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2)
가짜 용사 이야기-222화(222/310)
시즌 3 : 30화
“받을 때는 좋았는데,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담?”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메달의 후처리가 문젯거리로 떠올랐다.
하나밖에 없으니, 누가 보관하느냐의 문제다.
플로렛이 말했다.
“하나 더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금이 썩어나게 많은 법황청인데 뭐 어때.”
그러나 라미네아가 내놓은 해답은 달랐다.
한순간 메달을 하늘 위로 던지더니 아라다만텔을 발도, ‘칼날을 휘감은 용의 형상’의 메달을 정확히 반으로 절단했다.
절단면이 어찌나 예술인지 금가루가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였는데, 그걸 카밀라와 샤론에게 하나씩 주었다.
“자, 이렇게 가져가면 되겠지?”
플로렛이 무표정하게 그 광경을 노려보고 있다가, 순간 발작을 일으켰다. 라미네아의 머리통을 주먹 두 개로 붙잡고 마구 돌렸다.
“야, 야, 야 이 미친년아아아아! 너 상의도 없이 지금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이게 어떤 상징인데, 이 녀석들 의견은 물어보지도─”
“─괜찮아요.”
플로렛의 폭주를 멈춘 건, 제자의 목소리였다. 반으로 갈라진 휘장을 소중히 품에 안으며, 맑게 웃는 제자의 웃음소리였다.
“이게 더 좋아요.”
플로렛이 헛웃음도 흘리지 못한 채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휘장을 조용히 바라보던 카밀라도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미 갈라졌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냥 이렇게 쓸게요.”
인라히트가 만들어준 광금 사슬은 원래 두 명의 어깨에 두를 길이였으므로, 반으로 갈라진 걸 새로이 엮자 딱 한 명의 목에 여유 있게 걸 만한 길이가 되었다.
우승…….
지검제 우승…….
그 말이 주는 떨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지라 아직까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은, 따라왔을까?’
열다섯 살에 공검제에서 우승하던 에쉬르, 그리고 그보다 더 뛰어나셨다는 스승님의 발자취를.
“카미카미!”
“우하하하하! 막내야!”
그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단체로 밀려닥친 홍련 병단이 카밀라를 끌어당겨 헹가래를 태웠다.
“아니, 왜, 왜요, 악, 하지, 하지 마요! 무섭다고요!”
지검제의 열기가 사그라지는 자리로 새로운 열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더 보였다.
우선 타르스 알터 쉬르팽과 로베리스(그때 선물해준 곰 인형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
“이야, 3년도 안 돼서 지검제 우승이라니, 제법인데? 로베리스가 널 정말 열심히 응원했단다.”
“어때, 잘 봤어? 나 좀 쩔었지? 나중에 검술 배우다 막히면 이 천재님한테 와. 좀 가르쳐줄게.”
“네.”
한나 루드윅과 라디스 루드윅, 한나는 어머니처럼 자상한 미소를 짓고 계셨고 라디스는 눈물바다가 되어 카밀라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난리가 났다.
“우리 까미, 얼마나 고생했어. 얼마나 노력했어. 내가 진짜 여기저기서 얻어맞을 때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그리고 마법대학 <델라이텐> 학생회와도 재회할 수 있었다. 근데 가장 중요한 자발 루드윅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 난봉꾼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만…….”
학생회 임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왕 둘러싸인 거 사인회를 하겠다더라. 누가 우승한 건지.”
“알 만하네요.”
정말 알 만했다. 그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참 한결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웃었다.
라디스 루드윅이 응징의 철퇴를 위해 팔소매를 걷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쯤이었다.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과 그 제자 카밀라 님 맞으십니까?”
두노스 왕조식 유려한 장식의 비단옷을 입은 대신이 찾아와 정중히 절했다.
“국왕 전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플로렛 경의 친우이자 샤론 왕녀 저하의 친우이신 두 분을 궁궐로 초대해 만찬을 베풀고 싶다고 하셨나이다.”
지검제(地劍祭),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14)
두노스 왕정의 초대는 장려했다.
딸의 지검제 우승을 맛본 국왕 알비온 플라네스타의 기쁨은 크고 깊었다. 국왕보다 왕비가 더 기뻐하는 듯도 보였다.
이를 위해 왕국 전체에 축제를 베풀고 수도 왕성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연회를 차렸다.
카밀라는 어전에 공식으로 초대되었다. 루드윅 일가는 물론이고 홍련 병단, 델프레드와 요한, 심지어 <델라이텐> 학생회(!)도 그 영예를 누렸다.
“크윽, 카밀라. 너한테 식사 대접을 하는 게 내가 아니지만 네 라이벌은 나라는 걸 잊지 말라고!”
올리에르와 그 스승도 혜택을 누렸으나 카밀라의 덕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왕녀의 친우로서 초대된 것이다.
‘왕녀의 벗이 사생아에 고아라니…….’
솔직히 왕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으나, 국왕은 신분을 크게 신경 쓰는 위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하는 듯도 했다.
“신분이 높은 친구라면 이 궁정에 얼마든지 있지. 다스리는 자는 다양한 이들을 많이 만나봐야 해.”
요한은 두노스 왕조는 법황청의 산하 국가와도 같은 곳이라 이런 것 같다고 했다.
– 왕정과 공화정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저런 넓은 사고를 가지게 된 거 아냐?
실제로 용들은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을 인류 공동체의 최종 목표로 삼았기에 용인 공화국이라는 선례도 남겨두었다.
뭐, 지루한 설명은 그만하고.
식사를 설명하자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 특유의, 그러니까 아주 값지기로 유명한 산해진미들이 장대한 식탁에 끝도 없이 놓였고 끝도 없이 보충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단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음식들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국왕의 옆, 정확히는 샤론의 옆자리…… 그러니까 최고 상석에 앉은 채로 말이다. 샤론이 약간 당황한 눈동자로 물었다.
“해산물은 안 좋아하니?”
그러자 왕비가 손뼉을 쳤고 급사나 하인들은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난리가 날 뻔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어패류보다 육류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했다. 안 그랬다가는 불쌍한 요리사들이 새로이 고기를 굽는다고 중노동을 하리라.
“먹는 법을 몰라.”
그러자 국왕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녀가 다가와 바닷가재의 속을 갈라 그 속살을 먹기 좋게 발라냈다.
그럼에도…….
벨체스터 저택에서는 그야말로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는데,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지…….”
차라리 스승님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친우 플로렛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기에 괜히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샤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 되겠어?”
올리에르가 접시를 빼앗아가며 말했다.
“그럼 내가 먹을 테니 이리로 줘! 많이 먹기 승부에서는 내가 이긴 거다!”
샤론이 웃음을 터뜨리자, 국왕과 왕녀가 방그레 웃었다.
국왕 앞에 앉아 있으니 괜히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팠다.
국왕이란 존재들은 왕좌에 오르기 전에 최면술 같은 걸 배우는 게 틀림없었다.
“샤론이 이토록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건 심히 오랜만이니라. 내, 우승과는 별개로 그것이 지극히 기뻐서 베푸는 연회이니, 마음껏 먹고 원하는 걸 또 말해보아라. 내 손이 닿는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주리니.”
소원…….
소원은 당연히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그 소원을 소리 내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국왕이 이루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 맛있는 음식들을 저택 식구들에게도 먹게 해주고 싶어요. 이런 건 못 먹어봤을 듯해서…….”
국왕은 갸륵한지고, 라고 말하고는 다시 호쾌하게 웃더니 대신을 불렀다.
“벨르윈 저택에 우리의 해산물을 왕국의 열성과 위엄을 담아서 보내시오. 용현의 후손들과 왕조의 부족함이 없도록 경이 고루 잘 살피시오.”
마음속에 소중히 품고 있던 소원, 그 속에서 열렬히 반짝이는 소원의 빛을 밖으로 꺼낼 수 있던 건 연회가 끝난 뒤의 일이었다.
달빛이 아스라이 비치는 회랑.
가을의 바닷바람이 어느덧 서늘하게 옷자락을 흔들고 지나가는 그 시간을, 스승님과 함께 걸으면서.
“그냥요,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일이 다 꿈만 같아요.”
검술을 배운 일, 그 강변 마을의 둑을 보강하며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일.
초급 검정시험에 합격한 일.
제자 적성 시험을 통과한 일.
마력 자격증을 따러 <골든로즈>에 갔던 일, 거기에서 <델라이텐>의 축제를 경험한 일.
그 모든 곳에 인연이 있었다.
요한이 있었고 벨르윈 저택이 있었고 요슈하르가 있었고 자발 루드윅과 로베리스가 있었고 홍련 병단이 있었다.
그리고…….
지검제에서 만난 인연과 얽혔던 인연을 새로이 푼 일도 있었다. 올리에르, 샤론, 발칸.
“발칸이랑 칸니야랑 그렇게 화해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 편지요, <하랄도니키>에서 헤어지기 전에 칸니야가 준 거예요. 아직도 못 열어봤어요.”
“그러니?”
“예전에는요, 음, 꿈에서도 못 꾸던 일들이, 이 3년 안에 다 벌어지니까, 정신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모든 게 그냥, 네, 꿈만 같아요.”
이제는, 목에 걸린 광금이 따스한 빛을 발하는 이제는…… 말해도 되는 거겠지?
‘말해도, 괜찮은 거겠지?’
그걸, 평생 속으로만 말했던 그 단어를 말하려는데, 너무 오랫동안 응어리져 굳어버린 건지, 성대를 타고 올라오질 못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몇 번이고 연습했으니까.
검대에서 칼을 끌렀다.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 그 칼집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으며 포권했다. 올리에르에게 물어봐서 배운 사제의 예절이었다.
“그…… 지금까지 지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 스승님.”
말했다.
드디어 말했어.
어딘가, 웃던 순간에도 속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기분.
“저, 전부 스승님 덕분이에요. 그, 그러니까요, 앞으로도 많은 걸 가르쳐 주세요?”
라미네아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동안, 카밀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응?”
당연하다면 당연한 호칭이었으나, 카밀라는 여태껏 소리 내어서 그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준 적이 없었다.
그 아이의 마음의 벽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받으며 자라온 유년기가 마음의 벽을 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억지로 허물기보다는, 다만 절로 녹아내리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카미, 지금…… 스승님이라고 불러준 거야?”
제자는 포권지례 상태에서 얼굴을 들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던 걸까.
제자는 얼굴을 푹 숙인 상태에서 고개만 끄덕이기만 했다.
‘아.’
라미네아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막지 않으면,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그 손 위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 손가락 마디마디로 스몄다.
‘만약.’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지만, 만약…….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이런 기분일까?
“어, 엇? 왜, 왜 울어요? 아니, 아니지! 울 만해요, 음, 그렇죠, 이 천재가 스승님으로 인정해 드렸으니.”
그날의 가슴 떨림을, 모든 삶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련한 광휘 속에 잠기는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카미, 너랑 함께 있으면 나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아. 항상, 네 곁에 있고 싶어. 네 모든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
그리고…….
욕심쟁이로서 꿈을 꾸게 돼…….
언젠가, 어느 날엔가, 카미를 이모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과…… 어딘가, 칼도 없고 피도 흐르지 않는 세상 어딘가로…… 여행을…… 함께, 여행을…….
* * *
세상의 남쪽 끝, 그러니까,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평화의 저변…… 백골(白骨)의 세계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이 세계에서 제일 음흉한.
그 백골의 세계에는 살점을 가진 생명체라고는 없다. 섭리의 질서 아래 놓인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왕의 축복이 임재하기에.
“……웬 놈이냐?”
그곳은 고대 왕궁의 찌꺼기.
한때 도마뱀 군주를 충실한 하인으로서 섬기며 같은 인류를 핍박했던 이들의 성채.
고대의 시체를 노예로 부리는 종족이 있었으니, 그 족속의 이름은 사서에 네크론으로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찢어발겨라, 요니울란.」
다른 마족들조차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그 혐오스러운 성채가, 보랏빛 폭풍 속에서 필연적 이음새를 잃고 붕괴했다.
단 사흘 만에.
시체의 대군은 이미 골격의 집합을 잃어버리고 무수한 뼈다귀가 되어 불타는 사막을 나뒹굴었다.
단 나흘 만에.
무너진 성채에서 네크론 신관(노예보다 형편이 조금 나았던 주제에 옛 왕국이 몰락하자 불경스럽게도 그런 명칭을 자처했다)들이 뼈대만 남은 손으로 기어 나왔다.
“그 경멸스러운 빛, 그래,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과 비슷한 빛이 그분의 왕국을 무너뜨렸지…….”
「따라와라. 너희들의 그 보잘것없는 힘이라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그러하였던 네놈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나 웅혼한 심연의 축복을 거느리고 나타난─”
진성검 요니울란이 높고 날카롭게 포효하더니, 그 파괴적 힘으로 신관들의 발치를 휩쓸었다.
네크론 신관들이 딛고 서 있던 곳을 제외하고, 지반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그 틈새로 용암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압도적 힘의 표출, 힘에 의해 성립하는 주종 관계의 성립과도 같은, 그러한 위세.
「이해는 필요 없다. 복종만이 필요할 뿐. 또 허락 없이 주둥이를 열면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