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07)
가짜 용사 이야기-207화(207/310)
시즌 3 : 15화
“카미, 그럼 좋은 경험 만들고 오렴. 매일 저녁 마력 훈련도 쉬지 말고. 나랑 타르스 선배님은 호출이 있어서 잠시 가볼 데가 있어.”
마력의 사용법을 터득하지 못한 채, 한 달 동안의 마법대학 <델라이텐> 생활이 시작되었다.
<델라이텐> 봄 축제…….
그것은, 기억의 한구석, 일상의 한 폭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추억이라는 이름의 빛이었다…….
“어머, 부회장님. 그 아이는 누구예요? 너무 귀엽다.”
“내 누님의 제자야.”
“아, 신문에 나온 그…… 와아!”
첫날에 자발 루드윅은 학생회에 카밀라와 로베리스를 소개해 주었다. 깍지 낀 손에 턱을 괸 학생회장 샤샤 워든이 말했다.
“제법이군, 자발. 귀여운 애들을 데리고 와서 내년 학생회장 선거 유세라도 할 셈인가?”
“물론입지요.”
“아, 그 뼛속까지 속물근성으로 썩어빠진 네놈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
자발과 학생회장이 음흉한 웃음을 주고받자 로베리스가 말했다.
“<델라이텐>의 학생회 석차는 성적 순서로 배치되는 거 아닌가요.”
자발이 혀를 찼다.
“이 사회성 없는 꼬꼬마 녀석아, 그냥 웃어. 분위기 망치지 말고.”
“왜 웃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걸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우리 불쌍한 학생회장에게 내가 방금 너처럼 일침을 가했으면 저 양반이 얼마나 불쌍해졌겠냐? 분위기가 엄청 싸해졌을 것이고 학생회장님은 몇 년 동안 이날을 생각하며 이불을 발로 차야 했을걸. 불쌍한 사람을 살피는 게 대귀족의 덕목이다.”
“납득했어요.”
“다 들린다, 이 새끼야.”
카밀라에게는 첫날부터 학생회 임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었으나, 로베리스에게는 첫 사흘 동안은 말을 거의 못 붙이거나 대개 존칭이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페이지 가문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 새삼 체감이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카밀라의 역할은 소품 제작팀의 일원으로서, 학생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힘(?)을 제공하는 역할이었다.
카밀라는 서류 더미를 수십 번은 옮겼으며 무거운 소품들을 고층까지 가지고 올라가는 등 육체적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야 했다.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했다.
낮에 최대한 일을 해두면 밤에 자발 루드윅에게 벨 퀴리어스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나날이 나름 재밌었다.
아니, 정말 재미있었다.
생도들은 카밀라를 상당히 좋아했다. 저마다 반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죄다 거절했지만, 제법 흥미로운 바보 짓거리들도 많았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었다.
제일 이상한 바보짓은 붕어 낚시였는데, 마력으로 그물을 보강하지 못하면 금붕어가 죄다 빠져나가는 사기극이었다.
학생회에게 적발되어 폐지되나 싶었건만 도리어 사기 느낌이 조금 덜 나도록 재편성되었다(?). 그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자발 루드윅이었다.
이때 마법사란 족속은 대부분 협잡꾼인 것처럼 보였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마력 총을 쏘아서 맞힌 표적을 경품으로 받는 것이었다.
카밀라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로베리스가 곰 인형 하나를 골똘히 쳐다보던 것을 발견했다.
“갖고 싶어?”
로베리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나 카밀라가 몇 번이고 도전해서 그 인형을 가져다주었을 때는, 그 변화 없는 얼굴에서 눈동자가 커다래질 정도로 좋아했다.
축제 기간 동안 로베리스는 늘 그 인형을 소중히 가지고 다녔다.
그냥 힘들고 바쁘기만 한 일상이라 생각했는데,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누우면 왜 그토록 충만한 느낌이 들던 것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힘들게 일하면 자발의 도움을 받아서 마력이 괄목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게 느껴져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또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자발이 사실 카밀라와 로베리스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단 사실을.
진실을 알게 된 건 마지막 날, 그러니까 봄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 저녁이었다.
정확히는 마법사들의 전매특허인 불꽃놀이가 시작될 때였다.
“신입생맞이 봄 축제는 용현의 시대부터 시작된 거야.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 졸업생들을 후배로서 배웅해주고, 신입생들은 선배로서 환영해 주라는 취지에서.”
밤하늘에, 별빛이 아닌 불꽃이 여러 무늬를 그리며 퍼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베리스의 연보라색 눈동자에서 불꽃이 아름답게 너울거렸다.
곰 인형을 양손으로 꼭 끌어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눈이, 커다래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쁘지?”
자발이 물었다.
카밀라는 능청을 피웠다.
“흠, 글쎄요. 그냥 그런데요.”
그러나 사실 마음속에서, 열흘 동안의 일상 동안 쌓여온 충만감이, 따스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냥, 뭔가 기뻤다.
함께 준비해 왔거나 스쳐 지나가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던 부스에서 사람들이 마법을 체험하며 웃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즐거웠던 것이다.
“중요한 타이밍에 솔직하지 못한 건 누굴 제대로 닮았네.”
옥상 난간에 기대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던 자발이 다시 물었다.
“진지한 질문 하나 해도 되냐?”
“네? 뭐요?”
“카밀라, 너는 왜 페이쿼리어가 되고 싶냐?”
“뭐예요,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나 깔고. 그런 걸 왜 물어봐요.”
“대답해봐. 이 꼬꼬마 녀석아.”
분위기에 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장담컨대 대학 간판급 미소년으로 모든 여성을 울린다는 게 거짓이 아닌 진짜였던 자발 루드윅에게 취한 것은 아니었다. 카밀라의 취향이 전혀 아니니까.
그냥, 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어렵지 않게 입이 열렸다.
“그냥 뭐…… 제가 혼자일 때 라미네아 언니가 찾아와 줬는데, 제가 언니를 홀로 내버려두고 가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요.”
예전에 한나 루드윅에게 했던 대답을, 어색하고도 겸연쩍은 어조로 훨씬 축약해서 내놓았다.
“아 씨, 역시 조금 이기적이죠? 용사가 된다는 게 살짝 이상할 정도로. 그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카밀라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불꽃의 춤이 없이도, 달빛이 유독 환하던 그날 밤, 로베리스가 말했다.
“이기적이지 않아요.”
“어?”
“저도 처음에는 어머니와 동생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걸 어머니한테 말했더니 어머니가 ‘로베리스, 세상에는 이런 어미보다도 더 힘없고 약한 이들이 많단다. 너는 그런 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셨죠.”
로베리스가 곰 인형을 품에 안은 손에 약간 더 힘을 주며 말했다.
“라미네아 님께서 외톨이가 되는 게 싫어서 페이쿼리어가 되려 한다면…… 거기서 목적을 조금만 확장하면 돼요. 라미네아 님 같은 사람들이 외톨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펑…… 불꽃이 하늘에 수천수만의 불티로 흩어지는 소리 아래서, 자발이 조용히 웃었다.
‘누님과 닮았군…….’
닮았기에 제자가 된 건지, 제자이기에 닮아가는 건지,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말이야.
“꼬마들아. 오늘, 저 광경을 기억해둬.”
“왜요?”
“지금 저기서 생겨나는 웃음 하나 미소 하나…… 너희들이 저걸 보면서 기쁜 이유가 뭔 줄 아냐? 학생회 일원으로서 저걸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발 루드윅이 어째서 축제를 돕게 시켰는지…… 그 순간에서야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장차 앞으로는, 이런 축제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의 웃음과 미소를 너희들이 지켜내게 되겠지. 그 일이 어떤 건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렇게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너희들에게 작게나마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카밀라는 망연히 자발을 바라보다가, 쑥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뭐래. 지금까지 막노동 다 시켜놓고 갑자기 폼 잡아도 하나도 안 멋지니까 그만둬요.”
“흠, 들켰군.”
“이런 쓰레기 같으니! 진짜 장난이었어?!”
농담은 이게 끝이라는 듯, 자발이 진지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카밀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누님께서 널 제자로 뽑으셨는지 확실히 알겠더라. 진심으로 응원할게. 곧 나간다는 지검제부터, 용사가 되기까지의 모든 걸.”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 정말, 미치도록 열심히 해야 해.
누님이 널 두고 혼자 가는 일이 생기지 않게…….
마지막에 자발이 혼잣말처럼 곱씹은 그 말이 도대체 어떤 상황을 뜻하는지 알게 되는 건 그로부터 조금 지난 뒤의 일이었다.
교차로, 인연의 선로 (5)
“정말, 순수한 아이죠?”
라미네아의 물음에 타르스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 제자 자랑하는 거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볼 때마다 웃는 걸 참느라 힘들어요.”
“그래, 한창 좋을 때다. 나중에 나이 들고 사춘기가 오면 좀 달라지겠지만.”
“그때도 그때만의 매력이 있겠죠. 근데 선배님, 제자를 잘 양육하는 노하우에 대해 가르쳐주실 수 없을까요?”
그러자 오렌지와 사과를 한 손으로 쥐어짜서 주스를 만들던 타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있다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농담하는 게 아니라…….”
“나도 농담하는 게 아니야. 잊었나 본데, 나는 농가의 딸이었거든? 너나 다른 녀석들처럼 말을 조리 있게 잘 못해. 그리고 넌 그 삼영룡께서 갓난아기 시절부터 이것저것 가르쳐 주셨을 텐데, 나한테 뭘 배울 수 있겠냐?”
“청성 백부님께선 길가의 돌멩이 하나로부터도 배울 게 있다고 하셨지요. 선배님이 돌멩이보다는 낫잖아요.”
“이 녀석이 정말.”
타르스가 주스를 짜던 손길까지 멈추며, 못 말리겠단 듯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스승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걸 똑같이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분한테 배운 게 전부다 보니.”
“똑같이?”
“응. 그분이 내게 해주셨던 칭찬이라거나 가르침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너도 미자리 선배님께서 해주셨던 말들 중에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것들이 있지 않니?”
스승님이 해주신 말들…….
딸랑, 하는 기억의 풍경(風磬) 소리 속에서 깨어나는 기억의 풍경(風景).
– 용사는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해. 민가의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즐기고, 아이들은 뭘 하고 노는지도 알아야 하지.
라미네아는 미소 지었다.
어린 날, 그 찬란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 용사인데도요?
스승이라는 빛이 곁에 있던 그 나날 가운데…… 함께 들풀 위에 앉아 이야기하던 날을 기억하며.
– 용사니까 그런 거야. 이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사소한 걸로도 기뻐하고 또 즐거워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거든.
– 아하~.
– 마족과의 전투에 너무 오래 시달리다 보면, 그런 것들을 다 사소하게 여기게 되어버려. 마을 두세 개가 불타고 무너졌고 생존자는 없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게 되거든.
그 어린 날, 라미네아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정확히 알았다.
스승님께서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후방이나 측방으로 빠져서 농땡이를 피우던 게 아니었단 것을.
당신께서는 지키고 계셨던 거다…… 본대 방어선이 마족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는 곳을.
– 스승님, 항상 이런 후방 마을에 남아 계시던 이유가 설마…….
라미네아가 그 깨달음을 입으로 옮기려 했을 때, 미자리 알터 아라다만텔은 그 머리에 손을 얹으며 피식 웃었다.
– 라미네아, 너는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되지 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소한 일상을 전심을 다해 지켜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용사 아니겠냐? 폼은 안 나겠지만.
그날, 마음 깊숙이 새겨지던 스승의 가르침…….
용사(勇士)란 무엇인가.
스승님께서 주신 마음가짐…… 나는 그것을 카밀라에게 전달해야 하는 거구나. 마치, 성화의 불을 옮기듯이.
“고맙습니다, 선배님. 방금 뭔가…… 마음속에 막혀 있던 게 뚫린 느낌이었어요.”
타르스가 씩 웃었다.
“20대는 아이가 어른인 척하려고 애쓰는 나이대란 말이 있잖아. 너무 무리하지 마.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봐.”
그때 청성(淸聲)의 빛이 나풀거리며 날아왔다. 라미네아가 카밀라에게 말한 ‘볼일’이었다.
그 광입자가 두 여걸의 정수리에 내려앉은 순간, 의식이 순백의 세계로 접속되었다.
현역으로 복무 중인 12인의 페이쿼리어들의 의식이 실체화되어, 순백의 세계수를 중심으로 도열한 것이다.
한 줄로 설명하라면, 라미네아는 문득 호수의 수면 위에 서 있었다. 군홧발의 표면을 타고 고요한 파문이 퍼졌다.
「순백의 꿈으로 마족 내부에서 합일(合一)의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걸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맑되 차고 아름다운 음성이 들리자마자, 12인의 페이쿼리어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렸다.
이 장소의 이름은 ‘순백의 꿈’.
청성의 미른가디아는 이곳에서 세계선(世界線)들을 내다보았고, 섭리의 장막을 들추고 미래의 편린을 엿보았다.
그렇게 얻은 미래의 정보로 긴급 대소사를 특정 다수에게 광역으로 전파할 때 사용하는 장소였다.
「나, 청성의 미른가디아가 총사령 대리 권한으로 내년부터 12개의 페이쿼리어 병단은 준전시 체계로 운영하겠다.」
라미네아는 섬찟 놀랐다.
“미르 백부님, 아니, 청성 각하, 지금 준전시 체계라고 하신 건가요……?”
현재는 평시 체계였다.
몇백 년 동안 평시였다. 3개의 페이쿼리어 병단이 1년 임기로 대마족 해안 경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즉, 페이쿼리어가 전장에 나가는 건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임기였다. 라미네아는 작년 봄에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상태였고.
「그래, 준전시 체계다. 내년 연초부터 6개의 병단이 경계선 및 한계선에서 운용된다. 전장 종군 공백은 1년으로 단축된다.」
즉, 그만큼 남부 국경의 일이 화급하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충격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내후년에는 ‘비상 폭염 경보’ 체제로 전환할 수 있으니, 그리 알고, 휘하 병단에 그렇게 하달하라.」
* * *
“카밀라 플라워에게 온 우편 속달입니다.”
초봄에 행해진 마력 자격증 시험에서 어떻게 합격했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서술할 게 없다.
그저, 로베리스와 자발의 도움 속에서 그 모든 게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심(心; 마나하트)의 감각을 깨쳤다. 열불이 날 때 온몸에서 뜨겁게 치받치는 기운이 이 마나의 감각과 비슷했다.
쇄(鎖)는 머릿속이 차갑게 식을 때, 즉, 차가운 실들이 혈관을 꿰뚫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들을 원할 때 활성화시킬 수 있게 되니, 자격증을 취득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취득한 자격증은 2종.
2종이란 마나체인, 마나코어, 마나서클 셋 중 두 개를 아울러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의 명칭이다.
자격증 시험은 절대평가이며 70점만 넘는다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었다.
우편을 뜯어본 라미네아가 신나게 방방 뛰었다.
“정말 잘했어, 카미! 이게 있으면 중급 검정시험에 응시하는 게 가능해! 중급을 따면 지검제(地劍祭)에 정식으로 참가 신청을 넣을 수 있게 되고!”
지검제…….
카밀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그때보다 조금은 더 쫓아온 걸까? 그렇게만 멀어 보이던 에쉬르의 등을.
“흠, 이제야 저택이 좀 조용해지겠군.”
침묵백 케빈 페이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에 아련하게 섞인 감정은 안도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이유는 하나.
여장을 갖추고 저택을 나서는 건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용인들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로베리스!”
‘그 이유’를 향해 카밀라가 다가갔다.
“그, 뭐냐, 세 달 동안, 어, 고마웠어.”
“네.”
“근데 말야, 기고만장해지면 안 돼! 나는 이미 페이쿼리어 제자 자격도 있거든! 그리고 뭐야, 이번 지검제에서도 우승할 거고.”
카밀라는 쑥스러운지 점점 붉어지는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새침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며 겨우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그, 흠, 뭐냐, 나중에, 음? 검술 익히다가 조금 막힌다 싶으면, 내가, 음, 뭐, 도와줄 수도 있다고.”
그러자 라미네아가 크게 웃었다.
“뭐야, 카미! 벌써 누구를 가르쳐줄 수 있게 된 거야? 로베리스가 타르스 선배님이 아니라 카미의 제자가 되어야겠는걸.”
“조,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왜 애들끼리 단둘이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껴들어요!”
사제 간의 술래잡기가 또다시 시작되려던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로베리스가…….
그 인형 같아서, 항상 표정이란 없던 로베리스가…… 희미한…… 정말 희미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층 눈부시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으니까.
“네. 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로베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카밀라는 정말 한순간 보였던 미소에 멍하니 있었는데 그 손을 맞잡게 되었다.
로베리스 곁에 서 있던 타르스가 그 손을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타르스가 말했다.
“카밀라, 너는 내가 비네사 선배님보다도 더 존경하는 미자리 선배님의 제자의 제자란다. 기대하는 바가 정말 커. 네 성장이 기대되는구나. 지검제, 꼭 우승하렴. 네 건승을 기도하마.”
“네, 어, 감사합니다.”
“다만 너무 여유 부리다가는 로베리스한테 따라잡힐 테니 더 열심히 하렴. 나도 전력을 다해 로베리스를 가르칠 거거든.”
그것은, 정말, 따스한 기억…….
황금정원 가득 넘치던 햇살보다도 더 따스한 미소가 모두의 얼굴에 피어나던 기억…….
기억 속에 사진보다도 더 또렷하고도 분명하게 찍혀서, 냄새도 온기도 바람의 소리조차도 모두 떠오르게 되는, 그런 기억…….
그런 기억 속에서, 겨울의 냉기가 시들고 어느덧 천지가 신록의 빛으로 물든 1670년의 5월.
“응시 번호 31, 카밀라 플라워, 앞으로 나오세요. 중급 검정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