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0)
가짜 용사 이야기-220화(220/310)
시즌 3 : 28화
결승전에 앞서 3ㆍ4위 결정전이 행해졌다. 대진 상대는 발칸 벨체스터와 올리에르 블라디파이레.
“벨체스터의 후계자 대 염룡검의 차세대 장문인 후보인가!”
“이거 3ㆍ4위전도 엄청나게 흥미를 돋우는군!”
지금 생각해도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때는 그 시합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를 않아.’
지금까지 싸워온 상대들에게는 막연하지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상상해볼 수가 있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샤론을 상대하는 방법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어. 먼저 치러진 시합을 두 번이나 봤는데도.
‘그것도 첫 번째 시합은 뭐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고, 두 번째 시합도 플로렛 님의 설명을 들었는데도…….’
극주검은 오감의 허점을 찔러온다고 하는데,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지? 오감의 허점이 노출되었다는 건 어떻게 알고?
– 몸 안의 감각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면 답이 보일지도 모르지.
스승님은 평소처럼 어렴풋한 힌트만을 주셨을 뿐이었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건 스스로 궁리하라는 것이다.
“이야, 이번 승부 끝내주는데?”
“뇌령검과 혈화룡검, 둘 다 난타전에 주목하는 검술! 재미가 없을 수가 있나!”
“그래도 역시 나이에 따른 노련미가 느껴지는 건 벨체스터 쪽인가! 어렵지 않게 압도해간다!”
올리에르는 대단히 분투했으나 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발칸이 재능이 없어서 열다섯 살에서야 뒤늦게 출전한 거였다면 모르겠으나, 발칸은 완벽한 우승을 노리기 위해 지금 출전한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발칸은 차근차근 노련하게 올리에르의 모든 수를 무너뜨려 가며 승기를 잡아갔다.
“……역시 결승에는 벨체스터가 올라갔어야 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가장 많은, 아니, 압도적으로 많은 베팅을 받은 게 발칸 벨체스터인데.”
“……저 발칸이라면 극주검법의 후계자를 이기는 방법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수군거림을 들은 순간,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래, 발칸이라면……!
발칸은 아까의 승부에서도 자신의 기술이 반격당하자 즉시 접근법을 바꾸었다.
아까도 말했듯 발칸이 갑자기 투쟁심을 놓지 않았으면 졌을지도 모를 시합이었다.
“3ㆍ4위 결정전, 승자, 발칸 벨체스터!”
그 깨달음 속에서, 대기실로 돌아오는 발칸과 만나게 된 건 필연이었다.
그야, 만나러 갔으니까.
칸니야가 먼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시 만나자 더없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오펠 벨체스터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먼저 돌아갔다고 안심하라고도 했다.
“언니, 아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잔뜩 있었는데! 시합 정말 엄청났어!”
“아가씨, 이쪽은…….”
“가만히 있어요.”
벨체스터 가문의 수행인은 칸니야의 위세 앞에서 카밀라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네가 여기 왜 있지?”
발칸 또한 수건을 건네준 게 가문의 수행인도 아니고 여동생도 아니라는 점이 몹시 거슬리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수건을 받기는 했다.
혈화룡검과의 혈전을 막 치르고 온 뒤였으므로 엄청나게 더울 것이 틀림없었다. 옷도 여기저기 타고 그을리고 찢어져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 했을 텐데.”
“왜 그래? 방금 전까지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린 사이잖아. 오빠. 3등 축하해.”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발언은 삼가라. 너에게는 볼일이 없다. 그만 여기서 나가라.”
역시 아직은…….
스승님 말대로 어른이 된 뒤에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래도 지금은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만약 오빠가 결승에 올라갔으면, 샤론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었어?”
매정할 정도로 단호하게 시선조차 주지 않던 발칸의 눈빛에 잠시 안광이 튀었다. 칸니야가 발칸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오라버니, 그냥 알려줘요.”
“…….”
“뭐, 됐어. 알려주기 싫다면야.”
그래, 됐어…….
그냥 이렇게…… 이 둘에게 당연하게 인사를 나누러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해.
절대 밖으로 내비치지 못할 미소를 속으로 삼키며, 발칸의 대기실을 떠나려던 그때였다.
“예전에, 뇌향 각하께서 이단 심문 기관 ‘황금의 아이들’의 기관장으로 부임하시기 전의 일이다.”
“응?”
“뇌향 각하는 마음을 읽지만, 이전 심문관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어. 그래서 심문으로 그 마음을 캐내야 했지. 상대의 살가죽을 전부 벗겨내는 이단 심문 과정도 있었다고 하더군. 살갗은, 피부는 이른바 1차 방파제 같은 거다. 감각기관이 너무 극심한 자극에 노출되지 않도록. 저렇게 되면 불꽃을 더 예민하고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하지.”
“오라버니, 그게 뭐예요? 그런 끔찍한 역사 강의 말고 언니한테 이기는 방법을 알려줘요.”
“여기까지 말해 줬는데도 모르는 우둔함이라면, 지는 것이 이로운 거다. 수건을 건네준 일에 대한 비용 처리는 이걸로 끝이다. 그만 사라져.”
“아니, 오라버니!”
칸니야가 카밀라를 두둔하기 위해 떼를 쓰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에 낙뢰가 꽂힌 기분…….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을 때, 뇌리에 황홀하고도 아뜩하게 작렬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아니, 아니야. 괜찮아, 칸니야. 충분해. 그래,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게 그런 방식이었구나……!”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12)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제1599회 지검제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광장에 황혼이 붉게 무르익을 즈음에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뼛속까지 치밀던 긴장감이나,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울려 퍼지던 환성을 또 언급하는 건 너무 식상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카미, 준비됐니?”
예전에는 분명, 이런 무대에 설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들 용기가 없어서 나가지 못했겠지.
나 자신이 변한 걸 느꼈다.
스승님께서 3년 동안 가르치신 건 검술이 아니었단 걸,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던 거다.
“절 뭘로 보는 거예요? 발도 천재는 당연히 준비됐죠.”
“그래, 충분히 즐기고 오렴.”
“아, 그리고 샤론을 이기고 지검제에서 우승하면…… 꼭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원래,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고백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스승님, 이라고.
하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스승이라 부르는 게,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모욕감을 받게 할 것만 같아서.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소질도 적성도 실적도 출신도 다만 가난하고 궁핍했으니까.
하지만, 이 지검제에서 우승한다면…… 그때는 당당하게 보란 듯이 외치고 다니리라고 다짐했다.
스승님, 이라고.
“그럼, 다녀올게요.”
후일, 지검제의 날을 기억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입장하던 순간의 열기였다.
“좌측, 십문자도의 카밀라 플라워!”
사람들이 쏟아내는 함성에도 온기가 깃들 수 있구나. 그것이 이렇게나 뜨거운 열기로 들이닥칠 수 있구나.
“카미카미! 힘내라!”
“우리가 응원하고 있다고!”
“흑장미 그 코쟁이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려 줄게!”
이 멀리에서도, ‘가족’들의 얼굴들이 선명히 보이고 그 외침이 분명히 들렸다. 손을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인사했다.
“카밀라!”
그 순간에, 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떻게 이런……?
자발 루드윅과 그 학생회 임원들이었다. 작년에 그렇게나 신세를 졌던, 카밀라를 더없이 예뻐해 주었던 그 사람들이었다. 모두 교복 차림이었다.
“아니, 여긴 어떻게?”
“기말고사 끝내자마자 왔다! 다행히 결승까지 올라온 모양이네. 아니었으면 못 볼 뻔했어.”
“회장님이 너무 여유 부려서 그랬잖아요!”
“그야 저 녀석이라면 반드시 결승전에 올라올 줄 알았으니까.”
이목이 그쪽으로 쏠리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여성들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자발 루드윅이다.”
“저게 그 자발이야? 소싯적 용현을 빼닮았다는?”
“미친, 개잘생겼어. 조각상 아니야?”
자발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여성들이 연모하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즐겼다. 요컨대 패버리고 싶은 표정을 곧잘 짓는다.
“걱정 마라, 카밀라. 만약 질 것 같으면 내가 벨 퀴리어스로 슬쩍 도와줄 테니.”
그러자 ‘검의 축제’ 관리를 맡은 두노스 왕국의 근위병들이 자발 루드윅을 연행해 갔다.
“잠시 따라와 주시죠.”
칼날 반도 남부를 지배하는 두노스 왕국은 법황청에 근위병을 파견하는 것으로 광룡에 대한 충성심을 바치는 걸로 유명하다.
“아니, 이러지들 마셔! 당연히 장난이잖아! 그리고 나, 용현 레인 루드윅의 직계 후손이다? 응? ……시합 끝날 때까지 눈에서 붕대 절대, 절대로 안 풀 테니 한 번만 용서를.”
“사실 이걸 전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편하실 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위병 장교가 자발 루드윅의 손에 은근슬쩍 편지를 쥐여주었다. 연락처가 담긴 편지일 것이다.
과연 대륙 최고의 미소년…….
근위병들은 상관을, 학생회 임원들은 회장을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저 양반은 진짜 어딜 가나…….’
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반가워서인지, 신기하게도 긴장이 완화되었다.
“우측, 극주검법의 샤론 플라네스타!”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가 샤론의 등을 장난스럽게 떠미는 것이 보였다.
환성의 골이, 더욱 깊어진다.
샤론이 등장하자 흑장미 병단(흑장미 병단의 중역은 대부분 두노스 왕국 귀족 출신이다)의 ‘귀족적’인 응원이 쏟아졌고 샤론도 우아하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햐,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가 꽁꽁 숨겨놨던 비밀 병기인가!”
“그 상대는 3년 전부터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온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의 제자!”
“페이쿼리어 제자끼리의 지검제 내전이라니, 이렇게 기대되는 대결을 보게 되다니!”
바닥이 떨리는 웅성거림 속에서 곧 광장 중심부에서 샤론과 마주 설 수 있었다.
“후훗, 결국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카밀라.”
“때려눕혀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야.”
“후훗.”
시합 직전에 칼집을 서로 들이밀어 맞부딪치는 일조차 경쾌하게 느껴졌다.
아니, 즐겁게 느껴졌다.
낯선 적과 긴장감 속에서 예절을 지키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손뼉을 마주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시합 시작까지 30초, 각 대진자는 좌우측의 끝단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그때, 몸이 너무 떨렸어. 긴장돼서 떨리는 것과는 달라.
훗…….
너랑 지검제의 우승을 노리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던 게 너무 기뻤던 거려나.
“비몬테 경, 이 승부를 어떻게 보시나요?”
한나 루드윅의 질문에 우직하게 부동자세로 서 있던 가문의 수호 기사가 대답했다.
“검술 승부에서 중요한 건 선공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로 보시면 됩니다.”
“선공권?”
라디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염룡검파의 꼬맹이는 하루 종일 선공권을 가져놓고 졌잖아.”
로베리스도 마침 비슷한 질문을 타르스에게 한 참이었다. 타르스가 대답했다.
“그건 공세로 나간 거지, 선공권과는 조금 달라. 선공권이란 누가 더 주도적으로 공세와 수세를 결정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거야.”
“……?”
“4강 제2경기에서 샤론은 계속 물러서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선공권은 계속 샤론에게 있었어.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교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거든.”
라미네아 또한 요한에게 그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어서 공세로 이끌어내는 것도 선공권이고, 상대방을 위축시킨 다음에 공세로 몰아붙이는 것도 똑같은 선공권이거든. 요는 누가 심리적 우위에 있는지를 알면 돼.”
“아하…… 그러면 이 승부에서는 누구에게 선공권이 있나요?”
“십문자도는 연계의 검술이지만 대단히 수동적인 검술이야. 상대가 있어야 초식의 연계 순서를 정하고 반격 방식을 정하지. 그래서 라미네아는 춤을 춘다고 표현하는 거고. 춤을 추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
플로렛(샤론을 배웅하고 심심하다면서 또 여기로 왔다)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주검법은 그 상대를 안 해주거든. 십문자도가 극한의 인파이팅이라면 극주검법은 극한의 아웃파이팅. 완벽한 극상성에 위치해.”
그런데 그 옆구리에 누군가를 끼고 강제로 연행해온 모습이었다.
“자, 패배자. 설명을 한번 해보실까.”
체격이 그녀만큼이나 장대한 여걸이었는데, 그 상태에서도 궐련을 입에 물고 있었다.
라미네아가 그 모습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반가움에 겨워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위용검전> 교관, 파티슈 듄 제라예. 서임 동기들이 집결한 순간이었다. 파티슈가 말했다.
“극주검을 상대로 연계를 이루는 건 불가능해. 이것들은 썩은 마인드를 가진 빌어먹은 놈들이라, 상대를 해주지도 않으니까.”
“영리하다고 하시지, 패배자.”
“극주검의 사용자들만 모르지. 사람들이 자기들을 더러워서 피한다는 걸.”
“네, 다음 패배자. 10전 2승 8패의 패배자.”
“말이 안 통하는군. 여하튼 십문자도 같은 연계형 검술은 극주검에게는 엄청나게 취약한 상성에 놓이지.”
저쪽 관중석에서, 동일한 이론을 설명받은 로베리스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겨야 하나요?”
목소리가 이토록 작은데도, 이 환호성의 파도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린다.
참 신기한 아이…….
타르스가 미소 짓던 그때, 그녀가 해줬어야 할 대답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주었다.
“극주검의 사용자 이상의 검투 경험과, 스스로의 감각을 단련할 시간이 필요하지!”
<위용검전>의 수석 교관, 리노야 듄 제라예였다.
“리노야.”
타르스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물드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적으로는 타르스의 동기였다.
“그 라미네아도 플로렛과의 대전 전적은 3승 7패였어. 천재적 재능을 가졌는데도.”
“그야 뭐, 극주검법은 세검 검술이랑 비슷하게 일대일 특화니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 어쩔 수 없는 걸 어쩔 수 있게 하려면 더 압도적인 실력이랑 경험이 필요한데, 카밀라 저 녀석은 제자가 된 지 3년도 채 안 됐단 말이지? 이제 딱 3년인가? 여하튼 난 매우 불리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우려 섞인 수군거림 속에서, 샤론이 보란 듯이 기수식의 자세를 취했다.
극주검법의 시작이자 끝.
제0식, 백조(白鳥).
그에 맞서, 카밀라 또한 기수식의 자세를 잡았다.
양발을 어깨너비로 펼치고.
칼집에 찬 칼을 허리 뒤쪽으로 최대한 잡아끌어, 상반신 근육 전체를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자세.
“……저건?”
“……발도 자세?”
“……제4식, 발(發)?”
플로렛의 눈이 가늘어졌다.
8강 경기 때처럼, 발(發)과의 연계로 돌발격을 사용할 생각인가?
그런 얄팍한 수가 전부라면 이 승부는 지금 기수식을 발(發)로 잡은 이 순간에 끝난 거나 다름없다.
‘라미네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데 뭐지, 이 위화감은……?
손바닥에 식은땀이 저절로 나는 이 위화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아?’
위화감의 정체를 포착한 플로렛의 눈이 커다랗게 열렸다.
안 돼.
제자에게 그렇게 소리치려고 한 순간, 샤론이 극주검법의 보법, 무영보(無影步)를 밟은 순간, 호흡과 호흡 사이에 필연적으로 도드라지는 사각의 틈새를 움켜잡으려던 그 순간.
일합잔상(一合殘像).
칼날이, 칼집에서 쇳소리를 날카롭게 끌며 솟구쳤다. 칼끝을 쳐내고, 가죽을 찢고, 그 너머 살갗을 도려내어 핏방울을 흩뿌린다.
“!”
“!”
“!”
두 소녀가 교차하면서 멀어진다.
모두의 눈이, 입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져서 닫히질 않았다. 잠시, 환성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때, 가슴팍의 자상을 움켜잡은 것은 경악스럽게도 카밀라가 아니라 샤론이었으니까.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베어낸 거야?”
“극주검법 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었는데, 저걸?!”
그제야 샤론도 스승이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언제 물어뜯었는지, 카밀라의 칼집 쥔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쉽게도 얕았네. 이 한 합으로 끝낼 작정이었는데.”
씩 웃은 카밀라가 다시 칼을 납도하면서 발도 자세를 취했다.
함성, 함성의 도가니였다.
정점에 가까운 검사들만이 지금 이 상황이 어떤 건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도,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카미……!’
라미네아는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양손의 주먹을 꽉 쥔 것도 모자라 입도 악다물고 말았다.
‘살짝 힌트만 줬는데, 그 깨달음에 용케 자력으로 도달했구나.’
의도적인 출혈로 인해서 혈행의 흐름을 통상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뒤바꾼 것이다.
이 경우, 극주검법의 검사는 상대방이 공격을 예비한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컨대, 허점을 찾는 데 혼선을 주는 것이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야.”
타르스가 휘파람마저 불면서 설명했다.
“상처 부위로 찬 바람이 스며서 아프다, 라는 말이 있지. 자상 부위를 통해 바람의 흐름을 온전한 피부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한 거야.”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극주검법에게 역공을 가하는 것을!
“저런 식으로 경험의 차이를 줄이고 아직 미숙한 오감을 활성화시킬 생각을 하다니, 녀석, 엄청나게 장한데?”
칸니야 벨체스터가 선취점을 딴 카밀라를 보고 신나서 방방 뛰다 발칸을 돌아보았다.
“오빠, 카밀라 언니가 이기고 있어! 언니가 먼저 선취점을 땄어! 이제 이길 수 있는 거야?”
“우위에 섰다고는 할 수 있지.”
“어떻게?”
“저 녀석은 발도 자세에서 돌발격을 이용해 돌진하거나, 방금처럼 섬무참을 이용한 광역 베기로 반격도 해낼 수 있으니까. 선공권이 완전히 뒤집힌 거지.”
즉, 이제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 건 샤론 플라네스타 쪽이라는 소리가 된다.
뭐, 제대로 알아들었나…….
발칸의 턱을 괸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이 그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가려지지 않았더라면 희미한 미소가 동생에게 보였을 것이다.
‘극주검법을 상대할 때 요구되는 건 몇 번씩이나 검무를 유지할 체력이나 위력이 아니야.’
카밀라는 발도 자세에서 머리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며 생각했다.
‘똑같이 행동하면 돼.’
똑같이, 일격에 전부 걸면 돼.
거기까지는 생각이 다다랐지만 어떻게 되받아칠 건지가 약점이었는데, 발칸의 조언이 엄청난 힌트가 되어줬어.
‘이거라면 바람의 떨림을 통해 샤론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만약 이기게 된다면…… 이 승리의 절반은 발칸 오빠에게 바칠게. 나머지 절반은 스승님에게.
“자, 샤론. 두 번째 합은 어떻게 할래? 이번에는 내 쪽에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