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8)
가짜 용사 이야기-248화(248/310)
시즌 3 : 56화
“진입!”
비네사를 따라 지하도(地下道)로 내려가자마자, 원시인 전투 개체들과 맞닥뜨렸다.
전투 개체는 일반 개체와 다르다.
노역용이 아닌, 전투용이다.
놈들은 인간을 손쉽게 으깨거나, 반으로 갈라서 반숙처럼 그 안쪽의 내용물을 모두 흘러나오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단일 개체이므로 융합 개체보다는 확실히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험한 놈이었다.
“발브레이의 설명에 따르면 전투 개체는 친위대와 다름없다는데, 쥐새끼가 여기로 도망쳐오고 있던 모양이군.”
근데 저 설명을 들어서 뭐 어쩌란 것인가? 그날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설명이었다.
그때 눈앞에서 극위성검 르노드의 검광으로 지하의 암흑을 불태우던 존재는 바로 ‘모든 상식을 몰상식으로 만들어 버리고도 남는 힘’의 주인이었는데.
비네사의 손에서 르노드가 눈부시게 울부짖을 때마다, 전투 개체가 수십 개체씩 일소되었다.
‘에쉬르 언니와 나를 여기 동행시킨 이유는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시구나…….’
그냥, 저 검술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기 위해서인 거 아닐까? 지하의 암흑을 조명 마법으로 비추는 샤펠이 가장 쓸모 있었다.
“뭐냐, 그 눈빛은?”
“비네사 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부러워서요.”
“크크, 부러울 만하지. 짜샤, 내가 이러기까지─”
“─놈이 보인다. 샤펠, 3초 뒤 빛 폭발이다. 에쉬르랑 카밀라, 너희 둘이 양쪽 두 놈을 맡아라. 3, 2, 1.”
네크론 최고 신관은 지극히 성가신 놈들이지만, ‘팔크-샤’라 불리는 최고 지도자를 제외하면 자체적인 대인적 능력은 하이 쿤 타르크 족장이나 창백한 준남작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놈들이 약하단 소리는 절대 아니다.
어지간한 검사나 마법사나 마녀들은 농락하고도 남는 수준이라고 하니까.
‘그런데도…….’
첫인상은, 음…….
훨씬 약한 것 같았다…….
‘상대가 나빴다는 게 이런 거려나……?’
최고 신관이 저 토굴 끝에서 나타난 순간, 비네사의 손에 빛이 임했고, 전투가 끝나버린 것이다.
바로 그날…….
그날의 순간…….
인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한순간에, 르노드의 칼날로 오십 마리가 넘는 전투 개체를 단숨에 격멸, 신관이 내뻗은 암술의 소용돌이를 르노드의 빛으로 찢어 버리고는, 단숨에 놈을 지면에 자빠뜨려 제압해버린 것이다.
“샤펠! 이놈 당장 봉인해! 허튼 짓거리 못 하게!”
필두 페이쿼리어.
비네사 알터 르노드.
“예! 다만 오래 못 갈 겁니다!”
그때 그 용사가 보여준 전투는, 압도적 전투와 경이적 전율의 교과서로 가슴속에 항상 남게 됐다.
“알아! 아이딘이랑 발브레이에게 넘길 때까지만 버텨라!”
“알겠습니다!”
“에쉬르, 여길 빠져나가서 아이딘을 찾아라. 바로 가!”
“네, 스승님!”
“카밀라, 너는 발브레이를 찾아와라. 그놈이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니. 너도 바로 가라!”
그렇게 사사와 사제의 의해 심문이 시작되었다.
진실의 장막이 들춰졌다.
알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올해 시작된 여름이 우연이 아니라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치밀히 계획된 것이라는 걸.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11)
“심문해라, 아이딘. 어떻게 혈족과 연합했는지. 누가 주선했는지.”
“뇌에 직결해서 심문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미글(Samigle; 요정의 언어로,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은 개똥보다도 쓸모가 없단 말이 있는 거 아니겠나. 나와봐라.”
발브레이가 성서 외경의 두루마리를 펼쳤다(발브레이의 혁대에는 두루마리가 종류별로 가득 꽂혀 있었다).
그 두루마리가 다루는 내용은, <온 것들> 고상한 달, 졔안니르의 가르침이 수록된 이야기였다.
빛의 군주, 졔안니르는 도화(圖畵)라는 이름으로 상상의 빛을 현실에 포개는 권능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걸 역으로 이용하지. 놈의 마음속을 도화로 투영해내는 거다.”
“심연을 끄집어내겠다고?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하면 너도 심연에 노출될 거다, 발브레이.”
“이 상황의 진모를, 그리고 놈들의 노림수를 알아내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발브레이가 성언을 읊기 시작하자, 그 주위로 광입자들이 고결하게 솟구치고 춤추고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기도문이 끝난 순간, 그 빛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결집되며 눈부시게 빛났다.
발브레이가 그 손끝으로 네크론 신관의 이마를 짚었다.
꾸르르르르륵…….
어촌의 지반이 녹아내릴 정도로 강대한 심연…… 독기가 폭발해 나왔다.
발브레이가 즉시 기적의 방벽을 두르지 않았더라면 뭔 일이 났을지 모른다.
심연은 일대의 모든 것을 삼키려다가 실패했고, 대신 빛의 힘에 이끌려 허공에 결박되었다. 그것이 곧 하나의 상(想)이 되었다.
‘뭐지?’
불타는 사막, 옛 왕의 권위인 용암과 화산재와 암흑이 지배하는 불모의 땅…….
거기에, 빛이 있었다.
신성한 것 같기도 하고, 불경스러운 것 같기도 한…… 보랏빛 광채가 웬 칼날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다.
그 빛 앞에 암흑이 복속했다.
상에 비치는 것은 곧 추상적으로 변해서 알아볼 수 없었는데, 아이딘은 그걸 해석해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흐, 흐흐흐흐, 흣, 흐흐흐…… 너희들이 섬기는 빛…… 그 빛의 쪼가리가 심연의 밑바닥으로 타락하였으니…… 으흐흐흐흐…….”
황은의 사슬에 영혼부터 꿰뚫려 발악다운 발악도 못 하던 네크론 신관이 그렇게 발작하더니, 느닷없이 폭발했다.
뼛조각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 앞에 서 있던 아이딘은 그 뼈 폭발의 포화에 중심에 있었는데, 자신의 얼굴이나 몸을 찌른 뼈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딘.”
“…….”
“아이딘!”
비네사의 외침에 아이딘이 섬칫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할 것이…….”
“보고해.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저 도화로 뭔가 알 수 있었나?”
“역시 마족을 규합한 건 카디페르(Kadifer)였습니다. 예언자(預言者)라는 뜻이죠. 마족들은 놈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발브레이가 눈썹을 치켰다.
“예언자라. 사사 같은 존재인가? 잠깐, 그 카디페르라는 고대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 걸로 기억하는데. 타락자(墮落者)라는.”
발브레이의 말에 아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건, 아니 그것 또한 중요합니다만, 더 시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라프타스>는 저주의 중심이었습니다.”
“무슨 뜻이지?”
“도시 희생자들 전체의 피를 이용해 <라프타스>에 거대한 법진을 완성시킨 겁니다! 원시의 저주가 <라프타스>에서 끝나지 않고, 힘의 집중이 끝나면…… 대륙 전체로 퍼지게 되겠죠.”
비네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이 최고 신관의 기억으로 읽건대 정확히 열흘 뒤입니다.”
에쉬르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말도 안 돼! 지금 여기서 <라프타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열흘이잖아요!”
뭐지, 열흘 뒤면 세상이 끝난다는 소리인가?
멍하니 눈을 끔뻑거려야 했다.
자고로 세상이 영원히 이어지리라 믿는 어린 시절에는 그런 허황된 소리를 들어봐야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사사님, 원시 군대가 이곳으로 몰려옵니다!”
“정확한 숫자가 산정되지 않는, 이런 미친, 수십만의 대군세입니다!”
“단장, 정찰대장 맥케넌입니다! 동족에게 닥친 위기를 다른 네크론 최고 신관들이 포착했나 봅니다! 이미 삼면이 포위됐습니다!”
말(言)과 음향탄의 굉음이 황망하게 뒤채는 가운데…….
오직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요정만이 고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밀라는 그걸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페이쿼리어, 아무래도 자네의 때가 온 것 같군.”
발브레이가 말했다.
문득 비네사가 흉갑의 이음 걸쇠를 풀었다.
그러더니 목에 걸고 있던…… 피리를 꺼내 보였다.
“그래, 내게 이 피리가 맡겨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내 사명을 ‘시작과 끝의 도시’에서 끝낸다니, 영광이기도 하군.”
비네사는 냉소 같은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흉갑을 닫고 걸쇠를 채워 고정했다.
그러는 사이에…….
딱, 딱, 딱딱딱딱딱딱…… 사방팔방에서 미친 듯이 밀려드는 원시의 군대에 인요(人妖) 방어선은 어촌 부둣가까지 내몰렸다.
“이런 젠장, 묶인 배들은 다 썩었습니다!”
“탈 수 있다고 해도 이 숫자를 다 수용 못 한다!”
홀트란크스 진영은 이미 그 자체적으로 완성된 진영이었다.
인간 총병대의 통상 진영, 선형진(線形陣)과 홀트란크스가 상승효과를 누리게 된 건 리아 알터 타스알포의 등장 이후였다.
이 당시에는 상승효과는커녕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될 뿐이었다.
“제길, 여기서 끝인가.”
“그래도 원시 군대 수십만을 끝장내는 죽음이라면 개죽음은 아닐 것이다.”
인요 최고의 전사들이 내지르는 투지의 틈새로 절망이 스멀스멀 밀려들던 그 일촉즉발의 순간, 빛이 있었다.
아련하고도…… 눈부시며…….
찬란한…… 빛이 하늘 위로…….
일곱 개의 낙뢰가 순식간에 부둣가를 에워싸듯 내리꽂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너무나도 신묘하게도, 낙뢰는 소멸하지 않았다.
“이, 이건……?”
소멸하기는커녕 그 빛기둥 형태 그대로 살아 맥동하며, 다가드는 원시의 무리들을 윽박질러 내쫓는 게 아닌가.
“뇌향 세츠넨 각하……!”
용현의 직계 제자이기도 한 그녀를 대표하는 세 개의 심상 결계 중 하나.
뇌화방계(雷火防界).
역대 렌페이지(6성)에 이른 현자들은 하나의 심상만을 부렸다는데(용현은 예외다), 그녀는 무려 세 개의 심상을 갖고 있었다.
“와, 와주셨어! 뇌향 각하께서!”
이 힘은 12세기 동란기를 평정했던 대마법사 린, 그가 고안한 5성 마법 뇌장방혈과 용현 레인 루드윅이 고안한 5성 마법 섬뢰천격포를 절묘하게 융합시킨 것으로 마법 역사학적인 의미도 깊었다.
샤펠은 두 눈을 떨기까지 했다.
오사리우스 학파 소속으로서 누구보다 이 순간에 받은 감동이 클 것은 당연했다.
“위대한 용께 찬미의 함성을 질러라!”
팔라딘 에베스란이 방패를 성창으로 두들기자, 요정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때, 그 어린 나이에, 그 빛을 처음 본 데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잘 모르면서도…….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카밀라 또한 반쯤 울면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뒤쪽이다……!”
“차원문이 열립니다……!”
“질서 있게 후퇴하라……!”
그렇게 기원력 1671년 8월 1일 새벽, 몰락지대 돌파 작전을 마무리하고 기적적으로 임시 사령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인류의 ‘검은 여름’ 전쟁사는 전쟁 초기를 이끈 건 혈마 병단이며 대미를 장식한 건 홍련 병단이라고 말한다. 요정은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를 내세우지만.
‘붉은 여름’ 또한 인류는 샤릴리온을, 요정은 리암을 주역으로 내세우는 반면, 뇌향의 활약은 후일 <라프타스> 참극에 종지부를 찍는 걸 제외하면 거의 기록된 바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 활약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분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던 전투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즉, 뇌향은 당연히 계셔야 할 존재였다. 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청성 미른가디아와 함께 ‘검은 여름’과 ‘붉은 여름’ 두 전쟁사의 중심을 지켜온 것이다.
직접 전장에 한 번이라도 서봤더라면 누구나 알고 또 인정하는 내용이 있다.
단언컨대, 뇌향이 없었더라면 두 여름에 관한 전쟁사 자체가 쓰이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