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2)
가짜 용사 이야기-252화(252/310)
시즌 3 : 60화
두 번째 발돋움, 필두 페이쿼리어와의 동행 (15)
[샤펠 : 단장님, 시간이 없습니다!]모든 것이 절정으로 치닫던 그때, 천파식적을 통해 소리가, 소리를 품은 빛이 떨리고 흔들리면서 풀려 나왔다.
그것은…… 무늬였다.
생명의 무늬이자 온기였다.
저주에 속박된 육신 위에 새로운 무늬로 새겨져,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게 만드는 세례였다.
[플로렛 : 여기는 흑장미, 원시인들이 무력화됩니다, 아니, 소멸합니다!]그 선율은 독주가 아니었다.
세상에 새로운 무늬가 퍼지는 가운데, 어둠이 무너지고 빛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눈물 어린 탄식이 화음으로 포개어졌다.
대마법사 리그윈드는 고대의 저주에 속박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천파식적은 바로 그 저주를 해주하기 위해 그가 평생 흘린 눈물의 결정체다.
선율의 가닥이 여울지면서 도시 전체를 물들일 때, 저주의 암흑은 불살라져 갔다.
[무녀 실라미네 : 확인 중…… 성공이야! 원시의 저주가 무력화되고 있어!] [라미네아 :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요! 혈노가 됐었던 시민들은 모두 죽은 듯하지만…… 1차 공방의 실종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뇌향 : 좌표 특정은 가능하겠느냐…….] [멜레느 : 뇌향심공명진에 연결이 되도록 의식을 깨워 보겠지만…… 적의 제2파가 상륙하고 있음…….] [아이딘 : 이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합니다. 각하, 남부 방면군부터 시작해서 안전지대로 향하는 차원문을 열어 주십시오.] [뇌향 : 그래, 그리하겠다…….]뇌향의 빛줄기가 도시 전역에 떨어졌다. 그것은 시공을 연결하는 빛, 절망의 어둠에서 희망의 빛으로 이어지는 길의 통로.
[플로렛 : 차원문이 열렸다! 실종자와 사상자들을 엄호하며 순차적으로 이동해!] [라미네아 : 아이딘, 나를 마지막으로 홍련 병단도 퇴각할 거야. 그쪽 상황은 어때?] [아이딘 : 원시의 군대는 무력화되어 가고, 마족의 숫자가 많긴 해도 사령부까지 올 때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저희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빠져나가십시오.] [라미네아 : 카미를 부탁해.] [아이딘 : 염려 마십시오. 어떻게든 살려서 돌려보내겠습니다.]사태가 완벽하게 정리된 것이 확인된 뒤에야, 비네사가 천파식적에서 입을 뗐다. 혈마 병단 단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연주 엄청났어요, 스승님! 나중에 저 결혼할 때 축가도 그렇게 불러 주실래요?”
“까불지 마라. 맞는다.”
“진심인데.”
모든 것이, 대승의 전과로 눈부시게 기록될 것만 같던 그 순간에 절망이 짓쳐들었다.
파열(破裂)…… 천지를 보랏빛으로 파열시키는 검광이 창공을 내달렸다.
그 검광이 하늘을 찢었다.
그 궤적 위에서, 그리핀과 기수들이 토막으로 찢어진다. 메이트 알터 볼비에르만이 겨우 몸을 움직였다.
“각하!”
<라프타스>의 중심부 상공에서 탈력 상태가 되어 있던 뇌향 세츠넨을 지킨 게 고작이었다.
함께 절명했을지도 모른다.
순간 비네사가 도약해서, 세츠넨과 메이트를 겨누던 참격을 쳐내주지 않았더라면.
[에쉬르 : 뭐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무녀 실라미네 : 뭐야? 차원문이 닫혀가고 있잖아!] [메이트 : 여기는 메이트…… 각하께서 의식을 잃으셨다! 상처가 깊은데, 뭐지, 용족의 초고속 재생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브레이 : 이미 진작 무리하신 거다. 심상을 세 개를 동시에 사용하고 계셨으니.] [비네사 : 지금 열려 있는 게 마지막 차원문이다! 잔존 병력은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 곧 뇌향심공명진도 꺼진다!] [아이딘 : 단장님, 어서 차원문으로!]다시, 오감(五感)을 파열시키는 참격이 요사스럽게 굽이치며 짓쳐들었다.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무기물이라 반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물들이 그 참격에 무수한 조각으로 파열되면서 붕괴되었다.
오직, 비네사만이 반응했다.
겨우, 비네사만이 움직였다.
비네사가 황급히 움직여 별동대의 앞을 막아섰으나…… 파열의 참격이 저편으로 되돌아갔을 때, 비네사의 온몸이 피 칠갑이었으며 칼날도 부러져 있었다.
“스, 스승님……!”
“오지 마. 르노드와 카밀라를 데리고 차원문을 넘어라.”
비네사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핏물에 싸늘하게 섞이는 식은땀의 기척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시선을 한 번이라도 다른 곳에 팔았다가는 죽게 될 것 같은 압박감, 이런 원초적 공포를 느낀 게 얼마 만이지?
샤펠이…….
오사리우스 학파의 봉술로 백병전에도 능숙한 저놈이, 반응조차 못 하고 사지가 찢겨 죽을 정도의 속도란 말이지.
‘나 혼자 탈출하는 것은 가능.’
무기의 종류는 사복검인가?
죽음의 직감이 전신을 덮친다.
온몸이 떨리는 오한으로서.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 여기 남은 전부가 죽는다. 그 정도로 강적이야.’
더 이상한 건…… 르노드가 떨고 있는 거다.
전투 직전에 투지를 내뿜는 떨림이 아니라, 두려워서 낮게 엎드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여태껏 어떤 적을 만나도 르노드가 저런 적이 없었건만.
‘이유가 어쨌건 간에…….’
그 삶의 마지막 순간에, 비네사는 제자를 안심시키는 언어를 엮어내지 않았다.
“에쉬르, 이제 네 차례다.”
에쉬르 또한, 스승의 마지막 뜻에 거스르지 않았다. 부서질 것 같은 미소 위로 눈물 한 줄기를 포개며 뒤돌아섰다.
“지금까지, 지도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이딘의 품에 안겨서 차원문에 가까워가던 카밀라는 지금 그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 믿기지 않아서 겨우 입술을 떠듬거렸다.
“언니, 비네사 님을…… 도와야 하는…….”
“아니, 안 돼. 못 느꼈어?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건 도움을 드리는 게 아니야.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고…….”
“차원문이 닫힙니다! 에쉬르 님, 어서 이리로!”
마지막 차원문 속으로 마지막 인영들이 빠져나가자, 도시는 적막에 사로잡혔다.
무인지경의 적막이 아니었다.
도시는, 믿을 수 없지만, 떨고 있었다. 떨면서 몸을 낮게 엎드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누군가의 발소리에.
「전부 죽일 기세로 휘둘렀건만 그걸 막아낼 줄이야.」
그래, 이놈이 예언자인가…….
아이딘이 마계에 있을 적에 이놈을 처음 본 순간 용사가 자기를 구하러 왔다고 착각했다기에 뭔가 했더니…….
극위성검 베룸페이라와 플라디마르테와 기운이 유사한…… 아니, 그 성검들조차 빛바랠 정도로 강대한 이 기운은 대체…….
「천재적인 반응속도야. 칼날이 부서지자마자 바로 마력의 검강을 펼친 것도 아주 눈부신 재능이군. 그 동작들에 대한 경의로 네 아랫것들이 도망치게 놔두었다.」
“그거 영광이군.”
「네 꼴을 봐라, 가짜.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웠는데, 널 지키기는커녕 죄다 도망쳐서 혼자 버려진 이 꼴을. 이게 합당한가?」
“넌 대체 누구냐?”
「나와 함께하겠다고 한다면 모든 진실을 가르쳐주지. 또한 너에게 영생을 주겠다. 함께 이 세계를 본래 그랬어야 할 모습으로 바로잡지 않겠나?」
“본래의 모습?”
「힘이 없는 약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강자에게 짓밟혀도 마땅한 ‘벌레’다.」
“내가 아는 벌레 중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종은 없던데. 아니, 최근에 하나 보긴 했군.”
비네사는 앳되고도 순수한 미소를 감추며 경례를 붙이던 카밀라의 얼굴을, 그 위로 겹쳐지던 미자리의 얼굴을 순간 떠올렸다.
「약자는 힘을 쟁취하려 들지 않아. 오히려 강자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며 자기들은 안락한 일상에 안주하지. ‘강자가 가진 힘은 천재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노력 또한 재능이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로 자신의 불성실함을 자위해가며. 그런 놈들을 위해 왜 희생해야 하는 거지?」
텅 비었던 도시에 마족들이 득시글거리며 들어차고 있었는데, 모두 공포에 질렸는지 이 주위로 다가올 생각조차 안 했다.
그 락트리그 클랜이…….
겁을 내고 있단 말이지…….
아니, 그 네크론과 혈족까지 데리고 와서 협동시켰을 정도니 마족 모두가 두려워 떤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힘이란 곧 축복이자 지위이며,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그러니 힘을 가진 자는 군림하는 게 마땅해. 여름에 부지런히 일한 자가 가을에 추수하듯 말이다. 여름에 게을리 일한 자들은, 약자들은, 굶주리고 죽어가는 게 당연한 거다.」
비네사가 콧방귀를 뀌려 하자, 순간 살기(殺氣)가 대기 전체를 압도했다.
「한 번. 딱 한 번이다.」
예언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에게 기회를 주마. 네 검, 그 검의 더 높은 경지를 가르쳐주지.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 날 따라와라.」
다만 검지를 입술 위에 붙였을 뿐인데, 그 동작만으로도 비네사는 손끝이 떨리는 살기를 느낀 것이었다.
“널 따라가면, 저 마족들이 세상을 짓밟게 되는 건가?”
「세상을 응당 그래야 할 모습으로 되돌린 뒤에 저 버러지 같은 것들은 모두 내 손으로 죽인다.」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말재간이 있군.”
비네사는 잠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산재의 폭풍에 도시가 삼켜져가는 가운데…… 흩날리는 화산재의 틈새로, 밤하늘을 아련하게 밝히는 별빛이 보였다.
그 별빛은 사명의 빛, 비네사는 다 부서지고 깨어진 칼과 칼집으로 십일자도 제1식, 평(平)의 자세를 잡았다.
“별이 한밤중에 빛나지 않으면, 누가 그걸 별이라고 불러줄까.”
자, 이제 이곳, <라프타스>에서 내 사명을 마치리.
12세기의 동란기는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또 이곳에서 리스타 파티에 의해 끝났다.
그래서 <라프타스>에는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시작과 끝의 도시.’
비네사는 그 별명을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끼며, 길었던 삶의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르노드, 내 제자를 부탁한다.’
결국, 또 이렇게 되나…… 그런 비네사를 마주 보며 예언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비네사는 알 수 없었다.
그 눈동자, 빛과 심연이 뒤엉켜 있는 그 눈동자에 비치는 비네사의 모습 위로, 그 순간 예언자가 자신의 옛 전우들을 겹쳐 보았다는 사실을.
「그래, 그게 네 대답이냐.」
그럼…… 그 바보들처럼 세뇌된 삶의 방향성에 고통당하지 말고, 잠시 잠들어 있어라. 세상을 고친 후에 다시 깨워주마.
마지막 호흡의 교차.
마지막 살기의 공명.
예언자가 진성검 요니울란의 칼자루에 손을 뻗은 순간, 승부는 끝났다.
“!”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힘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선공을 취해 예언자의 급소를 겨누던 필두 페이쿼리어의 공격은.
이미, 진성검의 칼자루에 손을 얹은 순간, 반응조차 할 수 없던 찰나 속에서 그 생명은 끝나 있었으니까.
「알카이오스가 봤다면 감탄했겠군.」
칼끝은 예언자의 급소 앞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멈춰버렸다.
엄밀히는, 막힌 게 아니다.
급소를 찌르려던 동작이 더 이상의 힘을 받지 못해서, 움직임이 멈춰버렸을 뿐.
「그 검술을 이렇게까지 유사하게 모방해낸 건 네가 처음이다.」
모든 관절과 힘줄…… 아니, 그보다 더 원초적인 무언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진성검 요니울란의 권능의 송곳니가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바로, 육신과 영혼이 연결점이라는 것을.
“…….”
이곳으로부터 더없이 먼 저편, 아직 화산재가 파먹지 못한 세상에서, 극위성검 르노드가 구슬프게 울었다. 에쉬르는 스승의 죽음을 직감했다.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기원력 1671년 8월 5일. 비네사 알터 르노드, <라프타스> 2차 공방에서 실종(失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