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3)
가짜 용사 이야기-23화(23/310)
제23화
기원(起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6)
“교관님…… 몸속에서 뭔가가 날뛰는 것 같습니다.”
“그래?”
“이상하게……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쇄(鎖)가 가라앉질 않습니다.”
차르르릉…… 카이센의 몸에 활성화되어 고요하게 떨리는 쇄(鎖)는 황금빛으로 찬란했다. 여태껏 이렇게 눈부신 빛을 뿜는 생도가 있었던가?
“뛰어봐. 어서.”
카이센은 온몸을 찢고 나올 것 같은 힘의 파장을, 발끝에 집중하여 구덩이 앞으로 뛰어올랐다.
그 한순간.
매가 먹잇감을 향해 곤두박질치듯이, 소년의 신형이 허공을 길고 빠르게 날아 저만치 멀리에 공중회전하며 착지했다.
“뭐……?”
“무슨…….”
997기 생도들의 눈이 당혹감으로 커졌다. 무리도 아니었다. 카이센은 자신들보다도 저만치 멀리에 내려앉아 있었으니까.
대충 구덩이의 반경 거리쯤 더?
일순간 먼 곳의 점이 되어버린 카이센을 바라보며 올리에르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게 요슈하르 각하의 용령인가……?’
그날 그렇게 카이센은 역대 수석 생도들이 쌓아 올린 기록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나갔다. 모든 기록을 다 뒤엎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라……?’
강판 부러뜨리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쯤, 갑자기 의식이 흐릿해지더니 지면에 고꾸라져 혼절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분명 정오의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눈을 떴을 때는 황혼이 저물고 있었다.
교관들이 머리맡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수석 교관, 카이센이 일어났습니다.”
“시간은?”
“4시간이 좀 넘었습니다.”
카이센이 말했다.
“수석 교관님, 죄송합니다. 뭔가 갑자기…….”
“사과할 것 없어. 용인 신관께서 네 상태를 보고 가셨으니까.”
“……?”
“잘 들어. 너는 10분 정도 힘을 쓴 뒤에 쓰러졌어. 다시 측정해 봐야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였어.”
“네.”
“그리고 4시간 뒤에 깨어났지. 이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냐?”
카이센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교관의 물음의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아인들이 증기기관을 쓰는 건 알지?”
“네.”
“그것과 마찬가지야. 과도한 힘이 가해지니 한순간 폭주하다가 결국 무너지는 거야. 요컨대 네 몸이 용령석의 힘을 견디지를 못한다는 말이 되는 거고.”
카이센의 눈앞에서 세상이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절망이 어둠으로 머릿속을 적셨다.
“저는…… 실패작이란 겁니까?”
수석 교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으로 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글쎄, 그걸 어떻다고 단언할 수가 없네. 지금 상황에서는 말이야.”
“……?”
“상시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다른 페이쿼리어들과는 달라. 너는 시간제한을 조건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사용하는 힘이 말도 안 되게 강해.”
시간제한……?
올리에르 듄 제라예가 손가락을 3개 펴 보였다.
“통상 수치의 두 배에서 세 배다. 너는 혼자서 페이쿼리어 두 명, 또는 세 명의 힘까지도 발휘할 수 있어.”
“……?!”
“페이쿼리어의 힘은 단순한 덧셈으로 계산할 수 있는 힘이 아니야…… 네가 역대 최강의 페이쿼리어가 될 거란 건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들뜬 듯한 목소리로, 카이센의 힘을 설명하던 올리에르의 표정이 문득 어두워졌다. 올리에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문제는 그게 단 10분뿐이었단 거다. 신관들께서 말하길 힘을 전력으로 쓰면 더 짧아질 수도 있다고 했어. 이러니 난감한 거야. 4시간 휴지기가 필요한 페이쿼리어라니, 말도 안 돼.”
그 의견에 반박한 것은 군사이론 담당 교관 라헬 듄 제라예였다.
“그 10분 안에 적을 섬멸하면 됩니다.”
“전장은 반상 위의 말놀이가 아니야.”
“모든 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카이센은 이미 소년병 시절에 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전과를 보였죠. 용령의 힘을 상시 발휘하지 못해도 잘 싸울 겁니다.”
라헬 듄 제라예와 카이센의 시선이 마주쳤다. 라헬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는데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요는 위급한 상황이나 막강한 적을 만났을 때만 용령을 해방하면 된단 겁니다.”
“라헬…….”
“수석 교관님, 이 생도의 존재는 곧 전황에 파란을 일으킬 겁니다. 적이든 아군이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두 명, 아니 세 명분의 힘까지 발휘하는 페이쿼리어라니!”
라헬 듄 제라예의 외침에 교관들이 수군거렸다. 그 목소리에 깃든 것은 희망이었을까. 카이센은 머릿속이 멍했다.
“그건 맞지만 전장은 변수투성이야. 4시간의 약점…… 그걸 어떻게든 막아야 할 텐데.”
“…….”
“카이센, 몸을 일으킬 수 있겠나?”
“네.”
“계속 테스트를 진행해보자. 네 힘은 규격 외에 이례적이다. 우리로서도 데이터를 더 쌓아야 뭔가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아.”
힘에 의한 반동이라…….
확실히 깨어나긴 했으나 의식은 몽롱했고 삭신이 쑤셨다.
그럼에도 카이센은 일어났다.
일어나야 했다.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표정을 보니 아닌데? 무리하지 마라.”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그의 삶이 언제 한번 순탄한 적이 있었던가.
한번,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생은 늘 오르막의 비탈길이었으며 카이센은 그 길을 오르고 또 올라와야 했다. 포기한다면 그저 떨어져 죽을 뿐이었다.
– 카이센, 만나러 가자. 카밀라를 단장님 곁으로 데려가서 쉬게 해주자…….
누군가와의 약속이.
그리고 어머니와의 약속이.
소년을 앞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앞으로, 더 앞으로…….
다녀올게요, 라고 했던 그 말은 자신과의 약속이자 운명의 속박이었으므로.
“아닙니다. 정말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날, 카이센은 교관들에게 둘러싸여 상당히 많은 신체검사를 행했다. 용령을 해방하고 4시간 쉬기를 거듭했다.
“강판을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아예 쪼개 버리는군요.”
“도약력도 진각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유연성은 말할 것도 없군요.”
모든 검사표가 정리되었을 때, 교관들은 하나둘씩 탄성을 금치 못했다. 멍하니 저들끼리 쳐다보며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미 통상적인 페이쿼리어 수준을 뛰어넘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겠지만, 그래도 신체 능력 하나만 따지고 보면 확실히 그 이상입니다.”
“4시간의 리스크만 빼면 말이지.”
올리에르 듄 제라예만이 그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교관들이 애써 외면하려 했으나 그 문제는 확실히 큰 문제였다.
“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머리가 제일 비상한 라헬 듄 제라예가 손을 들었다. 올리에르가 고개를 끄덕여 발언을 허락했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
“4시간이 문제라면, 격전지에 투입할 때 그 시간 동안 지켜줄 수 있는 파트너를 주면 되는 일 아닐까요?”
올리에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라헬이 더 밀어붙였다.
“격전지에 투입할 때 다른 페이쿼리어들을 보좌진으로 두게 하죠. 아니면 카이센이 보좌진으로 들어가든가.”
“페이쿼리어는 한 명이 여단급 전력이야. 안 그래도 숫자가 부족한데 그걸 격전지에 둘씩 투입한다고? 우리 선에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수석 교관님이 추기경단에 잘 고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올리에르가 한 발짝 물러서며 선을 그었으나 라헬의 의지는 단호했다.
“카이센은 인류 최강의 병사가 될 겁니다. 어쩌면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조차도 넘어, 동란기의 영웅 리스타 알터 쉬르팽조차도 능가할지도 모르죠.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됩니다.”
생각에 잠긴 채 턱을 긁던 켈리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터가 될 수 있다면 말이지. 우리처럼 듄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러자 라헬이 아, 하고 짧은 탄식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성검 적합성 시험을 보지 않았군요.”
* * *
“다시 기초적 소질을 확인해 보겠다. 이걸 하지 못하면 <성검의 요람>에 들어가봐야 성검의 선택조차 못 받는다.”
페이쿼리어 양성 수업이 신성공방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었다.
수업의 내용은 명료했다.
대좌에 꽂혀 있는 양산형 성검, 그 성검을 일깨워내 뽑아내는 것.
“저건 무슨 훈련인가요?”
어린 도제가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풀무질로 땀을 흘리던 야장이 답했다.
“양산형 성검 디알레구먼.”
디알레에는 극위성검과 달리 딱히 이렇다 할 특색이 없었는데, 엘시아레라 불리는 요정족의 팔라딘들에게 창의 형태로 보급되는 무기였다.
“용령의 힘으로 성검을 깨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는 거야.”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던 야장이 씩 웃으며 저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길 봐. 아예 눈부실 정도지? 저게 바로 노력으로는 닿지 못하는 재능이라는 거다.”
야장의 시선 끝에서, 바람결에 백발이 나부끼는 소녀가 칼을 쥐고 서 있었다. 997기의 차석, 오필리아였다.
끽, 끼긱 끼긱…….
적합자의 부름을 받은 디알레의 칼날에서 선뜻한 광휘가 피어오르더니, 폭발적인 기류가 칼날 주위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네, 진짜 눈이 부실 정도네요.”
“그리고 저걸 봐라. 저런 건 적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쪽을 바라보는 야장의 시선에 동정심이 어렸다.
백발의 청년, 카이센.
하지만 오필리아와 달리 디알레가 뿜어내는 빛이 심히 희미했고 어떤 소리도 흘리지 않았다.
“카이센! 기원(祈願)을 담아서 디알레와 네 용령을 공명시켜라! 힘으로만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이미 공명시키고 있었다.
용령은 이미 활성화되어, 혈관 속에서 맹렬히 날뛰는 용의 힘이 뼛속까지 아찔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저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거지?’
디알레는 그저 희미하게 명멸하고 있을 뿐, 다른 생도들처럼 빛나지 않았다. 전력을 다 쏟아붓고 탈진한 뒤에야, 카이센이 망연히 물러섰다.
“저 정도면 듄 제라예 확정이겠는데.”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하긴, 대체 남자가 어떻게 페이쿼리어가 되겠냐고…….”
그리고 먼발치에서, 카이센을 바라보는 오필리아의 눈에 경멸이 깃들었다.
“흥…….”
* * *
<성검의 요람>에 들어가기 전날에 짧은 외출이 허가되었다.
내일은 페이쿼리어가 될지 교관이 될지 결정되는 날이다.
근데 외출 허가를 받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타르시요가 자신을 데려가야만 한다고 우겼다.
카이센의 몸이 엄청나게 커졌으니 자신은 그 등 뒤에 숨으면 된다는 논리였는데, 그딴 게 될 리가 없었다.
분명 될 리가 없을 텐데, 교관들은 타르시요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고 용들도 마찬가지였다.
알아채지 못한 건지,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건지.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지금 광장에서 타르시요가 맑게 웃으며 분수대 위를 걷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연유에서였다.
카이센은 도시를 찬찬히 살폈다.
법황청이 위치한 이곳 <하랄도니키>는 여태껏 보았던 어떤 도시보다도 찬란했다.
신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넘치고, 뱃길을 따라 항구를 누비는 뱃사람들의 입에선 노래가 떠나질 않았다.
도시 곳곳마다 교회가 들어서 광룡정교회의 성호인 칠각형 성화(聖火)가 하늘을 밝혔다.
교회마다 금칠한 종탑이 솟아 시간마다 빛의 은혜를 온 누리에 전했다.
“평화롭네…….”
카이센의 어투는 허전했다.
창성의 언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신룡의 도시는 눈부시도록 위엄찼다.
세상이.
세계가 이리도 평화로울 수 있다니.
이곳 신민들에게 전화(戰火)라는 것은 먼바다 너머의 존재하지 않는 소문처럼 보였다. 지금 저 남부 전선에서는 통곡만이 가득한데.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에는 온 세계가 행복했다고 해. 지금 우린 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래. 피를 흘려야만 하는 시대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책을 보았으니 알지. 카이센, 표정이 왜 그래?”
“성검 적합성 평가 때문에.”
성검 적합성 평가.
용령석 주입에 성공한 생도들의 최종 과정. 올리에르가 그 시험을 전달해주며 한 말이 떠올랐다.
– 너는 당연히 아라다만텔을 쓰고 싶겠지?
– 물을 것도 없죠.
십문자도는 태도의 검술이다.
태도를 통해서만 그 힘이 십분 발휘되는 기술. 장검이나 소검, 대검 따위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했다.
– 카이센, 하지만 네가 성검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성검이 너를 선택해야 하는 거지.
– ……?
– 네가 아무리 원해도, 아라다만텔이 널 원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이지. 듄 제라예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교관들처럼 말이야.
올리에르의 경고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아라다만텔이 날 원하지 않아?
그렇게 된다면, 그때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여태껏 배워온 십문자도는?
키슌과의 싸움에서 해방시켰던 게 카밀라를 살리고자 하는 아라다만텔의 의지였다면…… 이제는 날 외면할 수도 있는 건가?
그러자 타르시요가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라다만텔은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뭔 소린지 모르겠다.
타르시요는 늘 성검을 저렇게 사람처럼 불렀다.
“타르시요.”
“응?”
“넌 무슨 성검을 원해?”
“샤릴리온.”
“샤릴리온? 맞아, 그때도 샤릴리온이 어쩌고 그랬지. 그게 뭔데?”
타르시요는 카이센이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짜증 낸다기보다는 즐거워했다. 이날에도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진짜 용사가 다룬 진(眞)성검.”
“진성검?”
“샤릴리온이란 법황청에서 보관 중인 진성검이야. 내 영혼의 단짝이지. 너와 아라다만텔처럼 말이야.”
타르시요가 방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는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말을 덧붙였다.
“둘이 먼저 가 있어.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네가 가장 날 필요로 하는 순간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타르시요는 그렇게 말했다.
곧 바람에 부서질 것같이 가녀린 몸으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를 붕대를 얼굴 아래 전신에 감은 채로.
그리고 그날 이후로 법황청을 떠나게 된 후부터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타르시요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이제 안녕, 그때까지 작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