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31)
가짜 용사 이야기-231화(231/310)
시즌 3 : 39화
“리암과 샤릴리온의 등장 이전까지, 17세기 말은 영웅시대가 아닌 암흑시대(暗黑時代)로 불려왔단 것을 저번 시험에서도 출제한 바 있다.”
용현 레인 루드윅의 치세 동안 ‘은(銀)의 시대’라 불린 평화는 16세기 중반 ‘안리달 사변’으로 균열이 일었다.
그 시대를 ‘청동의 시대’라 한다.
용현의 후계인 삼영룡과 공허의 사도 아르젠이 간신히 ‘일상적 평화’를 되찾았으나, 청동이란 이름대로 약하고 불안정했다.
“아르젠 사후 17세기 전체를 ‘철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마족의 해안 침탈도 침탈이지만, 철에 피가 묻는 분쟁의 시대였기 때문이지.”
암흑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드리온 대륙의 시대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대륙은 내전이 한창이었다.
공화국의 칠대도시 중 하나 주색(朱色) 도시, <랑바르드>를 대표로 한 분리주의자들이 ‘도시국가는 도시국가대로, 왕국은 왕국대로’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인간의 자유 따위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상은 ‘군비 증강에 의한 세금’을 부담하기 싫은 것뿐이었다.”
<랑바르드>는 내륙에 위치하였기에 해안 지대의 <라프타스>와 달리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멀찍이 비켜서 있었다.
내륙에서는 음모론마저 돌았다.
마족의 해안 침탈은 모두 <라프타스>를 위시한 해안 도시들이 내륙 도시들의 고혈을 빨기 위한 선전이라고…….
“진실은 어찌 되었든 간에, 내륙에서는 통합주의자와 분리주의자들의 무역 전쟁마저 발발되던 시기였다. 그 반면, 대통합을 이룬 마족들은 <화염만리> 이남에서 여러 방면으로 집결하고 있었지.”
“교수님, 인류가 그걸 알 방법은 없었는지요?”
“당시 대마족 전쟁의 전문가인 혈마 병단도 해당 괴현상의 진모를 밝혀내지 못했다. 홍의 사제 아이딘의 지휘로 <화염만리> 이남으로 수색도 나가던 그들이건만, 해안 부락이 비어 있었다는 기괴한 정보만을 가져왔고.”
저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 채, 최전선에 진주하던 홍련 병단의 1671년 입하(立夏)는 한산하게 흘러갔다.
아, 어떻게 알았겠는가…….
당시 열네 살을 앞두고 있던 내가,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바로 그 시대적 전환점에 서 있던 것이라고는…….
“학계에서는 기원력 1671년 6월 5일을 기점으로 청동의 시대가 암흑시대로 전환되었다고 본다. 마침내, ‘검은 여름’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당신의 향기, 첫 출정 (5)
1671년의 입하(立夏)는 전장에 관하여, 그리고 검의 기원에 대해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건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배웠던 모든 것이 용사(勇士)로 가는 길 위에서 제일 중요한 발자취로 새겨졌으니까 말이다.
“검순아, 좋은 아침.”
“…….”
“검순아, 좋은 아침이라고, 새꺔마. 대답 안 해?”
“…….”
“내 말 안 들려? 대답.”
누가 들으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대화처럼 들릴 수 있겠다.
칼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걸기 시작했으니까.
실제로 요한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더니, 다음 달 병참 보급을 나가는 단원을 따라가 정신병 치료에 관한 책을 구해오기도 했다.
“뭐? 검의 기원?”
어이가 없어서 뭘 하는지 가르쳐 주었더니, 또다시 요한의 소심 모드가 발동되었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나는 또 마음에 병이라도 든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걱정은 개뿔! 네 그 약해빠진 몸이나 걱정해!”
“그나저나 그런 훈련법이 신검합일로 이어지는 통로라니…… 그건 좀 놀라운걸. 신검합일은 마나체인 통제 기술의 역치에 다다르면 완성되는 건 줄 알았는데.”
동의하는 바다.
절정 고수의 문턱에서 신검합일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게 이런 걸로 가능한 건지?
“근데 내가 알기로 검의 기원은 칼에 기도문을 읊는 것 같던데, 네 기도문은 ‘좋은 아침, 대답 안 해, 이 새끼야?’인 거야? 그리고 검순이가 그 검의 이름이야?”
“아, 아니?! 그건 그냥 연습이거든?! 남이 하는 거 죄다 엿듣기나 하고 있어, 이 음침한 안경잡이 녀석! 그거 범죄야! 범죄라고!”
“윽, 으윽, 그만 때려봐! 그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해! 뇌는 대뇌피질의 기억 영역이 있어서 단기 기억을 잊으려면 기억 담당 영역을 소거해야 해!”
“오기로 잊어! 잊으라구! 뇌를 박살 내버리기 전에!”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니까!”
요한이 카밀라에게 투닥투닥 처맞는 꼴을 보던 홍련 병단 단원들이 스쳐 지나가며 웃었다.
“햐, 언제 봐도 사이가 좋네.”
“이것들아, 더 늦기 전에 그냥 대놓고 사귀든가 해라.”
“맞아. 카밀라가 페이쿼리어 되고 나면 늦는다? 연애하고 싶어도 못 하거든.”
스릉…… 예리한 쇳소리가 칼집을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검순아…… 그냥 오늘 다 죽여버릴까?”
“히, 히익! 도망쳐! 카밀라가 전후 스트레스로 미쳐버렸다!”
“세상에 마상에, 저 섬뜩한 눈빛은 용사가 아니라 살인마 아녀?!”
검의 기원은 후일 아라다만텔을 계승할 때에나 완성되었으나, 그 완성되지 않는 훈련이 따분하다거나 지루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어떤 기도문을 읊을지,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다채롭게 물들고는 했던 것이다.
‘스승님과 똑같은 기도문을 쓸까?’
아니, 아니야.
내 소망을 담는 게 중요하댔어.
‘근데 나는 멋진 글귀 같은 걸 잘 모르는데.’
요한은 잘 알 테니, 한번 물어볼까?
아니, 절대 안 돼.
그 음침한 녀석, 또 엿들으면 그 안경에 자물쇠를 채워버릴 거야.
– 너, 너무해…….
요한이 심약 모드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무시한다.
흠, 왜인지는 몰라도…….
요한에게 걸리면 부끄러운 일이 두세 배는 더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놈은 그만 신경 쓰고, 하던 걸로 돌아가자면.
‘굳이 내 소망을 담으라면…… 스승님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요?’
스스로 생각해놓고 고개를 미친 듯이 도리질했다.
아니, 이건 안 되겠어.
절대, 절대 안 돼.
연습할 때마다 스승님이 엄청 웃어댈 게 뻔했다. 다른 페이쿼리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샤론도 그럴 거고.
그래도 뭐…….
재밌기는 하겠네…….
그 기도문을 읊으면서 기원을 연습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분명 그 옆에서 훈련을 함께하실 당신의 웃음소리도 함께 상상되었다.
이상해, 정말이지 이상해…….
왜 그것만으로도…….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나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인지…….
“검의 기원을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해져야 해.”
“제 마음이요?”
“응, 마음. 카미의 마음을 검 위에 담는 거야. 내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이 검으로 무엇을 이룰지를 선포하는 일이다’라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간단해. 카미는 검을 쥔 이유가 뭐니? 어째서 참혹하기 짝이 없는 전장에서 검을 휘두르려 하니? 어떤 꿈이나 소망이 있기에?”
스승님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았다.
– 오늘도 나를 통해, 이 땅에 당신의 향기를 전하소서.
너무 시적인 표현이고 장황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였다.
향기…….
어쩌면 저 기도문 덕분에 스승님의 칼에서는 향기가 나던 것일까?
– 나, 한 알의 밀알이 되리.
샤론 그 오만한 녀석도 꼴에 왕족 아니랄까 봐, 겉멋이 팍팍 든 기도문을 외웠단 말이지?
“자, 물론 검의 기원도 중요하지만 검술이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
생각에 잠기려던 차에 스승님이 검지로 이마를 톡 밀면서 방그레 웃었다.
“그러니 짠짜잔! 오늘부터는 십문자도의 제7식을 배우겠습니다!”
그런 사소한 순간조차 좋았지만, 그 마음을 힘껏 표현했어야 했노라고 후회한다. 평생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으니…….
‘어머니 섬’, 즉 제2군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십문자도 훈련과 기원 훈련이 병행되었다.
제6식 섬무참을 완벽하게 익힌 것은 아니었으나 제7식 훈련도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이다.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進雷龍). 몸 전방에 전룡의 형상을 두르는 기술로, 돌발격과 함께 십문자도의 유일무이한 돌진기야.”
다만 사용 범주가 더 다양했다.
단독 초식으로 쓸 경우 방어 기술로 사용이 가능한 데다 다음 초식의 강화 기술로도 사용이 가능하단 점이었다.
요컨대 제5식 돌발격과 연계하면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지닌 돌진기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그게 아니야! 마나하트를 체외로 완벽하게 전개시켜야 해! 방어막을 펼친단 느낌으로!”
배웠다.
배우고 또 배웠다.
“뇌룡의 이미지는 나중에 형상화시켜도 돼. 지금은 일단 전방 180도 전체를 마력으로 두르는 걸 목표로 하자.”
검을 배우다 경락계에 무리가 오는 시점에는 검의 기원을 배웠다.
“기도문은 정했니?”
“아뇨, 아직이요.”
검의 기원.
검에 마음을 담는 것.
단순히 일상적인 소통을 넘어서, 스스로의 신념을 담는 건가? 그리고 검이 그 신념에 공명해줘야 완성되고?
‘내 마음이라…….’
스승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걸 멋들어지게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스승님 곁에 있고 싶어요.
그때 그런 말을 우아하고 고상하게 표현해낼 지혜가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우루크의 공세가 다시 포착되었대. 카미에게는 이게 두 번째 싸움이겠구나.”
그냥 그렇게, 싸움 없는 나날 속에 평생 거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소망은 멀고, 더 멀어져간다.
스승님이 찾아오셔서 저렇게 말씀하신 건 새벽에 검순이와 기원을 향한 건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였다.
“무섭지 않니?”
다시, 그 악취가 찾아온다…….
검순이를 쥐고 있던 손이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스승님은요?”
“공포가 없는 사람이 어딨겠니.”
“무서워요?”
“용사(勇士)라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게 아니야.”
“그런데 왜……?”
왜 싸우러 가세요?
끝내 잇지 못한 말이었다.
스승님께서는 일말의 슬픔을 머금은 눈으로 수평선 너머로 사위어가는 달을 바라보았다.
“용사에 대한 정의는 페이쿼리어들마다 다른데, 나는 넨 고모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참 좋아해. 용사는 말이야.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힘없고 아픈 사람들을 대신해서 용기를 내주는 사람이래.”
그러니까.
힘이 없고, 몸과 마음이 약해서.
용기를 내야 하는데 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어디든 가야만 해.
“그게 용사가 용사라고 불리는 이유래. 말뜻이 풀이가 되면서 뭔가 마음에 확 와닿지 않니?”
오늘이라도, 누군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리라.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스승님께서 숨 죽여 흐느끼시는 모습을 보이신, 평생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던 것이다.
“미안해서 어떡할까, 카미. 이런 곳으로 널 데려와서…….”
“……?”
“여기는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기억들만 가득하게 되는 곳인데……. 이제야 행복한 추억들을 얻어가던 차에……. 널 무책임하게 이런 곳으로…….”
네 개의 달이 수평선 너머로 잠기고, 여명의 어스름이 밝아오는 시간대가 올 때면 카밀라는 자주 그날의 순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그 상상을 기억 위로 덧그린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고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날 눈물 흘리시던 스승님께 드리는 상상을.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기억들만 많았던 건 맞아요. 그리고 행복한 추억들을 얻어가던 것도 맞죠. 모두 다, 스승님과 만난 뒤부터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었을까.
이렇게, 나의 마음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스승님을 만나고 난 뒤로는 매일매일이 즐거워요. 잊질 못해요. 처음으로 검술 검정시험에 합격한 날이나, 병단 아저씨들이 응원해주던 거나, 지검제에서 그렇게 환성과 갈채를 받은 것도 있고…… 하나하나가 다 행복한 기억들뿐이에요.”
그러니까요, 스승님,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사과하지 마세요.
사과해야 하는 건 저예요.
준사관 임관까지 해놓고, 정신적으로 미숙해서 스승님 마음을 아프게 했잖아요.
그런 말을 해드리지 못했다.
그 말하지 못함이, 평생의 후회로 삶에 예속되어 늘 숨이 막히게 만들었다.
그 어리고 유약했던 날에는 그 상황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어느 상황에서든 밝게 웃던 스승님이 우신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기에 막연히 죄송하단 마음이 들었다.
내가 미숙해서…….
내가 걱정되시는 건가…….
그런 심정에 말을 마음속에서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이렇게만 말했다.
“어, 음…… 괜찮은데요, 뭐, 전장이라고 그렇게 전부 나쁜 것 같지도 않고요……. 힘들면 여기 검순이랑 이야기하면 되고 뭐…….”
다만 어색한 침묵만이 기억난다.
밤새 뛰놀던 반딧불이 바스락거리던 소리가 기억난다. 매미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던 것도 기억난다.
그것이 1671년 6월 3일 새벽의 기억. 긴 여름의 전초전이 시작되던 날의 기억.
긴 여름날의 기억…….
그로부터 이틀 뒤, 사서에 ‘검은 여름’으로 명명되는 악몽이 시작되어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된, 한여름 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