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0)
가짜 용사 이야기-240화(240/310)
시즌 3 : 48화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3)
“시답잖은 경례는 필요 없고, 내가 올 때까지 떠들고 있던 이유를 말해라.”
비네사 알터 르노드가 시장실의 상석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그 옆을 보좌하는 건 병단의 2인자, 혈색의 사제 아이딘이었다. 저렇게나 잘생겼는데 친절하기까지 한 위인을 다시 만나니 참으로 반가웠다.
맥케넌이 절도 있는 경례를 올리며 발언했다.
“이 머리에 피도 마른 애새끼가 병단에 입단하고 싶다고 하여, 예의를 가르쳐주려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에쉬르가 실실 웃으며 사족을 붙였다.
“그러다가 카밀라의 애교 공격에 함락되어 버리시지 뭐예요. 용돈 주기 직전에 스승님께서 막 오셨어요.”
간부진이 다시 킬킬거리자 맥케넌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비네사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카밀라를 노려보았다.
또다…….
이 사람의 시선을 마주할 때는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져. 눈빛 하나로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구나.
“애들 돌볼 인력 따위는 없다. 전선이 붕괴되고 본대와의 연락은 두절된 이 상황에. 후방으로 꺼져서 라미네아가 널 찾는 거나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테니.”
거듭 가혹한 핀잔이 날아드는 걸 보고 엄청난 사고를 쳤나 생각했으나, 어린 마음에는 여전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흠, 이게 이 정도인가?
카밀라가 말한 것이라고는 혈마 병단에 임시 배속되고 싶다고 말한 게 전부인데.
“하긴, 요즘 애들은 누구나 지검제에서 우승하고 또 누구나 혈족 오대성가의 유아 개체를 쓰러뜨리긴 하죠. 그래서 마족은 인류가 너무 강해지는 게 두려워서 대침공을 감행했고요.”
에쉬르가 말했다. 장성들조차도 비네사와의 대화를 어려워하건만, 에쉬르는 이렇게 장난스럽게 비아냥거리는 행동조차 하곤 했다.
미친 짓이었다.
누구는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원래 페이쿼리어는 수련생 제도를 운용하지 않습니까? 전시 사태이니 특수 전력 하나하나의 힘이 절실하기도 하고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사료됩니다만.”
홍의 사제, 아이딘 또한 그 비네사의 판단에 감히 반론을 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에쉬르 그 이상이었다.
에쉬르가 비네사의 판단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아이딘은 결정조차도 뒤집을 수 있었으니까.
– 수련생 제도?
수련생 제도는 이미 검무가 끝날 때 에쉬르에게 들은 바 있었다. 비네사에게 저런 요청을 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 페이쿼리어들은 검술에서는 좋은 스승이지만 전투에서는 좋은 스승이 못 돼. 다들 자기 제자가 소중해서 격전에 안 내보내려고 하거든.
에쉬르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께서도 항상 최전방에 홀로 나가시고 카밀라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후방에 남겨두시지 않았던가.
스승님만 그랬던가?
아니,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도 샤론을 가장 안전한 곳에 배치해 두고는 했다.
– 그래서 본래 제자들은 총 세 번의 전투 동안 다른 페이쿼리어 병단에 배치돼서 수련을 받았어. 그게 수련생 제도야.
비네사가 한숨을 내쉬고는 주먹을 턱에 괸 채 노려보았다. 꼭 칼끝에 꿰뚫린 듯 혓바닥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딘의 의견은 이런데, 너희들 의견은 어떻지?”
레오네가 흐음, 하고 손가락으로 맥케넌을 가리켰다.
“맥케넌한테 한 방 먹일 정도던데, 전 괜찮아요.”
비네사가 맥케넌을 바라보았다.
“어땠지?”
“……뭐, 예상보다는 잘 움직이더군요. 어디까지나 예상보다는요.”
“쓸 만하단 소리군. 그러면 이 잡동사니의 거취는 다수결로 결정하겠다.”
샤펠, 맥케넌, 레오네, 페닐이 반대표를 던졌고 실라미네를 주축으로 나머지 간부진은 찬성표를 던졌다.
“5:4로 승인이군.”
비네사는 이토록 대단히 실용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생각했건만, 이때부터 모든 선입견이 깨지기 시작하게 된다.
“지금 내 병단의 상황은 무능한 놈을 돌볼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내쫓을 테니 그리 알아라.”
에쉬르가 양손을 높이 쳐들며 폴짝 뛰었다.
“야호! 감사합니다, 스승님.”
“물론 그 애물단지 관리는 네가 맡아라. 밥 먹이고 똥 치우고 다 네가 알아서 하라고, 알겠나?”
“물론이죠. 산책도 매일 두 번씩 꼭 시킬게요. 절대 안 무니까 목줄이나 입마개는 안 해도 되죠?”
에쉬르가 까불거리는 가운데 카밀라가 조심히 손을 들었다.
“저기…… 괜찮으시면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나요?”
“뭐냐.”
“만약 제가 쓸모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한 가지 질문을 받아 주실래요?”
카밀라가 그렇게 입을 열자, 간부진 전원이 당혹감 속에서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이게 아까부터 그냥 듣고만 있어줬더니 어디까지 기어오르는 건지 모르겠네.”
혈마 병단 간부, 아틀라스(3성) 마법사 페닐이었다. 그 또한 팔대학파 중 하나인 멜레브 학파 소속으로 엄청난 거물이었다.
“라미네아 경의 제자라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넌 지금 열네 살이고 1년도 채 전장에 있지 않았던 애송이 중의 애송이야. 그런데 뭐? 단장님한테 인정을 받아? 그게 어떤 일인지 짐작도 안 가나? 세상이 널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최고의 필두 페이쿼리어한테 인정을 받는 동안…… 배울 게 많단 뜻도 되잖아요.”
“뭐?”
“무섭다고 울고만 있는 건 성격에 안 맞아요. 이제 짐이 되는 건 싫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혈마 병단에서…… 그러니까 비네사 님한테 인정받을 정도가 된다면 스승님 뒤가 아니라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게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순수한 열정마저 묻어나는 말에 페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쉬르는 방그레 웃었고, 아이딘도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흥…… 비네사가 조소에 가까운 헛웃음을 흘렸는데, 그건 그 자리의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장께서……?’
‘소리를 낸 웃음을……?’
‘아이딘과 에쉬르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잘 안 보이시는 것이 저분의 감정인데…….’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게, 웃음과 연관된 감정 표현은 비네사가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닮았군…….’
비네사는 그 한순간에 그리움을 느꼈다.
‘스승의 모습조차 닮아가는 게 페이쿼리어의 제자라곤 하지만…….’
어떻게 스승의 스승 격인 미자리의 모습이 저 위로 겹쳐지는 것인지.
참혹한 전장에서 조금도 빛바래지지 않고 오히려 빛나는 저 인간성(人間性)…….
열네 살 애송이가 필두 페이쿼리어에게 시건방지게 굴었는데도 제지하지 않은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질문의 내용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거다. 뭐지?”
카밀라는 두 손의 주먹을 꽉 쥐고 한 번 숨을 걸러서 용기를 추슬렀다.
많이 배우자.
열심히, 많은 걸 배우자.
그래서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는 ‘스승님이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스승님을 지탱해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자.
“알려주세요. 용사(勇士)란 무엇인지.”
순간 침묵이 흘렀다.
비네사가 냉소적인 코웃음을 짧게 쳤다.
“내 기준은 라미네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격한데. 각오는 됐나?”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만 에쉬르 뒤로 꺼져 있어라. 더 이상 너 따위에게 시간 잡아먹히는 건 사절이니까. 아이딘, 시작해라.”
간부진이 다시 한번 당황했다.
회의 참가를 승인했다는 건 수련생으로 인정을 받았단 소리인데, 비네사는 지금껏 아무도 수련생으로 받지 않았다.
아이딘이 혈색의 사제복을 펄럭이며 작전 단상 위로 오르자, 간부진이 일제히 착석했다.
“<라프타스> 사변으로 6대 마족이 협력 관계를 이룬 건 확실시되었습니다. 네크론이 우루크 시체 군대로 시선을 끈 이후 혈족이 <라프타스>를 점령했고, 또 네크론이 도시에 원시의 저주를 마련해 두었으니까요.”
에쉬르가 턱에 검지를 얹었다.
“이제 마족 연합 군대를 상대해야 할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일단 혈족의 행동입니다. 혈족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오만합니다. 그런 혈족들이 자신들을 미끼로 쓰는 걸 용납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지요.”
“싸우면서 알아내야겠군요.”
맥케넌의 말에 비네사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놈들이 합쳐서 덤비든 제각기 덤비든 뇌향 각하나 다른 페이쿼리어들에게 맡긴다.”
“우리는요?”
“일차적 공세를 막아내는 건 시간을 끄는 것 말고는 안 돼. 무턱대고 반격하려 했다간 <라프타스>와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우린 <라프타스> 사태의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라프타스>를 되찾을 수 있어.”
아이딘이 각 병종이 상징화된 말들을 지도판 위에 올려놓았다.
“현재 가용 가능한 병력 중, 용기병 제1연대를 제외한 부대는 모두 방어선 재구축에 투입합니다. 용기병 연대는 지금부터 발브레이를 만나러 갈 겁니다.”
용기병 제1연대는 혈마 병단의 상징과도 같은, 병단 최초의 병과이자 최강의 병대였다.
용을 타서 용기병이 아니다.
기병과 보병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여 어떤 병과보다도 다재다능하게 활약하는 총병대다.
용족이 상황에 맞게 하늘과 땅을 선택해 싸우는 것과 행태가 비슷하다고 하여 용기병대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용기병대는 혈마 병단의 상징답게 승마와 사격에서 최고에 다다른 인재들만이 입대가 허용된다고 했다.
“발브레이가 누굽니까?”
샤펠이 물었다.
비네사가 대답했다.
“최고 접경지대인 몰락지대를 책임지는 놈이지. ‘황은(黃銀)의 사사’라는 별호가 더 유명하다.”
비네사가 천연덕스럽게 말한 그 칭호에 카밀라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사사라니…….
그 사사를 말하는 건가……?
사사는 그 지고한 요정 제사장들 중에서 제일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 중에서 선발되었다. 제정일치의 권위자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발브레이는 사사이기에 금서들이 다루는 옛 전쟁사를 꿰고 있고, 청성 각하께서 몰락지대의 책임자로 임명하신 만큼 마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네크론같이 여태껏 전선에 나오지 않았던 존재에 대해 발브레이가 해답을 제공해줄 거라 확신합니다.”
장성들, 그러니까 혈마 병단 소속이 아닌 간부들이 말했다.
“지금, 몰락지대로 간단 말씀입니까?”
“경, 불가능합니다! 모래 폭풍이 저렇게나 심한 데다 이제는 화산재까지 겹쳤으니 철도까지 무력화되었을 터!”
“모래 폭풍이 없어도 <화염만리> 바로 앞인 몰락지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은 최전선에 배치할 병력도 없는 시국인데, 이런 불가능한 작전에 최고 인선을 배치하겠단 말씀이신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의 신념적 기반을 구축한 경험 중에서 다섯 가지를 꼽으라면 반드시 이때의 경험이 포함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비네사가 모두의 아우성 앞에 내놓은 이 대답이.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으로 바꾸는 것, 그게 용사의 할 일 아닌가?”
비네사가 르노드의 검대를 등허리에 차며 일어섰다.
“너희들 보고 따라오라고 한 적은 없다. 내 부하들 중에서도 겁이 난다 싶은 놈은 꺼져라.”
“새삼스럽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남들이 미쳤다고 조잘대지 않으면 혈마 병단 작전이 아니죠.”
샤펠이 말했다.
간부진들이 킥킥 웃었다.
“발브레이는 지금 저 검은 지옥 너머에 있다. 저걸 뚫고 가야 놈을 만날 수 있지.”
“예, 단장.”
“실라미네, 방어선 총괄은 네게 맡긴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네가 병단의 총책임자다. 세 명을 더 남겨두고 가지.”
남(南)공화국 무녀 실라미네.
공적으로는 이곳 아드리온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녀들의 우두머리이자, 사적으로는 나태의 마녀 멜레느의 스승이다.
“내 도움이 없어도 되겠어?”
“아이딘도 있고 샤펠도 있다. 문제 될 것도 없지. 아이딘, 현재 용기병대는 몇 명 돌아왔지?”
“2천 명입니다. 나머지 천 명도 열흘 안에 정보 전달 임무를 마치고 복귀합니다. 뇌향 각하의 차원문으로 제일 먼저 이동해서 어느 부대보다 온전합니다.”
“좋군. 이제 출정 대기를 걸겠다. 정확히 보름 뒤 새벽이다. 아이딘이 선봉에서 화산재를 걷어내고, 제일 위험한 우익은 나와 에쉬르, 샤펠, 이렇게 셋이 맡는다. 늦는 놈은 용서 안 한다. 이상. 헤쳐.”
간부진이 뒤따라 일어섰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동작의 소리조차도 통일되었기에 군율이 확고하단 느낌이 강했다.
굳이 따지자면…… 가족 같은 분위기는 홍련과는 딴판이었다.
“그리고 너, 라미네아의 장난감.”
“네! 준위 카밀라! 듣고 있습니다!”
카밀라가 순박하기 짝이 없는 경례를 올리자, 에쉬르와 아이딘이 조용한 미소를 지었고, 비네사는 미자리의 눈이 떠올라 그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2주 뒤다. 2주 뒤에 그 기괴하게 뒤틀린 몸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보고, 널 데려갈지 말지 결정하겠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첫 번째 과제를 내주겠다. 맥케넌, 레오네, 페닐, 저 세 명에게 인정받아라.”
맥케넌이라면…….
카밀라는 그 세 사람을 흘끗 보았다가 다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레오네는 언제 반대했었냐는 듯 방끗 웃었지만, 맥케넌과 페닐이 이빨을 갈고 있는 것이 심히 섬뜩했던 것이다.
“그 표정은 뭐지? 원래 옹호하는 놈들에게 인정받기는 쉬워도, 부정하는 놈들에게는 인정받기 어려운 법이다. 이 정도 불가능도 뚫지 못하는 쓰레기가 용사를 꿈꾼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뭔가…… 온몸이 자꾸만 두렵고 떨리는데, 신기하게도 부정적인 두려움이나 떨림이 아니야.
마음에 전율을 일으키는 떨림.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 거칠고 무신경한 것 같아도, 용사로서 살아온 30년의 경륜이 살아 숨 쉬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저 셋을 합친 것보다도 더 깐깐한 샤펠한테 다른 임무를 내린 걸 감사히 여겨라. 2주 뒤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