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7)
가짜 용사 이야기-247화(247/310)
시즌 3 : 55화
아름다운 충절(忠節)과 장한 의기(義氣)의 결과물은 참담했다.
모래밭 위에 흩뿌려진 살점과 핏물이, 혈마 병단 용기병대 1,468명의 끝이었다.
눈알이 튀어나온 자도 있고 내장이 비어져 나온 자도 있었는데, 남극의 열기가 극렬해 벌써 주검들은 메말라서 바스락거렸다.
“시체를 수습할 여유도 없고 묻을 여유도 없다. 모두 불태워라.”
전장에서의 장례는 모두 화장(火葬)이었다.
전장에서의 화장은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종교적으로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다.
불이 그 육신과 영혼을 심연으로부터 깨끗이 씻어서, 저 빛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미안해요.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다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뼈저린 무력감 속에서 사체를 수습하던 그때였다.
아지랑이가 요동치는 극지의 열기와 전후 피로가 문득 아찔한 현기증으로 몰려왔다.
사체를 놓치고, 그대로 쓰러지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몸을 굳건히 지탱해 주었다.
“어디 다쳤습니까?”
훗날 세상을 나름 길게 살아보면서, 이렇게나 아름답고 또 현숙한 미청년을 본 건 자발이 처음이고 아이딘이 두 번째이며 요한이 마지막이었다.
미(美).
동화에나 묘사될 법한 남자.
키가 여느 페이쿼리어들만큼이나 컸고 긴 속눈썹으로 덮인 눈동자는 고요한 무게를 지녔다.
“거동이 심상치 않군요. 어디 좀 봅시다.”
홍의 사제(紅衣司祭)라는 별호답게 붉은 법복을 갖추었는데, 허우대가 길어 맵시가 아름다웠다.
다만 사제복 위로 자상이 가득한 가죽과 찰갑을 덧대어서인지, 사제보다는 전사 같은, 거룩한 투기를 거느렸다.
홍의 사제는 그대로 카밀라의 이마를, 배를 차례로 짚어보더니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다행히 신체적인 문제는 없군요. 피로한 모양입니다.”
아이딘이 성호를 그린 손가락을 카밀라의 이마에 얹고는 성구를 읊었다.
그러자 그 손이 거룩한 빛에 휩싸였는데…….
정말 놀랍게도 마음속의 긴장이 가볍게 늘어지고,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가지런해져 갔다.
“이제 좀 괜찮습니까?”
“네!”
“그러면 저를 도와주십시오.”
“뭘 도와드리면 되죠?”
“응급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상자, 부상자, 라고 외치면서 뛰어다녀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누군가가 짧게 신음을 흘릴 겁니다.”
카밀라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 참담한 현장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아직, 누가 살아 있구나.
손나팔을 만들고 부상자를 외치며 뛰어다니자, 곧 사경을 헤매던 부상자들을 쉰여 명 찾아내 아이딘에게 인계했다.
“아, 사제님…….”
그때마다 홍의 사제는 부상자들의 이마에 손을 얹고 절실한 기도를 올렸다.
“아무 말씀 마십시오. 임무는 끝났습니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부상자들의 안색이 단번에 맑아지고 호흡이 정돈되었다.
죽을 것 같은 상처를 입은 이들조차도 상태를 안정시키는 비상식적 신성력…….
그러나 모두를 고칠 수 있던 건 아니었고, 가망이 없는 이들에게는 안락사(安樂死)를 베풀었다.
“저는,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평생, 후회만이 남아서…….”
견딜 수 없는데.
견디고 싶었던 것들을.
삶의 끝에 다다라서야 솔직히 고백할 수 있던 그 모든 것을, 아이딘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다.
“어릴 때 이럴 거면 왜 낳았냐고 어머니에게 막말을 했던 게 평생…… 후회로 남아서…… 그걸 속죄하고 싶어서…… 이 신성한 싸움에…….”
그 이야기의 끝에서, 아이딘은 상대가 지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창세의 어버이께서 그대를 창세의 낙원에서 육친과 만나게 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제 편히 눈을 감으십시오.”
하반신이 완전히 우그러진 고통으로 힘겹게 헐떡이던 환자는, 아이딘의 손끝에서 빛이 일어난 다음 순간 아이처럼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다.
그 모습이, 거룩하게 보였다.
아이딘은 그뿐만이 아니라, 죽어야 하는데도 죽지 못하고 꿈틀대던 원시인들에게도 빛의 안식을 베풀었다.
아이딘의 양손과 소맷자락 모두 피와 먼지로 젖어 있었다. 카밀라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수건으로 그 얼굴의 땀을 찍어냈다.
“혈마 병단은 회개하기 위해서 전장에 머무르는 건가요……?”
카밀라가 문득 말을 꺼냈다.
비네사 알터 르노드와 함께, 항상 전장에 머무른다더니…… 싸우다가 죽기 위해서일까?
아이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회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가, 천국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
“천국에 이르러, 먼저 간 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게 되는 겁니다. 그 의를 이루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사명을 짊어지는 겁니다.”
사명?
사명을 받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받은 힘, 그 재능이 바로 사명입니다. 우리보다 약한 이들을 보살피라고 창세의 섭리가 허락하신 거지요.”
이렇게나 무더운 환경에, 저렇게나 어려운 설교가 무식한 카밀라의 뇌리에 박힐 리 전무했다.
카밀라는 입술을 꿈틀거렸다.
한참 망설이다가, 정말 한참 망설인 후에야, 원래 하려던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사사님이 페이쿼리어는 죽어야 그 제자가 페이쿼리어가 된다는데, 그러면 저도 이렇게 스승님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나요?”
사제의 표정은 고요했다.
말이나 행동 자체에 높낮이가 없어서, 감정의 들뜸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제님이 치료해 주시면 어떻게 안 될까요? 지금처럼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아까도, 그리고 지금도…….
‘스승님이 죽게 된다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니.
종국에는 스승과 제자가 죽음이라는 벽을 두고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용사의 숙명이라니…….
불현듯, 스승님이 전장에서 적의 칼에 맞아 쓰러지는 피의 환영이 눈앞을 스쳤다.
‘아…….’
카밀라는 아이딘의 땀을 닦는 일을 멈춘 채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 지금 당신 나이쯤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남극 극지의 어촌 마을로 발령을 받았죠.”
“……?”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좋은 이들이었습니다. 순박함 속에 맑음의 바탕이 있었지요.”
“…….”
“아이들은 저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어른들은 ‘어린 사제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어렸고, 부끄러움이 많아 그 호의를 완전히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어른이 되고 나서 돌려주자고 생각하곤 했죠.”
카밀라는 눈을 끔뻑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 모두가 우루크 해적의 손에 죽었습니다. 어른들은 정수리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도끼날에 두 쪽이 나서 죽었고, 아이들은 산 채로 사지가 찢어져 죽었습니다. 좋은 기억은 이제 거의 잊혔는데, 그 모습만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게 슬픕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인간은 그걸 알면서도 부정하지요. 주위 사람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
“사람은 참으로 슬픈 생물입니다. 소중해서, 잃는다는 걸 부정하지요. 그렇기에 진정 소중한 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한 이가 항상 곁에 있을 줄 알고 말이지요.”
아이딘이 저편, 비네사의 곁에서 그 시중을 드는 에쉬르에게로 턱짓했다.
“근데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부모 같은 스승이 결국에는 죽게 된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철없이 행동할 시간이 없단 걸 알아서, 순식간에 어른이 됩니다.”
“…….”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뿐입니다. 스승이 시한부란 걸 알게 되었다고 이렇게 절망하고 있으면 스승의 마음 또한 슬퍼지지 않겠습니까?”
아이딘이 피와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낸 손으로 카밀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짚었다.
“당신이 할 일은, 그런 슬픈 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 스승과 헤어지게 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기억만을 남겨드리는 겁니다.”
“……!”
“마지막 날에 스승이 ‘아, 이 아이를 제자로 거두어서 정말 다행이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제자가 되십시오. 우리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그 순간에, 무언가, 마음속의 어둠 속으로 빛살이 비쳐드는 느낌이었다.
아…….
말이 이렇게나 명료할 수가 있구나. 이게 빛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구나. 스승님과 비슷한 느낌이 나…….
“네!”
카밀라가 고개를 힘껏 끄덕이자, 사제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두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하던 일을 계속하죠.”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10)
“최고 신관인 팔크-샤 놈들을 제외한 네크론은 비열하고 비겁한 족속이다. 절대로 전면으로 나섰을 리가 없어.”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가 말했다.
“<라프타스>에 둥지를 틀었을 리는 절대 없어.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일대를 훑는다.”
오사리우스 학파의 마법사, 샤펠이 삿갓을 슬쩍 들며 물었다.
“왜 근데 어촌입니까?”
“네크론 놈들은 시체가 많은 곳을 좋아하니까. 촌락에는 무덤이 있지 않나.”
비네사 알터 르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이비 사사가 말한 대로다. 아이딘, 부대를 추슬러. 네크론 최고 신관을 붙잡으러 간다.”
에쉬르가 어디 피서를 가는 소녀처럼 양손을 맞잡고 웃는 모습을 스승에게 보였다.
“갑자기 신나는데요? 왜, 이렇게 더울 때는 바닷바람 쐬는 게 끝내주잖아요, 스승님.”
그렇게, 요정병 3천과 용기병대 천오백이 몰락지대에서 남서부 해안 지대로 이동하는 데 보름이 걸렸다.
대략 열흘째에 고대 개체를 조종하던 실이 끊어졌지만, 방위 특정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해안 지대에 도착하고 또 열흘 동안 해온 일은 일대의 어촌들을 은밀히 탐색하는 일이었다.
“명심해라. 네크론 신관은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기원력 1671년 7월 30일
남서부 해안 어촌, 굴트 마을.
“그것만 명심하면 임무는 간단하다. 어촌을 차지한 네크론 놈들을 쓸어버리면 된다. 건물이건 뭐건 죄다 날려버린다. 또 명심해라. 여기에 생존자는 없다. 망설이지 마라.”
그건 분명 급습이었음에도 작전 골조는 철저하기 그지없었다.
네크론 신관은 자신의 은둔처에 황은(黃銀)의 사슬로 새장이 둘러쳐지는 사태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딴 걸 누가 예상하겠는가?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는 기적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서 어촌 마을 전체를 봉쇄한 것이다.
쥐새끼 하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들어올 구멍도.
즉, 놈은 독 안의 쥐였다.
휘하 원시 군대는 혈마 병단을 찾기 위해 몰락지대 근처로 나갔는지, 이 어촌 주위에는 주둔 병력이 많지 않았다.
“아이딘은 이번 작전에서 원거리 지원을 맡을 거다. 분대장들은 이 비수를 챙기도록.”
비수의 칼날에는 아이딘이 직접 성언을 새겨둔 게 인상적이었다.
이건 좌표 호출기였다.
이 비수를 던져서 꽂은 장소는 그 좌표를 아이딘에게 공유할 수 있었는데, 그 즉시 원거리 포격을 지원해줄 예정이라 한다.
“이제 분대별로 움직인다. 에쉬르, 넌 독립 분대로 좌익 수색의 선봉을 맡아라.”
에쉬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받았던 비수 여섯 개 중 세 개를 카밀라에게 넘겨주었다.
“카밀라, 지원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곳으로 이걸 던져. 가자!”
진압 작전이 시작되면서, 에쉬르와 함께 섬뜩한 울음소리가 울리는 어촌으로 진입했다.
어느 순간.
민가 외벽을 통째로 무너뜨리며, 지붕을 뚫고 나오며, 육신 전체가 기괴하게 변형된 원시인들이 덤벼들었다.
─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칼자루에 손을 얹은 카밀라의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인다.
세 마리.
그리고 호흡을 들이켠 한순간.
일도양단(一刀兩斷).
초식의 시작은 제5식 돌발격, 첫 번째 원시인의 몸을 절단하는 동시에 마력의 발판을 형성.
그걸 박차며 비스듬히 도약.
제7식 진뇌룡으로 두 번째 원시인을 허공에서 격추시키고, 공중제비를 돌며 진뇌룡의 잔류 마력으로 제6식 섬무참을 끄집어낸다. 세 번째 원시인의 몸을 수직으로 갈라 내린다.
“카밀라, 대단한데! 심화 초식 연계가 순식간이었어!”
스스로도 알겠어, 혈마 병단에서 지낸 한 달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걸.
하지만…….
호흡이 절로 헐떡여졌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네크론의 원시 군대나 혈족의 혈노들을 상대할 때면 이렇게 호흡 자체가 불편해졌다.
예전에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을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나는, 칼을 휘둘러야 하는구나.
“카밀라, 저쪽에 비수를 던져! 포격 지원이야!”
상념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북동쪽의 촌락으로부터 원시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쪽으로 비수를 내던졌다.
사실 그때까지는 별 기대도 없었다. 이런 황무지에서 얼마나 대단한 포격 지원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비수가 촌락 기둥에 꽂힌 순간, 시상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그 순간에, 그 생각이 참으로 무례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창천의 태양, 테르벨.
그 군주를 대표하는 기적…… 창천극(蒼天戟).
거룩한 광휘로 빛나는 창이 촌락에 날아와 꽂히더니 찬란하게 폭발한 것이다.
그 빛이, 저주를 불사른다.
원시의 어둠에 문명의 빛이 비친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진다.
“끝내주지?! 아이딘 오빠는 인류 역사 최초로 테르벨의 기적을 쓸 수 있는 사제거든!”
저주에서 해방되면서 원시인의 껍질과 함께 소멸하던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고통스러운 침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어 의지를 되새긴다.
해야 할 일을 하자.
그 일이 이들에겐 안식을 주는 것일 테니.
“구획 정리 완료. 여기 최고 신관은 없다. 이동!”
다음에는 흉측하게 삭은 그물과 썩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어포가 잔뜩 널린 경사로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원시인이 가득했다.
에쉬르가 열 명을, 카밀라가 여섯을 베었다. 여기가 아닌 저 다른 구획에 아이딘의 창천극이 거듭 내리꽂히는 게 보였다.
– 원시인들은 체구가 6척에서 7척 사이고 들짐승처럼 네 발로 걸어 다닙니다. 이건 노역에 유용하도록 강제로 체격을 비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위험종은 날짐승처럼 높게 도약하는 부류인데, 갑자기 허점을 찔러오므로 주의가 필요했다.
“여기에도 최고 신관은 없어! 카밀라, 음향탄을 쏴서 보고해!”
“응!”
삐이이이이…… 그때는 어촌을 외곽부터 소쿠리처럼 세세히 훑던 다른 인류 분대들도 음향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외곽에는 놈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놈은 중심부에 있단 소리인데, 중심부로 향한 건 최강의 요정병과 또 현 인류 최강의 병사…… 비네사 알터 르노드였으니까.
“카밀라, 우리도 중심부로 가자.”
중심부에서는 저항이 외곽보다 몇 배는 격렬했는데, 팔라딘 에베스란의 지휘로 홀트란크스 진영을 갖춘 요정병들에게 압도적으로 분쇄당하고 있었다.
“부대, 3보 전진!”
“1열, 방패 고정!”
“찔러!”
비네사는 그 중심 구획이 아닌 부둣가 구획에서 음향탄을 발사해 간부진을 소집했다.
“중심 구획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도피처가 있단 정보를 확보했다. 놈이 바다로 나가게 둘 수는 없지. 우린 이곳으로 돌입한다.”
“근데 스승님, 이 아래에서 자꾸 비명이 들리네요?”
“놈이 호위 병력을 급히 만들고 있는 거겠지. 원시화 내성이 높은 개체를 원시인으로 만들 때는 그 혼의 저항이 만만치 않거든.”
“나쁜 놈…….”
카밀라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 비네사는 훗, 하고, 옛 친우의 환영을 그 순수하게 분노하는 얼굴에 겹쳐 보며 슬픈 미소를 삼켰다.
“그래, 이제 더는 그딴 짓을 하게 놔두지 않는다. 내려가자. 이 아래부터는 사지(死地), 요컨대 용사(勇士)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