 일로 해야겠네.”
어린 집사들이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카미를 바라보았다.
루드윅 가문은 여느 귀족가와 달리 파티가 열리면 고용인들도 모두 즐길 수 있던 것이다.
“고기 먹고 싶다.”
“나도.”
“근데 장작 패기 천재님 때문에 못 먹네.”
“그러게.”
“케이크 먹고 싶다.”
“나도.”
그 시선과 목소리가 여간 따가운 게 아니었는지라, 카밀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가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자, 잠깐만요. 그, 뭐라고 할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한 걸음을 축하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라미네아는 억눌러 온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런 날이었다.
저택에 오고 나서 가장 큰 기쁨이 물감처럼 번지던 그런 날에도, 절망의 그림자는 고요하게 날개를 펼쳐오고 있었다.
「주인님, 뤼카엘이 남부 극지로 향했습니다. 해당 세계선 시간으로 400일이 좀 넘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