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19)
가짜 용사 이야기-219화(219/310)
시즌 3 : 27화
몰수패는 없었다.
발칸 벨체스터가 자신이 먼저 연신 도발을 했다고 주장해준 덕분이었다.
시합 시작 때 먼저 장갑을 던진 것이 정상참작 되어 카밀라의 결승 진출이 변경 없이 확정되었다.
– 발칸 오빠…….
심사위원단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빠져나올 때, 묻고 싶었다.
왜지?
카밀라를 몰수패로 몰아간다면, 시합 내내 주도권을 잡아서 좋은 점수를 받은 발칸이 결승에 올라가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오펠 벨체스터가 심사 결과를 따지러 오기도 했거니와, 발칸이 카밀라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아까 말했듯 우리는 형제도 아니고, 무엇보다 너와 나는 섞일 수 없는 종자야…… 발칸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말씀하신 대로였어요.”
대기실로 돌아오면서, 스승님에게 이야기의 전말을 말해주었다.
“발칸 오빠랑 싸울 때요. 옛날 생각이 나고 뭐, 그래서, 재밌고, 그러더라고요. 오빠도 절 해치려 한단 생각이 안 들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칸니야도…… 절 언니라 불러 주더라고요.”
“그러니?”
“근데 당주 때문일까요? 더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요. 오빠도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고요. 왜 그랬을까요?”
“글쎄, 그건 직접 물어보는 편이 좋지 않겠니?”
“또 검으로요?”
“아니, 나중에 입으로. 10대 때는 부끄러워서 말 못 하던 걸 어른이 되면 할 수 있게 되거든.”
다시, 이야기한다…….
발칸 오빠와, 칸니야와, 그때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서, 다시, 이야기한다…….
그 풍경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서 따스하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요, 새삼 결심했어요. 페이쿼리어가 될 거예요.”
“응?”
“처음, 아니, 두 번째로 만나던 그때요, 여봐란 듯이 찾아와서 저택을 종횡무진 하셨잖아요?”
인생의 여름이 끝나고, 맑고 시원한 가을이 시작되던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똑같이 할 거예요. 발칸 오빠가 절 만나려 하지 않아도, 당주가 방해하려 해도, 페이쿼리어로서 제멋대로 이야기하러 갈래요. 두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지면, 어느 때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 어느 날의 풍경을 그리며, 배시시 웃었던 것 같다.
스승님께서도 빙그레 웃었다.
응원할게, 라고 말씀하시며 정수리를 토닥여 주시던 그날의 기억.
아, 가슴속 깊은 곳…….
커다랗게 뚫려서 썩어가던 구멍에서, 새살이 조금씩 돋아나던…… 아직 열세 살이었던 어느 가을날의 기억…….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11)
“4강, 제2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양측 대진자, 시합장 중심으로!”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는, 친구들의 결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측, 두노스 왕국 제3왕녀 샤론 플라네스타. 좌측, 염룡검파의 올리에르 블라디파이레!”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았던, 그런 시합이었다.
“호오…… 염룡검의 후기지수와 타스알포의 후계자의 싸움인가?”
“지금까지 모든 상대를 단 첫 합에 쓰러뜨리고 올라온 샤론 플라네스타…… 과연 이번에는?”
관중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로베리스가 스승을 고요하게 올려다보았다.
타르스가 맥없이 웃었다.
어린 제자의 이러한, 조용한 성격에 익숙해지던 참이었다.
“잘 보렴. 1회전은 대진자들의 검술 특징이 비슷했다면, 이번 2회전은 서로 완전히 달라.”
먼저 기수식의 자세를 취한 것은 샤론 플라네스타였다.
극주검법 제0식, 백조(白鳥).
우아하게, 왼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상대방의 정면으로부터 비스듬하게 비껴 선다.
“저거는 극주검의 백조. 칼등을 얼굴 앞에 세워서 한쪽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이 검술의 특징이야.”
“저러면 여차할 때 방어를 할 수 없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방어는 필요 없어. 극주검은 상대방의 무기를 절대 막지 않아. 그 시간에 오히려 상대방의 허점을 꿰뚫지.”
백조…….
어찌나 저 초식의 특징을 잘 설명하는 말인지, 검법 창안자의 작명 재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조는 호수 위에 우아하게 서 있지만, 사실 물 밑에서는 그 어떤 새보다도 맹렬하게 물방아를 찧고 있지. 극주검법도 마찬가지야.”
시각, 촉각, 청각, 전신의 신경, 그 모든 걸 상대방의 움직임에 집중시키는 자세.
단 하나의 틈새.
틈새의 혈(穴)을 찾기 위해.
“초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뒷발에 무게중심의 9할을 배분해 둔다는 점이야.”
상대방의 틈새를 찾은 순간, 앞발을 어떤 방위로든 내디뎌서 즉시 꿰뚫기 공격에 나설 수 있도록.
“크……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일대 분위기가 차갑게 곤두서는 느낌이군.”
“극주검법을 뚫는 건 방어를 뚫는 게 아니야. 수십 수백 개의 공격의 수를 뚫는 거다.”
“염룡검이 과연 저걸 어떻게 뚫을지?”
검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한 관중이 올리에르를 관찰하다가 순간 눈썹을 치켰다.
“뭐지, 저 검은? 칼집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잖아.”
“와, 진짜다. 왜 아까랑 다른 걸 들고 나온 거야?”
“그나저나 칼날이 외부에 노출되는데 괜찮은 거 맞아?”
올리에르는 보란 듯이 그 직방형 구멍에, 그러니까 그 안쪽의 칼날에 검지를 얹었다.
그리고 발도(拔刀).
선혈에 적셔지면서 뽑혀나온 칼날이 시뻘겋게 번득였다. 검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자해를?!”
검술계 주요 인사들도 마찬가지로 경악하고 있었다. 행동은 같았으나 이유는 달랐다.
‘염룡검파의 저 애송이…….’
‘저 나이에 벌써 혈화룡검을 쓸 수 있단 건가?’
‘일등제자만이 받는 성씨인 블라디파이레를 받은 걸 보고 설마 했건만…….’
혈화룡검은 염룡검파의 비전 검술, 일등제자부터 배우는 것이 허락되는 검의 경지.
잔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심법, 잔화대법은 체내 마력을 화 속성으로 바꾼다.
혈화룡검은 바로 그 마력의 불씨를 체외로 ‘직접’ 끌어내는 걸로 시작한다.
화르르륵……!
칼날을 타고 흐르던 선혈이 다음 순간 점화, 거뭇한 빛깔의 칼날이 눈부시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붙었다, 불이다!”
“그게 전부가 아냐! 광장에 튀었던 핏방울도 불타기 시작했어!”
“저 꼬맹이, 대체 혈중 마력 농도가 얼마나 높은 거냐?”
올리에르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샤론을 향해서 손을 휘둘렀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생피가 그 주위로 튀더니, 또 발화하면서 새까맣게 연기가 솟구쳤다.
‘저 애송이, 단순한 막가파 멍청이가 아니었던 건가?’
‘방금 저건 단순한 선공이 아니야.’
‘저 불길로 극주검의 계승자가 움직일 수 있는 궤도를 몇 개나 차단해둔 거다.’
염룡검파의 일등제자는 병약하게 기침을 하면서도 자신의 제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배운 대로 잘하고 있구나, 올리에르.’
대기실로 돌아와 좌석에 착석한 카밀라도 이 시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요한, 넌 이 시합 어떨 거 같아?”
“글쎄, 나는 검술은 잘 몰라.”
“누가 기대한대? 그냥 어떨 것 같냐고.”
“음, 너…… 예전보다도 훨씬 당당해졌구나.”
겁나게 시건방져졌구나,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마법사 관점으로 혈중식(血中式)이 엄청 대단하단 건 알아. 스승님도 북부의 마도세가인 블라도 방백 가문, 혈마법사라고 불리거든.”
“으엑, 혈마법사? 그 엄청나게 사악해 보이는 별명은 뭐야.”
“염룡검파와 블라도 가문은 검술과 마법계에서 각각 유일하게 피를 매개로 술식을 사용하거든.”
“피를 매개로?”
“응. 마법을 순식간에 발동시킬 수 있어. 쟤가 핏방울로 불길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저건 뭐라고 해야 하나, 검사가 검뿐만 아니라 마법도 쓴다고 봐도 무방한 거 아닐까? 나는 거기에 엄청난 이점이 있다고 보는데.”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델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이점만 있는 건 또 아니다.”
“스승님.”
“우리 가문이나 염룡검파나 똑같아. 둘 다 마법 하나하나에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 하지만 장기전에는 쥐약이야.”
타르스 알터 쉬르팽도 마침 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던 참이었다.
“혈중 마력을 유출하니 마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빈혈이 올 수밖에 없어.”
“아까는 다르다 하셨는데, 둘 다 한 방을 노리는 위력 싸움이란 점에서 닮은 것 같아요.”
“글쎄? 한 방을 노리는 건 비슷해 보여도, 염룡검파가 정정당당하게 돌파한다면 극주검은 비겁하게 물러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잘 봐.”
타르스가 광장을 턱짓했다.
이제 막 관중들의 환성이 솟구치고 있었다.
“선공은 당연히 염룡검파인가!”
불길을 커다랗게 전개시키며, 장중을 압도하며 사방팔방 휘몰아치는 화염의 칼날.
‘제압하는 건 선(線).’
여러 개의 선(線)을 짜 엮어서 면(面)으로 만든다.
혈화룡검 제3식, 용의 발톱.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하며 허점을 노리는 극주검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 자, 올리에르. 오늘도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구나. 그러면 시작해볼까?
내 스승님은 몸만 병약하지 않았더라도 페이쿼리어나 염룡검파의 장문인이 능히 되셨을 몸.
내 평생의 소망은…….
그분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대신 이루어 드리는 것. 그분이 보고자 했던 경치를 대신 보고, 그 정취와 향기를 전해드리는 것.
‘그걸 위한 첫걸음으로, 이 지검제에서 반드시 우승해야만 해.’
화염의 폭류가 광장을 휩쓸어, 가을날의 팽팽한 한기를 소멸시키고 그 빈자리를 작열하는 열기로 채운다.
“빠르다. 거기에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이 열량.”
“극주검의 계승자조차도 반격의 허점을 노리지 못하고 회피 행동에만 전념하고 있어.”
“혈화룡검의 위험성은 직접 상대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그 위험성의 해답은 참격을 따라 휘몰아치는 불꽃의 파도에 있다.
‘혈화룡검은 참격 궤도에 잔불이 남는다. 그 불꽃이 상대의 반격을 1~2초 정도 지연시킬 수 있지.’
또한 그 주위의 열기는 어떤가.
온도는 사람에게 가장 민감하게 와닿는 감각 중 하나, 특히 고열은 현기증을 동반한 판단력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도뿐만이 아니야. 열기가 산소를 연소시켜서 뇌로 이어지는 산소 공급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염룡검파의 고수와 비무를 펼쳐본 검사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그 순간 시합이 끝나 있었다.’
화염의 맹공이 시각을 빼앗고 후각을 빼앗고 산소를 빼앗고 최종적으로 판단력마저 빼앗는다! 그것이 바로 염룡검파의 무서움!
‘올리에르 저 녀석…… 저렇게나 대단한 녀석이었나? 아니,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질서 정연하게, 면을 제압하는 올리에르의 참격을 바라보며 카밀라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기전에 강점을 두고 있다니까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저런 식으로 상대가 장기전으로 갈 수가 없게 만들어 버리는데 무슨 의미가 있지?’
모두가 염룡검파, 즉 혈화룡검의 화려한 검무에 전율하며 그 승리를 확신했다.
샤론은 무려 열 합 넘게 크고 작은 회피 기동만 해야 했고…….
그 발이 점차 밀리고 밀리고 또 밀려서…… 장외 지시선에 다다르던 그 순간.
‘뭣들 모르는군.’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던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화염의 열기에 서서히 죽어가는 건, 상대방뿐만이 아니라고.’
혈화룡검의 검사는 화염의 열기에 취한다고들 한다.
상대방이 혈화룡검의 연기와 체외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면, 검사 또한 살아 있는 생물이므로 비슷한 영향을 받는다. 내성이 더 높을 뿐.
거기에다 빈혈 현상으로 더 큰 주의력 결핍을 겪기도 한다.
‘바로 그 결핍이 틈새로 이어지지.’
일순간의 틈새, 본능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찰나보다도 더 희미하고 비좁은 틈새.
그 틈새를 정확히 노린 검극.
화염의 붉고 노랗고 눈부신 파도를 일순간 꿰뚫고 지나가는 청광(靑光).
극주검법, 제3식.
독아(毒牙).
분명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다 끝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적광과 청광이 교차한 다음 순간…… 치명타를 입은 것은 올리에르 쪽이었다!
‘시각과 후각을 지배하면 뭐 어쩔 건데? 극주검이 지배하는 건 오감 전체인데.’
플로렛이 만족스럽게 휘파람을 불었으나 관중들은 함성 속에서도 사태를 관망했다.
“살짝 스친 거 아니야?”
“그러게. 허점을 노렸다고 한들 저렇게 티도 안 나는 곳을 노렸다면 시간 벌기 이외에 의미가 있는 건가?”
“여전히 우위는 염룡검파가 가져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뜨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늘어졌다…….
올리에르의 왼팔이 축 늘어진 것이다! 그 팔을 타고 막대한 양의 피가 흘러나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염룡검파의 애송이가 팔을 아예 못 쓰게 되어버렸잖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원탁의 심사위원들은 모두 놀랍고 또 즐거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극주검…… 오감의 허점을 꿰뚫는다는 극위성검 타스알포 계승자만의 검법.”
“방금 그 꿰뚫기 한 번으로 왼팔의 중추를 꿰뚫었단 말인가.”
“극주검법은 무(無) 속성 마력을 사용하는 걸로 유명해요. 이렇다 할 특색은 없지만, 마력의 조작은 가장 쉬워요. 접촉 순간 상대방의 몸에 마력을 흘려 넣은 거예요.”
심사위원과 같은 눈을 갖지 못한 카밀라는 고개를 몇 번이고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어떻게 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짧은 시간에, 그리고 눈대중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큰 피해도 입히지 못한 것 같았는데, 어떻게?
“친구의 제자기도 하니, 특별 수업을 해줄게.”
그때 문득, 등 뒤에서 서늘한 기척을 느꼈다. 그보다도 더 서늘한 목소리도.
“프, 플로렛 님? 언제 오셨어요?”
“걸어서 왔지, 그러면 날아서 왔겠냐?”
“아, 음, 네, 죄송합니다.”
“자, 사람의 몸에는 ‘연결 중추’라고 정의되는 부분이 존재해.”
뼈는 관절.
혈관은 동맥과 정맥.
근육은 힘줄.
“셋 중 하나라도 손상되면 치명상으로 간주되고 중추신경계와 연결이 끊어진 것과 같아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지.”
“……?!”
“너는 샤론의 공격이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고 생각했겠지? 전혀 그렇지 않아. 방금 샤론의 공격은 저 염룡검파 꼬마의 겨드랑이 쪽 중추를 끊었다. 마력 조작으로 정맥도 건드렸고.”
“힘줄과 정맥을 끊었다고요? 그 순간에? 그렇게 압도적이에요?”
“샤론이 바로 숨통을 끊지 못하고 힘줄과 정맥으로 돌아갔단 건 저 염룡검파 꼬마가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단 소리야.”
“대체, 대체 그걸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요. 샤론은 아까까지 분명 공격 기회를 못 잡고 계속 물러나고만 있었는데.”
“못 잡은 게 아니야. 안 잡은 거지. 확실해지는 순간까지. 극주검은 오감 모두를 활용하지.”
상대의 시선.
상대방의 숨결의 온도.
공기의 질감, 상대방의 심장이 뛰는 소리.
“그 모든 걸 포착해서 완벽한 빈틈을 찾아서 허(虛)를 찔러 살(殺)을 이룬다. 그게 바로 극주검이란 말이야.”
타르스 알터 쉬르팽도 유사한 내용을 덜 전문적으로 제자 로베리스에게 교육해주고 있었다.
“극주검의 고수들은 촉각을 체외로 넓게 전개시킨 것 같다고도 해. 그러니까, 주위 상황을 마치 장난감처럼 만질 수 있는 거지. 그 촉감이나 움직임 모두를.”
극도로 단련한 오감으로 상대방의 모든 움직임을 손바닥 위에 놓고 농락하는 것과 같은…….
‘플로렛, 저 녀석…… 괴물 같은 제자를 기르고 있었네.’
제자의 실력을 알고 있으려나?
그 잠재력은 이미 역대 타스알포 계승자들을 뛰어넘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애지중지 숨겨두고 있다가, 출병이 가까워지자 지검제에 내보낸 거겠지.
“이제 그만 말려야 해!”
“고통이 엄청날 텐데, 이미 오기로 버티고 있는 단계 아닌가!”
그러나 올리에르도 만만하지 않았다.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막대한 출혈을 불로 지져서 막았다.
그 고통…….
절대 열세 살 어린애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올리에르는 견뎠다. 경이적이었다. 샤론조차도 당황했을 정도로.
‘이 녀석도 양보할 수 없는 의지를 갖고 여기까지 왔구나.’
그러고도 스무 합에 가까운 경합이 계속되었다.
올리에르는 거듭 휘둘렀고, 불길을 토해냈고, 샤론은 연신 피하고, 혈을 찔렀다.
샤론이 마침내 올리에르의 턱밑에 칼끝을 들이밀었을 때는, 샤론의 상태도 온전치 못했다.
옷이 불타고 그을리면서 완전히 엉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얇게 베이면서 살갗이 시커멓게 탄 자국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절대 양보 못 해.’
그 위기의 순간, 심판이 시합을 중지시켰다. 심사위원단 사이에서 판정승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올리에르는 더 싸울 수 있다며 그 결과에 불복하려 했으나,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샤론이 올리에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는 대단해, 올리에르. 내가 극주검법으로 숨통을 노릴 때까지 다섯 번이나 필요했던 건 또래 중에 네가 처음이었어.”
“지금, 지금 사람 놀리는 거냐!”
“아니. 정말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나 말이야, 이번 지검제에서 반드시 우승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야.”
올리에르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 승부 결과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도저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몇 번 더 승부를 펼친다 해도, 지금의 자신이 저 녀석을 쓰러뜨리고 결승전에 올라갈 방법이…….
‘분하다.’
진 게 분한 게 아니라…….
이기지 못할 거라고 결론이 지어지는 나 자신의 무력함이, 어떻게 할 수 없이 분해…….
젠장, 아, 젠장…….
“4강 제2경기, 승자, 샤론 플라네스타! 결승 진출!”
방금 경기가 검술의 경합인 동시에 의지의 대결인 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엄숙하게까지 느껴지는 갈채가 쏟아졌다.
‘올리에르…….’
친구가 음영이 가득 드리워진 얼굴로 퇴장하는 게 어찌 반가울 수 있을까.
“왜죠?”
카밀라는 플로렛을 돌아보았다.
“왜 저한테…… 샤론의 검술에 대해 가르쳐주신 건가요? 저랑 샤론은 적인데.”
그러자 플로렛이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갸웃하고, 라미네아와 시선을 주고받더니, 피식 웃었다.
“너랑 샤론이 적이야? 같은 소명의 길을 걷는 친구가 아니라?”
“……!”
“너랑 샤론은 적이 아니야. 경쟁자라고 해야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경쟁자.”
그래, 너희 둘은 앞으로 사명의 동반자가 될 거야.
가족보다도 친밀한 친구로서.
그러니까 이건 뭐, 딸이 배고픈 친구를 데려오면 엄마가 밥 먹이고 그러는…… 그런 것과 비슷한 것뿐이야.
“결승전, 응원해줄게. 너는 보고 있으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런 부류거든.”
플로렛이 카밀라의 이마를 검지로 톡 건드렸다. 장난스럽고도 진솔한 미소와 함께.
“물론 우리 샤론을 조금 더 응원할 거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