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49)
가짜 용사 이야기-249화(249/310)
시즌 3 : 57화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12)
차원문을 ‘기적적’으로 넘어서 생환한 곳은 <레메테>라는 소도시였다. 임시 사령부가 이곳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사령부 주둔군은 조촐했다.
부대 편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방어선을 넓게 펼치느라 흩어진 페이쿼리어들의 현장 지휘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래, 네크론 신관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내 걱정이 참으로 컸거늘, 너흴 이렇게 다시 만나게 하신 걸 빛의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뇌향 세츠넨의 지도력 부족에서 비롯된 사태는 결코 아니었다.
<라프타스> 사변 당시 저주 폭발에 직격되었던 뇌향은 한 달이 가깝도록 지휘 일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거동이 가능토록 몸이 회복되자마자 혈마 병단을 찾아와 구해준 것이었다.
“말만 최고지, 그놈도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이 사미글 사제에 따르면, 세 명의 팔크-샤 중 하나가 현재 <라프타스>에서 원시의 저주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답니다. 그놈이 이번 사변의 원흉일 겁니다.”
발브레이가 말했다.
아이딘이 숙연한 눈빛을 지었다.
“아뇨. 따지고 보면 사변의 원흉은 그놈이 아니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마족 통일을 이룬 예언자입니다. 놈이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제가 더 확실하게 알아보고 각하들께 주의를 드렸어야…….”
「그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네가 마계의 정보를 전해준 몇 년 전부터 미르가 계속 순백의 꿈을 통해 쫓고 있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네 잘못이 아니다.」
“각하…….”
마계의 정보를……?
음?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카밀라는 의아했으나, 감히 그런 의견이나 의문을 낼 수 없는 자리였다.
“그 예언자인지 뭔지 하는 놈보다는, 지금 눈앞에 불을 끄는 데 집중하자.”
탁자 위에 남서부 해안 일대의 지도를 펼친 비네사가 둥글게 말리는 끄트머리에 단검을 꽂았다.
“단 열흘 남았다.”
그건, 어린 카밀라로서는 참관하는 것조차 과분한 영광인 최고 군사 회의 자리였다.
나중에야 필두 페이쿼리어로서 이런 자리를 주재하게 된다지만, 아니, 여기서 배웠기에 주재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샤펠이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두신 방도라도? 혈노가 됐던 도시 시민들이나 당시 탈환전에 투입된 병력이나 혈귀나 전부 원시 군대가 되었으므로 적세가 최소 백만 명은 넘을 겁니다.”
비네사가 탁자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아련하고도 고귀한 광휘를 품은 피리였다.
천파식적(千波息笛).
최초의 마법사 에밋사 페이지의 직계 제자, 대마법사 리그윈드의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전설의 피리다.
“스승님께서는 솔론드 왕족이야. 정확하게는 현왕과 사촌 지간이시라고나 할까.”
에쉬르가 넌지시 알려주었다.
샤펠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걸…… 어떻게 단장님이?”
“그 멍청이가 나에게 맡긴 물건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비네사가 뇌향을 바라보았다.
“250년 전에 똑같은 사태가 솔론드 왕국 수도, 바라에서 벌어질 뻔했었죠. 용현께서 그걸 진압하셨고요. 각하께서도 그때 그곳에 함께 계셨던 걸로 압니다.”
대마법사 리그윈드는 원시의 저주를 해주하는 데 평생을 쏟은 자였다.
천파식적은 바로 그 삶의 유산.
그렇기에 리그윈드의 후손들, 즉 솔론드 왕족은 예로부터 피리의 수호자이자 옛 왕국의 감시자들이었다. 솔론드의 수도만 해도 원시 왕국의 수도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진(陣)의 중심부는 너무나도 위험하니 솔론드 국왕을 데려갈 수 없고, 또 제게는 마법의 재능이 없으니…… 각하께서 이걸 받아 주십시오.”
「아니, 네가 해야 한다. 리그윈드의 피를, 그 의지를 이어받아 용기(勇氣)의 길을 걷는 네가. 걱정 마라. 내가 도와주겠다.」
비네사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세츠넨을 바라보았다. 세츠넨의 미소가 눈부시게 느껴졌다.
어느 봄날, 정오의 햇살처럼.
그 옆에서 홍의 사제 아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따르겠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도망쳤다가는 학파를 대표하시는 대마법사 린 님을 뵐 면목이 없죠.”
“스승님이 하시는 연주회에 제가 빠질 수야 없죠. 실수할 때마다 잔뜩 웃어 드려야지.”
황은의 사사 발브레이도 사사복의 긴 소맷자락 사이에 거만하게 양팔을 끼우면서 말했다.
“나도 도와주마. 못난 동생을 잘난 첫째가 선도하는 건 창세의 어머니께서 가정(家庭)이라는 것을 만드실 때부터 정하신 바니.”
“천파식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원진의 중심부로, 그러니까 <라프타스>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뭘 새삼스럽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발브레이의 능청맞은 대답에, 붉은 순례자 레오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핫하! 지금 <라프타스>는 호랑이 굴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비유해야 맞는 거 아닌지요?”
그러자 에쉬르가 짓궂게 웃었다.
“후끈하게 몸을 달궈서 땀을 빼고 오기에 딱이겠는데요?”
비네사는 말없이 피리를 내려다보았다.
창문을 헤집고 들어온 화산재가 그 피리 위로 내려앉았다가, 빛으로 산화하며 검댕을 남겼다.
그 현상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세상은 여름이라고. 무척 긴 시간이 흐른 뒤 비네사가 말했다.
“이런 죽고 싶어 환장한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그 목소리에 담긴 떨림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나중에, 먼 나중에, 사명의 끝자락에서 부하들로부터 똑같은 대답을 듣는 순간에서야 그 벅찬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카밀라, 네 임시 배속 명령을 해제하고 홍련 병단으로 재배치하겠다. 이제 라미네아의 곁으로 돌아가라.”
뇌향의 세츠넨도 그 판단을 지지하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라미네아뿐만 아니라 홍련의 아이들 모두 널 밤낮으로 걱정하였다. 내가 반드시 널 찾아 주겠노라고 약조한 뒤에야 사명의 길로 돌아갔다. 그 아픔을 달래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가슴이 따스하게 달아올라서, 그 속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스승님이 살아 계시고…….
또 ‘가족’들이 날 찾고 있어…….
그러나 아직 돌아갈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날 찾고 있단 건 아직 믿고 개별 행동을 맡길 만한 존재가 되지 못했단 소리니까.
“하나…… 말씀드려도 되나요?”
“말해라.”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왜지?”
“이대로 돌아간다면…… 스승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스승님께서 이 상황에 계셨으면 똑같이 행동하셨을 거라고.”
몰락지대에서 발브레이에게 설교를 들었던 날, 삶의 목표를 정하지 않았던가.
“저, 그때 결심했어요. 스승님이 절 선택했단 사실이 아니라, 제 행동으로 제가 스승님의 제자라는 걸 증명하겠노라고.”
그렇기에 다른 만류의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군인식’으로 어리광을 부려보기로 했다.
“준위 카밀라!”
등허리를 왼손 주먹으로 짚고.
양발을 맞부딪치고.
오른손을 눈썹 옆에 절도 있게 붙이는 것으로.
“일전에 <라프타스> 탈환 임무 동안 혈마 병단 임시 배속을 명받았으니, 그 임무에 마지막까지 동행하고 싶습니다!”
푸르고, 깊은 봄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은 풋풋함…….
모두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비네사만이 말없이, 무표정하게, 그런 소녀의 경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자, 비네사. 가볼까? 네가 앞에서 날뛰면 내가 뒤에서 응원하는 식으로 말야.
신념에도 의지가 있다면, 그 신념이 눌러두고 가는 손자국처럼, 저 얼굴 위로 아련하게 겹쳐지는 것은…….
사랑하는 친구, 미자리 알터 아라다만텔의 어린 시절의 미소.
그 미소를 보면, 어린 시절과 변함없이, 왜 아무리 진지한 상황에서조차 웃음이 나오는 것일까.
“하, 하, 하하하하하하하…….”
소리 내어 웃게 되는 건 왜일까. 잠시,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한 친구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까.
물론 웃은 것은 잠시뿐.
마음의 가면을 벗은 건 잠깐뿐.
칼로 잘라내듯, 방금까지의 웃음을 걷어낸 비네사는 친구의 제자의 제자의 경례를 받았다.
“좋아, 나중에 우는소리 하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그럼 마지막까지 따라와라, 카밀라.”
그게 처음으로, 비네사가 이름을 호명해준 순간이었다.
‘이름을…….’
당대 최강의 페이쿼리어가, ‘검은 여름’의 초년을 선도해온 존재에게,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셨어…….’
막대한 감동에 귀를 의심해야 할 순간이었으나, 그보다도 모두를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비네사의 경례에 있었다.
현대식 경례가 아니었다.
오른손 주먹으로 먼저 심장을 때리고, 그 심장의 맥동을, 영혼의 의지를 실은 손끝을 경례의 대상에게 향하는 경례.
“지켜보고 말해주마. 네가 과연 라미네아의 제자로 보일 만한지, 아닌지.”
이것은 고대의 경례였다.
용기의 선진…… 다섯 어센시쿼리어들로부터 시작돼 페이쿼리어와 팔라딘들에게만 계승되어온 바로 그 경례였다.
요컨대, 페이쿼리어가 한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경의였다. 필두 페이쿼리어가 한낱 수련생 애송이한테 그 경례를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미자리의 제자의 제자라 할 만한지, 아닌지…… 말이야.’
* * *
“당시 인류가 <라프타스> 탈환을 위해 가용 가능했던 병력은 15만이 채 되지 못했다.”
작전의 개요 및 편제는 <라프타스> 1차 공방전과 똑같은 개별 독파였으나, 숨겨진 핵심은 양동작전이었다.
홍련ㆍ흑장미 병단은 남문.
맹진ㆍ철성 병단은 동문.
북문 돌파는 혈마 병단이 맡되, 이 전투의 소란을 틈타 비네사 알터 르노드를 위시한 별동대가 사령부 깊숙이 침투한다.
“다른 페이쿼리어 병단들이 대륙에서 황급히 재소집을 진행 중이었으나, 시간에 맞춰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면 <라프타스> 내부에서 확인된 원시 군대의 숫자는 백만이 넘었고.”
리그윈드의 유산, 천파식적은 원시의 저주로부터 생명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져왔다.
그 힘이 유일한 열쇠였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던 ‘검은 여름’ 초기 전황에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는 열쇠.
“1차 공방전과 다른 점은, 주적이 혈족이 아닌 네크론이란 점과,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 혈마 병단에서 활약했단 점이다.”
즉, 카밀라는 이때까지 홍련 병단이 아닌 혈마 병단에 계속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침내 기원력 1671년 8월 4일, ‘검은 여름’의 향방을 결정하게 되는 반격전이 시작되었다.”
* * *
[비네사 : 임무 개요는 간단하다. <라프타스>의 원시의 저주를 무력화하지 못하면 아드리온 대륙 전체가 하루아침에 멸망한다.]부대별로 작전 대기 중인 혈마 병단 앞으로 광휘가 솟구치더니 문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아이딘 : 3차 차원문이 개문되었습니다. 코끼리 기병대부터 시작해 전위 부대 먼저 출발.]이미 <라프타스> 전역에서 교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1차, 제2차 차원문으로 전선에 배치된 동부 방면군과 남부 방면군이 각 페이쿼리어들의 지휘 아래에서 <라프타스> 공략을 개시한 것이다.
1차 공방전과 달리, 혈계(血界)가 도시 전역을 휩싸고 있지 않았으므로 공군과 포병대들이 벌써부터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아이딘 : 제4차 차원문 개문, 용기병대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