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36)
가짜 용사 이야기-236화(236/310)
시즌 3 : 44화
“마족들은 5라는 숫자를 신성하게 여긴다.”
아직, ‘검은 여름’의 악몽 속으로 들어오기 전…… 법황청에서 준사관 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었다.
“우리는 놈들을 6대 마족이라고 칭하나, 놈들에게 데몬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왕들의 화신이다. 그렇기에 마족들은 우루크, 나가, 혈족, 네크론, 트롤들을 오대열강(五大列强)이라는 뜻인 케스타니아(Kestnia)라고 부른다.”
이론 교관 비랑은 그 <시라프> 결전에서 한쪽 다리를 잃어 의수를 사용하는 자였다. 교관 중에서 실전 경력이 누구보다 풍부했다.
“지난 시간에는 나가와 우루크에 대해 설명했으므로, 이번 시간에는 혈족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혈족.
통칭 혈귀.
“6대 마족 중 데몬을 제외하면 개체 수가 가장 적다. 하지만 개별 개체들의 전투력은 그 트롤조차도 상회하는 수준이다.”
“……!”
“피를 이용한 사술(邪術)을 부리는 개체도 있고, 육체를 증강시키는 개체도 있고 양쪽 모두 가능한 개체도 있다.”
혈족은 오대성가(五大星家)라는 최고 다섯 가문이 통솔한다.
혈족은 전통적으로 시간의 군주를 섬기는 마족으로 옛 적색산맥에 기거하며 왕을 섬기는 승려로서 같은 인류를 산 제물로 바쳐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왕들을 무시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도마뱀 군주가 호출하면 그 부름에 응해 축복을 입고는 했다.
“오대성가는 놈들의 선조들이 기거하던 산봉우리를 가문의 문장으로 삼고 있다. 오직, 오대성가만이 산봉우리를 문장으로 쓴다. 그러니 산봉우리 문장을 가진 이를 만나면, 아무리 유아 개체라고 해도 방심하지 말고 도망치도록.”
‘검은 여름’의 서막, <라프타스> 공방 (3)
“응……?”
분명 샤론의 극주검이 그 심장을 뜯어내서 승부에 결착을 냈다고 생각했건만…….
“샤론, 피해! 이놈 뭔가 이상해!”
그 순간, 놈의 혈관(血管)이 전신에서 돋아나더니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 천한, 천박한 잡것들이, 감히, 감히, 감히, 감히, 내 심장을……!”
카밀라는 원(圓)을 펼쳤다.
“너희들 때문에 이 더러운 심장을 내 몸에 끼워야만 했잖아!”
카밀라를 덮치려던 혈관 가닥들이 그 방어에 튕겨나가고, 샤론은 몸을 다급히 굴려 혈관의 공세를 연달아 피했다.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죽여 버리겠어, 그 온몸의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개들한테 먹이로 줘버리겠어!”
저 괴물 놈…… 카밀라는 식은땀을 훔치며, 칼을 휘둘러 모래 먼지를 걷어냈다.
단말마의 발악이었을까?
아니, 자세히 보니 혈관은 혈노들의 몸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막대한 양의 피를 빼앗는 갈취의 도구였다.
“장기(臟器)를 빼앗아서 이식하고 있잖아…….”
어떻게 인간의 기관이 마족의 기관과 연동되는지는, 교관 비랑이 설명해준 강의가 있었다.
– 모든 마족은 본래 인간이었다. 왕의 축복을 받고 타락한 인간의 말로(末路)라고 할 수 있지.
그중에서 가장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아니,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게 혈족이라는 것이다.
– 혈족의 약점은 목 아니면 심장이다. 고위 개체로 갈수록 심장이 파열되어도, 혈노들을 이용해 어떻게든 몸을 수복시킨다.
– 그럼 대체 어떻게 혈족을 쓰러뜨릴 수 있죠?
– 제일 완벽한 약점은 목이다. 뇌와 중추신경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놈들에게는 초고속 재생의 힘은 없다. 즉, 중추신경의 손상을 회복할 길은 없다.
혈관의 채찍을 거듭 피한 샤론이 카밀라 옆에 착지하며,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역시 유아 개체라고 해도 오대성가 출신인가? 쉽게는 안 죽네.”
“목을 끊어 버려야겠어.”
“좋아, 이번에는 내가 미끼가 되어볼게.”
“아니, 지금과 똑같이 가자. 네가 놈의 심장을 뜯어내는 게 최고의 미끼가 되는 길이야. 그때 목까지 베어 버리겠어.”
“웬일이래, 후훗, 우리 카밀라가 짱구를 다 굴리고.”
“엿ㆍ먹ㆍ어.”
“천박해.”
카밀라가 중지를 세웠다.
훗, 하는…… 서로를 향한 절대적 신뢰가 미소로 구축된다. 그 이상의 소통은 필요 없었다.
‘자, 이제 어쩌지?’
절대로 질 수 없다.
이기려면, 칼날로 저 목을 베려면 접근해야만 해. 하지만 쉽사리 접근할 수가 없어.
혈노들이 놈 주위로 방벽을 이루고 있고, 또 수십 가닥의 혈관이 저렇게 꿈틀거리는데…….
‘부식성 혈액이야. 핏방울이 떨어지는 지면에서 일어나는 수증기를 보면 알 수 있어.’
혈족이 짜증 어린 포효를 터뜨리자, 그 혈관들이 수십 개의 채찍으로 쇄도해 들었다.
기회는 한 번.
기회는 한 번뿐.
혈관을 피하고, 베어내고, 또 뒤로 물러서면서, 카밀라는 한순간 뇌를 새하얗게 비웠다.
상상 영역 교차(想像領域交叉).
그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영상이 재생된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오직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만으로 구축된 미래.
이른바 추측의 영역.
그러나 가장 많이 교차하는 영상, 즉 교집합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 미래’다.
그 상황만을 선발해 현실 위로 포개어낸다.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카밀라는 제2식 충(衝)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치고 나가기 전에 취하는 공세의 자세.
‘하자, 해보자.’
발끝에 집중시킨 힘으로, 지면에 발자국을 깊숙이 새기며 쇄도.
타락한 혈관들이 매섭게 뻗어와, 방금 전까지 있던 지면에 연이어 처박힌다.
지면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소리가 뒤로 멀어져갈 때, 죽었으나 죽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이들이 흘리는 신음이 가까워온다.
“카밀라, 혈폭탄이야! 조심해!”
미안해요, 용서해 주세요…….
짧은 사과와 함께 칼을 휘두르자마자, 혈노들의 체내를 흐르던 타락한 피가 발광하더니 폭발한다.
살덩이와 살점과 뇌수와 뼛조각으로 일대를 집어삼키는 것이다.
“하, 하하핫, 하하하하하하! 쓰레기다운 죽음이군! 현명하네! 원래는 그 내장을 죄다 끄집어내서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홍소를 터뜨리던 혈족의 눈동자에 일순 혼란이 깃들었다.
저 피의 소용돌이를 뚫고, 머리 위 상공에 출현한 무언가가 있었다.
녹물로 녹아내리는 투구를 집어 던지고는 십문자도의 자세를 취하는 소녀, 카밀라였다.
‘이 천한 년이, 어떻게……?’
해답은 제3식 둔(鈍)에 있었다.
혈폭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그것이 전신을 뒤덮는 순간만 피할 수 있다면.
상대는 아직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유아 개체, 방심하게 만든 채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방.’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건.
내가 사용해야만 하는 건.
재생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 방. 이 기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
아직 용의 형상으로 결집하지 못하는 마력의 폭류가 칼날 위에서 전광(電光)으로 소용돌이친다.
– 진뇌룡은 단일 초식으로도 사용 가능하지만, 역시 차후 초식을 강화시키는 연계 초식으로서의 가능성이 더 무궁무진해.
동시에 칼을 칼집으로 납도.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이는 적을 앞에 두고 행하는 자비나 방심 따위가 아니라, 확실한 살(殺)을 위한 예행과도 같다.
“이 벌레만도─!”
혈족의 시선이 온전히 카밀라에게만 쏠려 있던 그때, 아까보다 더 크고도 선명한 구멍이 혈족의 흉부에 생겨났다.
“그렇게 카밀라만 보고 있으니 같은 여자로서 상처를 받잖아.”
극주검법 제4식, 파혈(破穴).
검극에 집중시킨 마력을 일순 극대화하여, 표적에게 극대의 치명상을 입히는 살초.
“이건 내 마음에 난 상처와 똑같은 거야.”
그때, 카밀라의 머리 위에서 합일을 이룬 칼집과 칼은 비상식적인 열량의 마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십문자도 발도술, 장작 패기.
대상을 수직으로 내려 베는 이 초식의 위력을, 진뇌룡과 발(發)로 몇 배로 증강시켰다.
반드시 벤다.
수백 명의 인명을 짓밟은 너를, 내가 반드시 쓰러뜨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까불지 마…….”
고통스럽게 토혈을 내뿜으면서도 혈족의 눈에서는 투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오대성가의 개체.
그 일대에 쓰러져 있던 혈노들의 몸이 핏빛으로 폭주하기 시작하더니, 폭발의 극점으로 다가간다.
“……까불지 말란 말이다, 이 한낱 짐승들 따위가!”
샤론은 다급히 몸을 돌렸으나, 눈앞이 핏빛 절망으로 물드는 걸 느꼈다.
숫자가 너무나도 많아…….
그리고 카밀라는 지금 와서 궤도를 수정하는 것도 불가능해.
‘어떻게, 어떻게 하지?’
방금 번에도 놈의 의식이 너무 고도로 집중되어 있어서 머리는 노리지 못했는데.
“이야아아아아아아아────!”
카밀라가 기합을 내질렀다.
혈노들의 몸이 꿈틀거리면서, 일대를 찢어발기고 녹여버리는 타락의 부산물이 되려던 그 순간.
모든 것이, 새하얗게 얼어붙는다. 혈노들의 육신과, 그 폭발하려던 체내의 피조차도.
요한 프로스트.
마력 사용의 과부하로 코피를 쏟아내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벌어준 한순간은 가히 패착을 가르는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앗!”
참격의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튕기듯이, 칼집 속에서 솟구쳐 나온 칼날이 찬란한 빛살을 수평선 위로 내리꽂는다.
그 폭풍 같은 힘의 흐름이, 칼날을 마(魔)의 두개골 끝에서부터 척추를 똑바로 가로질러 가랑이 사이로 단숨에 빠져나오게 만들어냈다.
“참(斬)!”
모든 것이, 방금 전까지의 모든 소란을 고요 속으로 내려앉게 만드는 결정타.
“이 천하고, 뒤틀린…….”
혈족은 그 허무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또는 혼자만의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노예들 주제에에에에에!”
그 육신에서, 순식간에 종양이 무수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요한의 눈동자가 뒤흔들렸다.
“피해! 자기 몸을 혈폭탄으로 쓸 생각이야! 이건 내 마법으로도 못 막아!”
다급히 외치고는 있으나, 각혈 때문에 그 소리가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러고도 안 끝난다고?’
죽어, 그만 죽으라고.
온몸이 양쪽으로 찢어지면서 쓰러지고 있잖아. 뇌도 잘렸고 척추도 없고 혀도 반쪽이 났잖아.
‘근데 어떻게 또 살아서 저렇게 짖어대는 거냐고!’
카밀라는 황급히 새로운 참격을 행하려 했으나, 몸이 삐걱거리면서 힘줄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젠장, 너무 무리한 거야……!’
진뇌룡의 힘을 발(發)로 억누를 때 이미 양손의 살갗이며 경락계가 타들어간 느낌이었다.
제대로, 설 수조차 없다.
베어야 하는데, 개수작 부리기 전에, 샤론이 보법을 밟았으나 늦어, 왔다가는 같이 휘말릴 거야.
“카밀라!”
“카밀라!”
샤론과 요한의 황망한 떨림이 귓가에 닿지도 않는다.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방어 자세도 펼치지 못하고 맞은 위기일발의 순간.
유아 개체의 몸에서 폭주하던 핏빛이 극점에 이르더니 폭발, 혈노들의 폭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으로 그 일대를 초토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