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5)
가짜 용사 이야기-255화(255/310)
시즌 3 : 63화
「1671년 개전 이후 3년이란 세월이 지나며 많은 것이 변했으나, 정작 전황은 변하지 않으니 광룡 성하의 염려가 크시다.」
청성 미른가디아의 발언이었다.
현(現) 필두 페이쿼리어 타르스 알터 쉬르팽이 모두를 대표해 답했다.
“지금까지 전황이 유지된 것만 해도 각하께서 만드신 기적입니다.”
뺏고, 빼앗기고, 아무리 피 흘리고 또 피를 뿌려도, 국경은 지지부진했고 종국에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모라 강역(江域) 방어선.
커다랗게 휘도는 서쪽으로는 아인(兒人; Dwarf)의 바다에 닿고, 중부 내륙을 관통하는 상류에서는 슈리가나 산맥이 아득히 치솟는 이 강이 인류의 생명선이었다.
「나의 덕(德)이 아니라 적들 또한 노리는 것이 있기에 전력으로 나아오지 않고 주춤하는 것일지니, 그걸 알아내야 한다. <라프타스> 사변 같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되는 참극은 두 번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적이 맹공을 위해 힘을 비축한다면, 비축하려고 움츠릴 때 열리게 되는 허점을 깊게 찌르고 들어가면 될 터. 아인 해군 부대와 연합하여 서부 해안을 탈환한다.」
라미네아가 눈썹을 치켰다.
“백부님, 모라 강역 방어선을 포기하는 건가요?”
1671년 개전 이래, 3군 6진이 패망하면서 모라 강 하구 남부 또한 급속도로 무너져갔다.
도시와 마을들은 시가지가 정돈되어 우루크 해상 부족들과 나가 일족들이 둥지를 틀기에 좋았다. 마족은 그 땅들을 전진기지로 삼았다.
그 서쪽에서부터 북쪽을 지나 동쪽에 이르기까지, 연안을 경유하여 인류의 멱통을 겨누려던 계획은 청성이 소집한 아인 해군에 의해 분쇄되고 있었다.
「포기하는 게 아니다. 알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알면 살고, 알지 못하면 죽는다. 앎이란 그런 것이다. 3군 6진과 <라프타스>를 수복하는 게 최종 목표다.」
청성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일반 부대는 평지 전투에서 스스로 자생(自生)하지도 자족(自足)하지도 못하므로…….
페이쿼리어 병단을 예봉으로 삼고 그 점(點)을 잇는 선(線)으로서 일반 부대를 배치하여 돌파 진영을 짜야 할 것이다.
「네 생각을 말하라, 아이딘.」
에쉬르 뒤에 시립해 있던 아이딘이 입을 열었다.
“모라 강역 하류를 책임지는 적의 수괴는 락트리그 클랜, 하이 쿤 타르크 1위 우루크 부족입니다. 그 깃발 아래 결집한 마족의 숫자는 확인된 바만 300만, 대군입니다.”
바다가 열리는 하구 유역의 수괴가 해상 부족 중 최고인 락트리그라는 점은 놀랍지도 않다.
그 깃발 아래로 결집한 마족의 숫자도.
락트리그 클랜은 바다로도 육상으로도 전략적 돌파구를 뚫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상류 주둔군을 제외하고 현재 하류에서 출정 가능한 인류 병력은 200만, 페이쿼리어들의 전술적 가치와 아인 강철함대의 함상 지원을 생각하면 결코 밀리는 숫자가 아닙니다.”
‘검은 여름’은 ‘붉은 여름’과 이렇게나 달랐다.
당시 청성 미른가디아가 총동원령을 통해 양쪽 대륙에서 소집한 병력의 숫자는, 인류 중에서만 400만 명이 훌쩍 넘었으니까.
그야말로 인계와 마계가 정면으로 치고받는 전면전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몰라도 하이 쿤 타르크가 락트리그를 제외하고 전선에 나타나지 않는 점, 그리고 락트리그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않는 점은 각하의 고견대로 수상합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해 치고 나가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인류 병사들은 지난 3년 동안 완벽하게 전투에 숙달되어 왔습니다.”
마족, 그중에서도 우루크에 대해서라면 최고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청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죠젠나.」
“예, 각하. 상류 방어선 총괄 도원수 죠젠나에게 하명하십시오.”
「전 포병대에게 명하여, 강역 저편으로 제압 포격을 가하게 하라. 이는 모든 페이쿼리어를 하류 돌파 전선에 투입하기 위한 양동이자 연막이다.」
“맡겨 주십시오. 포성으로 축제 음악을 연출해서 놈들이 춤을 추게 만들겠습니다.”
「페이쿼리어 병단을 주축으로 돌파 부대를 3개 방면군으로 나눈다. 제1방면군은 크라우잔, 네가 선도해라. 태산, 홍련, 용추, 혈마 병단을 네 막하에 배치하겠다.」
“허허, 늙은 몸에게 과분한 영광을 내리시니 기쁘게 받들겠습니다.”
그 아주 잠깐의 순간, 운명의 선로가 겹친 이들끼리 반가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카밀라는 기쁘게 눈을 빛냈다.
먼저 에쉬르와 시선을 주고받았고, 로베리스와 마주 보았으며, 마지막으로 막내인 류넬을 보았다.
‘이번에는 저 셋과 함께네…….’
병단의 병종 편성과 힘의 척도에 따른 이상적인 배치였다.
태산 병단은 필두 병단이다.
그것 하나만 말해도 더 설명할 것도 없고 필요도 없으리라.
‘옛 혈마 병단만큼의 위상은 없어도…….’
이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대적 평가일 뿐,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태산 병단도 아주 강했다.
제6석인 홍련 병단은 총병대가 주축인 부대로서 중추를 감당하기에 안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또 제9석 용추 병단의 기갑 돌파력은 여러 전투에서 입증되어온 바였다.
‘혈마 병단만 살짝 예외고.’
본래 사단 규모로 운영되었던 혈마 병단은 <라프타스> 공방 때 비네사 알터 르노드가 실종되고 또 희생자가 속출하면서 병단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지금 숫자는 천 명쯤으로, 그 유명한 용기병대만이 운용되고 있었다.
에쉬르가 정식 페이쿼리어가 아니기에 아직 공식 서열은 없었으나, 잠정적으로 혈마 병단은 제12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애초에…….’
혈마 병단과는 거의 공동체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항상 같은 전선에서 각자 좌익과 우익을 맡을 정도로.
– <위용검전>에서 정신 교육을 받지 못한 에쉬르는 스승을 잃은 슬픔으로 그 마음이 깨질까 두려워. 그러니 미르, 라미네아의 곁에 두는 게 어때? 두 번째 스승이 되어줄 수 있을 거야.
뇌향의 말을 항상 경청하는 청성은 혈마 병단을 홍련 병단에 배속하다시피 하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눈도 못 마주치던 애송이 병단(?)의 막하로 들어간 것에 대한 혈마 병단 내부의 반발은 없었다.
무녀 실라미네와 나태의 마녀 멜레느가 사제지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혈마 병단 고참 생존자들이 <라프타스> 2차 대공세 과정에서 카밀라에 대해 갖게 된 호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승님이 아이딘과 정다운 눈웃음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어느 쪽의 호감도가 더 크냐고 하면 스승님 쪽이었다.
‘비율은 8:2? 9:1?’
거의 일방적인 호감도 표출이었는데, 아이딘은 그 호감이 싫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워하면서 피하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가슴을 찌르르 찔리는 듯한 감정, 즉 질투를 느꼈다. 저 미소를 독점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것 같은 슬픔이 일었다.
‘물론 모두 어린 날의 치기야.’
지금은 스승님이 어느 한 남자와 행복의 공상을 나누고 있단 걸 남몰래 축복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딘은 믿을 만했다.
– 당신의 그 분노와 슬픔이 창세의 존재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한 남자를 스승님과 결혼시켜야만 한다면(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주저 없이 아이딘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감이었다.
「그럼 시작해보자. 모든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체적이 되어야 한다. 내일의 역사는 너희의 손으로, 마족의 피로 쓸 것이다. 이 총공세 작전은 보름 뒤인 12월 월초 새벽에 개시한다. 해산.」
3년 후, 페이쿼리어 소집 (2)
“십자참수까지 완벽하게 익혔다면 이제 8식에 도전할 준비가 된 거나 마찬가지야.”
카밀라는 긴장감 속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십문자도 제8식, 뇌염검무(雷炎劍舞).
보다시피 제7식 진뇌룡 이후에 위치하는 초식이었으나, 그 습득 난이도가 지극히 높은 까닭에 제9식 절뢰도와 제10식 십자참수를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이다.
“뇌염검무는 부동자세에서 행하는 초식이야. 그리고 단발성 초식들을 엮어서 연계를 펼치는 십문자도에서 예외적으로 베는 횟수가 엄청나게 많단다.”
“몇 번인데요?”
“36번.”
“?”
“왜 그러니?”
“3, 36번이라고요? 그거 휘두르다가 맞아 죽어요!”
“속도가 느리다면, 그리고 칼집을 쓰지 않는다면 그렇겠지.”
라미네아가 등허리에 매달린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칼날이 칼집 위를 미끄러지며 빠져나올 때, 스승의 몸짓은 경건하게 보였다.
칼을 빼내는 동작에조차 유려한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다니, 자신은 평생 닿지 못할 경지처럼 보였다.
“나는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이다.”
대리자의 부름에 칼이 응답한다.
아라다만텔의 붉은 검신이 안개를 뿌옇게 토해내며 길게 울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를 통해, 이 땅에 당신의 향기를 전하소서.”
그렇게 말할 때, 스승은 말한다기보다는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사방을 붉게 물들이던 안개가 다시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숨 막히는 고결한 위엄이 칼날 위를 내달리고, 주위의 대기가 타들어가는 듯 일렁였다.
“아름다워…….”
살(殺)의 아름다움에 무심결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살기(殺氣) 속에도 아름다움이 피어날 수 있다면, 아마 이러한 형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칼이 자아내는 살기는 한 송이의 꽃처럼, 칼날 주위에서 가지런히 엮이고 또 피어나고 있었다.
스승님이 자세를 잡았다.
양발을 어깨너비보다도 한 뼘 더 넓게 벌려서, 무게 중심과 함께 온몸을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자세.
“십문자도 제8식, 뇌염검무.”
문득, 시간이라는 초자연적 섭리가 낱개의 토막으로 잘려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하나의 토막에서, 한 번의 참격으로 느껴지는 세 번의 참격이 거의 동시에 행해져 표적에게 깊은 자상을 남긴다.
그것이 정확히 12번 행해지는데, 그 시간 동안 필연적으로 도드라지는 허점 위에는 마력을 두른 칼집의 궤도를 교묘하고 견고하게 놓는 것이 아닌가.
“……!”
표적은 말 그대로 바스러졌다.
중요 부위를 정확하게 도륙한 참격도 참격이지만,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의 검광의 폭주를 견뎌낼 수 없던 것이다.
카밀라가 멍하니 눈을 끔뻑거리자, 긴 날숨으로 호흡을 정돈한 라미네아가 피식 웃었다.
“좋아, 카미도 한번 해볼래?”
“제가요? 지금 바로요?”
“응, 이 아라다만텔과 함께.”
라미네아가 아라다만텔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
낮의 끝자락에, 세계를 아름답게 비추는 석양이 느닷없이 사라진 듯 마음이 허전했다.
라미네아가 검대의 띠돈을 끊어 아라다만텔을 칼집째로 카밀라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
카밀라는 성검을 양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받을 때, 라미네아는 즉시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극위성검은 자신이 선택한 자가 아니라면 절대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선택받았다면 성검은 어떤 칼보다 가볍되, 선택받지 못했다면 성인 장정 다섯 명이 뭉쳐야 겨우 들 수 있어.’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첫 기원 훈련의 순간 때처럼, 카밀라는 어렵지 않게 아라다만텔을 받아들었다.
‘역시 아라다만텔은 카밀라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거야.’
라미네아는 속에서 치받치는 웃음을 겨우 억눌렀다.
‘싫어할 리가 없지. 이토록 착한 마음씨를 가졌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카밀라는 아직 아라다만텔을 뽑지는 못했다.
“또 이러네요. 뭔가 막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검의 기원이 아라다만텔과 연결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기원 훈련은 혼자서 하는 거라 했지? 더 노력하렴.”
“네!”
“그럼 이제 뇌염검무의 훈련을 시작해보자. 아라다만텔은 저기에 내려놓고.”
카밀라는 긴 들숨으로 호흡과 자세와 의식을 완벽하게 초집중 상태로 진입시켰다.
기억 영역과 상상의 영역.
스승이 펼쳤던 자세를 오점 하나 없이 정확하게 기억하여, 그 발자취 위에 자신의 발을 포갠다.
‘자세가 아주 훌륭해. 벌써부터 그림이 나오잖아.’
카밀라가 어깨너비로 양발을 벌렸을 때, 라미네아는 긴장 속에서 양손을 꼭 모았다. 자신의 심박이 귓가에 울렸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첫 시도에, 성공시킬지도 몰라.
나도 못 했지만, 카미라면.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창세의 인연이 선물해준 최고의 제자인 카미라면……!’
카밀라는 기억의 영역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보완하는 것을 즐겼다.
스승님께서는 1초에 3번의 참격을 행했다. 어떻게?
한 번 참격에 자세가 무너지는 자세보다는, 다음 참격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자세를 설정해서 세 번 엮는다면…… 할 수 있을지도?
좋아.
해보자.
“십문자도 제8식, 뇌염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