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
가짜 용사 이야기-2화(2/310)
제2화
“제1열, 사격 준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인류의 숙명이란 처참할 수밖에 없던 것일까.
“이야, 우루크 저 잡것들, 또 끝도 없이 몰려오는구만.”
“대장, 오늘 점심도 우루크 삼겹살입니까?”
“입 다물고 집중해.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지금! 쏴! 1열 장전, 2, 3열 발사!”
아인(兒人; Dwarf)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요정처럼 모든 기적을 다룰 수 있던 것도 아니며.
용처럼 압도적 무위를 지닌 것도 아니다.
“어럽쇼, 좌익 붕괴하겠는데.”
“기습? 예비대는 뭐 하는 거야!”
“멍청이들아. 예비대가 갈 필요가 있겠어?”
인류가 절멸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신들은 숙명을 짊어질 다섯 영웅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역사가 용사라 칭하는 영웅을.
하지만 신들은 장난일까, 그런 용사들은 신들의 시대 이후로 출현하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아, 예비대가 좌익으로 안 갔다는 건…….”
그래서 인류는, 용사를 작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정식 명칭은 위용사(僞勇士), 곧 페이쿼리어(FakeWarrior).
가짜 성검을 쥐고, 인류의 숙명을 짊어지는 인류 최강의 병사들을 말이다.
“카밀라 나리가 저기에 계신단 소리겠구먼?”
선홍빛으로 번뜩이는 칼날.
야만스러운 병장기를 휘두르며 좌익을 붕괴시키던 우루크들의 목이 수십 개씩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다.”
그 칼의 형태는 태도(太刀).
이 세상의 금속이 아닌 쇳빛으로 번득이는 그 칼은, 성검이라는 이름의 살육 병기였다.
성검이란 용사에게만 주어지는 병기, 그리고 저것은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의 고유 형태였다.
그렇다면 저 성검을 쥔 여검사는 당연히 인류 최강의 병사, 페이쿼리어라는 소리가 된다.
“너희들을 죽여 버리겠다.”
성검을 깨우는 기원의 외침.
성검이 토해내는 핏빛 연회 속에서, 우루크의 선혈이 강을 이루어 대지를 적셨다.
유년기,
여름의 서막 (1)
“어휴, 카밀라 나리. 또 이 난리를 쳐놨는데요? 보십쇼. 또 인간으로 회를 떠놨다고요.”
“이것들 이제 인간 육회 뜨는 솜씨를 아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켰다니까.”
“예술은 니미.”
우루크 종족과의 전투는 싸움의 순간이 버겁다면 후처리의 순간은 역겨웠다.
우루크에게 짓밟힌 마을들은 이러한 도살장이 되어 피비린내를 사방에 뿌렸으니까.
놈들이 타고 다니는 괴물 늑대, 블라쉬우르프들이 인육을 심히 먹음직스러워했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아주 꼴값을 떤다. 응? 맞고 싶단 거야 뭐야?”
고린내가 진동하는 시체 더미를 내려다보다가 병사들을 닦달하는 여걸은 신기할 정도로 차분했다.
훤칠한 키에 날렵한 몸매.
새하얗게 새어버린 단발 머리칼 아래서 황금색의 용안(龍眼)이 토해내는 신묘한 안광.
백발과 용안은 인체 개조의 증거로, 페이쿼리어들의 외형적 특질 중 제일 유명한 것이었다.
세상은 여걸을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라고 불렀다.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의 대리자 카밀라’라는 뜻으로.
“어떻게 할깝쇼?”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떡해? 저 박살 난 얼굴을 하나하나 뒤져서 신원이라도 확인하리? 챙길 건 챙기고 모조리 태워버려. 전염병 돈다.”
“알겠습니다요.”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돌아서려는데, 마을 어귀 쪽에서 고성 섞인 소란이 들려왔다.
“또 뭐야?”
카밀라가 미간을 찌푸리기 무섭게, 용병 두어 명이 후다닥 소란의 진원지로 달려가 곧 누군가를 데려왔다.
“갑자기 마을로 뛰어 들어와 난동을 부리던데요. 아주 미친 놈입니다.”
칠흑처럼 새카만 머릿결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
체격이 제법 큰 용병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채 허공에서 힘없이 버둥거리는 꼴이 며칠이나 굶었을지 감도 안 왔다.
“놔, 돌려줘! 돌려달라고!”
그때 카밀라는, 남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내가 저놈을 어디서 봤던가? 왜 기묘하게 낯이 익지?’
분대별로 흩어져서 후처리를 하던 용병들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났나 싶어서 하나둘씩 몰려와 웅성거렸다.
“저놈 저거 볼에 낙인…… 발크루쉬 클랜 문장 아냐?”
“우루크랑 한패란 소리여?”
“글쎄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문신을 했을 린 없고. 대장이라면 아실 텐데…….”
카밀라는 붕괴된 회관의 포석 위에 걸터앉아 소년을 계속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그 양쪽으로 병단의 두 거물이 서 있었다.
왼쪽, 우루크만큼이나 장대한 체격에 온몸이 털로 덥수룩한 데다 머리통은 백곰인 수인병은 용병대장 엘토람이었다.
엘토람이 말했다.
“저놈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난동을 부렸다고?”
“아뇨, 그건 아니고…… 카밀라 나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던데요. 개소리니 무시했죠. 그러더니 아주 날뜁니다.”
엘토람의 흉악한 짐승의 눈동자가 가늘어지더니, 소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엘토람은 그 악명 높은 수인이었다.
저주받은 생명체, 수인. 심연의 자손도 아니고 빛의 자손도 아닌…….
수인 대부분이 대륙 어디에서나 혐오와 경멸을 받고 땅끝으로 쫓겨나 살았으나 전장에서만큼은 달랐다.
그들은 최고의 전사들이었다.
무수한 전투 경험.
끈질긴 생명력과 투지.
짐승보다도 강렬한 호전성 등은 제쳐 두더라도 그 우루크와 정면으로 대적할 수 있는 근력과 체격은 가히 엄청난 무기였다.
“네깟 놈이 뭔데 카밀라 나리를 내놔라 마라냐?”
“검법을 배우려고.”
“검법? 검법은 왜?”
“검법은 칼로 남을 죽이는 방법이랬어…… 우루크 그놈들을 죽여 버리려면 그걸 알아야 하잖아!”
순간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엘토람이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용병들이 대장을 따라 등을 접으며 웃기 시작했다.
“우루크 고놈들이 이걸 들었으면 똥오줌을 지렸겠는데.”
“우루크 슬레이어라고 소리치면서!”
“아이고, 기저귀는 챙겨오셨나 몰라. 제 걸 대신 드릴깝쇼? 근데 이미 한 번 똥을 지렸는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바다가 되던 그 순간, 엘토람이 불현듯 웃기를 멈추더니 카이센의 눈앞으로 얼굴을 홱 들이밀고 시선을 맞닥뜨렸다.
“까불지 마라, 꼬맹아.”
“…….”
“카밀라 나리가 네 응석을 받아줄 유모처럼 보이냐? 여긴 전장이다. 코흘리개가 있을 자리 따위는 없어.”
엘토람의 눈동자와 목소리에 적잖은 살기가 묻어 있었으나, 소년은 시선을 피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이미 무뎌진 것이다, 덧없이 부서진 것이다, 무참히 짓밟혀버린 것이다, 어린 날의 감정이.
‘뭐 이딴 꼬맹이가 다 있지?’
천하의 엘토람조차 퍽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른 꼬맹이들은 평범한 수인이 인상만 써도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도망치기 바쁜데.
여느 수인 전사들보다 강인한 살기와 체격을 지닌 엘토람에게 조금도 밀리는 구석이 없다니.
“그 낙인은 뭐냐? 누가 너한테 그딴 낙인을 찍었지?”
“검법 안 가르쳐줄 거잖아. 나도 안 가르쳐줄 거야. 다른 사람 찾고 말지. 순순히 갈 테니까 내 거나 돌려줘.”
“네 것?”
“아, 그게 말입니다, 대장.”
소년을 붙잡아온 용병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라 슬쩍했단 뜻이다.
“한심한 놈…… 알아서 해라.”
엘토람은 관심이 떨어졌는지 손을 털며 저편으로 걸어갔다, 몇몇 용병들에게 이런 노성을 토하며.
“이 자식들이 어디서 농땡이를 펴?”
엘토람이 떠나기 무섭게 소년은 자신을 붙잡은 용병에게로 고개를 홱 쳐들었다.
“돌려달라고.”
“돌려주긴 뭘 돌려줘? 꼬마야, 그런 위험한 물건은 이 아저씨가 잘 간수해줄 테니까 넌 걱정 말고 갈 길 가렴.”
“내 거라고 했잖아. 내놔!”
소년이 용병에게 덤벼들었다.
허나, 소년의 가냘픈 몸으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상대는 한량이나 다름없는 징집병이 아니라, 페이쿼리어 병단에 소속되어 제일선에서 종군하던 최정예 용병이었으니까.
“하, 이 젖비린내 나는 애새끼가 좋게 말로 끝내려니까…….”
용병이 소년을 손쉽게 넘어뜨리고는 곧장 옆구리를 걷어차려던 그때였다.
“그만.”
페이쿼리어 카밀라의 오른쪽에 서있던, 순백색 로브의 청년이 입을 열었다.
“뭘 빼앗았지?”
단호하나 자애로운 음성이었다.
또한 대단한 기품이 서려 있어서 선뜻 무시할 수 없는 어조여서, 용병이 일순 멈칫했다.
“별다른 건 아니고…….”
“별다른 게 아니라고?”
“예, 나리.”
“잘됐군. 별다른 게 아니라면 돌려주게. 물건을 아무 이유도 없이 빼앗는다면 우리가 우루크와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용병이 한참 머뭇거리다 결국 툴툴거리며 허리춤을 뒤적이는 사이, 백색 로브의 사내가 카이센 앞에 꿇어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미안하구나. 이 친구가 성품이 악해서 그랬던 건 아니란다.”
단정하게 올려 묶은 연청색 말총머리에 푸른 눈동자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이해해주렴.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피라는 건 말이야, 때때로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거든.”
로브의 앞섶을 단정히 여민 브로치는 은제로 만들어진 늑대 두상.
이는 제국의 삼마탑(三魔塔) 중 하나인 <윈터홀드>의 수석 졸업생에게만 수여되는 영예.
“난 요한 울프 프로스트라고 해. 편하게 울프라고 부르렴.”
“…….”
“자랑할 실력은 안 되지만 마법사야. 이제 네 이름을 알려주겠니?”
단아할 정도로 절제된 겸손.
울프라는 미들네임 또한 오직 대학의 수석 졸업생에게만 수여되는 영예 중의 영예.
그리고 그는 현재 제국의 석학을 대표하는 5성(成) 대마법사, 즉 아퀴자드 등위의 마법사였으니까.
“……카이센.”
잠시 그 이름을 입 속에서 곱씹던 울프가 방그레 웃었다.
“카이센! 이야, 좋은 이름이구나. 용언으로 지어진 거니? 인연이라는 뜻이지? 누가 지어주셨니?”
“엄마.”
“엄마가 정말 박식한 분이시구나. 어떤 분이시니?”
그 말에 카이센이 입술을 고통스럽게 짓씹었다.
“죽었어, 우루크한테.”
그리고 토해내듯이, 다음 말을 내뱉자 울프의 눈동자가 연민으로 젖어들었다.
“네 볼에 낙인을 남긴 우루크 부족한테?”
카이센이 눈을 내리깔자 씁쓸한 침묵이 야영지를 맴돌았다.
감정이 메마른 용병들이지만 몇몇은 딱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한 달 동안 폐허로 변한 남부 지방을 북상하며 빈집을 뒤져 연명해온 카이센의 앙상한 몸도 동정심에 한몫을 더했다.
“여기 있습니다.”
그때 용병이 카이센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울프에게 건넸다.
한 자루의 소검.
카이센이 유품으로 챙겨온…… 어머니가 한평생 보물로 여기던 물건이었다. 목숨보다도 소중했기에 필사적으로 돌려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잠깐.”
한순간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느새……?
분명 저만치 멀리 앉아 있던 카밀라가 눈을 깜빡인 한순간 이동해 용병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카, 카밀라 나리?!”
그 악력이 어찌나 강했던가.
용병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놓친 소검을 카밀라가 허공에서 낚아챘다.
“너, 인마…… 이거 어디서 났어.”
그리고 지금껏 무표정하게 관찰하던 소년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카밀라,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왜 그래?”
울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밀라의 험악한 언사가 계속되자 용병들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훔쳤냐고! 너 벙어리야? 귀 없어? 귓구멍 뚫어줘?”
“안 훔쳤어.”
“꼴값 떤다.”
“안 훔쳤다고!”
“그럼 어디서 났냐고! 말을 해!”
카밀라는 카이센의 목소리가 흔들리더니 눈동자가 살짝 붉어지는 것에서 진실의 단편을 감지했다.
“엄마가 남긴 유품이야……. 그러니까 돌려줘! 엄마 물건은 이제 그거 하나밖에 없다고!”
일순, 그 일순이었다.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의 몸이 얼어붙었다.
“유품?”
소년의 외침 때문이 아니라.
카밀라의 몸에서 대기가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강렬하게 분출된 압도적인 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카밀라가 카이센의 턱을 콱 움켜잡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 상판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말도 안 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망막에 비치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자세히 보니까 그냥 빼닮았잖아…….’
무의식적으로 그걸 인정한 순간, 거대한 철퇴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대체 어떻게?
스승님께서는 분명, ‘검은 여름’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셨는데……?
“끝났구만, 저거.”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용병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카밀라 나리한테 저딴 말대꾸를 하다니.”
“나리는 애고 어른이고 자비가 없으신, 진정한 평등주의자이신데 말이지…….”
카밀라와 20년 지기 친구인 울프만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울프가 카이센의 턱을 붙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 부모를 잃은 아이야. 좀 상냥하게 대해줄 수 있잖아. 일단 이 손부터 좀 놔.”
카밀라가 멍하니 울프를 돌아보았다가 끝내 카이센을 놓았다. 막힌 숨을 토해내는 카이센의 등을 울프가 토닥여주던 그때였다.
“나한테 우루크 써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그래서 복수라도 하게?”
“그래……!”
“그래? 그럼 한번 날 홀려봐.”
순간 모두가 말을 잃었다.
콜록거리던 카이센도, 울프도, 그리고 용병들조차도.
“어디서 눈을 멀뚱멀뚱 깜빡거려, 이 좀만아. 대답 안 해? 날 한번 홀려 보라니까? 가르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용병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울프도 마찬가지였다.
“카, 카밀라 나리?”
“지금 뭐라 하신 거야?”
“카밀라, 너 지금 무슨?”
카밀라가 누구인가.
지금까지 제자로 받아달라며 무수히 찾아온 일성칠검(一聖七劍)의 후기지수들조차도 쌍욕으로 쫓아낸 사람 아니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카밀라, 페이쿼리어는 남자를 제자로 받을 수 없어. 여자만이 페이쿼리어가 될 수 있으니까.”
페이쿼리어의 제자가 된다는 건 차기 페이쿼리어로 내정된 유망주란 소리와도 같았다.
성검이란 높은 확률로 제자에게 계승되어 왔으므로.
그렇기에 페이쿼리어들은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사제 관계는 단순히 사제가 아니라 사명의 계승자와도 같았다.
“누가 이딴 화상을 제자로 받는대? 그냥 싹수가 있나 본다니까 뭔 호들갑이야.”
“어떻게 해야 홀릴 건데?”
카이센이 도전적으로 되받아치자 용병들 입에서 엄청난 환성이 쏟아졌다.
카밀라가 침을 뱉었다.
그러더니 일순 옆에 있던 용병의 허리춤에서 장검을 빼내어 카이센에게 던져줬다.
“잡아.”
“……?”
“난 아가리만 터는 인간을 제일 싫어하거든. 검법을 배우고 싶단 마음이 진심이면 덤벼봐. 죽을 각오로.”
카이센이 눈을 끔뻑이자 카밀라가 도발적으로 라미네아의 소검을 휘휘 흔들었다.
“네가 단 한 대라도 공격에 성공하면? 그래, 스치기라도 하면 이 칼도 돌려주고 검법도 가르쳐줄게.”
“……!”
“하지만 내가 이기면 이건 내가 갖는다? 왜, 뒤질 놈한테 유품 같은 건 사치잖아? 포기할 거면 지금 포기해. 그러면 칼 갖고 위로 올라가게 해줄 테니까.”
발언이 거기까지 나오자 용병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리, 그냥 가르쳐주기 싫다고 하십쇼.”
“얘야, 그냥 칼 돌려받고 곱게 떠나라.”
카이센은 주위의 분위기를 빠르게 읽었다.
카밀라의 이런 행동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 분명했다. 이런 기회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무는 게 중요했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이렇게 말하고 있던 것일지도.
“약속한 거다.”
용병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고, 카밀라조차도 눈썹을 꿈틀했다.
모든 이목이 카이센에게 쏠렸다.
울프조차도 눈을 의심했다. 카이센이 땅에 박힌 장검을 움켜잡고 카밀라를 똑바로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기면 칼 쓰는 법 가르쳐 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