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7)
가짜 용사 이야기-257화(257/310)
시즌 3 : 65화
트롤(Troll). 화산암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어 트롤레(Trolle)에서 파생된 단어다.
“트롤은 바위 같은, 아니, 고대 화성암을 표피로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총탄과 창검은 통하지 않고, 포탄도 직격되지 않으면 균열을 일으키는 데에서 끝난다.”
이는 전투 상황에서 트롤에게 비상식적인 방호 능력을 제공했다. 인류의 제식 병기가 일절 통하지 않는 것이다.
“트롤 한 마리가 보병 연대 하나를 전멸시킨 일화도 있다. 놈들은 그 특성에 걸맞게 6대 마족 중에서 기갑 전력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토록 막강한 신체 능력을 얻은 데에서 온 과부하인지, 트롤의 지능은 짐승만도 못했다.
모든 마족은 인간의 아종.
심연을 받아들인 인류가 타락한 형상 중 하나인데, 트롤의 지성은 원시 사회 이전에 머무르는지라 절대적 위협은 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오우거가 놈들을 지휘하지 않을 때, 말이다.”
오우거(Ogre). 오그헤스라는 옛 말에서 파생된 언어로 이를 해석하면 ‘식인 바위’가 된다.
“오우거는 트롤 개체의 아종으로, 체격은 통상 규격의 1.5배에 달했으며 그 전투력과 파괴력은 숫자로 정확히 산술할 수 없다.”
트롤 중에 뛰어난 개체가 오우거가 되는 건지, 선택받은 개체가 오우거로 변이되는 건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말해둘 수 있는 건 있다.
놈은 전장에서 재앙(災殃) 그 자체였으며, 놈이 출현한 곳에는 광기의 울부짖음과 공포의 전율이 가득했단 점이다.
“오우거는 한마디로 중무장 트롤이었다. ‘붉은 여름’에서는 일선 트롤들이 대부분 바위 갑옷을 입지만, ‘검은 여름’ 당시에는 오우거만의 전유물이었다.”
화산암이 육신 전체에 갑주처럼 둘러져 불합리한 방어력을 자랑했기에, 이를 공략하는 방법은 비교적 외피가 약한 관절 부위를 베는 것뿐이었다.
“모라 강 하구에는 당연히 마족의 기갑 전력인 오우거도 다수 포진해 있었다. 놈들과의 격돌은 작전 수립 단계부터 상정돼 있던 것이다.”
기원력 1674년 12월 1일.
모라 강 하구 반격전.
제1방면군의 허점을 찌르고 들어온 오우거를 처단하기 위해 독립 예비대가 투입된다.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은 이 예비대의 부관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제, ‘검은 여름’의 중장(中章), 그 막을 열었던 ‘모라 강 하구 반격전’의 강의를 시작하겠다.”
3년 후,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2)
“마, 막아라!”
“으, 으아아아아!”
초거대 철퇴가 드높이 솟구친다. 근력에 중력을 축적시켜 그 위력을 한순간에 응축시키는 동작.
다음 순간, 지면에 급강하…….
비현실적인 충격파가 지반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창병들의 몸이 무력하게 허공을 날았다.
“지, 진영 붕괴……!”
“신호탄, 신호탄을 쏴……!”
“아까부터 쏘고 있다고……!”
붕괴된 방진의 틈새로 트롤의 거구가 치고 들어왔다.
허공을 부유하거나, 이제야 막 자유낙하 상태를 끝내고 바닥을 나뒹굴던 병사들이 그 거대한 발에 짓밟혀 고깃점이 되었다.
통상 부대끼리의 전투에서 트롤을 막을 수 있는 건 마법 전투 부대나 기갑부대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대가 오우거라면?
[오우거의 맹위에 아군 피해 막대!]그것은 불합리한 폭력.
불합리하게 모든 것을, 어제까지 일상이란 이름으로 사랑과 우정과 기쁨과 슬픔을 품고 있던 모든 이들을 짓밟는 악몽.
[지원이 절실합니다, 각하!]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대적할 수 없다면.
인류도 똑같이 불합리한 힘으로, 그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수밖에.
“사, 살려줘……!”
화산재의 암흑 속으로 비쳐드는 순백의 섬광, 백발과 반백의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모든 절망적 공황을 중단시킨다.
먼저, 반백의 빛이 내달린다.
칼과 칼집을 교차시킬 때, 그 교차의 형상에 광포하게 덧입혀지는 뇌룡(雷龍)의 형상.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
뇌룡은 아가리를 굳게 다문다. 십문자도 제1식, 원(圓)을 더욱 견고하게 말아낸다.
푸르스름한 마력의 광휘.
그 광휘에 휩싸인 반백의 검사, 카밀라가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오우거의 철퇴가 내리꽂히려는 좌표로, 정확히.
“!”
“!”
“!”
불합리한 중량과 중압의 쇄도 한가운데에서…….
“으으으읏아아아아아아───!”
카밀라 발치의 지면에 균열이 일며 그 작은 몸이 땅에 처박히는 듯했으나 문제없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칼날과 칼집에서 회전하던 뇌룡의 기운이 다음 순간 교차하며 발출, 막대한 중압조차 단번에 날려버리는 소리가 인다.
날카롭게 치솟는 금속성.
불의 비가 내리는 듯, 대량의 불티가 터지며 오우거의 철퇴 든 손이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쩌어어어어어엉─────!
온몸에 아찔하게 맥동하는 손맛을 느끼면서도, 카밀라는 동료의 이름을 외쳤다.
한순간.
한순간에 벌어진 허점의 틈새…… 그 틈새로 예리하게 파고드는 칼날, 에쉬르 에이진.
[카밀라 : 언니!]태도형 극위성검 르노드.
[에쉬르 : 잘했어! 이제 언니한테 맡겨!]그 성검이 광포하게 내뿜는 숨결이, 눈부신 붉은빛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며 베고 저미고 자른다.
저 악몽 속의 존재…….
체고가 18척에 달하는 저 육중한 괴물의 모든 관절과 힘줄을, 눈으로도 좇을 수 없는 속도로.
“GUAAAAAAAAAAAAAAA!”
검이 남긴 궤적은 팽이처럼 둥글게 남아, 남겨진 이들의 넋을 빼앗는다.
[에쉬르 : 맥케넌!]수백 가지의 비수가 단숨에 허공을 날았다.
수백 개의 비수는 저마다의 궤도로 적을 교란시키며 날아 오우거의 전신에 꽂혔는데, 그 날붙이에 화염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
이건 붉은 순례자들의 비술, 착탄 즉시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불꽃의 인장.
퍼버버버버버벙……!
오우거 양쪽에서 내달려오던 트롤 십여 기가 단숨에 무력화되며, 그 내부의 내장과 혈관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에쉬르 : 요한, 마무리해!]모든 힘줄이 끊긴 존재는 기둥이 무너진 건물과도 같다.
고꾸라지려는 오우거의 관절에서 솟구치는 선혈, 그 선혈들을 순식간에 냉각시키는 동시에 한기는 체내로 침입한다.
체내의 혈관, 동맥과 정맥 너머 실핏줄까지 급속도로 동결, 오우거의 육신이 끔찍하게 붕괴하기 시작한다.
눈꽃의 대마법사, 요한.
이때는 아직 대마법사가 아니었으나, 피를 이용한 전투의 극치를 델프레드와 혈족에게서 봐온 요한은 그 가능성에 주목해 자신만의 혈마법을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물론 이는 대외적인 평가였다.
사실, 요한은 그저 닮고 싶었을 뿐이다. 스승 델프레드 울프 블라도를 말이다.
하지만 스승의 혈마법은 블라도 가문의 비전 마법이었기에, 이런 방식으로 모방해낼 수밖에 없었을 뿐.
[요한 : 룬 새김, 할(割).]요한이 주먹을 움켜쥐자, 체내에서 얼어붙었던 핏물들이 단숨에 팽창했다.
오우거 양쪽을 내달리던 트롤들의 다리를 꿰찔렀다. 피의 창에 꿰뚫린 트롤들은 위와 같은 과정으로 죽게 된다. 연쇄 폭발로 광역적으로 위력을 떨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렇게 팽창 폭발하는 형상이 눈꽃과 유사해서, 후일 대마법사가 될 때 ‘눈꽃의 대마법사’라는 별호를 받게 된다.
“대, 대단해…….”
“오우거와 트롤을 단번에…….”
병사들이 망연히 감탄사를 내뱉을 때, 카밀라는 혀를 쭉 내밀며 질색조로 중얼거렸다.
[카밀라 : 으엑, 언제 봐도 징그럽기 짝이 없다니까. 마법도 술사를 닮는다더만, 술사의 악취미가 크게 반영된 것 같은데?] [요한 : 하하,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이런 거 말고는 쓸모가 없으니까. 스승님이었으면 좀 달랐을까…….] [에쉬르 : 카밀라 욘석! 아니야! 요한! 너는 엄청 대단해! 이렇게나 유능하면서 대체 왜 그렇게 소심한 거니!]혈마 병단은 사실상 홍련 병단의 예비대로서 규합되면서 편성이 제법 바뀌었다.
대부대 통솔을 보좌해야 했기에, 주력 간부진인 홍의 사제 아이딘과 무녀 실라미네는 홍련 병단 직할로 행동했다.
아이딘과 실라미네의 빈자리에는 멜레느를 위시해 카밀라와 요한이 내려오게 되었다.
[카밀라 : 저 녀석은 소심한 게 아니라 음침한 거야! 얼마나 음침한데! 글쎄, 내가 검의 기원 연습할 때는 그걸 엿들었질 않나? 어? 내 경험 반만 들어도 언니도 백번 공감하게 될걸.]그러자 붉은 순례자 레오네가 웃음을 터뜨렸다.
[레오네 : 하하하! 카밀라는 꼭 요한에 대한 평가를 너무 내려친다니까.] [카밀라 : 방금 내 얘기 들은 거 맞아요?]흑각검파의 맥케넌이 끼어들었다.
[맥케넌 : 흐음, 유독 에쉬르 부단장 같은 여자들한테만 더 심한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카밀라 : ?] [에쉬르 : 아항, 혹시 그거야? 못난 것처럼 보이게 해서 손대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 이 엉큼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카밀라 : 무, 무슨?! 팩트를 말하는 것뿐이거든? 그리고 여자한테 말하는 건, 주위에 대부분 여자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지!] [요한 : 어, 음, 저기…….] [카밀라 : 닥쳐! 그 빌어먹을 안경에 자물쇠를 채워버리기 전에!] [요한 : 미안…….] [멜레느 : 요한이 하려던 말은…… 지금 이 통신 방면군 전체에 다 열려 있는데, 이거 같은데…….]그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고요하기만 했던 뇌향심공명진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듣고 있던 것이다.
모두, 웃음을 참고 있던 것이다.
카밀라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카밀라 : 우, 웃지 마세요! 내 계급장 아래로 웃지 말라니까! 나보다 계급 낮은데 웃은 놈들 가만 안 둬! 안 둔다고!] [라미네아 : 요한을 비웃는 놈은 가만 안 두겠단 소리야? 어머, 사랑 고백이야? 이 무슨 로맨틱.] [카밀라 : 아니라고요! 스승님까지 이러실 거예요?] [델프레드 : 흠, 내가 저놈한테 마법이란 마법은 죄다 가르쳤지만 연애 기술은 하나도 안 가르쳐서 천성 숙맥인데 이를 어쩌냐.] [멜레느 : 맞춤법 수정 필요, ‘안’에서 ‘못’으로.] [델프레드 : 닥쳐.] [실라미네 : 어허, 멜레느. 때로는 진실이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한다고 말했잖니.]마침내 쑥스러움이 분노로 변했다.
아니,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분노가 일었다.
그렇기에 손에 꽉 쥔 검, 검순이에서는 귀기에 가까운 마력이 매섭게 솟구쳤다.
[카밀라 : 요한,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죽여 버리겠어! 일로 와아아아아!] [요한 : 내가 뭘……?!] [에쉬르 : 도망쳐, 요한! 여기는 내가 막을게! 꼭 너라도 살아남으렴!] [요한 : 근데 지금 전투 상황인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피 흐르고 피 흘리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저 또래 소년과 소녀들이 나눌 법한, 그런 일상적인 대화.
크라우잔은 그걸 막지 않았다.
뇌향도 그걸 제지하지 않았다.
그 일상적인 대화가, 일상을 꿈꾸고 추억하게 하는 그 대화가, 이 잔혹한 전장 속에서 살아가는 병사들에게 큰 위로를 주던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실키 : 여기는 용추 병단의 실키 알터 가우므리스, 잔적 소탕 중! 더 이상의 응원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타르스 : 여기는 태산 병단의 타르스 알터 쉬르팽! 마찬가지입니다! 적의 저항이 한풀 꺾였습니다!] [크라우잔 : 확실히 몰아낸 후에 참호를 만들란 것이 전략 목표다.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전진하게.]기원력 1674년 12월 초에 시작돼 연말에 끝난 이 모라 강역 수복 작전은 당시 ‘백색 작전(白色-作戰)’이라 불렸다.
오염된 것을 새하얗게 정화한다는 뜻으로. 훗날에야 대반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말이다.
3년.
마족만 때를 기다린 게 아니다.
청성이 3년 동안 인류를 모라 강 이북에서 숨죽이게 만들었던 이유는, 물자를 집중시키고 새로운 전략ㆍ전술을 통합군 전체에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3년이다.
모라 강 하구 수복 작전에서, 청성은 인류의 주력 50개 사단을 전부 투입했고, 대승(大勝)이라는 단어로 역사에 전과를 새긴다.
「어떻게 생각하지?」
청성이 물었다.
8주 동안의 전투, 그 대승 끝에 온전히 수복한 모라 강역 앞에서 병사들은 노호에 가까운 함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홍의 사제, 아이딘이 답했다.
“이상합니다. 전사자들에게는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잔챙이들밖에 없었습니다.”
모라 강 중류를 수호하던 요정병들과, 서해안을 지키던 강철함대로부터도 승전보가 속속 날아오고 있었다.
요정과 아인, 둘 다 대반격의 날에 공세로 돌아섰으므로 이건 삼군 통합 작전과도 같았다.
그러나 강철함대 함대장 할바론과 요정왕 사오로 1세도 아이딘과 같은 사견을 승전보 말미에 적어 보낸 터였다.
“아시다시피 우루크는 전투의 명예를 대단히 숭배합니다. 오직 용감히 싸우다 죽은 이들만이 ‘발라돈’이라는 심연의 낙원에 들 수 있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하이 쿤 타르크, 그것도 1위가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수상합니다.”
길고 새하얀 눈꺼풀 사이로, 청성은 먼 남쪽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순백색 일통인 머릿결과 긴 소맷자락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모라 강 하구에는 다시 세상이 순백색으로 돌아와, 꽃이 피어나고 물이 흐르며 숲이 일어서고 있었다.
청성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렇게 대자연이 노래했다. 그 고요한 존재감 속에서 모든 것이 맑은(淸) 소리(聲)를 되찾게 된다.
「…….」
청성이 눈을 감자, 대자연이 그 침묵에 안기듯 잠잠해졌다.
청성은, 인간이 1년 동안 생각할 것을 찰나 만에 전부 사고해 낸다고 한다.
아주 잠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겼던 청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순백의 꿈이 가려질 정도로, 마(魔)가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군세와 간계를 함께 짓밟을 기회는 금년뿐일 것이다. 내년 하반기 안으로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