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33)
가짜 용사 이야기-233화(233/310)
시즌 3 : 41화
– 네 최고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냐?
이건 아직, 빛의 세계를 떠나기 전의 기억.
<하랄도니키> 법황청.
종합 전투 훈련을 마무리하던 날, 교관 파티슈 듄 제라예는 문득 그런 질문을 했었다.
– 천재적인 발도 재능이요?
– 개소리하면 처맞는다.
– 죄송합니다.
파티슈는 카밀라의 이마를,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궐련으로 두드렸다.
– 바로 상상력이다. 내 추측이지만, 너는 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상상을 한순간에 해낼 수 있어.
– 그게 누구나 다 할 수 있던 게 아니라고요?
– 그래, 하나의 상상을 하는 게 전부야. 너, 청성 각하께서 ‘순백의 꿈’으로 어떻게 미래를 엿보는지 알고 있냐?
– 모르죠.
– 각각의 미래를 품은 세계선이 수없이 존재하는데, 그것들 중에서 여러 세계선이 교차하는 상황이 있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란 거지. 즉, 그 미래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나 할까?
왜 갑자기 청성 미른가디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카밀라는 머리가 나빠서 이런 에두르는 내용에는 쥐약이었다.
그 난색을 보고는 파티슈가 한숨을 내쉬고는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었다.
– 너도 똑같이 해라, 카밀라. ‘순백의 꿈’과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거다. 그게 네가 가진 최고의 강점을 갈고닦는 길이 될 거야.
당신의 향기, 첫 출정 (7)
양쪽 오금이 깊숙이 베인 우루크 백장의 몸이 삐걱거리더니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해.
하지만 우루크들이…… 이딴 짓을 할 것이라고는 아직 상상의 저장고에 들어 있지 않았다.
‘미친, 저 상태로 몸을 돌린다고?’
쓰러지는 힘까지 모두 담아, 겨우 붙어 있던 무릎의 근섬유를 모조리 찢어 가면서까지, 몸을 있을 수 없는 자세로 돌리는 게 아닌가.
동시에 철퇴를 휘두르며.
카밀라는 순간 본능적으로 방어의 자세, 원(圓)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십문자가 만들어지질 않는 것이다.
‘칼집, 칼집을 두고 왔잖아.’
머릿속이 새하얗게 젖는다.
이미 눈앞까지 밀려든 죽음 앞에서 회피 기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후회의 주마등만이 치솟는다.
어설펐어, 상대는 저런 식으로, 저런 방식으로 공멸을 생각했는데, 이렇게 넘어뜨리면 바로 목을 겨눌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어.
“……!”
그러나 그 철퇴가 카밀라의 머리를 부수는 일은 없었다.
그 일순간 들려온 파공음, 별안간 우루크 백장의 몸이 세 토막으로 찢어졌다.
맹금류의 발톱으로 백장의 몸을 찢으며 카밀라의 눈앞에 폭풍처럼 착지한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에누엘 돌격대의 후예.
바로 옛 신화시대 최강의 전사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전사 부대…… 그 후예들 중 최고의 전사에게만 대대로 주어지는 직책, 전사장 그리프베런이었다.
‘저걸 막았어……?!’
백장의 철퇴 쥔 손을 단번에 잡아 뜯는다.
다른 손으로는 백장의 흉부를 단숨에 꿰뚫어 심장을 터뜨리고는, 놈을 발로 밀어 넘어뜨려서 손을 빼냈다.
야성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힘의 단순한 우열을 가리키는 지표.
‘강해, 말도 안 되게…….’
수인병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신화시대 최후의 전장까지 종군한 이들을 선조로 둔 이들.
그러니, 약할 수가 없다.
저렇게, 강한 것이 당연하다.
그리프베런이 하이 타르크 족장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과연 사실이었구나.
“전사들이여! 에누엘 돌격대가 일선을 맡겠다! 그때까지 자네들은 진용을 수습하라!”
수인병들의 난입에 용기백배한 병사들로부터 함성이 쏟아졌다.
종심이 찔려 흩어질 뻔했던 진용이 이전보다 더욱 굳세게 뭉친다.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거대했다.
다른 격전지에서 그 이변을 기이하게 느낄 정도로.
“뭐지? 무슨 일이야?”
“단장, 북문이 돌파당한 거 아닙니까?”
“카미, 카미가 거기에 있는데.”
라미네아가 다급히 숨을 삼키던 그때, 빛의 구체를 품은 정령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구체는 문자열이었다.
문자열을 둥글게 말아둔 것으로, 나태의 마녀 멜레느의 통신 수단이었다.
[북문이 돌파될 뻔했으나 준위 카밀라가 격전지 선봉에서 용감히 싸워서 시간을 벌어냄. 그리프베런이 도착하여 정리 중.]수인병들이 포효하며 우루크를 덮치던 그때, 그리프베런이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따라오겠느냐?”
카밀라는 그 대답으로,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던 칼집을 주워들었다.
그리프베런의 눈이 빛났다.
훌륭해, 방금 죽음의 문턱까지 갔는데도 전사의 기백이 죽지 않았어. 오히려 더 연단되었다.
“그러하다면 나를 보좌하라, 위대한 엘디아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는 용기의 그릇이여!”
카밀라는 즉시 그리프베런의 뒤를 달리며, 우루크들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면서 생각하고, 상상하고, 움직였다.
‘집중, 집중해야 해.’
보법 하나, 참격 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어려울 거 없어.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숙달될 때까지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곁에서 응원해 주시던 스승님이 계셨잖아.
– 검의 기원이란 말이지, 검에 카미의 마음을 담는 거야. 이 검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이 검과 함께 어떻게 되고 싶은지.
내 검의 기원은, 당신을 처음 만나게 된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몰라요.
저는, 되고 싶어요.
스승님처럼 되고 싶어요.
스승님이 펼치신 환상의 검무를 기억하고 있다. 그 검무에 도달하기까지 해주신 수많은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거야. 하나하나, 차분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베고, 피하고, 막아내고, 십문자도 제1식, 원(圓), 진용을 선도하면서, 다시, 십문자도 제4식, 발(發), 베고, 피하고, 막아내고…….
‘우루크 전사의 실력은 개체 차이가 있지만.’
지검제 본선 선출자보다 살짝 아래거나 동급, 하지만 카밀라는 지검제에 나갈 때보다 더 강해졌다.
‘그리프베런 아저씨에 비하면 아직 약해 빠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상상(想像)하는 거야.’
신중하게 약점을 노리자.
차분하게 춤을 추자.
검에 마음을 담아서, 검과 함께 춤을 추자. 그때, 종합 전투 지휘 시험의 경험을 토대로 삼아서.
‘저 꼬마…… 대체 뭐야?’
멜레느는 눈을 떼지 못했다.
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라미네아와 비교하면 엉망진창에 어수룩하고 미숙하고 어색하기만 한 검무이지만…….
아니, 오히려, 그런 검무이기에, 이 전장을 이렇게나 눈부시게 밝힐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이 너무 여려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
오히려 여리기에, 그래, 여린 것조차 닮았기에, 훗날 라미네아와 똑같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작은 불꽃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거대한 절망을 매섭게 삼키는.
불꽃의 열기가 느껴진다.
지금 저 자리에, 용사(勇士)가 있다.
– 그럼 엄마, 내가 엄마의 용사가 될게요!
어린 날의 추억을 베어내는, 아니, 그 추억을 칼날에 휘감아 현실을 찢는 검광(劍光).
– 어머, 기뻐라.
베고, 피하고, 구르고, 찌르고, 발로 지면을 박차고, 허공에서 돌며 상대를 베어내고, 뒤로 물러서고, 그리고 적막…….
뭐지……?
왜 적막이……?
터지기 직전의 호흡을 추스르며 그리프베런의 몸에 기대선 채 원(圓)의 자세를 잡고 나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그리프베런도 전투 자세를 잡기는커녕, 문득 카밀라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게 아닌가.
왜지?
응? 왜?
그리프베런이 씩 웃은 순간, 주위에서 장마의 소음조차 묻을 정도로 폭풍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부, 북문 사수 성공……!”
“크으으으, 이겼다아아아아아!”
“카미카미, 이 젠장, 우라질 귀여운 녀석! 이 녀석 봤어? 방금 완전 단장님을 보는 줄 알았다고!”
죽음의 암흑에 삼켜지지 않은 이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웃고 울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과 어깨를 때렸다.
“아뇨, 전…….”
그 기쁨에 속할 수 없었던 건, 적의 시체와 뒤엉킨 아군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때 알게 된 걸까.
첫 전투의 날, 스승님의 눈동자 위로 드리워지던 절망적 고독의 빛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제가…… 아직 많이 미숙해서…… 저 말고, 스승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그리프베런 아저씨가 와주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거야.
아까,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그리프베런을 덮치려는 놈들의 공격을 조금 늦추는 게 고작이었다. 아직 용사의 길은 시작도 안 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과도 하지 마라.”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이 전투에 발을 내딛기 전, 철퇴에 머리가 으깨질 뻔했던 그 창병이었다.
그 병사가 카밀라의 손을 맞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해주러 와서 정말 기뻤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 녀석, 작년 말에 딸이 태어났다고. 그 딸한테 못 가게 될 뻔했는데, 네가 막아준 거야.”
“고맙다, 카밀라.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으마.”
카밀라의 눈동자가 저도 모르게 전율했다.
그날과 똑같은 물과 흙의 비린내…… 어머니가 죽던 그날로 돌아가게 만드는 황(黃)의 악취,
그때와 똑같은 호흡의 황망한 떨림…… 그 모든 감각의 기시감 속에서.
카밀라는 그날로 돌아간다.
그날, 그때, 그 순간으로.
그 과거로 돌아가서, 도움을 구하다 지쳐 주저앉아 울던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스승님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 * *
모든 전투의 열기가 가라앉은 이후 스승님과의 재회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서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문 수비대가 카밀라의 전공을 보고했다.
스승님께선 당혹스러워하시는 것 같다가도, 결국 울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품에 꽉 끌어안아 주었다.
병단 병사들이 마구 웃었다.
그게 어찌나 부끄러운지 악을 쓰고 스승님을 밀어냈던 게 기억이 난다.
이런 사사로운 기억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전후 처리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상자 보고해.”
“병단 사망자는 76명에 중상 54명…… 으음, 경상 456명. 나쁘지 않은데.”
“죽은 76명 앞에서 나쁘지 않단 말을 하면 안 돼.”
“말이 그렇단 거야…… 적의 숫자가 7만은 됐던 것 같은데…… 대체 이만한 숫자를 어디서 모았지?”
“클랜은?”
“그것도 이상해…… 구두쿠 클랜이랑, 카기누 클랜이랑 잡다한 놈들이 많은데…….”
“많은데?”
“내 기억이 이상한 게 아니면…… 음…… 죄다 다른 페이쿼리어 병단이 씨를 말린 걸로 보고된 클랜들인데…….”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이 돋던 그때, 델프레드 울프 블라도가 돌아왔다.
“선박에서 요한이 이상한 걸 찾았다.”
해안 절벽에서 포병대를 지휘하고 또 자신의 빙결 마법으로 적의 반절은 상륙 전에 깨트린 마법사.
전장에 오고 나니 그 위상을 새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두꺼비 아저씨라고 놀리지 말아야겠노라고 다짐했다.
“으, 뭐야…… 딱 봐도 귀찮아 보여. 심연 농도가 엄청나게 높아.”
“이것 좀 보세요. 만지지는 마시고요.”
스승의 뒤를 따라온 요한이 염동력 마법으로 휘장을 스승님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요한…….
친구끼리 서로 살아남았다는, 감동이라 해야 하나, 기쁨이라 해야 하나, 그런 눈빛이 잠시 오갔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표면을 급속 냉동시켜 두었어요. 쉽게 말해 얼음덩어리 안에 가둬둔 거죠. 휘장에는 기괴한 문장이 새겨져 있어요.”
“음…… 고대어잖아. 델프레드, 읽을 수 있어?”
“읽을 수 있었으면 가져왔겠냐? 이런 건 멜레느 전문이잖아.”
멜레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도 몰라…… 엄청 옛날 언어 같은데, 엄청 옛날 언어를 쓰는 게 어디 어디더라…….”
네크론.
그리고 혈족.
“그럼 바로 넨 고모님한테 연락해. 속달로. 우리가 갈지 고모님이 여기로 오실지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높은 확률, 아니 100% 확률로 각하께서는 오실 텐데?”
델프레드가 키득 웃었다.
“여기는 홍련 병단…… 교전 중에 이상한 물건을 찾았는데…… 누구도 문자를 해독하는 게 불가능함…….”
멜레느가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이 허공에서 힘을 얻고, 문자열로 새겨지나 싶더니 둥글게 말렸다.
먼저 소환되어 주인의 명을 기다리던 정령들이 저 동쪽 해수면 위로 날아갔다.
용사 파티의 간부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맹금류의 발톱이 머리에 와 닿았다.
“괜찮았느냐?”
그리프베런이었다.
100명 전후의 수인병으로 구성되는 홍련 병단의 예비대의 대장. 그 전투력은 막강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날짐승 계열 수인들은 빠르게 적황을 살펴 허점을 찾아냈으며, 들짐승 계열 수인들은 그 우루크를 육탄전으로 윽박질러 압도했다.
요컨대 존경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네, 생각보다는…….”
그렇게 말을 끝내려 하다가…….
첫 교전의 순간부터 기묘하게 마음속에 응어리져 쌓인 의혹을 풀어내기로 했다.
“근데 뭔가 이상했어요.”
“음?”
“제가 환영만 상대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우루크들은 공격이 다 너무 정형화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제자 적성 시험이나 준사관 교육에서 만들어진 환영들처럼요.”
너무 압도적인 힘을 휘두르는지라, 대상을 정확히 관찰할 필요가 없는 스승님이나 그리프베런은 이걸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던 것…….
환상이 실체를 정확히 반영한 거니 당연하다, 라는 대답이 올 줄 알았건만…… 섬뜩 놀란 그리프베런은 문득 시체를 뒤적이더니 탄식을 뱉었다.
“왜 그러쇼?”
대화가 끝나고 문득 이쪽으로 관심을 돌린 델프레드가 물었다.
“역시…… 이것들은 죽어 있었소. 죽음의 악취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가, 아, 이럴 수가.”
“그야 우리가 죽였으니 죽어 있지요. 앗, 설마 농담하는 거였다면 지금이라도 웃겠습니다.”
“그 말이 아니오. 여기 올 때부터, 아니 오기 전부터 죽어 있었단 말이오.”
아무도, 공포의 진원을 알지 못해 입조차 열지 못하는, 그런 소름 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카밀라는 몸을 떨었다.
그 정적 속에서, 이 남방 땅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고 느껴선 안 되는 오한이 느껴졌다.
‘대체 뭐지……?’
그 누구도, 그때 그 현상이 대체 어떤 악몽을 예견하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스승님도.
최고의 배틀메이지도.
천재 마녀도, 수인 전사장도.
알지 못했으나, 그분들께서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감지하셨을지도 모른다…… 지금, 칠흑보다도 더 어두운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