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1)
가짜 용사 이야기-251화(251/310)
시즌 3 : 59화
“용사가 뭔지 내게 물었었지?”
이것은 기억…….
차원문 전송진 앞에 서서, 그 참혹하고 참담했던 악몽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받은 배움의 기억.
당대 인류 최강의 병사, 필두 페이쿼리어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마지막 가르침의 기억…….
“나는 용사가 아니니 용사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 그건 남자에게 임산부로 사는 법을 묻는 것 같은 어불성설이야. 하지만 페이쿼리어가 뭔지는 알려줄 수 있지. 정답은 하늘에 있다.”
“하늘이요?”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 저게 바로 페이쿼리어다.”
태양이나 달처럼, 누군가의 길을 환히 밝히는 일은 할 수 없다.
그건 용사의 일.
그건 용사만의 위업.
그러나 사람들은 별을 보고, 아, 밤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찾아내기도 한다.
“세계가 낮이었더라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다. 존재할 필요도 없었겠지.”
밤이기에, 단지 칼을 잘 쓰는 것뿐인 우리가 별처럼 빛나는 거다.
“별은 세상을 대낮처럼 눈부시게 밝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 별을 통해 누군가는 방향을 찾기도 하고, 저 별을 보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저 별을 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기도 하지.”
별은 밤에 빛을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빛을 내는 방법은, 힘없고 무고한 이들 대신 성검이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악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별이 빛을 내지 않으면 그게 어떻게 별이겠냐? 밤하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과 똑같을 뿐이지. 그러니 에쉬르, 카밀라, 너희들은 그 빛을 잃지도 말고 잊지도 마라. 그게 페이쿼리어의 길이다.”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14)
[샤펠 : 외곽 지대에서 융합 개체들이 출현했습니다!] [무녀 실라미네 : 본대가 사령부 외곽으로 이동 중, 조금만 버텨!] [메이트 : 죄송합니다, 선배님. 놈들이 끝도 없이 밀려와서 편대 전체가 폭약 소진입니다!]차칼로네 토벌전에 어린 나이에 참전했다고 기록되나, 사실 카밀라는 자신이 거기 참전했다고 봐도 될는지 의문이었다…….
[아이딘 : 저주의 중심은 바로 여기, 사령부 지반 전체입니다! 원시 군세를 걷어내야 천파식적의 힘을 사용할 시간이 확보됩니다!]그 싸움은 악몽이었다.
그 전투는 참경이었다.
초읽기 단위로 정신이 하나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그 전투에서, 참전자였다기보다는 방관자였다고 봐야 적합하지 않을까.
“너희는 본래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이거늘.”
팔크-샤, 차칼로네가 말했다.
“짐승에게 교화의 덕을 베푸시던 진정한 여왕을 배신하고 빛에게 돌아섰느냐. 너희는 짐승이므로 마땅히 짐승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시의 파도…… 전투 개체, 변이 개체, 융합 개체, 고대 개체.
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차칼로네는 용들의 보위를 받고 있었다. <라프타스> 사변 때 죽은 황룡을 강령술로 되살려낸 것이다.
[샤펠 : 사룡(死龍)…….]사룡은 황룡처럼 벼락을 내뿜지는 못했으나, 그 육체적 능력이 치명적이란 점은 마찬가지였다.
날개나 꼬리, 또는 다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필멸자의 뼈가 부서지고 지축이 붕괴했다.
사룡의 숫자는 둘이었는데, 그 둘이 원시의 군대 전체를 합친 것만큼이나 강대하게 느껴졌다.
[무녀 실라미네 : 토벌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뇌향 각하께서 앞으로 5분 정도 더 저주를 억누르실 수 있단 거야.]그 싸움은 수천 년이나 계속된 공방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10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그럴 시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비네사 : 5분이라…… 메이트, 절원을 준비해라. 나도 절원을 사용하겠다.] [메이트 : 공중에서 성검 해방 대기 중!] [비네사 : 에쉬르, 카밀라랑 같이 내 움직임을 보조해라. 한순간에 승부를 보겠다.] [에쉬르 : 네…….]그렇게 대답하는 에쉬르의 목소리에는,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던, 범접할 수 없는 슬픔이 깔려 있었다.
비네사의 호명을 듣고 그 뒤를 에쉬르와 양쪽에서 쫓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사령부 청사가 붕괴했고.
세 번째 사룡이 출현했고.
출현과 동시에 꼬리를 휘둘렀고, 에쉬르는 두 번째 사룡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비네사는 칼을 뽑지도 않고 있었다.
‘내가.’
그런 본능적인 깨달음.
‘내가 해야 해.’
조금이라도 좋아.
정말 조금이라도 좋으니.
‘도움이 되어야 해.’
카밀라는 본능에 가까운 동작으로 제7식 진뇌룡의 힘을 일으켰다.
그 힘을 원(圓)에 둘러 수세를 견고하게 말았다.
그리고 비네사와 에쉬르에게로 쇄도하던 사룡의 꼬리 앞으로 몸을 내던진 것까지 기억한다.
“읏, 으으으, 으아아아아앗……!”
막았다고, 할 수 있나……?
막아 냈다기보다는, 그 힘과 기세를 아주 잠깐 줄인 것이 고작이 아니었던가…….
무릎과 발목 관절이 부서지는 충격 속에서 잠시 그 공격을 붙잡아두던 다음 순간 시상이 암전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뭉개진 고통 속에서 의식이 들자, 폐부의 마지막 숨결을 겨우 토해내며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에쉬르 : 잘했어, 카밀라! 네 덕분에 스승님이 저 공격을 피할 수 있었어!] [비네사 : 아이딘! 카밀라를 돌보면서 준비해라. 정리되는 대로 바로 천파식적을 불겠다.] [아이딘 : 알겠습니다. 기적을 증폭하기 위한 법진을 구축합니다.] [멜레느 : 홍련 병단이 관측 보고…… 남쪽 부두에 장마 전선이 북상하면서 적의 선견대도 상륙, 적의 정체는 락트리그 클랜…… 필두 하이 쿤 타르크임……. 홍련 병단은 부대를 반으로 나누어서 상륙을 저지하겠음.]빛의 결계를 펼친 아이딘이 치유의 기적을 다급히 읊어 주었는데, 그 어깨 너머로 비네사를 계속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방관자였던 것이다…….
그 포화의 한가운데를 내달릴 때 비네사는 르노드를 납도 자세로 유지했다.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건 제4식, 발(發)……?’
세 번째 사룡의 급습을 피해낸 비네사와 에쉬르, 두 번째 사룡이 아가리를 내뻗었을 때는 에쉬르가 그걸 막아냈다.
비네사는 다시 도약했다.
여전히 납도 자세였다.
자세는 아주 약간 바뀌었다. 납도한 칼을 얼굴 앞에 세운 데다가, 이제는 두 눈까지 감고 있었다.
[비네사 : 메이트, 처리해.]팔크-샤, 차칼로네를 보위하여 비네사를 공격하려던 첫 번째 사룡에게 시공간을 꿰뚫는 화살이 처박혔다.
[메이트 : 절원, 천쇄향경(千碎向鏡).]진성검 히스기비드는 차원 전체에 균열을 일으켜 붕괴시켰다고 하나, 그 아류작인 극위성검 볼비에르는 차원을 꿰뚫는 게 고작이었다.
그 힘만으로 충분했다.
경추를 정확히 꿰뚫은 화살이 시공간의 접합부, 즉 머리와 몸통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면서 사룡이 무력화되었으니까. 그 순간, 그 한순간.
“절원.”
마치, 경건한 기도를 올리듯.
얼굴 앞에서 극위성검 르노드를 납도한 채 비네사가 이렇게 읊조렸다.
“백경원검(白經源劍).”
비네사가 칼을 뽑은 순간 벌어진 기행(奇行)을, 과연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게 어떤 힘이었는지 그때는 이해조차 못 했다.
그래도 분명히 본 건 있었다.
발도의 순간, 백 개의 팔을 가진 검귀가 그 뒤에서 신기루처럼 실체화되었다는 것. 그 백 개의 팔로 백 개의 혈검(血劍)을 쥐고 있었단 것.
발섬(發閃).
그 검들은 전투의 기억.
수천수만의 아수라를 뚫고 나아왔던 그 삶의 칼날 위에 새겨진 싸움의 흔적. 그 기억과 흔적의 재현(再現).
검이 백 자루인 이유는, 비네사의 십일자도를 한순간에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백 개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발도.
그 발도가 백경원검을 움직인다.
백 개의 혈검이 비네사가 수십 년 쌓아온 칼 놀림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십일자도는 본디 연계의 검술, 본래 물 흐르듯이 펼쳐지는 초식의 연계가, 단 한순간에 백 번 펼쳐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발즉참(一髮卽斬).
칼이라서, 칼이기에, 칼로서만 펼쳐낼 수 있는 잔혹의 예술이 있다면…… 바로 저런 형태가 아닐까.
난무(亂舞).
한순간에 펼쳐진 수백수천의 참격에 팔크-샤는 티끌보다도 잘게 썰렸다.
‘이게…….’
백 개의 칼날이 이루어내는 피할 수 없고 피할 길 없는 칼의 춤이, 옛 신관과 고대의 전갈 비다쿠즈의 뼈대를 골수까지 절단하며 그 골조를 붕괴시킨다.
‘필두 페이쿼리어의 절원…….’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아라다만텔과 르노드의 원형인 진성검 갈라디엘은 주인의 위상 자체를 벼락으로 전환시켰다고 전해진다.
힘과 위력, 그리고 속도를.
그 갈라디엘의 아류작인 아라다만텔과 르노드는 그 ‘위상 전환’의 힘을 비참할 정도로 제한적으로 구현해내는 게 전부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건…….
‘백 개의 참격이 한순간에 행해진다면 그것도 광속 아니야?’
강하다. 엄청나게 강해. 필두 페이쿼리어가 이렇게 강하면 어센시쿼리어들은 얼마나 강한 걸까?
배우고 싶어…….
더 배우고 싶어…….
스승님 곁에서도 배우고 싶고, 이분 밑에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용사에 대해, 더 가르침을 받고 싶어.
[에쉬르 : 여기는 별동대, 팔크-샤 토벌 완료…… 스승님!]그런데 이상했다.
절원의 반동으로 르노드의 칼날이 부서질 듯이 명동하고 있었다.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서인지 비네사가 르노드를 칼집에 납도한 순간, 그 코와 입으로 선혈을 쏟아내는 게 아닌가.
[무녀 실라미네 : 토벌조! 저주와 대마력방호의 힘겨루기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어. 대마력방호가 깨지고 원시의 저주가 활성화될 때까지 대략 3분!]쓰러지기 직전, 에쉬르가 그 몸을 부축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비네사는 즉시 허벅지에서 용혈 혈청 주사기를 꺼내 목의 대동맥에 박았다.
몸이 파르르 떨리던 진동이 멎고, 다시 자력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비네사 : 토벌된 게 아니야. 육체만 무력화시킨 거지. 마지막 발작을 시작할 거다. 팔크-샤에게는 정형화된 육신이 없어. 에쉬르, 르노드를 맡긴다. 적들을 물리쳐라.] [에쉬르 : 네!] [비네사 : 아이딘, 준비는?] [아이딘 : 중심으로 오십시오!] [발브레이 : 팔크-샤의 마지막 발악이군. 모든 원시 군대가 우릴 무시하고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미완성된 저주를 어떻게든 발동시키려는 속셈이야.]팔크-샤의 집결 명령을 받은 원시의 군세가 미쳐 날뛴다.
뇌향심공명진과 현실 속에서 병사들의 비명과 절망이 교차하며 고조되던 순간.
한 번, 호흡을 깊게 들이켠 비네사가 천파식적의 취구를 입술에 붙였다.
– 비네사야, 너에게 용현께 받은 가르침과 나의 정수를 나누어주마. 천파식적을 불 때 도움을 줄 것이다.
천파식적을 입술에 붙인 순간, 몽글거리며 솟아오르는 광입자 속에서 바다가 펼쳐졌다.
기억의 바다였다. 별과 파도 사이에 추억의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지우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이것은 뇌향의 심상. ‘기억 공명’의 공간.
– 마법이란 하나의 틀에 마음을 얹는 것. 성검의 기원과 다를 바가 없다. 네 기원(祈願)의 기원(起源)으로 돌아가라.
기원의 시초는 어릴 적의 기억에 기반하고 있었다.
비네사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어릴 적에 모두 죽어서, 혈육이라고 할 만한 존재는 열두 살 위인 사촌밖에 없었다.
‘그 작자는 멍청이였어.’
멍청이라서, 몸이 병약한데도 왕족은 백성의 삶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워야 한다며 신분을 위장한 채 시내로 나가 세상의 형편을 살피곤 했다.
항상, 비네사를 데리고 말이다.
그게 다섯 번쯤 되었을 무렵, 나뭇가지 위에서 한 꼬맹이가 벌벌 떨고 있었다.
고양이를 구하러 올라갔다가 역으로 고양이는 도망가고 자기가 거기 갇힌 신세였다.
어릴 때부터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았기에,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그 멍청한 꼬마를 나무 밑으로 업고 내려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경비병들을 호출했더라면, 손바닥이 찢어지거나 무릎을 찧을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다…….
그 꼬마를 데리고 내려왔을 때, 그 멍청한 왕이 짓고 있던 미소는, 아직까지도, 조금도.
‘그때 생각했던 거지.’
한 아이를 구했는데도 저렇게나 기뻐하는데,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도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 마음을…….
말로는 쑥스럽고 겸연쩍어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이 피리를 사용해 소리로 엮으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