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
가짜 용사 이야기-22화(22/310)
제22화
기원(起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5)
「Tus roh e Shiek kide El bas…….」
힘의 파장은 허공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돌덩이의 표면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표면에 불의 필체를 써내려가듯.
화염이 번뜩거리고 지나간 자리마다 용언이 깊숙이 새겨져 황금빛으로 명멸했다. 그 과정이 끝나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이것은 평이한 용령석이 아니다. 바로 나 요슈하르의 정수를 담은 돌이니라.」
지쳤을까.
눈부신 광휘를 토해내는 용령석을 쥔 요슈하르의 흰 수염이 떨렸다.
“왜 제게 이렇게까지…….”
「네 질문이 어렵구나.」
“죄송합니다.”
「되었다. 올리에르 듄 제라예, 그만 물러가 보아라.」
요슈하르는 올리에르 듄 제라예가 읍하고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자 입을 열었다.
「인간이란 신기하여, 자식을 사랑하며 자식의 자식까지도 까닭 없이 사랑한다. 용족에게는 신들께서 주시지 않은 편애(偏愛)라는 감정의 대물림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카이센은 요슈하르의 안색을 살폈다. 용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알기 어려웠다.
「이 요슈하르에게 있어 네 어미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은 자식과도 같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손자와도 같다.」
“예……?”
「네 어미의 마지막은 어떠하였느냐?」
다시, 카이센은 서글프게 치미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소년의 슬픔은 깊었다.
“절 구하고…… 웃으면서 가셨습니다.”
「그 슬픔을 굳게 붙잡아라. 용사란 의지를 힘으로 바꾸는 자. 네 슬픔이 굳건한 의지가 되어 길을 이끌 것이니.」
요슈하르가 용령석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다 양손으로 받아 쥔 용령석은 손이 델 정도로 뜨거우면서도 뿌연 한기를 내뿜을 정도로 차가웠다.
「명심하라. 의식(儀式)이 진행되는 동안 절대로 의식(意識)을 잃어선 아니 되느니라.」
요슈하르의 명에 따라 카이센은 신전의 중심, [念]이라는 용언의 방진이 새겨진 자리에서 결가부좌를 틀었다.
요슈하르는 법좌에 앉았다.
[念]의 자리를 둘러싸며, 용인의 몸을 입은 비룡 신관들이 위계에 따라 시립했다. 묵주 돌리는 소리와 기도문 외는 소리가 커졌다.「Kest…… Jer…… Kendov…… Nah…… Muz…… Qo…… su…… Vulon…….」
카이센이 깊은 숨을 토했다.
고통스레 쥐고 있었던 용령석이 불현듯 온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다음 순간.
“으, 으아아아아아아……!”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힘 덩어리가 근골을 찢을 듯이 날뛰며 전신으로 퍼졌다. 살갗 너머의 정맥과 동맥이 붉은빛의 열을 띠기 시작했다.
고통스레 울혈을 토하며, 불현듯 우습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육신이란 이토록 약해빠졌단 말인가. 용의 편린을 몸에 깃들이는 것만으로도 힘줄이 끊어지고 관절이 부서져 나간단 말인가.
따락, 따락, 따락따락따락…….
정신 사나운 묵주 소리 속에서, 세상이 둘로 흐트러졌다가 셋으로 흐느적거리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싸늘한 죽음의 귀결에 온몸이 전율하고 있었다.
– 명심하라. 절대 의식을 잃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칠공으로 걸쭉한 핏물을 쏟아 내면서도 소년은 결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아…….
귀가 울리기 시작했고, 살갗이 찢어지고 폭주하는 혈관이 튀어나와 피 안개를 이지러지게 뿜어냈다.
– 엄마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
나는…….
나는 이 힘을 얻고 말겠다…….
베고 또 베어서…… 무너진 고향이,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남쪽 땅으로 갈 힘을…….
– 카이센, 꼭 가자. 카밀라를 단장님 곁에서 쉬게 해주자…….
용령석의 힘이 폭발할 듯이 전신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내내, 소년의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근골이 길어지고 또 굳건해지고, 혈관에서는 용의 힘이 춤춘다.
설명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머리색이 점점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하더니, 카이센 주위로 힘의 기류가 사납게 용솟음쳤다.
「Kest…… Jer…… Kendov…… Nah…… Muz…… Qo…… su…… Vulon……!」
그 폭풍에, 마지막 기도문을 외던 신관들의 법복 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다.
그리고 그 힘의 기류가 카이센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일순간 맹렬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소년의 몸에서 눈이 타오를 것처럼 명멸하던 빛도 스러졌다.
「과연…….」
요슈하르가 긴장된 숨을 삼킨 가운데, 소년이 긴 숨을 내쉬며 눈을 서서히 열자 허공에서 나부끼던 백발이 가라앉았다.
지금 이곳이 아닌 저 먼 곳.
저 잃어버린 고향이 있는 먼 남쪽 바다를 들여다보는 듯한 눈동자는 찬란한 금색으로 영롱했다.
신관들이 탄성을 흘렸다.
「저렇게 맑은 금색은 처음 보오이다.」
「요슈하르의 드높은 위상이 저 작은 몸에 깃들었단 말인가.」
「라미네아의 아이야, 몸은 어떠하냐?」
끝난…… 건가……?
마침내 고통스러운 빛과 열의 물결이 사라졌기에 카이센은 입을 열어 말하려 했다.
‘어라?’
그런데 왜 세상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는 걸까…… 왜 세상이…… 기울어져…….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카이센은 의무실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각막을 관통하는 햇빛은 밝고 무거웠다.
“……?”
눈을 떴으나 한순간 망연해져서 눈을 여러 번 끔뻑거려야 했다.
시야가 맑았다.
맑아도 너무나도 맑잖아.
먼 것은 가까이 끌어당겨서 자세히 볼 수 있었고 가까운 것은 멀리 밀어 상황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힘의 물결은 강처럼 서늘하고 고요했다.
“일어났나?”
병상 머리맡에 올리에르 듄 제라예가 서 있었다.
“교관님…… 보입니다…….”
“그래, 보이겠지.”
올리에르가 협탁 위의 거울을 카이센 쪽으로 돌려주었다.
어라?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눈동자가 뒤흔들렸다.
아침 햇살 속에서, 용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반짝였고 머리칼의 절반이 새치로 희끗희끗했다.
황금의 눈에 백발, 페이쿼리어의 상징이었다.
신체적으로도 큰 변화가 깃들어, 근육으로 단단한 팔다리가 소년 시절보다 몇 배는 길어져 있었다.
“엄청나게 큰데? 페이쿼리어의 통상 신장이 6척 전후로 형성되고 어쩌다가 7척에 가까운 인물이 나오는데, 네 신장은 7척을 훌쩍 넘어. 이 정도면 하이 타르크 족장급이다.”
남자라서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진룡의 용령이 깃든 것과 비룡의 용령이 깃든 것의 차이겠지. 진룡과 비룡의 신장 차이를 보면 납득할 만한 결과다.
“교관님, 저…… 저는…… 이건…… 성공, 성공한 건가요…… 성공한 거지요?”
숨이 격하게 떨려왔다.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눈동자는 이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또 기억 속에서 카밀라의 머리칼은 이러한 순백색으로 순결했다.
그래서일까. 이제야, 이제서야 그 둘의 뒤를 쫓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등줄기를 훑는 전율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올리비에는 빙긋 웃었다.
“그래. 축하한다, 카이센. 최초의 남성 페이쿼리어라니…… 아주 세상이 뒤집히겠는데?”
“!”
“자, 그럼 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체험해보러 가봐라.”
* * *
“자, 너희들은 1년, 또는 2년, 아니면 3년간 페이쿼리어로서 익혀야 할 모든 검술과 격투술을 다 익혔다.”
켈리 듄 제라예가 말했다.
997기가 받는 최종 수업이었는데, 열일곱 명이었던 인원은 세 명으로 줄어 있었다.
여기에 카이센을 포함하면 네 명이었다. 다른 열세 명은 용령석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는 페이쿼리어만이 이수할 수 있는 훈련만이 남았다. 아니, 훈련이라기보다는 인식을 변화시킨다고 해야 하려나.”
“친애하는 교관!”
이슬라가 손을 들었다.
<테르베노플> 공성전에서 전사한 류넬 알터 가우므리스의 제자였다. 그녀 또한 살아남아 황금의 눈을 갖고 있었다.
“이슬라의 기억에 따르면, 이 훈련은 이미 했었던 것이다!”
“정말 경이로운 기억력이군.”
“극찬 감사한 것이닷!”
“비꼰 거다. 멍청함에 대한 경의로 제일 먼저 이 훈련을 받게 해주지. 이슬라, 출발선에 가 서도록.”
이것은 본래 균형 잡기 훈련이었다. 지면 깊숙이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위로 대나무 줄기 5개가 놓여 있었다.
중심을 놓치거나 힘의 집중을 잃어버리면 대나무가 부서지고 생도는 추락했다.
“이슬라를 놀리는 것인가? 이슬라, 이 정도는 이제 눈 감고도 할 수 있닷!”
“눈 감고 할 필요도 없다. 거기서 이 건너편까지 뛰어와 봐라.”
“?”
“너희들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수업은 그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인지하게 해주는 수업이다. 자, 어서 뛰어봐!”
카이센은 이슬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말의 도움닫기 이후 몸을 허공으로 튕겨 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니……?
분명 단순한 도약이었건만, 진각을 밟은 듯한 도약력이었다. 곧 이슬라의 몸이 구덩이 저편에 내려앉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
“뭐야, 방금…….”
카이센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997기 생도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못했다.
“보았느냐! 보았는가! 이게 바로 이 이슬라의 빠워인 것이다!”
이슬라가 귀엽도록 작은 체구로 깡충깡충 춤을 추자, 켈리 듄 제라예조차도 입꼬리가 실룩이는 걸 참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잘 보았겠지? 이제부터 3주간 배울 건 너희들의 새로운 육신이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확실히 인지하는 일이다. 세이라, 다음은 너다.”
997기의 나머지 둘도 구덩이를 단번에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체 능력을 선보였다.
카이센은 경탄했다.
동기들의 성공으로부터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얻자 기분이 좋아졌다. 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이다. 카이센, 자, 역사상 최초의 페이쿼리어 청일점의 힘을 여기 못난이들에게 보여줘 봐라.”
이슬라가 눈을 빛냈다.
같이 <테르베노플> 공성전에 참전했던 아레시아 알터 솔랑의 제자인 세이라도 싱글거리는 눈으로 카이센을 주목했다.
“과연……?”
카이센은 뒤로 두세 발짝 물러났다가, 지면을 힘껏 박차며 구덩이 위로 몸을 쏘아 올렸다.
“……?!”
“……?!”
“……?!”
그리고 곧 나온 결과에 997기 생도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켈리조차도 안경을(신체 개조에 흠이 있어서 계속 착용한다) 벗어서 제복 소매로 닦은 다음 다시 써볼 정도였다.
“카이센, 괜찮나?”
그 기적의 주인공은, 구덩이 아래 진흙탕에서 신음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구덩이의 절반조차 가로지르지 못한 채였다.
초유의 사태에(남자가 페이쿼리어가 된 것도 초유의 사태였지만), 교관들이 전부 집합했다.
“카이센, 다시 해봐라.”
올리에르 듄 제라예가 말했다.
이상 현상에 대한 켈리의 보고를 듣고 급히 달려온 참이었다.
– 신체 능력의 증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 네. 통상적인 각력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센의 백발은 이미 진흙으로 얼룩졌고 훈련복 또한 걸쭉하게 젖어 있었다.
“가겠습니다.”
카이센이 다시 두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일말의 도움닫기 이후 뛰어오르려던 그 순간.
“멈춰!”
올리에르가 다시 소리쳤다.
997기 생도들이 어이없어하는 눈치로 수석 교관을 쳐다보았다.
올리에르가 능숙하게 구덩이를 건너뛰어 카이센 옆에 착지했다.
“이상한 일인데…… 쇄결(鎖結)에 용언의 힘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잖아.”
쇄(鎖; ManaChain)란 검사들이 주력을 몸에 순환시킬 때 사용하는 힘의 사슬이었다.
페이쿼리어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사슬에 용언의 힘을 깃들인다.
그래서 체내의 마력을 들여다보면, 심신을 견고하게 휘감는 황금의 사슬이 보여야 정상이었다.
“카이센, 검강을 활성화시킬 때의 느낌을 기억하나?”
“아직 완벽하게 하지는 못합니다만…… 기억은 하고 있습니다.”
“한번 그걸 해봐라.”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손에 칼을 쥐지 않은 채, 검강을 활성화시키는 명상을 한다는 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년은 집중했다.
그 몸에서 광휘가 뿌옇게 일어서며 와글거릴 때, 올리에르는 각막이 타들어갈 듯한 어떠한 충격을 느꼈다.
‘뭐지……?’
눈이 부셨다.
그 일련의 생각이 뇌리를 부자연스럽게 찌르는 느낌이었다.
눈이 부셔? 눈이 부실 정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