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
가짜 용사 이야기-24화(24/310)
제24화
기원(起源),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 (7)
“신들의 시대에 활약한 5인의 어센시쿼리어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성검의 요람으로 향하는 회랑을 걸으면서 라헬 듄 제라예가 설명해 주었다.
997기의 수업이었다.
새삼 설명해야 하는 일이지만, 입교 반년 차인 카이센은 997기에 편입되어 이 마지막 수업을 듣고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 뭐야?”
카이센이 이슬라에게 속삭이자 이슬라가 진심으로 어이없어했다. 세이라가 입매만 움직여 웃으며 대답했다.
“빛의 군주들을 도와 심연을 봉하는 데 막대한 공을 세운 영웅들.”
“오.”
“그분들이 사용했던 성검은 진(眞)성검이라고 불려.”
카이센의 멍청한 질문에 신물이 난다는 듯한 어투로, 오필리아가 옆에서 설명을 거들었다.
“총 여섯 자루가 있어. 리벨덴, 갈라디엘, 히스기비드, 아이자이야, 요니울란, 샤릴리온.”
진성검 샤릴리온이라…….
타르시요가 말했던 게 사실이었구나.
“근데 5인의 어센시쿼리어라면서 왜 여섯 자루가 있는 거야?”
“긍지의 용사, 알카이오스께서 리벨덴과 갈라디엘, 총 두 자루를 사용하셨으니까.”
“아하, 근데 그걸 왜 설명하시는 건데?”
당연한 말이지만, 신체가 증강될 때 청각조차도 증폭된 라헬 듄 제라예의 귀에는 이러한 잡담이 모두 들렸다.
“이건 기초 상식이다, 카이센.”
뜬금없는 호명에 카이센이 허리를 곧추 펴자 세이라가 입꼬리만 움직여 웃었다. 이 녀석의 특기라면 특기였다.
“모든 극위성검들은 진성검의 힘과 모양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단 걸 설명하기 위해서지.”
“……?”
“흠, 이를테면 네 스승인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께서 사용하셨던 아라다만텔은 진성검 갈라디엘의 아류작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새 997조는 법황청의 승강기에 올라탄 뒤였다. 라헬 듄 제라예가 B7이라고 적힌 단추를 눌렀다.
“하나의 진성검마다 두 자루의 극위성검이 만들어졌으므로, 세상에 극위성검은 총 열두 자루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라다만텔에게 쌍둥이가 있단 말씀입니까?”
“아주 똑똑하구나, 포상으로 딱밤을 한 대 먹여주마.”
수업 중에 떠든 대가로 머리를 쥐어박혔지만 카이센은 안심했다.
쌍둥이 성검이라…….
최악의 경우 아라다만텔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선택지로 쓸 수 있겠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르노드라는 이름의 성검이었다. 허나, ‘검은 여름’에 비네사 알터 르노드의 제자 에쉬르와 함께 실종되어 법황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럴 수가…….
그러고 보니 그때 카밀라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라다만텔도 소실되었을 것이 아닌가.
두려운 깨달음에 카이센의 몸이 떨렸다.
“성검은 보수가 가능하나 새로운 제작은 불가능하다. 현재 세상에는 여덟 자루의 극위성검이 존재하나, 네 자루는 출정 중이니 법황청에서 보관 중인 건 나머지 네 자루다.”
승강기가 지하에 내려앉았다.
승강기의 철망이 열리자, 지하의 축축한 곰팡내와 먼지의 악취가 훅 끼쳐왔다.
철망 밖으로 중후한 철문이 보였고 양옆으로 두 명의 듄 제라예가 시립해 있었다.
“오늘 너희는 이 다섯 자루의 극위성검 중 하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미들네임이 알터가 될지, 듄이 될지 결정되는 날이지.”
쿠구구구…… 육중한 굉음을 토하며 철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꼭 왕릉(王陵) 같구나. 떨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실내의 공간은 반원형이었고, 벽면을 따라 늘어선 횃불의 불빛에 어스름했다.
“외벽의 벽감이 보이지? 벽감의 시렁마다 걸려 있는 것이 극위성검이다.”
페이쿼리어의 제자인 카이센과 이슬라와 세이라의 시선은 곧 제각기의 방향으로 향했다. 긴장된 흉곽에서 울리는 심장의 울림이 요란했다.
아라다만텔.
가우므리스.
솔랑.
헌데 페이쿼리어의 제자가 아닌 오필리아의 시선 또한 카이센의 시선 끝을 향했다. 아라다만텔이었다. 오필리아가 속삭였다.
“자, 그럼 누가 아라다만텔을 가질지 한번 보자.”
반원의 끝에는 연단이 있었다.
그 앞에 라헬이 꿇어앉았다.
높은 연단 위로 다섯 법좌가 있었고, 거기에 황금의 위엄을 아지랑이로 뿜어내는 다섯 추기경이 앉아 있었다.
“997기 생도 세 명, 그리고 998기의 월반 생도 한 명, 총 네 명을 인솔해 왔습니다.”
「수고가 많구나, 라헬 듄 제라예.」
“황송합니다, 각하.”
추기경 인라히트가 손을 들었다.
「즉시 시작하라.」
* * *
성검의 요람에 들기 전에.
그러니까 디알레에게 용령 공명 훈련을 하던 때에, 오필리아가 먼저 도발을 걸어 왔다.
– 네가 카밀라 님의 제자라지만 과연 어떨까? 성검의 주인을 결정하는 건 사제 관계가 아닌데.
등 뒤에서 들려왔는데, 흠칫 놀라 돌아보자 백발의 경단 머리가 보였다.
이 녀석은…… 오필리아.
건너편 테이블에서 등을 돌린 채, 귀족가의 자제답게 고상하게 식기를 놀리던 오필리아가 말을 이어 나갔다.
– 양산형 성검인 디알레조차 겨우 깨우는데 아라다만텔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 …….
– 미리 말해 두겠는데, 아라다만텔이 네 것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걸.
등받이에 기대며 돌아앉는 카이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필리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 그건 대영웅의 무기였고 또 영웅의 무기였어.
– 요점은?
– 툭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자 따위가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란 소리야.
카이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머니와 스승을 추켜세우는 말과 자신을 비난하는 말 사이에서 취해야 할 태도가 난감했다.
그래서 이렇게만 말했다.
– 어디 두고 보자고.
오필리아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종자도 시녀도 없었기에 귀족 출신 생도들도 이러한 잡무를 모두 자신의 힘으로 처리해야 했다.
– 그래, 두고 보자.
그렇게 말하며 지나갈 때, 오필리아의 눈은 카이센을 깔보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떠나자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저런 녀석이니까. 붙임성이라곤 없는 녀석이지.
이번에 나타난 존재도 백발에 황금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체구.
장난기가 눈동자나 입매에서 싱글거리는 그 낯짝은 익숙했는데, 카이센이 눈을 끔뻑이자 먼저 입을 열었다.
– 난 세이라. 네 기억력이 보이는 것만큼 한심하지 않다면 기억하고 있겠지?
– 당연하지. 그때 내 변호를 해줬잖아.
–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우리들의 뜨거웠던 첫날밤을.
– ?
– 남자들이 다 너처럼 똑똑했으면 여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때였다.
불현듯 누군가가 다가와 카이센의 목과 어깨에 코를 킁킁거리더니 피식 웃은 것은.
– 너, 좋은 냄새가 난다.
카이센은 기겁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설 뻔했다.
돌아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페이쿼리어 생도 중에 단연 특이한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미색은 찬란했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소녀보다도 아담한 체격.
구릿빛 피부와 대조되면서 백발과 긴 눈매가 더욱 도드라졌는데, 경악스럽게도…… 머리 양쪽으로 용 뿔이 돋아나 있었다.
– 이슬라야. 처음 만난 사람의 냄새를 맡아보는 습관이 있어.
– 왜 그딴……?
– 뿔을 보면 알겠지만, 이슬라는 반룡(半龍)이거든. 아직 열 살도 안 됐지만 용들은 영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나 봐.
세이라가 깍지 낀 손에 턱을 괴며 후훗 웃자, 이슬라가 칭찬을 받아서 신난 목소리로 그 옆에 앉았다.
– 그렇다, 바로 그렇다! 이슬라는 네 몸속에 숨겨진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다다닷. 그리고 이슬라는 사실 300살이 넘는닷!
반룡, 300살……?
카이센은 당혹스러웠다.
용과 인간의 교접은 그 자체가 불경하게 여겨지고 또한 전례가 없지 않던가?
– 말투가 이런 것도 반룡이라서?
– 아니, 단지 이슬라가 아키어(語)를 쓰는 것뿐이야.
– 아키어(語)?
– 모르는 거냐! 카이센은 바보다! 바보바보바보멍청이다! 아키어를 모르다니, 죽어 마땅하다!
– ?
아키는 『용과 마법사의 여행일지』에 등장하는 새끼 용의 이름이었다.
타르시요가 알려주었었지.
그 말투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여아들 사이에서 아키어(語)란 이름으로 유행한 적까지 있다고…….
– 이슬라는 인간의 말보다 아인의 말을 더 잘해. 인간의 말에 익숙해지려고 저 말투를 쓰는 것 같아.
– 아니다! 세이라는 바보닷! 바보바보바보멍청이다.
– 이슬라는 아가야. 이렇게 쓰다듬어 주면 그릉그릉 거리고 울어.
이슬라가 묘하게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반발하나 싶었더니, 정말 세이라가 쓰다듬으니 고양이처럼 눈을 감고 행복하게 갸르릉거렸다.
– 귀엽지? 류넬 알터 가우므리스께서는 이런 이슬라를 엄청 귀여워하셨지.
–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항상 붙어 다니네.
– 친하거든. 스승님들께서 <테르베노플>에서 공동 전선을 펼칠 때 만났으니까.
<테르베노플>은 인페르노 라인 돌파로 무너진 구공화국의 수도였다. 요란하게 식사를 해치우던 이슬라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 너, 어떻게 여기 들어온 것이냐?
– ?
– 이슬라는 자격을 묻는 게 아니다! 소질을 묻는 거다! 생도는 입교할 때 무조건적으로 디알레를 뽑는 평가를 진행한다!
음, 나쁘지 않네……라고 흥얼거리며 송아지 스테이크를 입에 집어넣던 세이라가 설명을 거들었다.
– 그걸 못 뽑으면 페이쿼리어로서의 적성이 없는 거니 입학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 그런데 너는 뽑기는 하지만 성검을 겨우 공명시키고 있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이슬라는 심히 궁금하다.
– 카이센, 너 기원(祈願)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 알아. 대충은. 성검이랑 이야기하는 거지.
– 뭐야, 그게. 카밀라 님께서 제대로 안 가르쳐줬어?
카밀라는 카이센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 페이쿼리어의 길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타르시요가 가르쳐 주었던 것도 추상적이기만 하고…….
– 좀 알려줄 수 있어?
이슬라가 세이라를 쳐다보자 세이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세이라가 입을 열었다.
– 검의 기원이란 자신의 의지를 검에게 공명시키는 거야. 그 의지에 공명할지 공명하지 않을지는 성검이 선택하는 거고.
* * *
성검이 선택한다…….
긴장된 숨을 길게 내쉬는 것으로, 카이센은 과거의 메아리로부터 빠져나왔다.
다시, 어둡고도 확실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성검의 요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나의 의지, 그리고 아라다만텔의 의지.’
과연 아라다만텔이 어떤 의지를 갖고 있을지, 그리고 그 의지가 나의 의지와 공명할지…… 이제 곧 판가름 나겠지.
“수석 교관님.”
멀리서 생도들을 지켜보던 켈리 듄 제라예가 입을 열었다.
“카이센은 디알레와의 공명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습니다. 이러다가 아라다만텔이 오필리아에게 가는 건 아닐까요?”
“글쎄.”
올리에르 듄 제라예는 요한 울프 프로스트가 제출했던 카이센의 정보를 기억했다.
[키슌 지올로베페와의 칼타케에서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을 해방시켰음.]용령의 힘이 없는데도 극위성검을 깨운 일은 선례조차 없어.
아니, 딱 한 번 있긴 했다.
용현 레인 루드윅의 배우자였던 미리아 루드윅이 페이쿼리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쉬르팽을 깨웠다는데, 긴 역사상 그게 전부였다.
출신부터 불분명한 그 기인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예전에도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간절히 부탁해본다, 아라다만텔.’
그때, 올리에르는 두 손을 맞잡으면서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카밀라, 그 안에 있다면 네 제자가 가야 할 칼의 길에서 아라다만텔이 함께할 수 있게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