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14)
가짜 용사 이야기-214화(214/310)
시즌 3 : 22화
“캬, 진짜 칼 좆같이도 못 쓰네.”
필두 페이쿼리어가 말했다.
눈꽃의 대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너한테 십문자도를 배운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저 정도면 엄청난 성장이라고 보는데?”
“엄청난 성장은 개뿔. 저렇게 굼뜬 동작으로는 초급 검정시험도 겨우 통과할걸.”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던 필두 페이쿼리어의 제자가 시건방지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너는 어땠는데? 시험 볼 때는 나보다도 더 좆밥이라 겨우겨우 통과했을 게 뻔히 보이는데?”
저 미친 당돌함, 용사 병단의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폭소와 환성과 휘파람을 터뜨려댔다.
“저놈 뭐래냐?”
“카밀라 나리한테 좆밥이래.”
“크하하하하하핫!”
필두 페이쿼리어의 미간에 힘줄이 불거졌다.
“야, 이 개새야. 나한테 초급 검정시험은 그냥 식은 죽 먹기였거든? 만점으로 통과했지. 한 손으로 지금 네 불알 하나는 가볍게 터뜨리면서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오오! 하나는 남겨 주시다니, 어쩜 저리 자비로우신지…… 병단의 병사들이 더 큰 환성으로 낄낄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렇게 말한 직후에.
먼 과거로부터 봄바람처럼 불어온 기억의 향기에 필두 페이쿼리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검도에 입상하신 건 언제였나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만약,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면.
만약, 여기에 당신이 계셨다면.
지금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겠어요.
– 언젠가, 카미가 용사가 되고…… 제자를 받게 되었을 때 말이지?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날 당신이 지으셨던.
그 들뜬 듯하면서도 슬픈 미소를 지으며.
– 그때, 오늘의 기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렴.
이상하다.
이 기억은 뭐지……?
이걸, 과연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냥 단순한 망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헤이, 까미까미까미!”
그때 갑작스레 기억의 천막이 걷히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문득, 보이지 않는 힘이 카밀라의 사지를 붙들어 허공으로 띄웠다. 그러더니 힘차게 아침 체조를 시키기 시작했다.
이 묘한 힘은 염동력 마법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자, 라디스 루드윅이 카밀라를 해맑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라디스 님……?”
“긴장돼? 잠 오래 자서 좋을 것 하나 없어. 자, 아침 먹고 열차 타러 갈 준비를 해야지.”
그때 라미네아가 허공에서 춤추던 카밀라를 포근하게 품어, 땅에 내려주었다.
“원래 어린 시절에는 잠을 최대한 많이 자줘야 해. 그래야 키가 쑥쑥 크지.”
“무슨 소리야. 잠이 아니라 우유를 많이 먹어야 해. 까미까미, 언니가 신선한 우유를 구해다줄게.”
라미네아의 품에서는, 어머니의 품에서 느꼈던 그것과 똑같은 온기가 있었다.
온도가 같은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같은 걸까…….
카밀라는 수줍은 마음을 감추며 고개를 살짝 숙여 예의를 보였다.
“좋은 아침이요.”
“응응! 카미도 잘 잤고?”
“뭐야, 까미까미! 왜 언니한텐 그런 인사 안 해줘!”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이 두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 크다.
특히 라디스 쪽이.
그렇기에 항상 이쯤 되면 핀잔이 날아온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냐! 대귀족으로서의 품위와 예절은 어디에 두고! 다른 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느냐.”
한나 루드윅의 호통이 들려오자 두 자매는 잠시 잠잠해졌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
다시 깔깔 웃으며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고 팔을 때리며 장난을 쳐대기 시작했지만.
“카밀라, 잠시 이리 오너라.”
한나의 호출에 응했을 때 카밀라는 적잖이 당황해야만 했다.
예복이 있었다.
예복이 아닌데 예복처럼 보인다.
최고급 명품 소가죽을 장인이 퀼팅 방식으로 누빈 이 옷은 분명 위아래 한 쌍의 사냥복…….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슴팍에는 루드윅 가문의 문장, 즉 ‘흑색 원 위의 붉은 눈동자’가 우아하게 수놓여 있었다.
“이건 뭔가요?”
“네 옷이란다.”
“네?”
“제자로서 출사표를 던지러 가는데 아무 옷이나 입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원래는 라미네아가 네 옷을 새로 만들려 했는데, 알다시피 저 아이는 칼질이 아니면 재능이 없어서 아주 참담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아, 엄마! 그걸 또 말해버리네! 스승으로서의 위엄이 박살 나버렸잖아! 아, 몰라몰라. 앞으로 엄마한테는 도와달란 소리 안 해.”
“그래서 내가 오랜만에 힘을 좀 썼구나.”
머리로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에, 손으로 저 옷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가문의 문장이란, 그 가문의 역사를 설명하는 증표로서 가족 구성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즉,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의복을 입는다는 건 오직 직계 혈통에게만 허락되는 일이란 소리다.
– 아니, 넌 이 옷을 입을 수 없다.
카밀라는 이복형제들과 달리 벨체스터 가문의 문장을 단 한 번도 몸에 품어본 적이 없었다.
품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카밀라는 천한 것이었으므로.
그런데 지금 이 옷을 입으라 한다고? 무슨 시험 아닐까? 카밀라의 머릿속에 불손한 생각이 있나 없나 시험해보는 게 아닐까?
“아뇨, 마님, 저는요, 이걸…….”
“받아주렴. 내가 한번 포기한 소망이었으니까.”
“네?”
“라미네아의 자식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품에 안아보고 싶었단다. 첫 대회에 나갈 때는 직접 옷을 짜주고 싶었고. 왜 그렇지 않겠느냐? 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거늘. 그런 보물이 낳은 보물은 얼마나 값지겠느냐. 그러나 저 아이가 용사의 꿈을 품었을 때 나는 그 꿈을 버려야 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나가 카밀라의 품에 가문의 예복을 안겨주며 맑게 웃었다. 그때, 먼 봄날에, 어머니가 웃던 것과 똑같은 웃음으로.
“네가 와서, 하루하루 새로운 기쁨을 주는 걸 보고 그게 헛된 생각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너는 내 마음의 자손이다. 그러하니 네가 이 문장을 품는 건 하등 이상하지 않다.”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6)
기원력 1670년의 지검제는 11월 21일에 황금의 도시, <하랄도니키>의 영웅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하랄도니키>는 성역이었다.
황룡 군단이 기거하는 법황청이 위치하였으며, 그 최상층에는 마지막 삼신룡인 광룡 하라데리만이 기거했으니까.
이곳에서 열리는 검의 축제는 지(地)-공(空)-용(龍)-천(天)의 순서로 나흘 동안 이어진다.
이 역사적인 칼부림을 보기 위해 대륙 각지에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드는 것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검의 축제’ 기간에 황금의 도시 <하랄도니키>의 인파에 비하면 <레인보우가든>이나 <우든크로스>의 번잡은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그 두 곳과 달리, 각종 상인이나 모험가들의 출입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 모든 인파를 수용하기 위해, 영웅 광장은 고대 <온 것들>의 기계장치의 힘으로 모습을 변모시킨다.
중심부는 솟아오르고, 외곽은 층층이 내려갔다가 다시 상승하며 투기장 관람석의 형태로 뒤바뀌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웅 광장은 세계 11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영웅 동상이 세워지기 전에는 그냥 황금의 광장이었지만 말이다.
“검의 축제쯤 되니 그냥 어깨에 힘 좀 준다 하는 유명 인사들은 죄다 행차하시는군.”
델프레드가 말했다.
라미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자기과시?”
카밀라가 머리를 긁었다.
뭐지…….
분명 작년에도 비슷한 대화를 들었던 것 같은데…….
“저번에도 느꼈던 건데, 정말 관중들 급이 다르네.”
카밀라의 말에 요한이 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맞아. 염룡검파 장문인부터 시작해서 주요 인물이 다 와 있어.”
“올리에르 응원하러 왔나 보다.”
“흠, 두노스 왕국 국왕까지 왔잖아. 아직도 팔팔하군. 플로렛 그 양반의 제자를 응원하러 온 모양인데.”
“스승님, 저건 벨체스터 맹작가네요.”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흠칫 놀라 카밀라의 눈치를 살폈다. 태연한 척하지만 카밀라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카미, 저길 봐.”
그러나 마음이 오그라드는 듯했던 그 압박감은 다음 순간 눈이 녹듯 사라졌다.
“엄마와 라디스도 와 있어.”
왕조와 맹작가에 지지 않는 위엄, 용현 레인 루드윅의 후손들 또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시선이 닿자 라디스가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리프베런 님도 온다고 했는데 안 보이시네요. 멜레느 님도요.”
요한이 말했다.
멜레느는 홍련 병단에 소속된 마녀였다. 병단의 치유 및 보조직을 맡고 있었다.
“걘 귀찮단 이유로 안 올걸. 귀찮단 이유만으로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녀석인데. 그리프베런 님이야 뭐, 수인이다 보니 대충 사람들 피해서 앉아 있겠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관중석을 두리번거리던 요한의 시선이 카밀라에게로 향했다.
“떨려?”
요한이 물었다.
카밀라가 피식 웃었다.
“떨리지.”
“옷 멋지네.”
“구경만 해. 안 빌려줄 거니까.”
어떻게 잊겠는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의 긴장을…….
그날의 흥분을…….
심호흡의 틈새로 밀려드는 칼날 반도의 짭조름한 바닷바람, 정오의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깨어나던 법황청 영웅 광장의 광채.
“준비해, 카미.”
가슴이 끝없이 방망이질 치는 이유는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에쉬르와 스승님을 따라잡기 위한, 첫 번째 계단에 이제야 비로소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네.”
곧 이름이 호명되었고, 라미네아가 등을 앞으로 밀어주었고, 카밀라는 발을 광장으로 내디뎠다.
영웅 광장은 태양빛을 영롱하게 반사시키는 금석(金石)으로 축조된 장소, 고요한 빛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그 빛의 세계 한가운데에서, 옛 영웅들의 동상이 어린 검호들을 굽어보았다.
용사 리스타.
대마법사 린.
대무녀 프리데.
궁성 키에스.
‘이제 시작이구나.’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지는 걸 느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디는 거야.’
지검제 본선 출전자들이 ‘영웅 광장’으로 나와 도열했다. 소년 네 명에 소녀 네 명이었다.
지검제뿐만 아니라, 법황청 공인 검의 축제는 모든 참가자들을 처음에 동상 앞으로 정렬시켰다.
이곳에 온 자들이 훗날 저들과 같은 영웅이 되기를, 그러한 바람이 담긴 것일까.
“후훗, 왔구나. 카밀라.”
리스타 알터 쉬르팽의 동상을 올려다보는데, 옆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는 제대로 했는지 몰라.”
“아, 물론 제대로 했지. 콧대가 아주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어디 이름 모를 왕국의 왕녀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줘야 하니까.”
늘 웃음기 속에서 닫혀 있는 샤론의 눈동자가 살짝 보이며 살벌한 안광을 뿜었다.
“후훗, 후후후후후훗.”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카밀라와 샤론은 서로가 낼 수 있는 웃음소리 중 제일 비열한 웃음소리로 서로를 견제했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올리에르의 기분은 어딘가 편치 않았다.
자신의 감정이 스스로도 뭔지는 몰랐지만 그건 분명 질투심이었다.
“야, 카밀라! 네 라이벌이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카밀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라이벌이 없는데.”
“부끄러워하기는! 그때 나랑 약속했을 텐데! 내가 이기면 라이벌로 인정해 주겠다고.”
“그거 비겼잖아. 네가 이상한 짓 해서.”
올리에르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엇? 헉, 맞다, 그랬지, 그랬었다, 맞아, 어…… 미안.”
샤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스승한테서 학습 중인 어른스러운(?) 웃음이 아니라, 소녀 본연의 맑은 웃음으로.
“걱정하지 마. 나는 카밀라의 라이벌이 아니거든. 굳이 따지자면 선생과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상급자로 보면 돼. 그러니 라이벌 자리는 네가 가지렴.”
“오, 오옷, 그런 거였어?! 그럼 안심이네! 카밀라, 역시 나의 라이벌! 약속을 잊지 않았구나!”
“누가 누구 선생이고 라이벌이란 거야, 이 자식들아!”
그때, 두 친구와는 다른, 서늘하고 섬뜩한, 그런 살기(殺氣)가 등줄기를 조용히 훑고 지나갔다.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다.
“본가 어르신들께서 보는 앞에서, 네 천박하기 그지없는 검술과 실력 모두 짓밟아주마.”
에디넨 베르첸.
이 녀석도 본선까지 올라왔나.
아니, ‘역시’라고 해야겠지. 올라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제법 실력자였으니까. 나이는 열세 살로 동갑이다.
“흐응, 그 인간이 왔다 이거지? 어디 해보자고. 나야말로 그 눈앞에서 완전히 쳐부숴줄게.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그러나 무섭지 않아.
이제는, 조금도.
그나저나 이놈이 왔을 정도면, 진짜배기도 왔겠지…….
‘발칸.’
슬쩍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서 조숙한 위용을 거느리고 서 있는 발칸 벨체스터도 보였다. 이 또한 당연하게 보였다.
「들으라.」
화룡점정은 오주(五柱)라고도 불리는 다섯 진룡 중 수석, 인라히트의 등장이었다.
그 광휘의 위엄, 광채의 채도.
대기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은, 거룩한 위상을 뿜는 존재가 영웅 광장에 내려앉은 것이다.
「이 땅은 거룩한 곳이니, 모두 마음의 신을 벗고 들으라.」
황제조차도 진룡의 위엄을 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 위엄 앞에서 모든 소란이 단숨에 잠재워졌다.
「이 광장은 일찍이 처음으로 도래했던 동란의 시대를 평정한 리스타와 그 동료들을 추모하고 또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
「그 이후로 무수한 검호들이 이곳을 지나쳐갔다. 저 영웅들의 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저런 존재가 되기 위해!」
이상해.
심장의 요동이 멈추질 않아.
자꾸, 자꾸만, 그때, 어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모습이 뇌리에 떠올라.
「이제 너희들의 차례다, 어린 그릇들이여. 저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존재가 될 시간이 온 것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이 지검제를 통해 이루어지리니.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너희들의 영혼의 빛으로, 이 광장을 밝게 비추어라!」
환성이, 광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함성의 중심부에 선 카밀라는 몸 전체가 떨릴 정도였다.
「자, 용기의 대진표를 공개하겠노라.」
낯익은 이름들과는 8강에서 바로 맞붙는 일이 없이 떨어지게 되었다, 일단은.
발칸 벨체스터, 2조.
샤론 플라네스타 3조.
올리에르 블라디파이레 4조.
카밀라 플라워, 1조.
이런 식이었으니까. 그런데 대진 상대의 이름이 낯설다 생각했건만 뭔가 낯익었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엘스윈 블래스티나]엘스윈?
엘스윈 블래스티나?
아, 맞아, 기억났다…… 에쉬르가 쫓아냈던 패거리에서 나왔던 이름이잖아.
“첫 대진 상대부터 만만치가 않구만.”
대기실 좌석에 앉아, 손갓을 만들어 대진표를 확인한 델프레드가 눈썹을 치켰다.
“초장부터 일성칠검을 만나다니.”
“블래스티나…… 분명 무령검파에서 장문인의 제자에게 붙여주는 성씨였죠?”
블래스틴 또는 블래스티나.
지고한 일성칠검 중 하나, 무령검파에서 장문인의 직계 제자에게 내리는 성씨.
남자에게는 블래스틴, 여자라면 블래스티나가 붙는다.
“그래, 유력한 차기 장문인이기도 하지. 어떤 훈련을 받았을지 상상도 안 가는군.”
라미네아에게는 더욱 익숙한 이름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제자로 받아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던 아이였다. 검의 재능은 있었으나 신념이 라미네아와 맞지 않는 게 문제였다.
어디로 가든 성공할 재능이긴 했지만…… 그 원망이 카미에게 향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카미, 힘내…….’
긴장했을까? 떨고 있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을까? 옆에서 의지를 북돋아주고 싶은데, 가까이 갈 수가 없어.
「첫 번째 용기의 싸움터에 속한 자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이곳을 떠날지어다.」
샤론과 올리에르가 각자 카밀라에게 눈웃음과 손짓을 내보이며 떠나갈 때, 카밀라는 살의 어린 시선을 느꼈다.
‘흐음, 저런 상판대기를 갖고 계셨군…….’
시선이 맞닿자, 엘스윈은 새침하고도 차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합 개시까지 3분, 양측 대진자는 시합장 중심부로.”
대진자들이 심판의 주선 아래 마주 섰다. 칼집에 든 칼을 내밀어 서로에게 내밀어 부딪친다.
이 동작은 서로의 명예를 존중하겠으며, 승패를 인정할 것이며, 또 시합 규칙을 모두 준수하겠다고 말하는 맹세이자 서약이다.
심판의 지시에 따라 대진자들은 각자 10보씩 물러났다. 물러서기 전에, 카밀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야 이 상놈아.”
“???”
“뒤에서 씹을 때는 재밌었지?”
그리고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그 쇳소리가, 차되 고요했다. 칼과 칼집을 교차시켜 십자의 형상으로 둥글게 말아냈다.
십문자도의 기수식이자 제1식, 원(圓).
“나 같은 천재님은 앞에서 씹어. 쫄리는 게 하나도 없거든. 널 발도 천재 카밀라 님의 전국 데뷔의 제물로 삼아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