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11)
가짜 용사 이야기-211화(211/310)
시즌 3 : 19화
카밀라와 올리에르는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휘령당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사는 본래 4인 1실 체계였으나, 다른 응시생들이 모두 잠든 관계로 두 소녀는 공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식사를 마친 뒤, 말 그대로 뻗었다.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야, 올리에르.”
“응?”
비몽사몽 목소리.
“뭐냐, 할 말은 해야겠더라고. 아까, 도와줘서, 고마웠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말했건만, 올리에르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라고는 세상 편한 코골이 소리뿐이었다.
“눕자마자 잠드는 타입이냐……!”
카밀라는 괜히 자신만 진지해진 게 쪽팔려서 빽 소리를 쳤으나, 이내 한숨과 함께 미소 지었다.
쳇, 하긴 뭐, 졸릴 만하지…….
이번에는 주의를 자신에게 돌렸다. 온몸에서 격동하는 근육통이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칼의 세상에는 정말 많은 녀석이 있구나.’
일성칠검이라 하면 다 콧대 높고 나쁜 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구나.
‘어제의 나보다 강하게, 인가요.’
카밀라는 스승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숨죽여 배시시 웃었다.
스승님.
저, 어제의 저보다 조금은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해져서…….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3)
지검제 선발 자격 심사를 상세히 기록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시험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단 점이다.
대단한 놈들이 잔뜩 있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검을 가지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기뻤다.
시험 방식은 비슷비슷했다.
조식을 먹고 나면 휘령당으로 모이고, 조가 배정되었으며, 교관의 과제를 통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3일 동안의 과제는 보법ㆍ마력 운용ㆍ검술, 즉 검사의 실력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를 따로따로 떼어내서 정밀하게 시험해본 것 같았다.
첫날에 108명 중 32명이 탈락.
둘째 날에 29명이 탈락.
셋째 날에 24명이 탈락했다.
마지막 넷째 날에는 단 23명의 응시자만이 생존해 있었다.
대륙 전역에서 선발된 108명 중 단 23명…….
예전에는 경내가 꽉 찰 정도의 인원이었건만,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적 여유가 넘쳤다. 모두 지친 얼굴이었다.
“뭐야, 불러다 놓고 왜 안 와?”
올리에르가 투덜댔다.
마지막 날의 기억은 다른 날보다 선명했다.
분명, 최고의 인연과 최악의 악연을 동시에 만났기 때문이겠지.
“너, 뭐냐?”
단 한 번도 좋아해본 적 없었던 목소리.
벨체스터 가문에서 사육당하던 날의 악몽을 꿀 때면 꼭 들려오는 메아리.
본능 깊숙이 새겨진 공포로 늑골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수축한다.
“네가 대체 왜 여기에 있어?”
에디넨 베르첸. 베르첸은 벨체스터 가문의 방계들이 쓰는 성씨다.
거기서 에디넨은 저택에 올 때마다 카밀라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녀석이었고.
예전이었더라면 저 목소리에 잔뜩 위축되어 시선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어디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인데? 뭐 보태준 거라도 있어?”
에디넨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긴 너처럼 천박한 것이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네 존재 자체가 곧 죄악이자 민폐이고 가문의 수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지?”
“웃겨. 지가 좋아서 싸질러놓고 뭔 가문의 수치야? 누가 그 쓰레기한테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허, 이년이…….”
또 다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해라, 에디넨.”
발칸, 발칸 벨체스터였다.
벨체스터 맹작가의 장남이자 후계자로서 카밀라와 똑같은, 주황색 머리칼을 가졌다. 눈썹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구불거렸다.
오랜만이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발칸이 말했다.
“아직 시험 도중이다.”
“아니, 형! 내 말이 맞잖아? 이 녀석 때문에 형이랑 가문이 얼마나 남들 보기가 부끄러워?”
“왜, 그래서 꼬와? 덤벼볼래?”
카밀라가 도발하던 그때, 누군가가 에디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얹었다기보다는 움켜잡은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그 차가운 위압감에 에디넨의 동작이 일순간 정지했다.
교관 파티슈 듄 제라예였다.
“여기에서 살기(殺氣)를 다 내뿜을 생각을 하고, 기세가 참 등등하구나. 베르첸의 애송이.”
“교관님, 저년이 여기 왜 있는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재밌군. 우리들의 평가 기준이 미흡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우리들이 너 따위보다 보는 눈이 없다고?”
에디넨은 압도되었는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발칸을 바라보았는데, 발칸은 오히려 대신 정중하게 교관에게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제 사촌 동생이 아직 성숙하지 못해 교관님과 다른 응시자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명색이 삼대검가의 후계자라고, 방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인성 교육이 잘 되어 있군. 좋아, 특별히 용서해줄 테니 당장 저놈 데리고 꺼져라.”
에디넨이 분노를 짓씹는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카밀라를 스치고 지나가며 속삭였다.
“그 비천한 실력으로 실컷 날뛰어봐. 어차피 너 같은 천한 것들이 도달할 수 있는 위치는 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니.”
올리에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먹을 한 바퀴 돌렸다.
“뭐야, 저놈은? 싸가지 없게 생겨가지고.”
카밀라가 그 어깨를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괜히 신경 쓰면 너만 피곤해져.”
파티슈가 궐련을 입에 물고, 성냥을 성냥갑 위로 긁으며 말했다.
“서출들의 가족 관계야 안 봐도 뻔하지만 너는 더 안 좋은 것 같군. 그래도 걱정 마라. 페이쿼리어가 되는 순간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
“남남이요?”
“왜, 싫어?”
에디넨은 싫지만, 발칸은…… 상념이 이어지기 전에 파티슈는 턱으로 단상을 가리켰다.
“설명 잘 들어라.”
수석 교관 리노야 듄 제라예가 마지막 과제를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조금은 쉬운 과제를 내주겠지…… 그런 응시생들의 기대를 모두 깨트리기 위해서.
“지금부터 마지막 과제에 대해 설명하겠다. 단 10분, 10분의 시간을 주겠다. 그 10분 동안 너희는 내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전략을 짜야 한다.”
응시생들은 귀를 의심했다.
뭔 소리야…….
교관을 상대로 살아남는다고? 대부분의 검사들을 몇 합 안에 날려버리는, 저 인간 병기를 상대로? 심지어 수석 교관인데?
“설명이 부족했나? 한 합이라도 버티면 합격이야. 물론 버티지 못했더라도 시도가 좋았다면 합격 가능성이 있고. 이 시험은 점수 평가제로 상위 여덟 명이 최종 합격하는 구조거든. 그리고 핸디캡으로 나는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발만 쓰지.”
수석 교관의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파티슈는 응시생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일차적 반응만으로도 많은 게 보이는 법.’
재능, 성격, 소질, 적성…… 더 나아가서 어떠한 훈련을 받았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올리에르…… 염룡검파의 고수들에게 훈련을 받은 만큼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군. 남들이 왜 긴장하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야. 그냥 멍청한 거일 수도 있지만.’
발칸 벨체스터도 비슷하군.
벨체스터의 당주로부터 일대일 교육을 매일같이 받아왔을 테니 중압감이 없다시피 한 얼굴이다.
반면 일성칠검이나 삼대검가가 아닌 출신의 인물들은 딱 봐도 긴장한 게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파티슈의 시선이 카밀라 쪽으로 향했다.
망아(忘我)와도 같은 극도의 집중 상태에서, 바닥 어딘가를 바라보며 닥쳐올 전투의 양상을 상상하고 상정하는 얼굴이었다.
파티슈의 궐련 문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그래, 저거야말로 재능이지…….’
카밀라는 세 번째로 호명되어 밖으로 불려나갔다.
파티슈를 비롯한 다섯 명의 교관이 저마다의 표정과 자세로 서 있고, 중심부에서 수석 교관 리노야가 몸을 풀고 있었다.
리노야가 딱 봐도 막내로 보이는 교관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누구냐?”
“카밀라입니다.”
“야 이년아, 이름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어떤 년이냐고.”
“라미네아 님의 제자입니다.”
“라미네아의? 진짜? 아, 네가 그!”
리노야의 눈동자에 장난기 같기도 하고, 흥미 같기도 한 화색(和色)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리노야가 성큼성큼 다가와 카밀라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잘 있다냐?”
“네?”
“네 스승, 건강히 잘 있냐고.”
“아, 네.”
“그 말괄량이 녀석이 어떤 년을 제자로 받았는지 궁금했었는데, 숫기가 없는 걸 보니 성격은 완전 딴판이네.”
그러면서 마구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게 아닌가. 스승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싶어서 기뻤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카밀라는 뒤로 물러서며 간격을 벌리는 동시에 검대를 끌렀다.
순간적으로 뽑혀나온 칼날이 한철(寒鐵) 특유의 웅혼한 쇳빛을 토해내며 칼집과 교차했다.
교관 중 한 명이 휘파람을 불었다.
‘기수식 자세는 100점인데? 느낌이 있어.’
십문자도 제1식, 원(圓)의 자세로 리노야를 겨누던 카밀라가 물었다.
“시작인가요?”
“그래, 시작이다.”
그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소녀의 발자국이 지금껏 디디고 있던 지면 깊숙이 새겨졌다.
정면으로 도약.
자세를 잡던 순간부터, 체내에서 마나하트를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동시에 마나체인으로 그 폭발력을 묶어두고, 묶어두고, 묶어두다가, 이 순간 폭발시킨 것이었다.
“!”
“!”
“!”
교관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선공이라고?
수석 교관을 상대로?
리노야는 지금 이 상황이 더없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기색이었다.
‘재밌네.’
하지만 너무 서둘렀는걸?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인 것 같은데 그걸 쓰기에는 마력이 완전히 모이지 않았잖아.
순식간에 정면으로 쇄도해든 소녀에게 리노야가 즉시 왼발을 내질렀다.
‘이야.’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이 녀석 봐라?’
지면을 내리찍는 것으로 회전축을 설정하고 관성을 일으켜야 할 칼집을…… 허공을 날았다.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다.
대신 칼자루를 양손으로 잡고, 무릎을 꿇어서 리노야의 발이 그리는 궤적 밑으로 낮게 파고들고 있었다.
‘돌발격은 각력, 마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킨 힘을 회전력으로 바꾸어 참격에 싣는 기술…….’
파티슈 또한 흥미롭게 눈썹을 치키고 있었다.
‘칼집으로 지면을 내려찍는다는 동작을 없애버리면, 그냥 정면으로 몸을 쏘아버리는 기술이나 다름없어지지.’
그래, 바로 이게 재능이다. 파티슈는 아까 관찰의 시간에 하던 생각을 마무리했다.
상상력.
상상력이야말로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가, 상대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끝없이 상상하면서 다음 수를 그릴 수 있는 재능.
‘그래도 안심하긴 일러. 저 괴팍한 변태가 괜히 수석 교관이 된 게 아니거든.’
리노야가 발을 내뻗던 동작을 순식간에 수습했다. 다른 발로 지면을 차서 몸을 살짝 띄워 올렸다.
살짝, 아주 살짝만.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갈 만큼만 살짝. 그리고 바로 그 자로 잰 듯 살벌한 간격은 곧 시간의 우위로 이어진다.
‘뭐라고……?’
카밀라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검사라면, 아니, 무예에 뜻을 둔 자라면, 경악, 아니 전율하게 되는 엄청난 무(武)의 경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도 못 했어.’
동시에 공중에서의 자세 제어.
참격을 적중시키지 못한 채 저 뒤로 미끄러지는 카밀라의 뒤통수를 정확히 노리고 오른발을 내려찍었다.
한순간,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순간, 시야 전체에 드리워진 살(殺)의 그림자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는데…… 아무런 충격도 오지 않았다.
대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여기까지.”
그제야 두 눈을 뜨고 다시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리노야는 아까 카밀라가 내던진 칼집을 주워들고 있었다.
“저, 잠시, 잠시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뭐?”
“방금 그건, 그러니까, 불가항력 같은 거여서, 다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다 끝나버리면, 스승님을 무슨 얼굴로 어떻게 뵐 것인가.
스승님은 괜찮다 하시겠지만,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기회를 다시 주면 결과가 바뀌냐?”
“노력, 필사적으로 노력해 볼게요!”
“하, 아하하하하하하하! 야 이것들아, 지금 이 녀석이 하는 말 들었냐? 날 상대로 결과가 바뀔 거라는데? 좋아, 패기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렇게 원한다면 기회를 다시 줄 수 있어. 근데 그러면 너한테 너무 불리한 것 같은데.”
“네? 왜죠?”
“너, 합격이거든.”
“합격이요?”
“응.”
“이거 점수 평가 아닌가요?”
“내가 합격이라면 점수가 어떻든 그냥 합격이야. 불만은 없겠지, 이 자식들아?”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라는 심히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내가 수석 교관이다 보니 정말 여러 놈들을 보거든. 센 놈, 약한 놈, 괜찮은 년, 별로인 년, 가망 있어 보이는 놈, 가망 없어 보이는 놈…… 참 여러 부류가 있지만 재밌는 녀석은 별로 없어.”
리노야가 카밀라에게 칼집을 돌려주며 씩 웃었다.
“근데 네가 바로 그 재밌는 년이야. 너 같은 부류의 녀석들은 꼭 금방 대단한 인재로 크더라.”
“……?”
“지금 열세 살이니까, 3년 뒤에 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와라. 지검제고 공검제고 죄다 우승하고, 라미네아의 이름을 짊어지고 <위용검전>까지 오라고. 그럼 내가 책임지고 네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줄게.”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 주겠다는 건 용사로 만들어 주겠다는 은어적 표현이었다.
“어, 어라? 그럼? 그렇다는 건?”
그제야 현재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짜릿한, 몸속의 혈류 전체가 용솟음치는 듯한 감각이 전신으로 쇄도해 들었다.
합격, 합격이라고?
그러니까, 지검제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리인가? 이 소식을 스승님한테 들려 드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요즘 항상 어두운 표정이셨는데.’
이제는 정말 당당하게 얼굴 펴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 그 생각만 해도 웃음으로 온몸이 벅차올랐다.
“아, 그리고 라미네아가 해줬을 리가 없는 그 녀석 생도 시절의 이야기도 잔뜩 해주마. 저기 저 골초 년을 시켜서.”
리노야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서는 파티슈가 궐련을 피우고 있었다. 카밀라와 눈이 마주치자 파티슈가 손을 슬쩍 흔들어 보였다.
“저분이 왜요?”
“저 녀석, 라미네아 동기거든. 플로렛이랑 같이.”
“플로렛?”
“몰라? 플로렛의 제자도 여기 왔었는데, 아니, 지금은 갔구나. 시험 도중 못 만났냐?”
막내 교관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눈썹을 치켰다.
“신기할 정도로 서로 일정이 어긋나 있었네요. 휴식 시간에 지나가다 만나서 인사할 시간조차 없었을 정도로.”
리노야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도 제자가 있어. 샤론이라는 녀석이다. 너랑 닮은 점이 많아. 나이도 동갑이고 페이쿼리어의 제자지. 첫 번째로 합격한 게 그년이야.”
리노야가 자신의 제복 바지를 보여주었다. 왼쪽 허벅지 어딘가가 뚫려 있었다.
소름이, 뇌리에 소름이 돋았다.
근골은커녕 피부에도 닿지 못하고 옷감을 두세 올 정도 살짝 훑은 수준이었지만, 상대가 수석 교관이란 게 중요하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고 싶지만, 본선에서는 경쟁자니까…… 그래, 지검제가 끝난 뒤부터 사이좋게 지내면 되겠네.”
공격을 적중시켰단 소리 아닌가. 카밀라는 그 비장의 수로도 실패했건만…….
저 결과물만으로도 엄청난 실력을 엿보고도 남았다.
카밀라의 얼굴에 새하얗게 드리워진 긴장감을 보고는, 리노야가 씩 웃었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너랑 똑같이 재밌는 년이다. 아니지, 솔직히 말해주자면 지금 시점에서는 ‘너보다 더 재밌는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