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1)
가짜 용사 이야기-221화(221/310)
시즌 3 : 29화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13)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육신을 표적의 목전까지 총탄처럼 쇄도시킨다.
그 몸에 필연적으로 실리는 관성을 칼집을 축으로 삼아 회전력으로 승화시킨다.
‘역시 피하나?’
그런다고 놓치지 않아. 칼날의 궤도를 한 끗 차이로 벗어나는 표적, 즉 샤론의 명치에 칼집을 꽂았다.
그 한 끗……!
그 한 끗의 차이에서 발생한 틈새로 득달같이 들이닥친 극주의 검극, 옆구리에 혈선이 그어진다.
촤아아악──!
피차의 공격에 밀려나던 두 소녀의 발치에서 동시에 그을음이 일어난다. 몸에 제동을 걸고 자세를 추스르기 위해!
“와, 와, 와아아아아아아아!”
“미쳤다! 결승전 수준이 미쳐버렸어, 그냥! 저 샤론을 상대로 유효타를 대체 몇 개나 넣고 있는 거냐고!”
“이제 선공권은 극주검법에게 있는 게 아니야! 십문자도가 가지고 있는 거다!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건 극주검이야!”
카밀라가 몸 상태를 확인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살벌하기도 해라. 칼집을 꽂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내장이 몇 개는 나갔겠는데?”
샤론도 명치를 매만지며 호흡을 추슬렀다.
“너야말로. 후훗, 옆구리를 그어서 힘을 안 빼놨으면 명치가 박살 났겠어.”
아, 역시 넌 너무 재미있어.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칼을 맞대는 순간조차도 재미있구나.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이 시합의 귀추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달려 있으니까.
‘스승님.’
샤론이 대기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플로렛을 흘끗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의 적막.
짧은 고민을 끝내고 플로렛이 고개를 끄덕여 ‘그것’을 승인했다.
샤론은 즉시 옆구리를 짚던 왼손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칼등 뒷면에 얹었다.
“……?!”
극주검에서 기수식을 푸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카밀라는 당연히 경계 태세로 들어섰다.
그러나…… 뭐지?
아무 공격도 오지 않았다. 샤론은 대신, 마치,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이, 경건한 음성으로 칼에 대고 이렇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는 샤론 알터 타스알포다.”
뭐야, 저건……?
갑자기 웬 통성명을……?
“나, 한 알의 밀알이 되리.”
전율(戰慄)…… 영문도 모른 채, 카밀라는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가?
아니, 저 녀석 주위의 대기 전체가 바뀌었어. 하지만 저걸 어디에 쓰는 거지?
“……마력이 칼날 위로 요동치고 있어!”
“……반짝반짝 빛나는 게 꼭 별님들 같아!”
“……위력을 높이는 건가? 저게 뭘 의미하는 거야?”
타르스 알터 쉬르팽이 흥미롭단 듯이 숨을 삼켰다.
“검의 기원(祈願)…… 벌써 가르치기 시작한 건가?”
검의 기원이란 성검과의 소통.
용사로서, 그 용기를 칼에 깃들이는 과정.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검과 혼연일체…… 즉 신검합일의 경지에 먼저 올라야만 한다.
“히야, 저 녀석 물건이네. 한시적으로 신검합일을 이룰 수 있는 것 같은데. 열세 살 꼬맹이가.”
리노야 듄 제라예도 진심으로 감탄한 기색이었다. 라미네아도 당혹스러운 상념에 잠겼다.
‘극주검법의 극의는 검강을 자유자재로 늘이는 것으로 간격을 농락하는 것…….’
검강을 쓸 수 없다면 극주검법은 결국 동급 고수들의 대결에서는 오히려 실전성이 떨어지는 검술.
‘방금 카미가 샤론을 밀어붙였듯이…….’
그렇기에 검강은 꼭 필요하다.
일대다의 싸움에서도, 검강을 적극 활용하는 극주검법의 검사는 수십 명의 적의 급소를 동시에 꿰뚫는 게 가능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좋아야 아직 열세 살, 검강의 경지에 닿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검강은 정점에 이른 검사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 저 나이에 사용할 수 없는 게 당연해.
하지만 신검합일의 경지로 칼날에도 신체와 동일하게 마력이 흐르게 만들 수만 있다면?
마력을 팽창시키는 걸로 검강을 모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검강과 비교해 위력은 훨씬 떨어지겠지만,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해.’
극주검법의 장기인 살(殺)의 간격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마력으로 칼날의 길이를 상당히 늘일 수 있게 된 거야?”
라디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수호 기사 비몬테에게 물었다. 비몬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샤론 왕녀의 사정거리에 익숙해지던 카밀라에게는 상당한 악재가 될 겁니다.”
흥…… 플로렛이 만족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방금 그 기원을 통해, 샤론은 스스로에게 채워두고 있던 족쇄를 푼 거나 마찬가지거든.
‘진심을 다해 상대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 검과 마음을 공명시키는 연습, 검의 기원으로 말이야.’
실제로 카밀라는 샤론에게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빨라, 뭐 이렇게 빠르지?’
방금 전까지 우위를 차지했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겨우 치명상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 방, 두 방, 세 방.
급소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며, 눈앞이 희뿌옇게 물드는 통증으로부터 간신히,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든다.
‘아니, 빨라진 게 아니야. 더 멀리에서도 칼이 닿기 때문에 빠르게 느껴지는 거야.’
이대로 가면, 올리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갉아먹히다가 끝내 패배하게 될 거야.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이 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건 뭐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저 녀석이 칼 길이를 마력으로 늘여서 우위를 빼앗아 갔다면,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방법은.’
어깨너비로 벌리는 발의 간격, 복근을 비롯한 앞면 근육과 광배근을 시작으로 후면 근육을 전부 수축시키며 칼을 뒤로 잡아당기는 발도 자세.
여기까지는 똑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새로운 각색을 곁들인다. 지면을 딛고 섰던 왼발을 떼서 앞으로 옮기는 것으로. 어기적거리듯 움직여서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알 바 아니다.
“……음?!”
“……전진한다고?!”
“……발(發) 자세에서의 전진?!”
아…… 지금, 이 자리에서 도대체 몇 명이나, 저 동작이 내포하는 의미를 확실히 알까. 라미네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제4식 발(發)의 가장 큰 단점은 부동자세.’
뒤따르는 초식의 위력을 증강시킨다고는 하나, 실전성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발(發) 자세를 취하고 있는 순간에는 적에게 있어 고정된 표적에 불과하니까. 샤론이 마력 팽창으로 우위를 차지했듯이.
그런데 그 상태에서 이동하겠다는 발상을 하다니. 발상을 넘어서, 이론을 실체화시키다니.
“단순히 앞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란 말인가요?”
올리에르 블라디파이레가 스승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발(發)은 신체의 모든 힘과 집중력과 마력을 칼집에 집중시키고 있는 자세란다. 움직이면 그 모든 흐름을 깨트리게 되어버리지.”
“그러면 어떻게……?”
“그러니까 저건 뇌령검과 십문자도, 두 검술의 초식을 섞었다고 볼 수 있겠구나.”
저편 대기석에서, 발칸 벨체스터도 상념에 잠겼다.
‘뇌령검은 칼에 깃든 마력을 장기간 유지시키는 훈련을 한다.’
상대방에게 흘려 넣은 전류와 자신의 검의 전류, 두 힘의 자기장을 유지해야만 혼류(混流)의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발(發) 자세가 뒤바뀌어서 위력이 좀 깎이긴 하겠지만, 큰 문제는 없겠어.”
리노야 듄 제라예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타르스가 동의했다.
“낭인들, 특히 발을 집중적으로 쓰는 람각파(纜脚派) 같은 유파들에서는 왼발과 오른발 둘 중 어디를 쓸 것인가에 따라 자세를 스위칭하니까.”
전문가들은 그런 설명을 해줄 수 있었으나, 군중들로서는 도무지 불가해한 일의 향연이었다.
“……무슨 소리야? 저게 뭘 하고 있는 건데?”
“……몰라! 고수들은 초식의 혼합이라는데?!”
“……그래서 다시 선공권을 빼앗아 왔다고?”
카밀라는 전심을 단지 칼에 집중하고 있었다.
칼집 내부에 축적된 마력이 극한에 달할 것 같다 싶으면 칼날을 살짝 열어 힘을 빼낸다! 하지만 이 또한 공격 자세처럼 보여야 허를 찔리지 않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도 발(發)의 자세가 최대한 깨지지 않도록 주의!
“아니, 그게 가능해?”
샤론의 눈썹이 흔들렸다.
“저래 갖고서야 두 검술의 장점 모두 살리지 못하는 거 아니야?”
간격을 서서히 좁히면서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허점투성이야.
“두 검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내놓은 자충수에 불과하단 거지.”
모든 검술들은 검호들의 손에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발전되어 숫자가 매겨지고 정규 초식으로 정립된 거나 다름없어.
“그걸 여기에서 즉흥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위험할 건 없지! 그건 한마디로 포기에 불과해!”
소용없어!
소용없다고, 카밀라!
그런데 왜, 왜 자꾸 식은땀이 나는 거지? 이제 저 동작의 허점을 꿰뚫기만 하면 끝인데, 어째서.
“서운한 생각 하지 마, 샤론. 이건 즉흥이 아니니까.”
내가 몇 년 동안 이걸 봐오고 또 써왔다고 생각해.
선대 십문자도 계승자들은 모두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았다고 하는 이 초식을. 이 동작의 단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
그렇기에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늘, 항상, 몇 번이고 생각해왔어.
“간다.”
다시, 선공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시작되는 항쟁(抗爭)!
횡단 베기!
종단 베기!
역동적인 1회전!
쇠와 쇠가 부딪치는 불티와 쇠가 살갗을 저미는 핏방울이, 그 빛과 열기를 황혼 속으로 뿌려낸다.
‘대단하군…….’
‘벨체스터 뇌령검과 십문자도의 조화로 발(發) 상태로 움직이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다니.’
‘십문자도 제4식, 발(發)의 단점을 해결하는 해답이 지금 이 자리에서 열린 걸지도 모른다.’
파티슈 듄 제라예는 궐련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카밀라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저 녀석은 검술의 천재가 아니야. 오히려 천재들 사이에 두면 빛이 바래는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저 녀석은 두 가지에서 천재다. 하나는 실패의 천재고, 다른 하나는 상상력의 천재야.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실패를, 머릿속에서 새로이 엮어서 새로운 길로 만들어낼 줄 아는 재능.’
사람이 무기로 연마되는 쇳덩어리라고 치면, 천재는 창으로 연마되는 재목이라 볼 수 있다.
남들은 이리저리 뒤틀리고 엇나가는 길을 올곧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질주해서 끝에 다다르지.
모든 기술적 변용은 그 직선적인 집합, 즉 그러니까 ‘최선의 결과’와 ‘최고의 상태’에서만 이루어져.
‘하지만 노력가들 중에서도 노력의 천재는 굳이 비유하자면 삼지창과도 같다.’
창날이 세 갈래로 나뉘기에, 창에 비해서 극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길이가 부족해서 끝내 도달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두 갈래의 창날을 통해, 장창이 대응할 수 없는 변수에 대응할 수 있게 되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태어났거나, 누군가가 그렇게 되게 만들어준 거야.’
직선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검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노력.
바로 그런 노력이야말로, 긴 검술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검호의 길이다.
‘지금 저 녀석이 구축한, 비슷한 결을 가진 두 검술의 혼합처럼.’
두 검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가져서 합치는, 지금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검의 극한.
“이로써 백조처럼 우아하게 하늘을 날던 극주검을 땅으로 끌어내렸군. 이제는 난타전뿐이네.”
파티슈가 씩 웃자, 플로렛도 마주 웃었다.
“미안한데, 검술을 섞을 수 있는 건 저 꼬맹이의 전매특허가 아니란 말씀이지.”
샤론도 어려서부터 왕족으로서 궁중 검술을 배웠다. 나 또한 먼저 기본기를 혹독하게 가르쳤고.
일반적인 세검의 검술은 난타전에서 불리하기 짝이 없지만…… 극주검은 다르다.
극주검은 무기부터가 장검을 사용하니까. 그러니 백병전 성립이 가능해!
“……나, 난타전이다!”
베고, 베이고.
찌르고, 찔리고.
베고, 찌르고, 베이고, 찔리고.
“……양쪽 다 이제 백조나 발(發) 자세를 취하지 않아! 이제 그런 건 의미 없다고 본 건가?”
칼을 휘두르며 그 칼날 위에 깃들인 서로의 의지가, 칼 위에 쌓아온 시간이, 끝없이 충돌한다.
황혼의 시간은 끝났다.
어스름의 시간을 찰나 동안 밝혔다 사라지는 쇠붙이의 반딧불들.
“……대체 누가 이기는 거야?”
꺾였던 무릎을 다시 펴내고, 꼴사납게 나뒹굴던 몸을 주먹으로 바닥을 쳐서 억지로 일으킨다.
“하아아아아아─────!”
필사(必死).
오기(傲氣).
사력(死力).
“─────아아아아아아앗!”
칼이 부딪치는 소리의 골 사이로, 서로의 의지가 기합으로 체현되어 교차한다.
‘샤론 저 녀석…….’
플로렛은 그런 제자를, 언젠가 반드시 닥쳐올 이별의 날을 그리며, 슬프고도 대견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성격이 밖으로 나와 버렸잖아. 이러면 뭣 때문에 웃는 법을 가르쳐놓은 건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혈투로 보일 수 있었으나, 그때 두 소녀는 서로를 노려보면서도 서로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즐거워.
이렇게 즐거울 수가.
그러나 그 미소의 이면에는 피차 결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도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베고.
찌르고.
‘지검제에서 우승해서.’
넘어지고, 나뒹굴고.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건.’
일어서고.
달리고, 휘두르고.
‘항상 그분 곁을 지키는 건.’
찌르고.
맞부딪치고.
‘스승님을 스승님이라고 당당하게 부르게 되는 건.’
일순간의 틈새가 열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일격(一擊)을 마련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주게 된 순간.
“나야────!”
“나다────!”
의지의 표출…… 즉, 각자의 칼날에서 요동치며 솟구치던 마력이 충돌, 맹렬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칼로 베어 자르듯, 고조되던 함성이 정적으로 뒤바뀐다. 심판이 마력의 폭연을 마법으로 황급히 걷어냈다.
광장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소녀 모두, 각자의 방향으로 장외 상태가 된 채 몸을 일으키려고 꿈틀거리고 있었을 뿐.
“자, 장외?”
“양쪽 다?”
“판정, 판정을!”
판정을 위해 작동되고 있던 천리안(千里眼) 마법이 방금 일어난 상황을 재생시켰다.
동시였다.
두 소녀가 장외 바닥을 나뒹굴게 된 것이 기적이라 해야 할 정도로 동시였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바로 몇 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이런 경우를 위해, 토너먼트인데도 원탁이 심사위원단을 꾸려놓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점수판을 들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일시에 잦아들었다가 더욱 커졌다. 더 큰 혼란이 관중석을 지배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평가 점수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 총점이 똑같아……!”
“와, 미친, 이게 말이 되냐! 마음먹고 승부를 조작하려고 해도 이런 건 불가능하겠는데……?”
심판이 어벙한 얼굴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은 그들로서도 처음이었다.
“재경기를 해야 하나?”
“이미 저녁이 늦었고 대진자들의 체력도 마력도 한계다. 내일은 공검제 일정이 있어.”
“그러면 ‘검의 축제’ 마지막 날에 한 번 더 경기를 하는 건.”
그때, 최종 결정권자라 할 수 있는 주재자가 광장 위로 눈부시게 내려앉았다.
오주(五柱), 인라히트.
그 날갯짓에서 퍼져나간 황금의 광휘가, 각 스승의 품에서 고통스레 꾸물대던 소녀들의 몸에 생기를 되돌려 놓았다.
「서로의 의지가 어둠조차 눈부시게 밝혔으니, 그 의지의 고저(高低)를 이 이상 논하는 건 옳지 않도다.」
“각하, 그러면 대체 어떻게?”
「두 가녀린 빛이 세계를 나란히 밝히는 환상을 보았으니, 둘의 우열을 가리지 않겠다. 라미네아의 제자 카밀라와 플로렛의 제자 샤론, 양쪽을 이번 검의 제전의 우승자로 삼겠다.」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추기경이 내놓은 답에 대해 잠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초유의, 전례가 없는 사태였으니까.
그러나 그 말뜻이 이해된 순간, 광장이 무너질 듯한, 창공을 뒤흔드는 함성과 갈채의 물결이 있었다.
“우, 우와아아아!”
“고, 공동 우승이라고?!”
“그럴 만해! 그 정도로 엄청난 승부였어!”
각 신문사의 기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만년필을 마구 놀렸다.
“법황청 공인 검술 대회에서 역대 최초로 공동 1등의 탄생이라니, 그리고 그게 양쪽 다 페이쿼리어의 제자라고? 대파란이야!”
시상식의 자리는 본래 광장 중심부에서 계단식으로 마련된다.
중앙이 1등.
좌측이 2등, 우측이 3등.
그러나 이번 1599회 지검제에서는 중앙에 두 명의 소녀가 오르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휘장이 하나씩만 준비되었다는 점이다. 2등과 3등은 각각 은제 휘장과 동제 휘장을 가슴팍에 매달 수 있었지만…….
「이리 주어라.」
그러나 인라히트가 그 금메달에 숨결을 불어 넣자, 광금 사슬이 길게 휘장 위로 엮어졌다.
「서로의 머리를 가까이 붙이도록 하여라.」
카밀라는 부끄러워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샤론이 카밀라를 끌어안아 바싹 달라붙었다.
인라히트가 그 사슬을 두 소녀의 목에 나란히 둘렀다.
사슬의 왼쪽은 샤론의 어깨에, 오른쪽은 카밀라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두 사람의 중심부에서 우승의 징표가 반짝였다.
“야, 뭐, 뭣! 떨어져!”
“후훗, 안 돼. 사진 찍어야 하잖아.”
“카밀라, 지금은 3등 자리에 서 있지만 네 라이벌은 나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이 상황이 불편한 3등 올리에르가 말했다. 다른 의미로 불편한 2등 발칸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히 하고 빨리 좀 끝내면 안 되겠나?”
인라히트가 위엄 있는 미소를 지으며 물러서자, 기자들이 사진기를 들이밀었다.
“이로써 4강에 올라온 모든 이들이 빛을 보게 되었군.”
“솔직히 네 명 모두 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냈다. 그 누구도 이 결과에 대해 불복하지 않았다.
“카미와 론에게는 훨씬 더 잘된 일이고.”
라미네아가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아마, 앞으로, 사명의 길을 함께하는 나날 속에서…… 친구와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건 이 순간을 저 둘이 잊을 수 있을까?
절대 못 잊을 거야.
결코 잊지 않을 거고.
카미, 넌 지금 이곳에서 최고의 추억을 쌓은 것이나 다름없어.
“그걸 두 사람이 알고 있을까?”
플로렛이 씩 웃었다.
“알고 있겠지. 두 년 다 저렇게나 밝게 웃고 있잖아.”
파티슈 듄 제라예는 잠시, 궐련에 불을 붙이면서 기억 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고요하게, 포개어지는…….
지금 여기, 백발의 세 여걸이…… 각자의 머리색을 가진 소녀로 돌아가서…… 저 제자들의 모습 위로 포개어지는…… 그러한 추억 속으로…….
“예전에는 페이쿼리어가 되지 못해서 신들을 원망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듄이 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수석 교관, 리노야 듄 제라예가 박수를 치면서 타르스에게 말했다.
“진짜 신기하거든. 제자들이 성격은 달라도 그 안쪽의 신념 같은 게 스승이랑 완전히 똑같은 걸 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리노야.”
“그리고 또 재밌는 것도 있지. 나중에,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 너희들의 제자가 어떤 모습의 페이쿼리어가 되었는지.”
그러면서 리노야가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던 로베리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네 모습도 보여주러 오렴. 나중에 이 녀석에게 말해줄 수 있게.”
기원력 1670년 11월 21일.
‘붉은 여름’의 영웅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 처음으로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긴다.
13세의 나이에 1599회 지검제 공동 우승이라는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