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29)
가짜 용사 이야기-229화(229/310)
시즌 3 : 37화
“<화염만리(火焰萬里)>가 문명 세계와 마계(魔界)의 경계를 긋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17세기 대마족 전쟁사는 남서부 해안 침탈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므로, 바다로 돌출된 렝게티 반도의 <라프타스>는 지리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요충이었다.
마족의 침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격렬해졌다.
<화염만리> 서쪽 해안에 진주한 우루크 해상 부족들과 나가 일족 잡병들이 먼 해도(海圖)에 의지하여 인류의 멱통을 노렸다.
“이에 따라 해안 방어 체계의 발전 또한 가속화되었다.”
청성 미른가디아는 렝게티 반도 주위로 흩어진 일가군도(一家群島)에 3군 6진을 설치한다.
“3군은 세 개의 큰 섬이다. 할아버지 섬. 아버지 섬. 어머니 섬.”
6진은 그보다 작은 6개의 섬으로 장남 섬, 장녀 섬, 차남 섬, 차녀 섬, 삼남 섬, 삼녀 섬이 있다.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 처음 배치된 곳이 바로 이 3군 중 2군에 속하는 모친 섬이었다. 오늘부터 다루게 될 역사는 3군 6진 항쟁사, 즉 ‘검은 여름’의 서전(緖戰)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신의 향기, 첫 출전 (3)
병단에서 간소하게 치러진 환영식을 시작으로, 첫 출병의 기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자, 그러면 우리 병단의 새로운 귀염둥이들을 소개할 테니 집중!”
지금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이들의 얼굴이 아프게 심장에 맥동한다.
“여기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은 요한!”
“그놈은 소개할 것도 없소!”
“고추 달린 놈은 필요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여기 이 라미네아 단장님의 제자 카미카미 등장! 모두 박수!”
시끌벅적한 웃음, 미소, 수다.
차례차례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는 손들의 까끌까끌한 굳은살. 스팀코어의 목탄 냄새, 연탄 냄새, 석탄 냄새.
냄새조차 선명히 기억나는 빛의 기억. 전장에는 늘 그렇게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었다.
“자, 이제 병단의 주요 인물도 소개시켜 줘야겠네.”
홍련 병단의 간부진, 곧 용사 파티는 총 4명이었다.
스승님이나 델프레드, 그리프베런 아저씨는 이미 만났고 또 소개한 바가 있다.
마지막 한 명이 바로 나태의 마녀, 멜레느였다.
“멜레느, 두 사람에게 인사해.”
“……귀찮아.”
“언니한테 혼난다.”
멜레느의 별호의 유래는 정말 알고 보면 어이없기 그지없었다.
사제 관계를 중요시하는 마녀들은 제자의 별호를 스승이 직접 지어준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멜레느는 모든 걸 귀찮아했다.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입는 것도, 즉 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기인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마녀가 되어 염동력의 귀재가 되기 전까지는 스승이 직접 씻기고 먹이고 눈앞에 데려다가 주술을 가르쳐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재능이 워낙 출중한지라, 그따위로 배우면서도 대부분의 주술을 익힌 천재였다.
사실, 천재라기보다는 광인이다.
마녀 임명식 당시의 이야기는 이미 마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 멜레느~ 너 안 일어나면 ‘귀찮음의 마녀’로 별호를 지어버린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바로 협회에 등록까지 마쳐버린다? 진짜 등록한다? 응? 스승님 진심이다? 스승님이 무릎 꿇고 빌게 만들래?
그렇게 몇 번이고 협박조의 사정사정(?)을 했음에도 멜레느는 절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됨됨이를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별호가 나태의 마녀.
작명에서 스승의 눈물이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한테 ‘귀찮음의 마녀’라는 건 붙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누구나, 멜레느를 처음 본 사람조차도 그 별호를 단숨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들, 귀찮게 하지만 마…….”
멜레느는 거의 항상, 양쪽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를 염동력으로 부유시키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광인…….
지금은 법력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못하지만, 나중에 법력을 성장시킨 뒤에는 침대에 누운 채로 다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건 아무래도 진심처럼 보였다.
“멜레느가 저렇게 이름값 제대로 하긴 해도, 무능력한 건 아니야. 남(南)공화국 무녀 실라미네 님의 직계 제자답게 방대한 분야의 주술을 사용할 줄 알거든.”
“근데…… 델프레드 아저씨도 계신데 술사가 한 명 더 필요해요?”
“술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인력난이라서 못 구할 정도지. 무엇보다 전투 마법에 특화된 델프레드와 달리 멜레느는 적 교란, 아군 통신, 정탐, 방어 결계 등 보조 분야에 다재다능하단다. 분업화된 셈이야.”
그것이 빛의 세계라면, 바로 저 너머에 어둠의 세계가 있었다. 전장에서는 두 세계가 늘 교차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쪽 환영식은 끝났으니…… ‘저쪽’에 환영식을 해줘야겠네.”
첫 출병의 날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화산재에 뒤엉켜, 빗물은 비현실적으로 새까맸다.
화산재…….
그래, 어둠의 세계는 늘 화산재를 몰고 나타났다. 어둠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 섬뜩하고 뒤틀린 악취가 선명히 떠오른다.
– 삼결마녀회에서 관측 정보를 제공했어. 5만에 가까운 우루크 군대가 이곳 제2군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정보야.
스승님께서 이곳으로 이동하던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델프레드의 말도.
– 상륙 전에 요격하면 2만은 줄일 수 있겠는데. 술식을 쓰는 클랜이 포함돼 있을까?
– 그렇게 정확한 정보는 없어.
– 하이 타르크는…… 죽여도 죽여도 다른 클랜으로…… 계속 바뀌어서 와…… 그래서 귀찮아.
멜레느가 허공을 부유하는 의자를 느릿하게 돌리며 말했다. 그 몸도 함께 돌아갔다.
– 현재 제2군에는 3천의 병력이 주둔 중이고 지휘 체계는 단장에게 이양되었소. 보병 1개 연대와 공병 1개 소대, 포병 2개 중대라 하외다.
– 이것 참, 우리를 다 합쳐도 7천 명이군.
– 그래서 무서워, 델프레드?
– 1 대 10 비율이 아니면 최전방 교전이 아니지. 교전 수칙은?
– 가능하면 심문용으로 열 명 정도의 포로를 붙잡으라고 해.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우선 사살을 원칙으로 가겠어.
불안하게, 고통스럽게, 가슴이 수런거리며 등판의 땀구멍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왜지?
대체 왜지?
습한 바람, 진득한 물비린내…… 대체 어째서, 엄마가 죽던 날과 똑같은 악취가 나는 거지?
“준비됐니?”
투구를 씌워주시던 스승님의 손동작에서, 왜, 죽기 전에 볼을 어루만지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르는 건지…….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 여기 후방에서 요한이랑 같이 지켜보기만 해. 델프레드, 바다 위에서 숫자 좀 확실히 줄여놔 줘.”
“이미 하는 중이다.”
어지러이 회전하는 시상 속에서, 바다가 시뻘겋게 얼어붙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델프레드의 마법.
델프레드의 마법은 블라도 가문의 비전 마법 때문에 빙결 마법의 색조차도 붉었다.
챙, 챙, 챙, 챙챙, 채채채채챙!
날뛰던 파도가 얼음송곳이 되어 솟구쳐, 해안선으로 밀려들던 군선들을 부수고 으깨고 깨부쉈다.
“호우우우!”
“캬, 시원해! 이게 글라도스(4성) 마법사지! 오랜만에 다시 봐도 소름이 다 돋는구먼!”
“꼬맹이들은 여기 남아 있어라! 원래 첫 전투에는 참여하는 거 아니야! 방해만 되니까!”
병사들의 함성이 치솟는 가운데, 스승님께서는 멜레느를 통해서 병단에 이런저런 배치 명령을 하달하고 계셨다.
“소규모 전투라 들었는데, 적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요한에게 그렇게 물을 때도, 가슴의 수런거림이 멎지를 않았다.
그것은, 혈투 직전의 긴장감.
피에 젖고 피에 취하게 될 용사의 길에서, 숱하게 만나게 되는…… 피비린내가 몰고 오는 긴장감을 처음 느껴본 것이었다.
“이곳 일가군도는 남서부 해안 경계 요충지라, 규모를 판정하는 단위가 달라.”
요한이 빗방울로 새까맣게 가려진 안경알을 닦으며 말했다.
“일반적 해안 도시나 마을에서 대규모 침공이라고 하는 걸 여기서는 소규모라고 해.”
실제 전투를 목도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착각하고 있었어.’
준사관 교육 과정에서 환영으로 된 마족들을 상대하면서, 어렴풋이 전쟁이 별것 아니겠구나, 하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닌 거다.
실전은, 점수제가 아닌 것이다.
얼마나 죽었고, 얼마나 살렸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죽으면, 실제로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다.
“제1열, 사격 준비!”
“적이 해안 포대로 접근합니다!”
“포대 진지를 사수하라! 에누엘 돌격대, 앞으로!”
그렇게 사라져서, 다시는 만나지게 못하게 된 어머니처럼…….
세계를 흑암으로 적시는 빗발 속에서, 쇳소리와 함성과 신음과 비명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비 너머로 사위가 흐릿했건만, 우루크의 철퇴에 머리통이 분쇄되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아.’
죽었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방금 전의 환영식 때 웃던 얼굴이 기억나는데.
쓰러지는 그 몸 위로, 죽던 날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이유를 찾고 있던 걸지도 몰라.’
이곳에서 도망칠 이유를.
엄마가 죽던 날의 모든 절망감이, 그날 그 순간, 그 현장 속에 기시감으로 겹쳐진단 이유로.
‘빛 한 점 없는 흑암.’
그 어떤 빛도 없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절망감.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다시 그날의 풍경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만 같다. 이곳의 냄새, 이곳의 악취, 이곳의 정경을 보고 있다가는.
“무섭니, 카미?”
“스, 스승님.”
“무서운 게 당연한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머리에 손을 얹으신 스승님의 손가락의 떨림이 느껴졌다. 칼자루를 붙든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실 거예요? 저기로?”
“응, 가야 돼.”
나랑 똑같이, 아니, 나보다도 더 떨고 계시는데.
그런데 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떨고 계시면서, 나에게는 미소를 지으실 수 있던 것인지 궁금했다.
“이 멋진 스승님께서는 용사(勇士)니까.”
그때, 그 순간을, 어떻게 형용해야 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여명이…… 밝았다?
세계의 풍경이 아름답게 변하고, 부슬부슬 내리던 비조차도 고요한 화음으로 젖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다.”
실제로는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는데도,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세상이 그토록 기대에 찬 환희와 찬사 속에 있을 수 있게 되다니.
“오늘도 나를 통해, 이 땅에 당신의 향기를 전하소서.”
자주, 정말 자주, 그날 스승님께서 펼치신 검무가 시상의 암막 위로 재현되고는 했다.
한 송이의 꽃…….
전쟁 위에 피어나는 꽃…….
처참하되 아름답고, 창백하되 생기 넘치는, 열정의 빛과 신비의 광채 전율로 영혼을 흔든다.
“단장님이다!”
“단장님이 오셨어!”
틀림없는 스승님이다.
틀림없는 스승님인데.
“적 1진, 궤멸됩니다!”
“단장님의 뒤를 따라라!”
“델프레드 님께서 후방을 분쇄 중이다!”
장난기 넘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고, 누구보다 상냥한 스승님이 맞는데…… 저기 계신 건 스승님이 아닌 무언가, 인간을 초월한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아름다워…….’
그 빛이, 이끈다.
그 향기가, 이끈다.
그 빛과 향기가, 세계를 끔찍하게 도륙하던 현실(現實)을 성스러울 정도로 고요한 비현실(非現實)로 바꿔간다.
– 병사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동화의 글귀를, 실제로 목도할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 그 자리에 용사(勇士)가 있었기 때문이죠.
모든 악몽을 찢어내는 한 줄기 빛, 동화에서 보던 그대로야.
이런 거구나.
이런 거였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스승님 같은 사람들을 세월이 수없이 흘러도 똑같은 명칭으로, 용사님이라고 불러온 거구나…….
“단장님의 예비대가 적을 2진까지 궤멸시켰습니다!”
“밀어내!”
“진영이 약한 곳부터 뚫어라!”
그저, 그렇게 보고 있었다.
어둠이 빛의 연무 속에서 사그라지고, 흐트러지고, 무너지고, 소멸하는 모습을.
그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확실히 볼 수 있던 걸까.
“끝났다!”
“이겼다아아아아!”
“끼얏호오오오!”
전투의 소음이 환호로 바뀌어갈 때…… 선혈에 젖고, 또 절어진 스승님의 눈동자에 피로와 고독의 암막이 내려앉은 모습을.
그 곁으로 갈 용기가 안 났다.
그때 보았던 그 고독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고 손댈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었다.
“……2군 소속 포병대인데, 이미 죽었습니다.”
또 보았다. 훗날 용사의 길로 이끌어준, 스승님의 또 다른 빛을.
분명하게 다른 뭔가가 있었다.
당신을 용사로 만들고 또 용사로 섬겨지게 만드는, 빛이라고 할지, 향기라고 해야 할지, 그런 무형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어떡해…… 늦어서 미안해요.”
이름도 모르고, 연고도 모르고,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웬 전사자의 손을 붙들고 울어주던 당신의 모습에서…….
그날, 막연히, 볼 수 있었다.
그날,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날,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 기원 이전부터 오랜 시간대 속에서도 항상 똑같은 이름으로 불려온, 용사란 무엇인지…….
“이게 어찌 용사님께서 사과하실 일이겠습니까…….”
14세가 되던 기원력 1671년의 초여름.
나는.
동화 속 허구가…… 용사라는 빛으로 현실에 체현되는 광경을 보았던 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