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08)
가짜 용사 이야기-208화(208/310)
시즌 3 : 16화
기원력 1670년의 중급 검정시험은 제국 서부의 중심, <우든크로스>에서 개최되었다.
엘레아노르 대하의 하류가 시작되는 곳에 들어앉은 <우든크로스>는 서부 운항의 중심이다.
그리고 모험의 땅, 트라이덴트 포인트를 드나드는 모험가들이 병참을 보급하는 곳이기에 모험가 문화 또한 크게 발달된 곳이다.
평소에도 인파가 북적이는 도시였건만, 이날은 제국 각지에서 몰려든 검사들로 더욱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도시는, 아주 특별하다.
성황 라이다 에이진(용현이 황하사무성으로서 섬겼다) 치하에 시작됐던 융화 정책 덕택에, 시가지에서 어렵지 않게 수인족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접수 확인은 이쪽입니다. 접수증을 지참하시고 보호자와 함께 와주세요.”
늘 돌이켜 보건대, 시험을 앞둔 순간의 떨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전장에 나갈 때와 비슷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는 전쟁이란 막연한 개념보다 더 두려운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두려움을 깨뜨려서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가.
그 모든 것 또한, 여기저기서 교차하는 인연의 교차로가 주었던 선물 중 하나였다.
“라미네아 단장.”
창공을 서늘하게 가르는 독수리의 울음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라미네아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프베런 아저씨!”
그것이 라미네아 용사 파티의 두 번째 일원인 그리프베런과의 만남이었다.
그리프베런.
현 수인족의 전사장(戰士長).
전사장이란 모든 수인 전사의 우두머리로, ‘성검을 갖지 않은 페이쿼리어’에 준하는 전투력을 갖고 있었다.
독수리와 인간의 몸이 전투에 특화된 형태로 융합된 모습은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이면에서는 경지에 달한 전사 특유의 위엄이 흘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니, 내가 서부로 와놓고선 무슨 소리래.”
“소집령을 받고 전사들을 규합하고 있던 차였소.”
그리프베런의 그 말에, 순간적으로 스승님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진 음영이 있었다.
소집령?
그게 무슨 소리지?
나중에 확실히 알았지만, 그건 청성 미른가디아의 명령에 따라 휴지기를 갖던 페이쿼리어들이 각기 병단을 소집하는 명령이었다.
다만 그때는 그걸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대회를 앞둔 긴장감과 새로운 인연 앞에서의 긴장감이 포개어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기쁜 소식도 있다고 하여, 축하하고자 들렀소. 그래, 이쪽이구려.”
그리프베런의 눈동자, 사냥감을 더듬고 살피고 꿰뚫는 맹금류의 눈이 카밀라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페이쿼리어의 제자는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요한과 에쉬르가 해준 말이었으니까.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제는 이런 시선에 두려워 떨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고 또 기뻤다.
“놀랍군.”
그리프베런이 독수리 부리를 슬쩍 치켰다.
“이 또래 아이들은 우리 동족과 시선이 맞닿았다 하면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쑤인데…… 나쁘지 않구려. 눈의 날이 서 있어. 큰 전사가 될 그릇이야.”
그리프베런 패거리에는 수인 전사들 말고도 인간 병사들도 끼어 있었다.
그게, 첫 만남이었던 것이다.
스승님이 이끄는 홍련 병단에 소속된 최정예 병사들. 인간은 모두 척탄병 병과로, 증기 수류탄을 던질 수 있게 키가 훤칠했다.
저마다 편한 사복 차림이었는데도, 도시를 돌아다니는 헌병대들보다 더 용맹해 보이고 키도 비슷하거나 더 컸다.
그래도 역시, 카밀라의 이목을 더 강하게 잡아끌었던 건 수인병들이었다.
“실망할 것 없어. 전사장님께서 나쁘지 않다고 하시는 건 엄청난 극찬이다.”
한 늑대 전사가 말했다.
그러자 여우 전사가 킥킥거리며 속삭였다.
“그래, 저분은 자기 부모님도 칭찬해본 적이 없으신 위인이거든.”
그리프베런이 불편하게 헛기침을 하자 전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라미네아가 싱긋 웃었다.
“자, 주목! 그러고 보니 정식 소개가 늦었네.”
라미네아가 아주 소중한 보물을 몰래 보여주는 소녀처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카밀라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기 이게 누굴까요? 짜잔~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새로 받아들인 제자 카미카미입니다!”
문득, 병사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까지 일소되었다.
또 뭔가 잘못된 걸까?
출신으로 문제를 삼을까?
병사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카밀라와 라미네아를 번갈아 보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물론 그건 아주 잠시뿐.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위~휴! 드디어 우리 병단에도 귀염둥이 막내가 생겼잖아! 내가 제자 있는 페이쿼리어 병단을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야, 막내는 요한도 있었잖아.”
“그놈은 고추 달렸잖아, 새캬! 난 항상 여동생을 원했다고!”
“가슴에 털 수북한 놈이 징그럽게 뭔 씹.”
“근데 이름이 카미카미라니, 뭔 어디서 주워온 몬스터입니까?”
꽃이 피어나듯…… 화사한 미소가 병사들을 뒤덮었다.
아무도 출신을 묻지 않았고 실력을 묻지도 않았으며 그저 즐겁게 웃으며 카밀라를 환영해 주었다.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단의 분위기 자체가, 스승님과.
“자! 이제 카미가 자기소개를 할 시간이야.”
병사들의 열렬한 손길에 머리며 얼굴이 엉망이 되어가던 카밀라의 등을 라미네아가 슬며시 앞으로 밀었다.
“그, 제 이름은 카밀라고요. 그 뭐냐, 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이 미친 듯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휘파람을 마구 불어대는 이들도 있었다.
“응원은 맡겨둬라, 막내야! 이 수인 놈들이 쓸모 있는 건 응원할 때 빼곤 없거든.”
“그래, 우리만 믿어라! 응원으로 시험장을 아주 그냥 무너뜨려줄 테니까!”
“오늘이 끝이 아니야. 지검제도 따라가 주마. 지검제는 응원빨이야. 응원 잘하는 쪽이 이긴단 말도 있다고!”
한평생, 이토록 친근한 칭찬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카밀라는 수줍게 달아오른 얼굴을 어디다 둘 줄 몰라 허둥대다 라미네아를 올려다보았다.
라미네아가 맑게 웃었다. 까치집이 되어버린 카밀라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여기 있는 모두가 내 가족이야. 카미도 이제 그 가족의 구성원이고. 그러니까,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행동하렴.”
그때 문득, 그리프베런이 카밀라의 손을 잡았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 손에도 노력의 흔적이란 게 있지. 한 사람의 삶의 행적을 볼 수 있다.”
<우든크로스>행 열차에 탄 이후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떨림을 멎게 해준 말과 함께.
“노력했구나. 열과 성을 다하여. 두려워할 게 무엇인가. 이런 시험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통과할 수 있게 노력했거늘. 지금 네가 이 시험을 통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의 그릇아. 모두, 당연하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교차로, 인연의 선로 (6)
“응시 번호 31, 카밀라. 곧 순번입니다. 대기하세요.”
중급 검정시험에는 여섯 개의 평가 항목이 존재했다.
기초를 평가하는 초급과는 평가 규격이 완전히 달라져서, 많은 검사들이 이곳에서 절망의 벽에 부딪힌다.
그런 긴장감의 파도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는데도, 어째서 그때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던 것일까.
– 막내야, 응원은 우리한테 맡겨놔라!
생생히 떠올라서…….
웃음소리에도 온기가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만약, 진짜 가족이 있었더라면 아까 그런 순간이 매일 반복되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요한이 안 보고 있으니까 긴장을 안 하는구나.”
“예? 뭐요? 요한? 걔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요?!”
“슬쩍 찔러본 건데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니 오히려 수상한데…….”
스승님께서는 거기서 딱 웃기를 마치더니,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프베런 아저씨의 말대로야. 지금의 카미라면 중급 검정시험은 당연하게 통과할 수 있어. 당연하게 합격증을 받아내자.”
“가산점을 다 받아내야 지검제 합격이 거의 확실시되는 거죠?”
“응. 그렇지만 무리는 하지 마. 가산점을 몇 개쯤 못 받아도 합격한다면 충분해.”
여섯 개의 항목을 가산점 없이 평범히 통과하면 80점이었다. 모든 항목에서 가산점을 다 받는다면 100점, 즉 만점이 된다.
“응시 번호 31번, 카밀라 플라워. 시험장으로 입장하세요.”
“다녀와, 카미.”
“네!”
첫 번째 평가 항목은 ‘3ㆍ3 허수아비’다.
점점이 흩어진 3개의 허수아비를 3초 안에 베어야 해서 3ㆍ3 허수아비라고 불렸다.
이는 보법과 참격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지를 보는 항목이었다.
“카미카미!”
“힘내라!”
홍련 병단의 외침이 장중이 떠나갈 듯이 울려 퍼졌다. 시험관이 눈치를 주자 좀 조용해졌다.
‘뭘까, 이 기분은.’
첫 번째 시험을 향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았다.
긴장의 떨림?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던, 춤을 출 수만 있을 것 같은 기분.’
기수식 자세를 취한 순간부터 시간제한이 시작된다. 카밀라의 기수식 자세는 발(發)이었다.
그 일순간.
신형이 총탄처럼 튀어나가며, 첫 번째 참격…… 이어서 다시 왼발이 지면을 때리고, 두 번째 참격, 이번에는 오른발이, 그리고 세 번째 참격.
‘아주 좋아!’
라미네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무리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어! 시간도 2초에서 3초 사이. 이건 무조건 가산점일걸!’
실제로 시험관들은 눈을 크게 뜬 채로, 평가서에 만년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가산점이었다.
‘이게 아닌데.’
그때 카밀라는 즐거운 고뇌 속에서 두 번째 평가 항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게 아니었어. 그때, 스승님이나 에쉬르와 춤을 출 때 느꼈던 기분은…… 뭔가, 보이지 않는 선율을 타는 것 같았는데.’
두 번째 평가는 ‘절벽 위의 허수아비’였다. 떨어지면서 허수아비를 베고, 보법을 통해 완벽하게 착지하면 가산점이 붙는다.
‘체중의 이동이 조금 더 자연스러웠나? 부드러웠나?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시험장에 마련된 절벽에서 뛰어내린 카밀라의 몸이 공중에서 두 바퀴를 우아하게 회전했다.
그 회전 속에서, 일발(一發).
칼날의 쇳빛이 번득이는 동시에, 허수아비가 반으로 절단된다. 카밀라는 지면에 착지하며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완벽했어, 카미!’
이는, 몸에 치받치는 낙하의 충격을 보법으로 완충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음 참격에 그 힘을 싣는 동작.
‘보법이 성장했구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듯이 말야!’
세 번째 시험은 두 번째 시험에서 곧장 이어진다.
순차적으로 날아오는 속성 마법을 쳐내야 한다. 마법을 쳐내려면 마력을 칼날에 두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지 평가하기 위함이다.
각 속성에 따라 날아오는 속도가 상이했으므로 반사 신경 및 참격의 정확도도 평가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불꽃.’
마나하트를 휘두른 칼집이 불덩이를 꿰찌르면서, 불꽃이 연기로 흩어졌다.
‘이어서 빙결 마법의 고드름.’
마나체인으로 근육과 일체가 될 정도로 단단히 엮인 칼날이 빙결 마법을 일도양단한다.
‘다음은 전격.’
전격 마법은 점(點)이 아닌 선(線)에 의한 공격이었으므로 더 큰 마력이 필요하다.
그만한 마력을 새로이 일으킬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마력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칼과 칼집을 교차하는 것으로 이루어내는 이 초식은 십문자도 제1식, 원(圓).
“와아아아아아아!”
“끝내주는데!”
“카미카미! 카미카미!”
전류의 쇄도가 십문자의 방호 앞에서 흩어질 때, 홍련 병단이 환성을 쏟아냈다.
“사랑스럽죠?”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그리프베런에게 라미네아가 말했다.
“동작 하나하나에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보이외다. 라미네아 단장의 발자취를 뒤쫓으려는 마음이 말이오.”
아직, 서투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 발자취 하나하나에 자신의 발을 포개려는…… 모든 동작에서 그런 마음이 담긴 게 느껴진다.
“후후, 아저씨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어요.”
네 번째 평가 항목은 ‘진짜 허수아비 찾기’다.
응시자를 중심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는 허수아비 중에서, 처음 본 허수아비를 찾아서 정확하게 베어내야 한다.
이건 마력으로 시력과 집중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거기에 보법과 참격을 더해 표적을 정확하게 벨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 집중해.
발(發)을 기수식으로 정하는데, 자발 루드윅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 체내에서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이 감각을 눈으로 집중시키는 거야. 그게 바로 마력시(魔力視)의 시작이지.
마력은 모든 신체 기관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시력이나 청력 따위도 말이다.
‘스승님의 말대로야.’
그 증강된 시야는, 더듬이처럼 넓게 펼쳐져 찾아낼 수 있게 만든다. 가짜 허수아비들 사이에서 회전하는 진짜 허수아비를.
‘마력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나니까, 검술이 훨씬 편해졌어.’
목표를 포착한 순간, 아니, 목표를 포착하는 동안 칼집 내부에서 끓어오르던 마력을 마침내 해방시킨다.
발도일섬(拔刀一閃).
진짜 허수아비의 궤도 속으로 파고든 순간 칼집으로 지면을 내리찍는다. 반전되는 회전력을 칼날에 담는 이것은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대단하군.’
‘저 나이에 십문자도의 핵심 초식을 쓸 수 있다니.’
‘보법과 참격의 연계도 훌륭했어. 가산점 기준인 5초 안에 진짜 허수아비를 찾아서 정확하게 베어냈고.’
시험관들은 짧은 찬사와 함께 다시 평가서에 만년필로 O를 표시했다. 지금까지 끝마친 네 개의 평가 항목에 모두 동그라미가 표시돼 있었다.
– 카미,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하면 안 돼.
날아갈 것만 같은, 아찔한 기분 속에서 다음 평가 항목으로 넘어가는 카밀라의 뇌리에 기억 속의 메아리가 울렸다.
– 칼과 춤을 춘다고 생각해. 카미의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야. 칼과 함께 나아가는 거야. 칼과 함께하는 동작에 카미의 마음을 담으면, 칼이 응해줄 거야.
아, 바로 이런 감각이었구나.
스승님과 에쉬르의 동작이 선율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이유를 알겠어…….
두 사람은 칼을 휘두르던 게 아니야. 칼과 함께 춤을 추고 있던 거야. 그건, 이렇게나 즐거운 감각이었구나.
“지검제 출전을 서두르는 게, 저 아이를 전장에 데려가기 위함이오?”
그리프베런의 질문에 라미네아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그건 말해주지도 않았어요. 그냥 카미의 향상심 때문이에요.”
“허어…….”
“아저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카미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지만, 또 그런 곳으로는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
“저, 너무 이기적이죠?”
다섯 번째 평가 항목은 일백계단(一白階段)이다.
100개의 계단을 시간 내에 돌파하는 동시에, 갑자기 나타나는 허수아비(총 8개)를 당황하지 않고 모두 처리해야 한다.
시간 내에 도착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허수아비를 전부 정확하게 베어내면 가산점이 붙는다. 체력과 마력의 유지력, 집중력을 아울러 평가하는 시험이다.
‘슬슬 숨이 차…….’
카밀라는 생각했다.
체력과 마력과 근력 모두를 100% 발휘하고 있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야…….
‘스승님과 에쉬르, 그리고 나와의 차이점을 수백, 수천 번은 곱씹어봤어.’
차이점은 스승님과 에쉬르의 동작에는 전부 여유가 넘친다는 것이었다.
봄꽃이 날아들듯이 살며시.
하지만 칼바람처럼 날카롭게.
그 차이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늘 생각하고 탐구했다. 뒤쫓으려고 노력했다.
‘몸에 계속 힘을 주고 있으면 뻣뻣해져.’
어느 순간엔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동작에는 힘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오직 필요한 순간에만 근력과 마력을 순간적으로 집중시켜 몸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스승님이 보법을 가르쳐줄 때 알려주던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춤이 되어버려.’
그런 동작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몸과 칼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던 것이다.
“와아, 언제 봐도 참 아름다운 검술이네요. 꼭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칼로 그려내는 것 같아요.”
한 시험관이 말했다.
노령의 시험관이 답했다.
“모든 십문자도가 저런 게 아닐세.”
다른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검사의 개성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화하죠.”
“그걸 안다면 보일 걸세. 저 형태는 스승에게서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걸.”
그래, 스승과 닮았어…….
스승을 닮아가려는 모습이…….
“스승과 제자를 똑같은 시험에서 보게 되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군. 시험관인 내가 이런데 스승의 마음은 어떨지.”
힘내, 힘내, 카미. 이제 다 왔어. 마지막이야…… 라미네아는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카밀라는 숨을 헐떡였다.
마지막 평가 항목은 ‘부유석’이었다. 다섯 개의 부유석이 일렬로 떠올라 있는 이건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험이었다.
– 첫 번째와 세 번째 부유석은 발판이야.
두 번째와 네 번째 부유석에는 허수아비가 위치한다. 다섯 번째 부유석은 모든 걸 마치고 착지하는 장소다.
– 첫 번째 부유석에서 뛰어서 세 번째 부유석에 착지할 때, 첫 허수아비를 베어야 해.
또는 부유석에 착지하면서 허수아비 두 개를 동시에 베는 방법도 있었다. 허수아비를 모두 베고 마지막 부유석에 도착해야 한다.
가산점 시간제한은 단 3초.
부유석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설 정도로 작고 좁았다. 보법이 조금만 엇나가도 추락하게 된다. 보법과 참격의 정밀성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것이다.
‘연습했어. 연습한 대로 하면 돼. 당연하게 통과할 수 있어. 돌발격을 사용해서!’
시아스튤리카, 시냇물이 흐르는 곳의 징검돌 위에서 스승님과 함께 몇 번이고 연습했던가.
그대로 하면 된다.
근데, 그대로 되질 못했다.
근육의 피로도 문제로 첫 도약이 어설펐다. 마력 또한 충분히 모으질 못했다.
“……!”
본래 세 번째 부유석에 도착하면서, 돌발격으로 앞뒤의 허수아비를 동시에 베어낼 전략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충분한 힘이 실리지 못한 돌발격은 첫 번째 허수아비만을 베어내고 두 번째 허수아비에게는 얕은 생채기를 남기는 데 그쳤다.
‘결국 한계에 달했나?’
‘가산점은 끝났군.’
‘이건 평균 합격 나이가 21세고, 아직 나이가 어리다 보니…….’
이대로, 이대로 실패의 페이스에 밀리면 모든 게 끝난다.
끝난다고?
아니, 끝나게 놔두지 않아.
에쉬르가 공검제에서 설산검파의 후기지수를 쓰러뜨릴 때 보여주었던 검무 중 하나가 뇌리 깊숙이 남아 있었다.
그걸 남몰래 연습해왔다.
그 연습의 과정이 몸을 본능에 가깝게 움직이게 만든다.
‘뛰어올랐다고?’
‘관성을 제어하지 못했나?’
‘이러면 두 번째 허수아비를 못 베는 건 물론이고 마지막 부유석에 도착하지 못할 텐데?’
오직 한 사람, 라미네아의 두 눈이 커다랗게 열렸다.
‘저건……?’
도약의 최고점에 이른 순간, 카밀라는 칼집을 놓았다. 아직, 칼집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 칼집에 발을 올렸다.
칼집을 발판처럼 박차는 것으로, 허공에서, 원하는 각도로, 몸에 가속력을 실어낸다.
‘칼집을 발판처럼……?’
마력으로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도의 마력 통제 기술이었다.
그 고수의 경지를 지금 카밀라가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러나 그걸 어설프게나마 모방해야 한다면, 칼집과 칼날 모두에 마력을 싣는 십문자도가 적격이 아닐까.
‘그냥 칼집은 발판처럼 쓸 수 없지만, 거기 마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양손으로 움켜쥔 칼자루 너머로 칼날이 쇳빛을 흩뿌렸다.
그 웅혼한 떨림 속에서 두 번째 허수아비의 목이 절단된 순간…… 카밀라가 마지막 부유석에 정확히 착지했다.
칼집을 박찰 때 몸에 걸었던 회전력은, 착지와 동시에 제자리를 도는 것으로 무력화시킨다.
“!”
“!”
“!”
적막이 깔리던 그 순간, 라미네아가 양 주먹을 있는 힘껏 움켜잡던 그 한순간, 카밀라는 호흡을 깊게 삼키면서 고개를 들어 보았다.
20.
20.
20.
20.
20.
다섯 명의 시험관들의 머리 위로 마력의 문자열이 떠올라 있는 것을. 그 숫자들을 유심히 보았다. 모두 똑같았다.
‘20점이 총 5개.’
모든 평가 항목이 각 시험관들이 보기에 가산점 기준에 부합했을 경우 20점을 총 5개, 총점 100점을 받게 된다.
이른바 만점이다.
동시에 지검제 서류 합격 확정이나 다름없다.
‘아, 아, 아, 앗싸아아아아──!’
그때, 바로 그 순간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양 주먹을 불끈 쥐고, 밖으로 낼 수 없는 함성을 속으로 지르던 기억은. 그리고 스승님을 바라보며 승리의 V자를 치켜든 기억도.
“이 엄청난 녀석!”
“저 녀석 점마, 우리 막내예요!”
홍련 병단의 우레 같은 함성과 갈채 속에서, 라미네아는 뜨거운 물방울이 맺힌 눈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걸 어찌 이기적이라 할 수 있겠소.”
그때 그리프베런이 아까 라미네아가 한 질문에 답을 주었다. 전사의 의연한 미소와 함께.
“소중한 무언가를 거친 광야로 내몰고 싶지 않은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인데.”
“아저씨…….”
“소중한 존재 대신 광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당신을 용사로 만든 것이오. 그리고 저 아이도 똑같이 되겠지. 검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닮아가고 있는 걸 보니. 단장과 같은 이들이 엘디아들의 뒤를 좇아 용사(勇士)가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