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4)
가짜 용사 이야기-254화(254/310)
시즌 3 : 62화
포대 점거의 선봉에 선 그 우루크 백장(百長)은 크고 강인했으며, 잔혹했다.
죽기까지 포대를 사수하려 했던 병사들의 주검이 그 주위를 붉게 뒤덮었다.
소고 클랜의 여전사, 니쿠미그.
“Kishi! 약해빠졌군! 핫!”
힘을 제일 가치로 여기는 우루크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 전사였고, 전사의 가치는 학살로 증명된다.
클랜에 따라 사냥감의 송곳니, 귀, 코, 목뼈 등을 전리품으로 챙겼는데 이걸 남자는 수염에 매달고 여자는 머리카락에 걸었다.
니쿠미그의 머리카락에는 썩어 문드러진 우루크와 인간의 코가 수없이 달랑거렸다.
“괴, 괴물 놈…….”
“어떻게 저런…….”
투지는 공포 앞에서 꺾여가고, 포병대 병사들이 항전의 의지를 잃고 뒷걸음질 치던 그때였다.
일보(一步).
니쿠미그의 살육 반경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소녀, 백발 섞인 주홍색 머리카락이 화산재를 휘모는 강바람에 날렸다.
“Ru has? 하, 꼬맹이가!”
철퇴가 두개골 분쇄를 겨누고 짓쳐들 때, 칼집에서 우아하도록 부드럽게 칼날이 솟구쳐 나왔다.
십문자도 제1식, 원(圓).
원(圓)은 포좌를 단번에 부수던 철퇴의 기세를 죽이고 살상력을 상쇄시키며 멀리 튕겨냈다.
“……?!”
“……?!”
“……?!”
우루크는 신장이 평균 7척으로 그 몸 전체가 무기다. 자세가 무너지기 전에 철퇴 자루를 내던진 니쿠미그가 팔을 내질렀다.
십문자도는 연계의 검법.
제3식 둔(鈍)에 의해 니쿠미그의 동작에 둔화가 걸릴 때 제5식 돌발격의 위력이 그 품을 깊숙이 파고들어 용오름 쳤다.
“Kuha!”
경악으로 눈동자가 크게 열리기 전에, 순식간에 그 뒤를 잡으며 다시 한번 연계의 칼날.
지금까지 제멋대로 미쳐 날뛰던 모든 힘을 하나로 가지런히 수습하는 제5식 섬무참.
섬무참은 힘을 광역으로 내뿜기에 단일 대상에 의한 파괴력은 미약한 편이다. 그렇기에 섬무참으로 물리력을 집중시키되, 위력의 방출은 제10식 십자참수로 정했다.
– 카미, 십자참수는 섬무참과 달라. 단일 대상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강점이지.
섬무참을 통해 칼날 위로 집중되어 세차게 들끓는 마력을, 십자 형태로 압축 방출한다.
그 마력은 능히 할 수 있었다.
우루크 백장 니쿠미그의 쇠붙이를 간단히 부수고, 철판 같은 근골을 찢고, 그 너머 내장까지 마력의 불길로 태워버리는 것을.
“……!”
탁…… 들뜬 칼날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녀가 칼을 칼집에 납도한 순간, 니쿠미그의 육신이 정확히 네 토막으로 저며져 나뒹굴었다.
“웬 돼지가 전장 한복판에서 울고 지랄이야, 배고파지게.”
최전선에서 용병들과 4년 동안 부대끼며 입이 퍽 걸걸해진 소녀의 이름은 이미 전장 전역에서 유명해지고 있었다.
카밀라, 홍련 라미네아의 제자.
물론 그 저질스러운 혼잣말은 쏟아지는 함성에 묻혀 전해지지 않았다.
“캬, 젠장, 끝내준다! 홍련 라미네아의 제자 아니랄까 봐!”
“감탄할 때가 아니다! 기세를 몰아서 밀어붙여라!”
“Gutassssssssssss!”
우루크 전사대가 카밀라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누고 달려들었으나 카밀라는 초연했다.
그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에 답하듯, 불현듯 지반에서 솟구친 얼음송곳에 그 심장이며 머리통이 정확히 꿰뚫리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흥.”
카밀라와 눈짓을 주고받은 것은 소년…… 이제는 청년에 가까워진 마법사의 머리카락이 푸르게 흩날린다.
요한, 요한 프로스트.
약관 17세의 나이에 글라도스(4성) 등위에 오른 세기의 천재 마법사. 그 길고 새하얀 손가락 주위에서 마력의 선율이 위엄차게 소용돌이쳤다.
“도원수께서 내린 특수전 부대 지휘명령에 따라 저 요한 프로스트가 임시 지휘를 맡겠습니다. 부대 철새진, 포대를 탈환하고 방어선을 재구축합니다.”
주춤대던 우루크들이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두 불청객에게로 내달렸다.
상대는 어차피 애송이 둘.
둘러싸서 집중 공세를 퍼붓는다면 쓰러뜨리지 못할 것도 아니며, 포대 병력들을 포로로 잡아 협박한다면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포효(咆哮).
우루크의 함성보다 더 웅대하게 지축을 뒤흔드는 짐승들의 포효가 있었다.
왕의 축복을 무엇 하나 받지 못한 인류의 신체 능력은 한낱 짐승과 비교해도 보잘것없다. 하지만 만약 짐승과 같은 송곳니와 발톱을 가진 인류가 있다면?
수인(獸人) 전사들이 떼거리로 난입해 우루크 전사들을 덮쳤다. 물론 그들은 선발대에 지나지 않는다. 전장의 희비가 일순간에 교차했다.
“호, 홍련 병단이다!”
“홍련 병단이 와줬어!”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 이끄는 최강의 총병대다!”
산뜻하고, 애틋하며, 아련한 꽃향기가 전장을 뒤덮는다. 그 꽃향기의 끝자락에 스며드는 피비린내.
한 번의 우아한 휘두름으로, 붉은 꽃이 강토에 피어난다.
그 꽃이, 뿌리를 내릴 거름이 되는 건 뭇 우루크 전투 대장이나 족장들이었다.
“I, Irishin(호, 홍련)……!”
“Irishina ro Raminea(홍련의 라미네아)……!”
비슷하되 달랐다.
카밀라가 하나의 강적을 위해 여러 초식을 연계한다면, 라미네아는 하나의 초식으로 하나의 강적을 베어나갔다.
요컨대 초식의 연계가 하나 시작될 때마다, 우루크 부대를 이끌던 중역들의 목숨도 하나하나씩 핏덩이로 끊어졌다.
“끄, 끝내준다! 우루크 놈들이 달아나고 있어!”
“그리프베런 전사장, 우루크 잔적이 강 건너편으로 물러납니다!”
“쫓지 마라! 포대 복구를 최우선으로 한다!”
3년 후, 페이쿼리어 소집 (1)
싸움이 끝난 전장에는 항상 개선의 환호와 사상자를 기리는 고통이 혼재했다.
“야, 진짜야?”
“그래! 카밀라, 이 녀석이 혼자서 하이 타르크 전투 대장을 잡고 있더라니까?”
“잡고 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잡아버렸어!”
“와하하하하하! 그때 첫 교전에서 뒤에서 벌벌 떨던 코흘리개 녀석이 이제 어엿한 홍련의 일원이 되었군!”
홍련 병단은 항상 전자에 속해 있었다. 전장의 고통과 슬픔의 뒷면에는 병단 막내가 성장하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어요. 스승님이 세운 무용을 보면, 뭐, 제가 한 건…….”
그리프베런이 말했다.
“조금의 시간밖에 벌지 못했다고?”
“그런 셈이죠.”
“바로 그 조금의 시간이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오늘 네가 펼친 용기를 자랑스러워해라. 라미네아 단장은 지금의 너와는 짊어진 것의 무게부터가 다르시다.”
키가 이처럼 훤칠히 컸는데도, 여전히 그리프베런은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카밀라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곤 했다.
음,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독수리 발톱으로 두피를 기분 좋게 긁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다음 순간, 시선이 저쪽으로 쏠린 카밀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스승님!”
현장 지휘관으로서 전황의 변화(방어선, 철책, 참호)를 점검하던 라미네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카미!”
카밀라가 안겨들 기세로 달려오자 라미네아가 방그레 웃었다.
“포대 여기저기서 카미 이야기가 들려오던걸. 너무 예뻐서 데이트 신청을 해보고 싶다고 말이야.”
“그런 말은 아무도 안 하던데.”
델프레드 울프 블라도가 평소처럼 팩트로 지적하자마자 라미네아의 팔꿈치가 그 옆구리에 꽂혔다, 더없이 강력하게.
“오늘 저요, 십자참수를 엄청 깔끔하게 썼거든요? 연계할 때 발(發)을 쓰지 않고요!”
“어머, 정말?”
“네! 요한한테 물어보세요! 전장에 온 지 3년이 넘었어요! 3년 만에 엄청나게 강해졌죠?”
좋았다. 모든 것이 끝난 뒤 스승님에게 성장을 이야기하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다.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했다.
스승님은 그때마다 미소 지었다. 미소라는 장막 뒤에는 이 참담한 곳으로 제자를 데리고 왔다는 자책의 슬픔이 숨어 있었지만.
“3년? 아, 그래…… 벌써 3년이나 됐구나.”
본래 1672년 말에 샤론과 함께 <위용검전> 입교를 제안받았으나, 과거에 에쉬르가 그랬듯 거절했다.
거기는 언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스승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비네사와 에쉬르의 사별을 보고 그 진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네, 그래서 이제 전쟁도 익숙해요! 걱정 마세요.”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익숙해지지 않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그런 말이었을까.
그날 스승님께서 입 밖으로 내시지 못하고 슬픈 미소로 표현하신 말은…….
“그러면 이제 슬슬 제11식 뇌격단에 대해서 배워볼까? 각오는 확실히 해둬! 10식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어려우니까!”
“네!”
“그래! 카미는 늘 그렇게 씩씩한 게 참 좋아! 일단 밥부터 먹자.”
그렇게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시간, 즉, 스승님과 함께하는 식사를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승님과 함께라면 돌을 씹어도 행복할 것이었다.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그때 난기류를 일으키면서 그리핀 기수가 바로 저편에 착지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부대 휘장을 보니 제7전투비행단 소속…….’
제7전투비행단은 청성 미른가디아 직속이었다. 기수가 공손하게 부복했다.
“청성 각하께서 영관급 이상 장교 및 페이쿼리어 전원에게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뇌향 각하께서 차원문을 여셨으며 도원수 각하께서는 자카드린 경과 플로렛 경과 함께 먼저 문을 넘으셨으니, 경께서도 서둘러 주십시오.”
페이쿼리어 집결의 시간은 반가움의 시간인 동시에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교차의 시간대였다.
각지로 흩어졌던 인연의 선로들이 잠시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덧없이 흩어지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오늘에서도…….
그 눈부신 빛, 차원문을 넘어서 도착했던 그 시간대로 돌아가는 꿈을 꿔보곤 한다…….
“후훗, 카밀라. 드디어 그 시건방진 키를 따라잡힌 기분이 어때?”
“까불지 마. 허리 쭉 펴봐?”
“어머나, 지금 카밀라에게는 이런 명언이 딱이야. 주름 앞에서 번데기 잡는다고.”
선로 위 열차는 제각기 달랐다.
샤론과 에쉬르…….
에쉬르는 법황청에서 정식 임관만 하지 않았을 뿐, 용령석 투입 과정을 모두 소화해 냄으로써 백발과 용안을 갖고 있었다.
“아, 언니는 가만히 있어 봐! 사실상 페이쿼리어면서 왜 일반인 대결에 껴들어.”
“언니는 아직 에쉬르 에이진이랍니다. 에베베. 왜, 카밀라가 광룡 성하 대신 세례라도 주게? 이거 이거, 신성모독이네? 그리고 너도 일반인은 아니잖아.”
“맞아, 후훗, 원시 왕국에서 성형수술 받고 왔으면서. 그거 결혼할 때 숨기면 이혼 귀책사유도 될 수 있을걸. 그리고 카밀라, 책 좀 읽으렴. 에쉬르 선배님의 말장난에 ‘주름 앞에서 번데기 잡네’가 아니라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네’가 맞잖아요, 라고 했었어야지.”
그래도 광룡에게 세례를 받으며 ‘용기의 서약’을 맺어야 정식 페이쿼리어가 되는 관례대로, 에쉬르는 페이쿼리어가 아니었다.
그래도 모두 용사로 여겼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몇 번이고 교차하며 길을 함께한 존재가 있는가 하면, 선로는 같되 새로이 생겨난 열차도 있었다.
“카밀라 선배님! 하이 타르크 전사를 때려잡았다고 들었슴다! 캬! 존경스럽슴돠! 날이 갈수록 너무 개쩔어지시는 거 아임까!”
류넬, 올해 11세.
실키 알터 가우므리스의 제자.
제국 동부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작달막한 소녀였다.
“류넬! 선배님들에게 그런 격식 없는 태도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요!”
아레시아, 마찬가지로 11세.
모즈나 알터 솔랑의 제자.
<라프타스> 사변 당시 막내였던 그녀 또한 제자를 받았으니, 이 둘은 제자 중 막내인 셈이다.
전쟁이 극대화되고 또 장기화되면서 기존의 페이쿼리어 사제 체계는 크게 변화했다.
지검제를 위시한 실력 검증은 페이쿼리어들을 통한 ‘약식 검증’으로 대체되었다. 참전 여부를 스승이 아닌 3인의 페이쿼리어가 참관인이 되어 정하는 것이다.
합격하지 못한다면 야전 캠프에는 같이 있을 수 있되 전장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류넬과 아레시아가 그런 상황이었다.
“선배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 왜 아레시아는 엄마도 아니고 맨날 이것저것 참견이야! 퉤퉤퉷! 메롱이나 먹어!”
“뭐라고욧?!”
이 둘은 출신 성분이 극도로 다른 게 재밌는 점이었는데, 한쪽은 동부 토박이인 반면 한쪽은 호센 왕가의 왕녀였다.
서민과 왕녀라…….
샤론과의 관계를 겹쳐보게 되는…… 그런 녀석들이었다. 옆에서 샤론도 웃고 있었다.
“…….”
“…….”
그러나 스승님과, 또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가슴이 떨리도록 반가운 에쉬르 언니는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다른 것을…….
그러니까 다른, 먼저 있었던 유사한 관계를 저 꼬맹이들 위에 겹쳐 보고 있던 것이다. 비네사와 미자리.
“분위기를 읽고, 읽을 수 있다면, 마땅히 조용히 해야 해. 읽을 수 없다면 그건 화급한 문제고.”
딱히, 군기를 잡거나 기강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말해주는 존재가 따로 있었으므로.
로베리스, 올해 14세.
인형처럼 맑고 또 무표정하던 소녀는 감정이 절제되고 품행이 가지런한 귀공녀가 되어 전장에 합류했다.
로베리스는 말수가 적었다.
적었기에, 한 번 뱉어진 말의 무게는 무섭도록 어마어마했다. 류넬과 아레시아가 순식간에 합죽이가 된 지금처럼.
“후훗, 우리 로로 덕분에 천덕꾸러기들이 좀 조용해졌네.”
후배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군기 반장이어도 선배 입장으로서는 여전히 귀여운 녀석이었다.
샤론도 로베리스를 귀여워했다.
퍼스트네임인 로베리스와 미들네임인 로라디의 첫 초성만 따와서 ‘로로’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도 샤론이 처음이었다.
“로로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 애칭은 순식간에(본인은 싫어했지만) 모든 이들에게 퍼져나갔다. 물론 로베리스가 그 기괴한 애칭의 화자로 허용한 건 상급자들에 한해서였지만.
“그래, 이것들아. 너희가 까불면 우리만 혼난다고.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로로에게는 동년배의 제자가 두 명이나 있었다.
쾌활하게 두 막내에게 헤드록을 걸고 끌고 가는 쪽은 고르고티아. 궁검형 성검 지에르다의 대리자 니븐의 제자다.
극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후배들의 무례를 사과하며 허리를 연신 굽히는 쪽은 엘티레. 후일 사복검형 성검 플라디마르테의 계승자가 된다.
“죄, 죄송합니다…….”
성격은 저마다 달랐지만 실력은 하나같이 끝내주는 녀석들이었다. 카밀라는 그 세 후배를 전부 좋아했다, 진심으로.
「다들 모였으니 시작하지.」
존재감 하나로,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 시대에 단 하나뿐이었다.
그분의 곁은 늘 하얬다.
죄와 밤과 저주는 사라지고, 보이는 모든 것이 흠 하나 없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총원 기립!”
청성(淸聲).
청성의 미른가디아.
용현 레인 루드윅이 이 땅에 남긴 세 가지 기적 중 마지막 기적.
“삼족(三族) 통합군 대원수, 청성 각하께 경례!”
뇌향의 세츠넨이 어머니 같은 박애와 자애심으로 전장의 슬픔을 달래고 보살폈다면, 청성의 미른가디아는 아버지 같은 엄격함과 지엄한 법도로 승리의 기쁨을 확실하게 선물해 주었다.
모두 청성의 활약 덕분이었다.
비네사의 죽음으로 무너지던 대마족 전선이 새로이 규합되어, 패퇴일로에서 지금 같은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뒤바뀐 건.
「허울뿐인 격식은 필요 없다. 모두 앉아라.」
“총원, 착좌!”
청성의 미른가디아는 작전 개요를 설명하기 전에 학술적, 또는 신학적인 이야기로 운을 떼고는 했다.
「페이쿼리어는 인류 역사상 제일 강력한 병사다. 대마족 전선은 페이쿼리어가 하나라도 존재해야 그나마 대등하게 성립하지.」
“…….”
「그러나 전선은 광대하되 너희들도 나도 몸이 하나인 까닭에, 너희들이 활약할 장소는 전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적재적소이어야만 한다. 현대전은 특수전 병력을 활용하는 방식이 승패를 좌지우지하니까.」
주일 설교를 대개 지루하게 느끼는 어린 시절이었건만, 청성의 설교에는 난잡함도 없고 지루함도 없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발을 내딛지 않은 겨울의 눈밭, 마치 그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경이감. 마음속 의문과 의혹을…… 깨달음 속에서 새하얘지게 하고 새로워지게 하는 경외심.
「너희들은 옛 용사들처럼 하늘을 가르고 산을 벨 수 없다. 하지만 옛 용사들처럼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을 용기로 선도할 순 있지.」
“…….”
「마땅히 기억하라. 너희들이 창세의 섭리로부터 받은 힘은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낮고 작은 이들을 섬기고 지키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임을.」
“……!”
「이게 너희들의 사명, 너희가 나면서부터 받은 힘, 즉 ‘기름 부으심’의 목적이다. 이 사명 위에서 너희의 검은 무엇보다도 더 가치 있게 변한다. 정신론에 입각한 무형적 가치로 성검의 힘, 즉 유형적인 가치를 더 강력하게 벼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청성께서는 가르치고 인도해 주시던 게 아닌가 싶다.
전장에서 자라나.
전장에서 피어나게 된.
차세대 페이쿼리어들의 마음이, 피 흘리고 피에 절여지는 이 전장에서 붉게 물드는 게 아니라 새하얀 빛을 간직할 수 있도록.
「아직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명명할 수식어를 찾지 못했으니, 이 시대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전적으로 너희들에게 달렸다.」
영웅의 시대가 될지.
아니면 암흑의 시대가 될지.
「역사란 본디 승자가 기록하는 법 아니겠나? 이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