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4)
가짜 용사 이야기-224화(224/310)
시즌 3 : 32화
다가오는 여름, 약식 사관 훈련 (2)
준사관 후보생 교육은 사람을 정말 죽기 직전까지 굴린다. 약 오르게, 딱 죽기 직전까지만.
후보생들은 교관과 조교들의 인성이 저토록 사악하게 물든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심도 있는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완전히 피도 눈물도 없는 개자식들은 아닌지, 탈력증에 걸릴 즈음마다 이론 수업으로 전환하여 숨 돌릴 틈을 주었다.
“이제부터 제군들은 싸워야 할 적, 6대 마족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이론 수업 교관은 비랑이라는 이름의 통합군 소속 마법사였다.
“지금까지 제군들이 동화나 역사, 전설에서 보았던 모든 것이 이제 더 이상은 현실 너머 공상이 아니란 것을 깨닫도록.”
비랑이 단상 위에 환영 마법으로 첫 번째 마족을 빚어냈다.
“우루크, 거골(巨骨)이라는 뜻의 마족이다. 비정상적으로 장대한 체격에 야만적인 무기는 제군 10명의 머리통을 동시에 분쇄시키고도 남는다.”
낯익은 외형인지라 카밀라는 눈썹을 슬쩍 치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잡았던 놈이다. 생각보다 별것 없던데?”
“조용히.”
요한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 주의를 주었다. 단상에서는 비랑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황금시대, <화염만리>로 인계와 마계가 격리되었음에도 청동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루크나 나가의 해적질은 항상 존재해왔다. 그러나 몇몇 참사를 제외하면 침략의 규모며 주기는 지극히 국소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초반이 되면서 사태가 급변한다.
“항해술이 크게 발전했단 거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법황청은 심해의 군주의 봉인이 풀려, 바다가 점점 그 영향하에 놓이게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그래서 해양 부족들 사이에서 먼바다의 해로를 우회해 대륙 곳곳을 침탈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이 시대를 ‘감시탑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해안 주민들은 감시탑에서 경비를 번갈아 보다 해안선에 배만 출현했다 하면 부리나케 도망쳐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악몽이 시작된 건 10년 전 일이다.
바그카르 로그쿠스.
하이 쿤 타르크 1위, 락트리그의 대족장으로서(하이 쿤 타르크 1위의 족장은 대족장이라 불린다) 우루크 사이에서 전설적인 명망을 지닌 바그카르가 장마와 화산재를 휘모는 신항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 항법은 인류의 감시망, 즉 삼영룡 각하들께서 다져놓으신 해안 경계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로써 ‘저지’는 불가능해졌다.
오는 놈들을 ‘토벌’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해안 마을이 표적이 아닌, 도시 단위로 약탈을 진행한 대침략은 3년 동안 무려 3번이나 자행되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됨을 안 법황청은 청성 미른가디아에게 군권 총책을 맡긴다. 인류 통합군 대원수로 부임하신 것이다.”
청성 미른가디아는 기존에 군비 문제로 최대 8인으로 운영되어 왔던(평균 4~5인) 페이쿼리어 체계를 최대치인 12인으로 증강.
통합군을 전면 개편한다.
군규, 군율, 지휘 체계 편제 등.
인ㆍ요ㆍ아 삼족을 아우른다.
그렇게 당대 페이쿼리어와 삼족의 군대 전체를 최전방 전선에 소집, 그 유명한 <시라프> 회전에서 바그카르의 백만 군세를 궤멸시킨다.
“전투는 격렬했다. 바그카르가 <잊혀진 왕들> 중에서 무려 둘, 옛 바다의 군주와 도마뱀 군주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이지. 이날, 미자리 알터 아라다만텔을 비롯해 수많은 영웅들이 충혼비에 이름을 새기고 사라졌다. 그들의 눈물 어린 희생 덕에 제군들이 지금 여기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미자리…… 카밀라는 숨을 삼켰다. 아, 스승님의 스승님이 바로 이분이셨구나.
전투에서 전사하셨구나…….
스승님이나 타르스 님이나 그 이름을 꺼낼 때마다 왜 그렇게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몰랐는데…….
“바그카르 로그쿠스는 어린 시절 후계 다툼에서 밀려 쫓겨났다가, 아홉 형제 모두를 척살하고 대족장의 자리에 오른 괴물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놈이 자식들을 많이도 남겼단 점이다.”
“……!”
“청성 각하께서는 복수를 위한 대공세가 예상된다고 하셨다.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제군들의 몫이 될 것이다.”
모든 생도들이, 긴장감 속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조용하고도 분명하게 들렸다. 샤론이 손을 들었다.
“교관님, 동화책에 나오던 우루크는 리스타 파티한테 수백 마리씩 쓸려 나가던데요.”
“리스타 파티가 현시대에 존재했더라면 제군들은 이곳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73명의 우루크 해적이 1,000명에 가까운 수비대를 궤멸시킨 전적도 있다. 최근에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공화국 군대라서 그런 건 아닌지요?”
샤론의 질문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공화국 군대라는 말은 일종의 은유적 표현이었다. 군기가 없고, 실력이 없고, 체계가 없는 군대를 뜻하는…….
소녀 시절의 샤론은 공화국에 대한 경멸감을 거리낌 없이 나타내는 편이었다.
“아니, 해안경비대에 배치되는 건 정규군이다. 공화국 민병대는 대부분 향토 방어 체계에 동원되니 말이다.”
“……!”
“제군들에게는 실전 경험이 없다. 그렇기에 공포를 모른다. 이런 존재들이 두셋씩 짝지어서 달려드는 순간의 두려움을 모른다. 병사들은 아는데 지휘관은 모른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이러니 청성 각하께서 부임하시기 전에는 탁상공론식 전략이 대패를 낳은 전적이 많았던 거다.”
“……!”
“고정 진지, 즉 수비전의 경우에는 인류의 승률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높은 편이지. 하지만 문제는 고정 진지가 아닌 평지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전투들의 승률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우루크를 상대해야 하는지를 누군가가 손을 들어 물었다.
“청성 각하께서는 마족과 인류의 싸움을 ‘무용(武勇) 대 군율(軍律)의 대결’이라고 정의하신 바 있다. 이건 대마족 전쟁의 양상과 인류가 목표로 해야 할 승리의 방향성을 한 줄로 요약하신 명안으로 학자들도 감탄하고 있다.”
“무용 대 군율……?”
“마족과 인류는 전쟁 수행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를테면 우루크는 전사 씨족 집단의 가치관을 중요시하고, 군대란 이익을 보고 모여든 씨족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무장은 통일화되어 있지 않고, 사용하는 무기와 전술은 전부 투박하고 구시대적이다. 그럼에도 놈들은 강하다. 육신이 인류와 비교도 안 되게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류는 어떻게 맞서는가?”
비랑 교관의 염동력 마법이 분필을 움직여, 칠판에 V자를 그려놓았다.
“이렇게 맞선다. 이건 청성 각하께서 두노스 왕국의 무관인 크라우잔을 남서부 해안 경비 총괄로 맡겼을 때 탄생한 기본 전술 교리다. 철새진이라고 한다.”
“철새진?”
“철새진은 일곱 명을 운명공동체로 편성하는 분대 단위다. 병장이 진영의 중심에 서고, 장창병 둘이 그 양쪽에서 적의 접근을 차단한다. 총병 넷은 둘씩 짝지어 좌우에서 적을 사격한다.”
“운명공동체가 무슨 뜻이야?”
카밀라가 난해한 단어를 보고 옆자리의 샤론에게 물었다.
샤론은 두노스 왕조의 왕녀라 크라우잔과도 아는 사이인 게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살짝 자랑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만약 병장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누구 하나가 분대를 버리고 도망친다면 살아남은 분대원 전체가 형벌을 받는다고 해.”
“미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뭔 잘못이라고.”
“실전에서는 상당히 유용하다는데? 공포로 인해 진열이 싸우기도 전부터 붕괴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걸 막기 위해서 넣은 거래.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든 통제하거든.”
청성 미른가디아는 철새진을 대마족 전술의 기본 교리로 정립하는 한편, 보병대 병력 편성 체계를 현대식으로 재정비한다.
10개 분대는 소대(70명).
5개 소대는 중대(350명).
3개 중대는 대대(1,050명).
3개 대대는 연대(3,150명).
3개 연대는 여단(9,450명).
분대가 모이면 모일수록 철새진은 더 넓어지거나 두꺼워졌는데, 분대의 숫자와 지형을 고려하여 지휘관이 방식을 결정하였다.
“청성 각하의 군 현대화와 크라우잔의 철새진 창안 덕택에 대마족 전쟁사는 큰 폭으로 변화했다. 내가 철새진이라는 전술만 소개하면 되는 시간에 왜 등장 배경까지 전부 설명했는지를 제군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랑이 검지로 자신의 옆머리를 두들겼다.
“바로 사고(思考)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닫히지 않고 열린 사고가 전쟁의 판도를 바꾼다. 구시대적 발상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
“제군들도 저러한 전술과 전략을 짜내야 한다. 그것이 제군들의 휘하 병력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길이 되고, 대국적으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 될 테니까.”
* * *
“전열 형성, 철새진 3장!”
이론 수업은 그렇게 탁상 위의 수업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전성의 함양을 위해, 후보생들은 환영 마법을 통해 모의 전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대마족 전투 모의전’.
짧은 시간 동안 적세를 파악하고 지형을 숙지하는 동시에 후보생에게 주어진 병사들로 최적의 진영을 짤 수 있어야 한다.
“36번, 병사들을 다 죽게 만들 셈이냐! 이게 실전이었으면 전부 죽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죽은 병사들이 다시 살아나나? 현장에서도 너 같은 무능한 사관들 때문에 수십, 수백 명의 병사들이 살점 쪼가리로 변해가고 있단 말이다!”
이런 체계적이고도 실용적인 훈련 과정 덕분에 법황청 사관 자격증이 큰 대우를 받는 듯했다.
단순히 수료 과정이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확실한 실전 능력을 갖춘 사관이 되니까.
“전열 형성, 철새진 해제. 총병대 종대 5열, 창병대 3열 횡대. 병장들은 3ㆍ2ㆍ3 체계로 정렬.”
잠시,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요한 프로스트가 다른 후보생보다 열등한 부분은 신체 능력을 활용하는 것뿐이었다.
요한은 카밀라는 수료 직전까지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군사 이론을 이틀 만에 암기했다. 전술 활용 능력조차도 모든 후보생 중에서 단연 제일이었다.
“완벽하군. 흠잡을 데가 없다.”
늘 교관에게 눈물 빠지게 혼나기만 하던 카밀라와 비교하면, 요한은 칭찬 일색이었다.
샤론도 카밀라보다는 나았지만(늘 여유롭게 합격점 이상을 유지했다) 전술에 크게 조예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기병 돌파 전술에는 큰 흥미를 보였고 소질도 생도들 중에서 최고였다. 경기병 편제인 흑장미 병단을 오랫동안 보고 배운 덕택 같았다.
“뭘 그렇게 생각해?”
이론 수업을 마무리하고(파티슈에게 눈물이 쏙 나오도록 깨지고) 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샤론이 물었다.
“전술이 필요한 건가 싶어서. 아니, 애초에 내 성격이나 지능에 잘 맞지도 않아.”
“후훗, 파티슈 교관님한테 한 대 더 쥐어박히고 싶다는 소리이려나? 내가 전해드릴까?”
“아니, 이론 수업 첫날에 그랬잖아. 리스타 파티가 현시대에 존재했으면 사관후보생들이 있을 필요도 없다고.”
“그래서?”
“우리가 리스타 파티처럼 되면 딱히 전술 같은 게 필요 없는 거 아닐까?”
샤론은 잠시 카밀라를 말없이 쳐다보더니 마구 웃기 시작했다.
“농담이지? 리스타 파티는 리스타만 대단했던 게 아니라 그 동료들도 다 대단했기에 지금까지 이름이 남은 거야.”
“그런가?”
“대무녀 프리데나 궁성 키에스나 다 역사에 말도 안 되는 족적을 남겼어. 대마법사 린도 어린 나이에 상당한 마법 이론을 남겼고. 파티 일원도 아니고 프리데의 제자에 불과했던 투레이나의 업적만 해도 엄청난데.”
요한도 안경을 치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마법사 린이 만약 살아 돌아왔으면 마법의 발전이 100년은 더 빨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해. 그 어린 나이에 아퀴자드(5성)에 오르셨던 분이니 당연하지.”
“대단한 거야?”
“엄청 대단한 거야! 페이쿼리어로 따지면 네 나이에 임관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하튼 네 분 다 영웅이었단 소리지.”
요한은 린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버릇이 있었다.
“흠, 그러니까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이거네?”
“그렇지.”
“그럼 한 명만 더 찾음 되겠다.”
“한 명?”
“두 명은 여기 있잖아.”
“어디?”
카밀라가 검지로 샤론을 가리킨 다음 이어서 요한을 가리켰다. 요한이 고개를 갸우뚱 저은 반면, 그 말뜻을 이해한 샤론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아, 카밀라. 너랑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어서 너무 좋아.”
“웃지 마, 진지해!”
“그래, 그러시겠지! 요한, 안경 치키는 척하면서 웃음 참아도 무의미하니 막 웃어버려.”
“야, 야! 니들 일로 안 와? 야!”
그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기가 막혀서 웃고, 발끈해서 웃는 친구들을 뒤쫓던 소년과 소녀들은 사후 사서에 리스타 파티와 똑같은 별호로 기록되었다.
영웅(英雄).
‘붉은 여름’의 서전을 선도하여 대영웅 샤릴리온이 출현하기까지 시대를 견인한 인류의 영웅들, 이라고…….
* * *
“이제 준사관 훈련의 마지막 과정을 시작하겠다. 이 훈련은 사격, 체력, 전술 세 가지를 망라한다. 병종, 병과는 자율적으로 선택하되 가용 가능한 점수가 한정되어 있단 걸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중기병 하나를 쓸 점수면 경기병 셋을, 총병은 열, 창병은 열여덟 명까지 선택이 가능해진다.”
“……!”
“적의 파상 공세를 뚫고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합격 조건이다. 점령만 한다면 합격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도록. 5일 동안 예행이고, 마지막 날에 시험이다.”
병참을 운용하듯, 한정된 포인트가 주어지고 그걸로 부대를 편성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 훈련은 정말이지…….
어떻게 잘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어렵단 건 확실히 말할 수 있으리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살펴보면 전열이 붕괴하고 아군이 도륙당하고 있었다.
‘아, 이 시험 형식은 내 몸 간수만 잘한다고 통과하는 게 아니구나…….’
나 혼자서 적을 쓰러뜨리고 전진하는 검술이나 지금까지의 시험과는 완전히 달라.
모의 전투 시험…….
이건 그야말로 전술적 이해를 넘어 사관이 될 지도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종합 시험인 건가?
‘쏘고, 쏘고, 또 쏴서 적을 넘어뜨려도.’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군이 전멸하고 만다.
큰일이야…….
내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순간적으로 적세에 맞는 군진을 편성할 지능이 없으면 아예 아무것도 안 되는 건가?
“59번, 32점이다. 4일째 30점대라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군. 이대로라면 실격이다. 알고 있나?”
순간적인 전술적 사고는 잘 맞지 않았다.
적을 대면하는 순간, 적을 ‘내 힘’으로 어떻게 쓰러뜨릴까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아군의 군진 편성이 떠오르질 않는 것이다.
어쩌면 페이쿼리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준사관 자격 실격이란 말이다, 이 멍청한 녀석아. 최종 시험은 바로 내일이다. 내일도 이런 꼴을 보인다면 합격증은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