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5)
가짜 용사 이야기-245화(245/310)
시즌 3 : 53화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8)
“시작이다.”
비네사의 칼집에서 르노드가 검광을 쏟아내며 튀어나온 다음 순간, 격돌이 시작되었다.
네크론은 강령술의 달인.
시체만 있다면 군세를 일으킬 수 있었고, 그 군세와의 전투에서 죽은 적을 강령술로 일으켜내 군세를 더욱 불려나갔다.
그러나 이 설명은, 어디까지나 통상 네크론에게만 적용된다.
최고위 3인의 대신관, 팔크-샤들이 부리는 원시 군대는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미친, 융합 개체입니다!”
팔크-샤의 원시 군대는 꼭 인간이 도구를 제작하는 것과 같다.
벽돌을 자르고 이어 붙이듯, 철을 녹여 주조하듯…… 원시인들의 근골을 뒤틀고, 기괴한 방식으로 접목(椄木)시킨다.
오직, 전투와 살육에 특화된 형태로.
‘뭐야, 이건 도대체…….’
팔크-샤, ‘누런 전갈’ 차칼로네가 부리는 융합 개체들은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지면서 누런 망토처럼 휘날렸다.
“샤펠, ‘린의 마법’을 쓰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지?”
“5분만 벌어 주십시오.”
샤펠이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석장으로 오각형을 그리고 그 각마다 원을 그렸다.
그리고 삿갓과 석장을 내려놓고 오각형의 중심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것뿐인데, 그 동작뿐이었는데, 대기의 마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힘의 진동에, 혈마 병단 용기병대 전체가 용기백배하여 융합 개체에 맞서기 시작했다.
‘샤펠 아저씨가 뭔가를 하려는 거야. 뭔가 엄청난 것을……!’
카밀라는 1차 저지선을 뚫고 짓쳐든 원시인 둘을 베면서 감탄했다.
상성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
미친 교전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대마족 전술 교리는 고정 진지에서의 수비전을 권장한다. 다른 양상의 전투는 승률 통계가 극악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떤 포격 지원이나 공중 지원도 없고, 측면에서 끝도 없이 적이 밀려오는 이 상황에서…….
‘이게 바로 기병대와 보병대의 역할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용기병대구나?’
마차나 수레 따위를 단숨에 철책으로 변경시키고, 마법사와 마녀들이 대지 마법ㆍ주술로 참호를 만들어낸다.
방금까지 말을 타던 병사들이 그 참호를 차지하고 특제 은탄이 장착된 증기총으로 십자포화를 이루어낸다.
빛의 축복이 깃든 탄환에 직격된 원시인들이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고, 불타서, 빛의 품으로 돌아간다.
“융합 개체다!”
“포화망을 뚫었습니다!”
“분대장들은 어디에 있지?”
그러나 융합 개체는 은탄으로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진영의 붕괴는 고대 개체의 등장부터였다.
“이런 미친, 저건 융합 개체가 아니라 고대 개체잖아!”
“고대 개체가 뭔데?”
“네크론 놈들이 고대부터 부려온 최강의 전투 개체다. 네크론 중에서도 최고위 직책인 놈이 온 모양이군.”
그 미친 작전을 ‘덜 미친’ 작전으로 바꾼 요소는 더없이 심플했다.
단 하나의 힘이었다.
비네사 알터 르노드, 그 한 용사의 무위(武威).
“에쉬르, 넌 대열을 수습해라. 저것들은 나 혼자서 맡는다.”
스르릉…… 그 모든 혼란을 단칼에 끊듯, 매혹적일 정도로 맑고 또 우아한 쇳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가 전장을 휩쓴다.
그 소리가, 전장을 정화한다.
극위성검 르노드의 검광이 둥근 궤적을 남기면, 그 쇳소리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수평선의 적들이 휩쓸려 나갔다.
온몸이 떨렸다.
이게, 고양(高揚)이라는 감각일까.
‘그때 모래 구렁이를 잡을 때는 정말, 볼 수 있도록 느리게 배려해준 거였구나.’
평생 보게 되는 검술 중에서, 검술 하나만 놓고 보면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검술이었다.
그 힘은 압도했다…….
전장이라는 배경 자체를…….
사실, 비네사의 초식 연계의 속도를 그 당시의 동체 시력으로는 도저히 좇을 수 없었다. 무아(無我)의 상태에 몰입해서 그저, 목도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하하! 역시 우리 단장님!”
“골동품 뼛조각들 따위 상대도 안 되지!”
“단장님, 아이딘 사제님으로부터 긴급 전달! 중무장 요정병들이 합류를 위해 이쪽으로 오고 있지만, 거리가 꽤 멀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합니다!”
“알았다, 모든 부대에 전달해.”
“요정병들이 직접? 황송할 따름이네요. 아니면 마중을 나와야 할 정도로 스승님이 대단하신 건가?”
“요정들이 그 거만한 잣대 때문에 모든 종족에게 욕이란 욕은 다 처먹어도 칼부림까지는 안 나는 이유가 자기들의 본분을 다해야 할 때는 다하기 때문이야. 가자.”
그때 융합 개체 하나가 저지선의 빈틈을 돌파하고 뛰어왔다.
카밀라는 적돌이의 옆구리에 즉시 박차를 가했다.
약점이 뭐지? 어떤 행동 방식을 갖고 있지?
‘거대한 두 팔로 고릴라처럼 뛰어오는데, 그것만으로는 어떻게 싸울지 감조차 안 와.’
상상하자…….
상상의 재료가 부족하다면…….
일단 그 토대를 마련해보자…….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적돌이의 안장에서 뛰어오른 즉시 마력 발판을 형성, 몸을 전력으로 박차 간격을 좁혔다.
“““GuaaaaaaaAAAAAA……!”””
수십 명의 원시인이 융합하여 이루어낸 섬뜩한 형체.
카밀라에게로 휘두르는 육중한 팔을 이루고 있는 ‘재료’도 서너 명의 원시인이 쥐어짜인 걸레처럼 서로에게 들러붙은 것에 불과했다.
차칼로네의 융합 개체는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원시인으로 만들고도 의식을 소멸시키지는 않아서, 희생자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다.
“아파, 아파, 아파…….”
“죽, 죽여줘…….”
이 나쁜 새끼…… 순간 몸속에서 뜨겁게 치받친 분노 때문에 반사 신경이 흐트러졌다.
‘그래도…… 못 피할 정도는 절대 아니야! 맥케넌 아저씨의 비수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고!’
카밀라는 허리를 낮춰 팔의 공격을 피한 다음, 발도(拔刀), 융합 개체를 깊게 베었다.
그런데…….
그러나…….
의식을 갖고 있던 원시인만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을 뿐, 융합 개체의 움직임은 태연했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아파!”
“어떻게, 어떻게, 크아악!”
카밀라는 멍하니 뒷걸음질 쳤다.
“죄송, 죄송해요…….”
그 비명이, 너무나도 사람이랑 똑같아서, 아니,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라서…….
뭐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여기에서 사람을 베고 있지? 그런 무의식적 혼돈 속에서 차칼로네의 융합 개체는 인간을 손쉽게 죽여왔다. 지금, 이 순간처럼.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카밀라의 정수리 끝에서부터 발치까지, 거대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던 융합 개체의 팔이 다음 순간 그 그림자 위로 실체를 포갰다.
십일자도 제5식, 선월(先月).
육신이 고깃점으로 뭉그러지려던 그때, 그 죽음의 그림자에 더없이 선명한 절단면을 남기는 칼의 달빛이 있었다.
“““UaaaaaaaaaaaaAAAAAA!”””
융합 개체가 비명을 내지르고, 잘려나간 팔을 이루던 원시인들도 바닥에 널브러진 채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며 울먹거렸다.
“듣지 말고, 보지도 마, 카밀라! 이미 죽은 사람들이야!”
그 찰나에 에쉬르는 카밀라를 뒤로 데리고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에쉬르는 카밀라의 투구를 강제로 벗겨내고 뺨을 두 번이나 때려야 했다.
볼이 얼얼해지는 충격 속에서, 머릿속을 시커멓게 만들던 혼돈으로부터 카밀라는 겨우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자, 시간이 없어.”
“언니, 어떻게? 어떻게 쓰러뜨려야 돼?”
“내가 움직임을 멈출 테니, 카밀라가 상반신을 사선으로 베어버려. 융합 개체는 중심이 되는 개체를 베면 돼.”
에쉬르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나 강할까.
에쉬르뿐만이 아니야, 혈마 병단 전체가 엄청나게 강해.
이런 수라장을 몇 번이고 헤쳐 나온 걸까. 이런…… 평범한 인간이 눈에 담기도 힘든 참극을 몇 번이나 봐왔던 걸까.
“언제나 웃기로 했지? 자, 따라와!”
융합 개체와의 간격을 단숨에 좁힌 에쉬르는 칼과 칼집을 쥐는 방식을 역수(逆手)로 변형시켰다.
십일자도 제2식, 궤(軌).
회전하는 팽이처럼, 둥글게 펼쳐지는 쇳빛의 궤적만을 시신경이 겨우 인식한다.
‘빨라.’
카밀라가 그 뒤를 따르며 감탄할 때, 융합 개체가 팔을 내질렀다.
‘진짜, 어마어마하게 빨라.’
그 팔을, 칼날의 팽이가 사선으로 타고 올라간다.
핑그르르……!
단숨에 팔을 수십 토막으로 도륙하고 어깨를 저민 에쉬르는 등 뒤로 빠져나가며 모든 힘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칼날에 집약시켰다.
십일자도 제6식, 섬무참.
본래라면 관성에 의해 몸이 계속 회전해야 하건만, 그 필연적인 힘을 강제적으로 칼날에 실어서 절삭력을 수십 배 증강시킨다.
빙글…….
역수로 쥐고 있던 칼자루의 고리에 손가락을 넣어 칼날을 반 바퀴 회전, 칼자루를 순수(純手)로 바꿔 쥔다.
슈칵──!
팔에 비해 비교적 빈약했던 융합 개체의 발목을 이루고 있던 원시인들이 단칼에 베였다.
무게를 신체 구조적으로 견딜 수 없게 된 융합 개체가 앞으로 쓰러진다.
그때, 카밀라의 칼날에서도 마력이 수천 개의 전류로 파직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지금, 그 중력을 참격에 포갤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에쉬르가 완벽하게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게 당연해.
‘대체 몇 번을…….’
몇 번을, 스승님과 함께 이 동작을 반복해 왔는데. 그 웃음과 격려 속에서 성공시켜 왔는데.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지면에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신형을 쇄도, 단박에 융합 개체의 코앞에 도달한 칼날이 칼집의 내압을 이기지 못하고 빛을 흩뿌리며 솟구친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여러 인간을, 있을 수 없는 구조와 형태로 얽어놓은…….
피막과 근막과 근골을 끝없이 베어내는, 다 베어냈다 싶으면 또 베어지는, 그러한 소름 끼치는 감각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만 같던 그 참혹한 순간은 다음 순간 끝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골반에서부터 어깨까지, 상반신과 하반신이 비스듬하게 절단된 융합 개체는 모래밭 위로 쓰러지면서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원시의 실이 끊어진 것이다…….
쓰러진 이들은, <라프타스> 공방의 병사였던 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안식에 들었다.
“““고마워…….”””
칼 쥔 손이, 칼집 쥔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앞으로도 이런 전투가 계속되는 건가, 스승님이나 요한이 이런 꼴이 되어도 난 벨 수 있을까?
“잘했어, 카밀라.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에는 일러!”
열네 살에 융합 개체를 쓰러뜨린 건 대단한 업적이었으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도하듯이 경건하게 양손을 맞잡고 있던 샤펠이 마침내 펼치는 수인(手印)이 허공에 힘의 문자, 룬을 새겨낸다.
뇌(雷).
장(場).
투(投).
낙(落).
섬(剡).
5개의 중심원, 이건 전장의 판도마저 바꿀 수 있는 5성 마법 중 하나. 12세기의 동란기, 압도적인 물량의 적들을 단번에 쓰러뜨리기 위해 대마법사 린이 고안한 최강의 뇌전 마법.
“제1뢰(第一雷).”
더 이상의 연산은 필요 없다.
수인도 필요 없다.
준비 동작은 무엇이든 간에 필요 없다.
“제2뢰(第二雷).”
샤펠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오각형이 바로 낙뢰의 영역. 감히 이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적은 낙뢰에 집어삼켜질지니.
“제3뢰(第三雷).”
수천 마리의 새가 고통스럽게 지저귀는 듯한 고주파가 형체를 입고 천공에서 지면으로 급강하했다.
순백(純白)이 작열한다.
모래의 세계를 새하얗게 뒤덮는 낙뢰가, 가공할 열량의 열기를 흩뿌리며 융합 개체들을 잿더미로 만들어간다.
“제4뢰(第四雷).”
“제5뢰(第五雷).”
“제6뢰(第六雷).”
“제7뢰(第七雷).”
이것이 바로, 대마법사 린의 무용담을 눈부시게 증명하여 오사리우스 학파를 대학파의 반열에 당당히 올린 5성 마법, 뇌장방혈.
실전성과 살상력만을 극한까지 증폭시킨 일곱 번의 낙뢰로 적이 단일 개체건, 다수건 상관없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멸한다.
고막이 찢어지는 폭음이 귀에 이명을 일으키고…… 모든 원시 개체가 분멸(焚滅)되면서 정적이 생겨나야 했으나, 그 빈자리로 더 큰 소란이 밀려들었다.
“젠장, 이러고도 아직도 더 몰려온단 말이냐…….”
한 가지, 정정해야 할 게 있다. 이 미친 작전을 성공시킨 건 비네사만의 무위가 아니었다.
비네사와 에쉬르가 아무리 활약해도.
맥케넌의 비수가 융합 개체들의 혈(穴)을 뚫고, 레오네의 화염이 원시 군대를 불사르고, 페닐의 파도 마법이 적을 뒤덮어도…….
“끝도 없이 옵니다!”
“이런 망하아아아알!”
그때 출현한 고대 개체와 융합 개체의 숫자는 어마어마했고, 작전은 마침내 궁지에 몰렸다.
3천 대 10만? 15만?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는 백전불패의 혈마 병단도 어쩔 수 없었다. 사상자가 다수 속출하며 진영 붕괴가 눈앞이었다.
“쏴, 계속 쏴!”
점점…….
서서히…….
분명하게…….
“오지 못하게 막아!”
목을 조여오는 원시의 손아귀, 모든 것이 암흑과 절망과 비명의 구렁텅이로 빠져가던 그 시점에.
“잡것들은 예절이 없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니면 예절이 없기에 잡것이라 불리는 건지 모르겠군.”
소란을 정적으로 바꾸고, 암흑을 빛으로 밝혀낸 것은…… 지천에서 솟구쳐 오른 황은(黃銀)의 사슬.
수백, 아니, 수천……?
찬란한 광휘가 시체 군대의 골격을 꿰뚫거나 휘감아, 어둠에 사로잡힌 원시의 망자들을 빛의 품으로 되돌려 보냈다.
“빛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사를 알현하기 위해서 응당 표해야 할 경의의 법도도 모른단 말이냐.”
요정병, 그중에서도 최정예 요정병의 전투는 예술에 가깝단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놈들 하나하나가 싸가지가 결여되었단 건 사실이지만, 그 막강한 전투력은 과연 예술 그 자체였다.
“에베스란, 저것들에게 예절을 가르쳐줘라. 나를 대할 때의 눈높이에 대해서도.”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
그야말로 고귀한 후광을 거느리고 빛처럼 나타난 기적의 구도자, 사사…….
“사사의 명을 받듭니다.”
사사의 명령에 최강의 요정병인 팔라딘 에베스란이 앞으로 나섰다. 모든 사사는 팔라딘을 전속 수호자로 거느린다.
“부대, 홀트란크스(Holtranks; 고슴도치) 진영! 첫 번째 자손의 위엄을 보여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