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37)
가짜 용사 이야기-237화(237/310)
시즌 3 : 45화
“카밀라!”
“카밀라!”
샤론과 요한의 황망한 떨림이 귓가에 닿지도 않는다.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방어 자세도 펼치지 못하고 맞은 위기일발의 순간.
유아 개체의 몸에서 폭주하던 핏빛이 극점에 이르더니 폭발, 혈노들의 폭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으로 그 일대를 초토화시키지…… 못했다.
[멜레느 : 후…….]순간 펼쳐진 결계 덕분에.
요한이 감탄할 정도로 견고하고도 또 신속한 결계의 전개.
그 술식의 주인, 멜레느의 황망한 숨소리가 뇌향심공명진 너머에서 선명히 들려왔다.
[멜레느 : 이 꼬맹이들이 아주 제대로 저질러줬네. 오대성가의 혈족을 쓰러뜨리다니…… 비록 유아 개체라지만.]눈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이 ‘음, 제가 잘못 찾아왔군요’라고 말하고 떠나면 이런 기분일까.
“하, 하아, 하아…….”
극도로 집중된 긴장이 풀릴 때 다릿심도 같이 풀려버려서 카밀라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미친…….
이쪽으로 달려오면서 칼을 크게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낸 샤론이 곧장 손을 내뻗었다.
“카밀라,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서 있지도 못하겠어. 이것 봐, 다리가 아직도 떨리잖아.”
“너, 장난이 아니야. 혈족을 상대로 세 합이나 버티고 살아남다니. 요한, 너도 엄청났어. 네 덕분에 카밀라가 살았네.”
“조금 보탰을 뿐입니다. 카밀라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요.”
“야!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냐! 나도! 어?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
샤론과 요한이 카밀라를 지그시 노려봤다.
“뭐? 뭐! 말을 해!”
문득 샤론이 배시시 웃었다.
“왜 처웃어.”
“카밀라, 우리 방금 혈족을 쓰러뜨린 거야. 스승님들이 들으면 엄청 기뻐하시지 않겠어?”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개체 전투력이 제일 높은 게 혈족이라고!”
스승님께 이 승전을 자랑하고, 칭찬을 받는 순간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땐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그 사소한 승리조차 소녀들에게는 엄청난 승전보였으나, 그때 스승님을 비롯한 페이쿼리어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은 악몽의 편린이 아니라 악몽 그 자체였던 것이다.
[플로렛 : 지하 제압 완료. 라미네아, 혈계진을 베어버려.] [라미네아 : 이미 없애버렸어. 근데 뭐지? 이건 분명…… 2군에서 본 거랑 비슷한…… 그래, 네크론의 문장인데.] [플로렛 : 여기는 흑장미&홍련, 남문의 혈계진을 무력화시켰으나 네크론의 것으로 추정되는 술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뇌향 : 일단 그 또한 없애두어라. 길이 열리는 대로 확인하러 가겠다.] [자카드린 : 여기는 맹진, 똑같은 걸 발견했으나 제 마음속의 불꽃으로 전부 불태워 버렸다, 이겁니다! 동문 제압 완료!] [비네사 : 북문 혈계진 무력화, 지금부터 혈마 병단은 시청 청사로 향하는 길을 뚫는다.] [아이딘 : 이 네크론의 술식은 저도 처음 보는 겁니다. 불길하군요. 작전을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도시 전역을 정화해야 합니다. 모두 서둘러 주십시오.] [메이트 : 혈계진 소멸이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공중 지원 언제든 가능합니다. 필요할 때 호출만 해주십시오, 선배님.]도시를 핏빛으로 뒤덮고 있던 악몽의 신기루가 걷힌다. 그 틈새로 빛줄기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공중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황룡의 낙뢰와 그리핀 편대가 투하하는 폭렬탄이 시가지 여기저기에 폭발과 불꽃을 일으키며 혈노들을 불살랐다.
‘강하구나.’
그리고 또 빛이 쏟아졌다.
외곽에서 전투태세로 대기하던 주력부대들이 단숨에 도시 내부로 전이되는 차원 전이의 빛이었다.
‘뇌향 각하가 통솔하는 인류는, 엄청나게 강해.’
그래…….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악몽은 오늘 안으로 바로잡힐 것이며, 내일부터는 예전과는 같지 못해도 비슷한, 그런 일상이 다시 시작될 거란 막연한 기대감, 아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검은 여름’의 서막, <라프타스> 공방 (4)
[아이딘 : 사령부 건물에 창백한 준남작이 있다는 첩보를 확보했습니다. 병단 병력을 네 방위로 전진 기동시켜 사령부 포위 섬멸을 준비 중입니다.] [메이트 : 선배님, 비격 병단입니다. 거치적거리는 것들은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탄약병들은 폭렬탄을 그리핀들에게 다시 쥐여줘. 폭격 지원에 나선다.]그런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류의 저력이 집결해 있었다.
도시 상공을 제압한 황룡과 그리핀들의 위용은 아직도 기억난다. 가로막는 구조물들을 흙먼지로 박살 내며 전진하던 기갑부대의 거신들도 또렷이 기억난다.
[뇌향 : 멜레느가 수집해준 정보로는 네크론의 술식이 도시 전역에 퍼져 있다고 하는구나. 술식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 핵(核)을 서둘러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 또한 사령부 청사에 위치할 가능성이 있다.] [메이트 : 이 이상 속도를 내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각하. 공중 포격으로 적 방어선을 대부분 무력화시켰지만, 시가지 곳곳에 숨어 있는 혈족과 혈노는 여전히 매우 위협적이에요.] [비네사 : 쓸데없는 걱정이다. 코끼리를 앞세운 돌파 대형으로 목표에 접근하고 있다. 8분 후 도착 예정. 창백한 준남작 토벌을 지원할 페이쿼리어가 한 명 필요하다.]그때, 스승님의 뒤를 따르며 소소한 승전보를 보고하곤 했으나 혈마 병단의 업적에 비하면 자랑할 만한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 맹위였다.
혈마 병단은 인류의 최정예 전투 집단으로, 코끼리 기병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병종이 비네사와 아이딘의 용병술 아래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었다.
[라미네아 : 제가 갈게요.] [뇌향 : 라미네아, 너희는 사령부로 향하지 말고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거라. 도시에 삼결마녀회의 생존자가 있었구나. 지금 그 신호를 잡아냈으나 공명진의 힘은 닿지 않는다. 그 아이들을 구출해야 한다. 너희가 제일 가깝다.] [자카드린 : 하핫! 여기는 맹진, 그럼 사령부로는 저희들이 가겠습니다!]창백한 준남작을 토벌하기 위해 혈마 병단과 맹진 병단이 투입되었다.
필두와 제5석의 연합전선이다.
둘 다 대인전 및 섬멸전의 전문가인 데다 비네사 휘하에는 아이딘과 에쉬르도 있었으므로 아무도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아이딘 : 각하, 여긴 혈마 병단입니다. 사령부 일대 적 지상 병력 대부분을 무력화하였고 이제 사령부 내부로 진입하겠습니다.]그리핀 편대의 폭격과 포병대의 포격 속에서, 불타오르는 시가지를 흑장미의 흉갑기병대가 앞장서고 홍련의 보병대가 뒤따랐다.
[플로렛 : 주목! 삼결마녀회의 마녀가 살아 있는 모양이야. 우리가 구하러 가야 해!] [메이트 : 여기는 비격. 포탄과 그리핀의 체력이 모두 떨어져 병단을 본부로 귀환시켜야 한다. 선배님, 병단을 물리고 저와 간부진은 육상으로 창백한 준남작 토벌전에 합류하겠습니다.] [비네사 : 이 이상의 지원은 필요 없다. 기다리는 시간만 아까워. 쉬어라. 지금까지 잘해줬다.] [메이트 : 그, 그런…… 영광입니다, 선배님!]그리핀 편대가 후퇴하고, 몇 안 되는 황룡들만이 상공에서 지상 부대에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승리를 향하는 것 같았는데…….
뇌향이 광점으로 표시해준 좌표에서, 혈족의 맹렬한 저항을 뚫고 삼결마녀회의 생존 마녀를 구해내기 전까지는.
“구, 구하러 온 건가요?”
“네, 이제 안심하세요.”
“지, 지금 바로 퇴각 작전이 준비되고 있나요? 가, 각하께 어서 연락하세요. 이, 이 도시에서 빠져나가야 돼요! 다, 다, 당장!”
맞물리지 않는 치아를 떠는 이 마녀는 <라프타스> 함락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마녀들 사이에서 위신이 제법 높은 멜레느가 그 마녀들을 달랬다.
“안심해…… 도시를 수복하기 직전이니까. 이미 학살전이 시작되던 날이 아니야.”
“아니, 아녜요. 이건 함정이라고요! 여기 숨어 있는 동안 많은 걸 엿봤는데, 이건 전부……!”
“함정? 어떤 함정?”
혈마 병단이 창백한 준남작을 토벌했다는 연락이 온 건 그때쯤이었다. 근데 그쪽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아이딘 : 각하, 창백한 준남작을 토벌했으나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와주셔야 합니다. 술식의 정체는 원시의 저주로 보입니다!]대단하다.
나랑 샤론은 유아 개체로도 쩔쩔맸는데, 창백한 준남작을?
근데 승전보를 전하면서 왜 어조가 저렇게나 황잡한 거지?
[비네사 : 확실합니다. 선왕 오빈 3세께서 250년 전에 남기신 기록에서 본 것과 유사합니다.]이유는 모른다.
몸은, 영혼은 아는 듯했다.
온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그 사막의 열기 속에서, 그토록 분명한 오한을 느낄 수 있었으니.
[뇌향 : 원시의 저주? 설마…… 아니, 아니야, 지금 바로 거기로 가겠다. 너희들은 모두 빠져나올 대열을 갖춰라!]원시의 저주.
<잊혀진 왕들> 중 하나, 울부짖는 파멸의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가 내리는 저주.
그 압제에 고통받던 기원전 인류는 어떠한 인격도 인권도 없이, 네 발로 기며 노역에 특화된 형태로 모습이 뒤틀렸다고 한다.
[뇌향 : 차원문을 열겠다! 전장에 선 모든 아이들아, 차원문 앞으로 이동하라! 목표 좌표 설정은 불가능하여, 어디로 이동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서둘러라! 어서!]원시의 저주는 역사에서 몇 번이고 등장해왔고, 등장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용현 레인 루드윅의 생전에도 솔론드 왕국 사변으로 이 땅에 비극의 상처를 남기지 않았던가.
뇌향 세츠넨은 그때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모든 걸 보았으니…… 저렇게나 황망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라미네아 : 카미, 이쪽으로 와! 빨리!]뒤처져 있다가 스승님의 곁으로 달려가려던 그때였다.
혈족과의 싸움으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그 싸움부터 몸에 가해진 부하가 마침내 폭발한 듯했다.
발목의 힘이 풀려 쓰러진 그때, 도시 전역에 퍼져 있던 원시의 술식이 발동되었다. 둔중한 파동이 발치를 휩쓸고 지나간다.
[샤론 : 카밀라가 쓰러졌어요!]파멸(破滅).
파(波)? 파(派)? 파(破)?
파(把)? 파(巴)? 파(播)? 파(婆)? 멸(滅). 멸(滅). 멸(滅)ㆍ멸ㆍ(滅)ㆍ멸(滅)ㆍ멸ㆍ(滅)ㆍ멸ㆍ(滅).
[라미네아 : 카미, 카미!] [플로렛 : 람, 안 돼!]기원전의 파멸…….
울부짖는 파멸의 권위가 모래라는 형상을 입었다.
모래가 폭풍으로 울부짖으며 생명을 갖고 존재하던 모든 것의 생멸(生滅)을 뒤틀고 집어삼킨다.
“끄, 끄아아아아아아……!”
“아, 으, 아, 아아아아아악……!”
그때,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모래에 휩쓸린 이들이…… 끔찍한 비명 속에서…… 온몸이 근골부터 비틀리고 무너지며 원시인(原始人)으로 변형되고…….
순식간에 눈앞까지 달려온 스승님이 손을 내뻗었고, 손을 뻗어 그걸 맞잡으려던 그때, 모래 폭풍이 사위를 삼켰고…… 의식이, 육신이 찢어발겨지는 격통 속에서 이리저리 비틀리나 싶더니…….
그 암흑의 비틀림조차 뚫고 들어와…… 눈앞을, 의식 전체를 새하얗게 적시는 뇌향(雷響)의 빛…….
* * *
눈(雪)…… 시야가 흐릿하게 열렸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雪).
그러나 비슷한 건 형태뿐이었다. 세계의 섭리를 벗겨내는 이 눈은 살이 델 정도로 뜨거웠고, 거칠었고…… 무엇보다 기괴했다.
“……여기, 여기도 있어요……!”
그래, 그건 눈이 아니었다.
화산재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화산재에 뒤덮여 있지만 이 꼬맹이의 상태는 그 누구보다 심각하군. 원시인이 되다 말았잖아. 어서 끌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또 익숙한 목소리가 말한다.
“……아니, 카밀라? 스승님, 카밀라예요! 카밀라, 괜찮아? 목소리 낼 수 있겠어……?”
화산재와 모래가 기도(氣道)와 허파에 가득 차서, 메마르고 거친 신음밖에 내뱉지 못했다.
아파, 아파, 아파…….
몸이 타오르는 것처럼, 아프고, 괴롭고, 숨을 쉬는 것조차 눈물이 나오는…….
“……오빠, 아이딘 오빠! 카밀라 좀 봐주세요……!”
순간, 어머니가 죽던 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흐느끼듯 소리치고 있는 사람은 에쉬르였다.
“……원시화(原始化)가 진행되다가 멈췄군요. 살아 있는 게 기적입니다…….”
홍의 사제, 아이딘.
“……괜찮아, 카밀라,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졌어. 이 언니가 지켜줄게.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줄게, 의식을 놓으면 안 돼! 알겠지? 숫자를 세! 1부터……!”
의식이 희뿌예지는 발작적 기침 속에서, 죽던 어머니의 얼굴에 스승님의 얼굴이 포개어졌다.
스승님…….
스승님, 어디 계세요…… 무사하시죠…… 무사…… 무사하신…… 거…… 맞죠……?
“……네크론 추격대가 오기 전에 임시 철책으로 퇴각한다. 서둘러라. 놈들이 금방 냄새를 맡고 따라올 것이다…….”
“……제기랄, 시작부터 이 정도로 무덥고 시커먼 여름은 처음인데요…….”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무래도 긴 여름이 되겠군요…….”
그게, 여름의 첫날이었다.
그 대참극이 바로, ‘검은 여름’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