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15)
가짜 용사 이야기-215화(215/310)
시즌 3 : 23화
법황청 공인 검술 대회는 참가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법 또는 주술에 의한 방어막이 지원된다.
물론 지켜지는 건 목숨뿐이다.
환각 마법에 의해, 100% 동기화된 통각이 그대로 작동하며, 공검제부터는 팔이 잘리면 팔이 잘리는 환상마저도 구현된다.
[양측 참가자, 준비.]엘스윈 블래스티나가 자세를 잡았다.
그에 맞서는 카밀라가 긴 숨을 들이마셨다가 이내 커다랗게 토해냈다.
두 사람이 잠시 감았던 두 눈이, 다음 순간 동시에 뜨였다.
[제1시합, 대전 시작.]엘스윈의 발치에 마력의 결계가 그려졌다.
그 형태는 팔괘(八卦).
무령검파의 창시자 보크휜이 만들어낸 여덟 가지의 괘(卦), 이는 세계를 이루는 여덟 가지의 자연을 문자로 형상화시킨 것.
“허, 역시 대단하군!”
“저 나이에 팔괘를 저토록 선명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아이가 있다니…….”
“사용할 수 있는 문자는 4개가 전부인 것 같으나 저 나이에 팔괘진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천부적 재능의 증거.”
심사위원들이 눈을 빛내며 제각기의 양피지에 가산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무령검파는 제국 서부 아시리 삼림에 뿌리를 내린 검파.’
라미네아는 생각했다.
‘나무, 시냇물 따위와의 소통을 통해 선(仙)을 이루어 검의 극의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해.’
무령검파는 칼부림을 자연과 같이 음양(陰陽)으로 해석하여 흐름을 따르거나 뒤트는 팔괘검법(八卦劍法)으로 유명했다.
건(乾; 하늘).
태(兌; 늪).
감(坎; 물).
이(離; 불).
진(震; 전류).
손(巽; 바람).
간(艮; 산).
곤(坤; 땅).
이처럼 여덟 가지의 룬으로 검에 여덟 가지의 속성을 모두 쓸 수 있는 무령검파의 고수는 엘리멘탈 블레이드라는 이명으로 불려왔다.
‘바스타드 소드.’
한 손과 양손을 번갈아 가면서 쓰도록 고안된 검.
‘무령검파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대표 무기로 채택한 건 당연한 거야. 변화무쌍한 힘을 제대로 쓰는 데 저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
그때, 진(震; 전류)의 룬을 두른 칼날이 다급한 속도로 짓쳐들어 십문자와 격돌했다.
챙! 어지러이 나부끼는 불티.
공세의 주도권을 쥔 건 엘스윈 블래스티나, 전류의 검이 회오리치듯 사방에서 들이닥친다. 카밀라의 몸 여기저기에서 핏물이 튄다.
‘오호라.’
‘저걸 다 막아낸다고?’
‘아니.’
웅…… 다음 참격의 순간, 팔괘진의 단침이 가리키는 룬이 간(艮; 산)으로 바뀌었다.
칼의 속도가 지극히 느려진다.
대신, 산과도 같이 높고 견고한 마력이 칼날에 서리며 그 위력을 극도로 증폭시킨다.
공격의 박자가 바뀐다.
사람이란 삶을 저마다의 박자에 맞춰 살아가며, 이 박자가 바뀔 때 지극히 큰 혼란을 겪는다.
하물며 생사가 오가는 검술 시합에서 순간적으로 박자가 불현듯 엇박자로 바뀐다면…….
십문자도 제3식.
둔(鈍).
그 순간, 카밀라가 발뒤축으로 지축을 거세게 내려찍었다. 그 발을 타고 퍼져나가는 마력의 흐름이 범위 내의 대상의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십문자도 제2식.
충(衝).
찰나, 찰나조차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열린 틈을 크게 비집고 들어가는 칼끝.
“!”
“!”
“!”
핏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뒤로 급히 물러서면서 옆구리를 짚은 건 놀랍게도 엘스윈이었다.
“서, 선취점……!”
라미네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취점은 중요한 평가 항목 중 하나다.
지검제에서는 총 다섯 번의 유효타를 입을 경우 승패가 정해지는데, 선취점은 다른 유효타보다 가산점이 1.5배나 높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읽었다고? 그 순간의 엇박을?’
‘아니, 그렇게 되도록 유도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심사위원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그 당혹감은, 올해 혜성처럼 등장한 페이쿼리어의 제자를 향한 흥미로 변하기 시작한다.
“재미있군. 이 승부, 아주 재미있어.”
“무령검파가 자연의 흐름을 검에 녹여냈다면, 십문자도는 초식의 흐름을 자연의 조화처럼 엮어내는 것이 특징.”
“그렇죠. 두 검술은 크게 보면 다르지만 연계가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닮았습니다. 이건 대진부터가 재밌을 수밖에 없던 시합이죠.”
그때 카밀라의 머릿속에서는 라미네아의 목소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 반격의 실마리로 수세에서 공세로의 전환이 성공했다면, 결코 놓아주어서는 안 돼.
칼자루는 지면과 수평으로, 무게중심 아래로 내린다. 칼날은 지면과 예각으로, 허리춤 뒤로 잡아당겨 세운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는 대신 카밀라는 양발을 넓게 벌리고, 태도를 납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발도 자세라고?’
‘하필 지금?’
‘쫓아가서 승기를 잡아야 하는 이 시점에?’
심사위원들의 눈이 가늘어지던 그때, 드드드드득, 칼집이 맹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힘을, 폭발시키는 이미지.
한순간에, 터뜨리는 이미지.
칼집 속으로 억지로 주입하던 마력이 한계에 달한 순간, 모든 힘을 방출하는 이미지.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지면을 박찰 때, 자세가 무너지면서 무게중심이 오른발에 실리게 된다. 이 순간에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도리어 각력을 집중.
– 그럼 관성과 중력이 각력이 부담해야 할 무게를 증폭시켜. 그러면 각력도 더 증폭되지. 여기까지의 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팍! 하고 튀어나가게 돼.
도약은 크고 멀고 넉넉하면 할수록 좋다. 목표 앞에서 칼집을 지면에 내리꽂는다.
– 지면에 고정된 칼집이 일시적으로 회전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제동할 때 힘을 죽이는 게 아니라, 칼날에 온전히 담는 걸 가능케 해주거든.
몸이 칼집을 축으로 회전할 때, 칼날은 표적의 목을 노린다.
그에 맞서, 엘스윈은 팔괘의 초침을 돌렸다.
손(巽; 바람).
바람을 타고 또 거스르는, 즉 술사를 풍속(風速)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룬.
바람을 품은 칼날이, 급소를 노리는 태도와 격돌한다.
– 상대가 그 공격을 쳐내도 상관없다. 돌발격은 두 번의 공격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격돌의 순간, 카밀라는 지면에 고정된 칼집을 들어냈다.
관성과 회전력이 몸을 덮친다.
몸이 제멋대로 한 번 더 회전한다. 그 흐름에 거스르려 하지 않고 편승하는 게 포인트.
– 흐트러지는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애쓸 필요 없어.
– 왜요? 그럼 쓰러지잖아요.
– 이 반동과 반발은 상대가 부담하게 하면 되거든.
다음 순간, 따악…… 카밀라가 몸을 회전시키면서 짓쳐든 칼집이 엘스윈의 복부 깊숙이 꽂혔다.
이는 단순한 타격이 아니다.
마력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발생하던 모든 힘의 흐름이 하나의 점에서 엮고 강화시키면서 일궈낸 일격, 이 일격은 크다.
“연속 유효타다!”
“대단한 거야?”
“인마, 상대가 그 엘스윈이라고!”
직격의 충격에 지면을 몇 번 나뒹굴던 엘스윈은 장외 직전에 겨우 자세를 추스를 수 있었다.
카밀라 또한 자세를 되잡았다.
칼집 찌르기 자세에서, 다시 십문자도의 기본인 원(圓)의 자세로. 그러면서 거만하게 턱을 쳐들었다.
“발도 천재 카밀라, 전국 데뷔.”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7)
“와, 미쳤다!”
“이번 지검제는 첫 경기부터 급이 다른데?”
경기장의 열기는 폭발할 듯이 달아올랐다.
“스승님, 저건 분명 십문자도의 심화 초식 아닌가요……?”
요한이 침을 삼켰다.
델프레드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제자로 들어간 지 이제 3년쯤 됐을 텐데, 벌써 기본기 너머의 영역에 손을 댔다고?”
경기장에서는 두 유망주들의 기본기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팔괘검법의 룬들과 십문자도의 기본 초식들이 연이어 격돌한다.
원(圓) – 충(衝) – 둔(鈍)…… 거듭 이어지는 십문자도의 초식들이, 자세와 마력을 추스르지 못하도록 엘스윈을 연신 압박한다.
“두 사람 다 기본기의 연계가 신속한데 다채롭기까지 하군…….”
“네, 기본기에 대한 이해도가 또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기본을 대하는 자세에서 검에 대한 진심을 알 수 있지.”
각 계파의 고수들은 짤막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마음속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의문을 상대해야 했다.
‘이상하군. 아무리 서녀라지만 벨체스터 가문은 왜 이런 천재를 지금까지 숨겨두고만 있던 거지?’
라미네아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넌지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미는 천재지. 관찰의 천재.’
가문에서 방치된 상황에서 몰래 검술을 훔쳐보고 그걸 몸에 익힐 정도의 관찰력을 갖고 있었어. 지금 그게 결실을 맺고 있는 거야.
‘하지만 서두르는 편이 좋겠어, 카미. 돌발격으로 마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어. 심화 초식은 마력 소모량이 너무 많아.’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카밀라가 흐름을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한이 말했다.
“이대로면 카밀라가 이기지 않을까요? 곧 끝날 것 같은데.”
델프레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쉽진 않을걸.”
“왜죠?”
제자의 질문에 델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마법 대전에서도 아무리 상대방을 찍어 눌렀다 한들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알지?”
“그렇겠지요?”
“스승 잘 만나서 어려서부터 또래 마법사들 한 방에 줘 패고 다니기만 했으니 뭘 알겠냐! 어휴, 자, 저 꼬맹이들의 상태를 봐라.”
“보았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력을 봐. 어느 쪽의 마력이 더 흐트러져 있냐?”
“……카밀라 쪽이요.”
“그래, 무령검파 쪽은 아까부터 방어 룬을 사용해서 컨디션 회복에 전념하고 있어. 반면 카밀라는 그걸 뚫지 못하고 계속 체력과 마력을 쏟고 있는 거고.”
“아.”
“이제 스승님께서 한 말의 의미를 알겠냐?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란 소리다.”
그 말대로, 엘스윈은 태(兌; 늪)의 룬으로 수세를 깊고 질퍽하게 말고 있었다.
이는 방어에 집중하는 동시에 시간을 지연시켜서 호흡과 자세를 회복하기 위한 룬, 이제 시간은 엘스윈의 편이었다.
기본기만 갖고 있고 더는 돌발격을 쓰지 못하는 카밀라로서는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 질척거리는 방어 앞에서, 점점 갉아먹히고 있었다. 카밀라의 체력과 마력 양쪽이.
이대로 이어지다가는…… 음?
‘어?’
라미네아의 눈이 휘둥그레 열렸다. 검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랬다.
십문자도 제2식, 충(衝).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카밀라의 공세를 흘려내던 엘스윈이 제일 먼저 무언가를 느꼈다. 불길한 무언가를.
‘칼이…… 칼집에 든 채라고?’
칼집에 들어간 칼을 쳐내면서, 엘스윈은 필사적으로 뇌를 회전시켜야만 했다.
뭐지?
지금 이 변화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대체 뭐야? 단순한 실수? 그 판단의 결과물은 도약이었다.
‘뭘 노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뒤로 크게 도약하면서 간격을 벌린다. 거리가 있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준비하든 그걸 확인하고 대응할 시간이 생겨난다.
‘잘했다, 엘스윈. 저쪽이 무슨 요행을 바랐든 간에, 방금 네 판단으로 모든 변수가 다 차단됐다.’
무령검파의 장문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엘스윈의 방어에 공세가 튕겨나간 카밀라가 무게중심을 회복하고 있었다.
근데 그 자세가 이상하다, 저건 뭐라고 할까, 아까 봤던 것과 똑같은…… 발도 자세가 아닌가.
‘설마 저건.’
십문자도 발도술.
발도술이라는 개념은 본래 암살의 세계에서 쓰이는 개념이나 십문자도와 십일자도는 발도술을 핵심 초식으로 갖고 있었다.
이는 극위성검 아라다만텔과 르노드의 원형, 진성검 갈라디엘의 ‘벼락으로의 위상 전환’의 힘을 편린이나마 모방하기 위해서였다.
광속의 참격을 사용하려면 힘을 극한까지 집중시켜 폭발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납도-발도의 과정이 필요했다.
심사위원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까 그걸 또 쓰려고?’
‘하지만 이번 건 자충수다.’
‘발도술은 힘을 응축시키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빨라도 엘스윈이 대응할 시간은 충분할 터.’
라미네아만이 달랐다.
십문자도의 정통 계승자인 그녀만이 달랐다.
‘아니야, 가능해.’
제자의 혜안을, 그리고 성장에 전율하며 눈동자를 떨었다.
‘방금의 격돌에서 팔괘의 마력이 칼집에 전해졌으니까. 충전 시간을 극도로 단축시킬 수 있어.’
상대가 공세로 전환하기라도 했다면, 칼집으로 공격한 동작이 정말 자충수였겠지만…….
카밀라는 던진 것이다.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수 중에서 제일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엘스윈, 방어다! 룬을 합쳐──!”
무령검파의 이등제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마력을 다 써서라도──!”
그리고 발(發)에서 연계되는 이 동작은, 술자를 정면으로 순식간에 쇄도시키는 돌진 기술.
“────룬 두 개를 섞어라!”
엘스윈 발치의 팔괘진에서 단침이 분열, 손(巽; 바람)을 가리킨다.
검이 두 개의 마력을 품는다.
늪의 마력으로 질퍽하되 또한 바람의 마력을 머금어 더없이 빨라지는 것이다.
‘팔괘의 룬을 혼합?’
‘저 나이에? 역시 장문인의 제자는 다르다 이건가?’
‘저게 완성되면 또래 검사 중에 저걸 뚫을 검사는 없다.’
드드드드드드드득…… 그때 카밀라는, 손아귀를 덮쳐오는 칼의 울음을 느꼈다.
‘두 번의 연격을 다 쓸 필요는 없어. 지금 이 한 방에 모든 마력과 힘을 다 실어야 해. 돌발격과 섬무참을 대충 섞는 듯한 느낌.’
마력의 폭주.
마력이, 밀폐된 칼집 내부에서 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열을 띠기 시작한다.
‘떨고 있네. 너도 무섭구나.’
걱정하지 마. 나도 무서워. 하지만 함께라면 괜찮지 않아?
일순간(一瞬間).
바람과 늪의 마력이 엘스윈을 완전히 뒤덮으려던 한순간, 카밀라의 몸의 떨림이 멎었다, 칼집의 떨림이 멎었다, 마지막으로 칼의 떨림이 멎는다.
거합발도(居合拔刀).
눈동자를 안막이 덮었다가 다시 열리는 사이에, 희뿌연 검광을 흩뿌리며 매섭게 솟구친 칼날이 예고된 궤도를 가르고 찢는다.
“──!”
“──!”
“──!”
두 칼이 격돌하면서 쇠에 균열이 가고, 이어 쪼개지는 쇳소리가 정적의 세계에 울려 퍼진다.
두 검사의 위치가 교차해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자세에서,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등지고 있는 자세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심박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다음 순간, 부러진 칼을 놓치며 무릎을 꿇은 건 바로…… 엘스윈이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가. 그러나 시합의 결과는 곧 청각으로도 들려왔다.
“엘스윈 블래스티나, 시합 속행 불가능 판정! 8강 제1시합의 심사를 종료합니다! 승자, 카밀라 플라워! 4강 진출!”
그걸 들은 뒤에야, 카밀라는 기도를 가로막고 있던 숨 덩어리를 거칠게 토해낼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엘스윈의 뒷모습을 보기 무섭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갈채가 있었다. 정적의 공백을 메우는 소란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거대했다.
“와, 끝내준다! 아무나 페이쿼리어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니구나!”
기자들은 미친 듯이 수첩에 만년필을 놀렸다.
“무령의 엘스윈이 지검제 8강에서 탈락이라니, 대파란이야!”
시합 내내 편히 쉬지 못했던 숨을 이제야 겨우 헐떡이던 그때, 반가운…… 포효가 들려왔다.
“해냈구나, 카미카미!”
“카미카미! 카미카미! 카미카미!”
“믿고 있었다고!”
그리프베런 양쪽에 선 수인병들의 포효였다.
동시에 총병들이 홍련 병단의 깃발을 있는 힘껏 쳐들었다. 커다랗게 펼쳐낸 그 기폭에는 카밀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밀라는 숨을 헐떡거리는 것조차 잊고, 홍련 병단의 관중석 앞으로 달려가서 물었다.
“뭐야, 왜, 여기 있어요?”
“하핫! 당연히 우리 막내의 장한 모습을 보러 왔지!”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하고 그러냐! 응원하러 온다고 했잖아! 흑장미 녀석들한테 질 수야 없지!”
그때, 뭉클거리고 또 울컥거리면서 몸속에서 뜨겁게 치받쳐 오르던 감정이 무엇인지는 지금에도 확실치 않다.
그냥…… 웃고 말았다.
분명 웃었는데, 왜 눈에서는 눈물이 함께 나왔던 건지도 분명치 않다. 그냥, 그때는 이게,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카미, 이건 절대 기적이라거나 요행 같은 게 아니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라미네아의 눈매도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야, 세상이 보게 된 것뿐.’
지금껏, 몇 개월이고 몇 년이고, 네가 흘려온 눈물과 피와 땀…… 그 모든 것을.
‘카미가 어린 시절에 눈물로 그려냈던 그 책의 내용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