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59)
가짜 용사 이야기-259화(259/310)
시즌 3 : 67화
암운(暗雲), 흑막과의 조우 (2)
“절원(切願), 시공섬(時空殲).”
진성검 샤릴리온의 아류작인 극위성검 쉬르팽과 나이세이몬의 특필 능력은 ‘체내 시간 가속’이라 한다.
에누엘 예레 샤릴리온.
그 다섯 번째 엘디아의 무용담은 대체로 너무 신화적이었다. 이는 곧 허구적인 것들뿐이란 뜻이다.
“스, 스승님!”
하늘을 베었다거나.
바다를 갈랐다거나.
산맥을 쪼갰다거나.
“이 녀석이에요! 이 녀석이 그때 비네사 님을 죽였어요!”
사람들은 생각했다. 다른 엘디아와 마찬가지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면 그 무훈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지만 쉬르팽의 대리자였던 리스타는 이 전설을 허구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그 힘에 주목한다.
그리고 전설을 따라잡을 절원을 개발해낸다. 쉬르팽에게 각인된 그 검의 기억이 바로 시공섬.
“그리고 이번엔 실키 님을……!”
원리는 간단하되 난해하다.
고유 능력, 체내 시간 가속을 극한까지 사용하여 한순간에 하나의 궤적에 십여 번의 검기를 연달아 날리는 것.
그 검기의 중첩으로 시공을 절단하는 것과 같은 위력을 작렬하게 하는 것이다.
시공섬은 존재하는 모든 절원 중에 가장 강력해, 전황을 한 번에 뒤집을 정도였지만 단점 또한 작지 않았다.
창안자인 리스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리자들이 시공섬 한두 번을 쓰면 체력과 마력이 방전되어 무력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쉬르팽의 대리자들은 일대일보다는 일대다가 중요한 전장에 자주 파견되어 그 힘을 발휘해왔다.
「이건…….」
예언자는 그 기묘한 힘에 흥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도대체 어느 순간 검의 형태로 되돌아갔는지 모를 사복검을 다시 휘둘렀다.
언령.
진성검에게 힘의 해방을 허가하는 명령과 함께.
「찢어발겨라, 요니울란.」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타르스 알터 쉬르팽의 기습적인 절원 앞에서, 예언자는 어디로도 피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저 보랏빛 기류가…… 44개의 송곳니가 ‘시공섬에 의해 파열되던 시공’을 찢어발겼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렸다.
“말도 안 돼…….”
“이 무슨…….”
스승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필두 페이쿼리어, 타르스 알터 쉬르팽은 절원 사용의 반동 때문에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몸의 떨림보다도, 면갑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의 떨림이 더 크고 무거워 보였다.
「같잖군. 에누엘의 힘은, 심연의 진왕들조차 두려워하던 그 녀석의 힘은 이딴 잔재주가 아니었는데. 이런 것도 모방이라고 하는 건가? 내가 묻겠다. 방금 그건 실수였냐?」
“……?”
「방금 내가 그걸 없애버리지 않았더라면 이 동상이 파괴되었을 텐데, 계산 실수냐? 아니면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예언자가 시선을 자조적으로 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후자로군.」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건 다음 순간의 격돌뿐이었다.
예언자와 스승님이 반쯤 동시에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타르스의 목전에 출현해 칼을 맞부딪쳤다.
아라다만텔이 고통스럽게 우짖었고, 예언자의 검은 아라다만텔을 위압하듯 포효했다.
「이걸 막아내?」
한 번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예언자가 십여 번 휘두른 참격을 스승님은 아라다만텔을 붙들고 모조리 막아냈다.
그것은 연무(演舞).
흐르듯이 춤추는 칼의 노래, 그 노랫소리 속에서 붉은 칼날이 보랏빛 칼날을 몇 번이고 튕겨냈는데…… 그때와 똑같이,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건 스승님이었다.
「가히 눈부신 소질이군…… 아서 이후로 이만한 소질을 가진 녀석은 처음이다. 조금만 더 단련한다면 최고를 노릴 수도 있겠어.」
라미네아는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가 붉게 젖는 걸 느꼈다.
내려다보듯 말하네…….
저 방심이 유일한 찬스야…….
라미네아는 아라다만텔을 칼집에 다소곳이 납도했다. 납도 자세 그대로, 모든 근력과 완력과 마력이 폭발하듯 일어서며 칼집 내부로 집중된다.
‘속도.’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속도뿐이야.
상대를 능가할 수 있는 건.
「발도? 지금 장난하잔 거냐?」
순간, 반 박자 늦게 시상 위를 내달리는 홍련의 궤적으로 겨우 검이 휘둘러졌다는 걸 알 수 있던 순간.
선혈이 솟구친다.
예언자의 옆구리에서.
그 첫 번째 핏방울이 허공을 날기도 전에, 예언자의 배후에서 출현한 라미네아가 그 목을 절단하려던 순간.
「아서라. 모든 자상이 대동맥에까지 닿았다. 그 이상 움직였다가는 출혈로 죽는다.」
진성검 요니울란의 칼날이 검의 형태로 집결된 것을 기점으로, 라미네아의 전신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이제야, 몸이 깨달았단 듯이.
이미 몇 번이고 베였단 것을.
카밀라는 그때, 부르짖지 않았다,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달렸다, 달려서, 달리고 또 달려서, 쓰러지는 스승님과 예언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안 돼, 카미…… 도망쳐…….”
칼이라고는 부러진 게 전부고, 온전했다 한들 예언자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검술뿐이라 발악이나 저항이라 할 것도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악.
아무런, 가치도 없는 저항.
타르스와 에쉬르가 뒤늦게 움직이려 하고 있으나, 예언자의 속도라면 한순간에 라미네아와 카밀라를 죽이고 저 둘도 죽이는 것이 가능했다.
어떠한, 발악도 안 되는 행동.
어떠한, 저항도 안 되는 행위.
분명 그러했을 텐데, 예언자의 동작이 정지되었다. 카밀라 위로 포개어진 과거의 환영이 그녀를 멈춰 세운 것이다.
– 뤼카엘과 에누엘은…… 사, 살아줘. 내가 그리던 동화의 마, 마지막에서는…… 뤼카엘과 에누엘, 둘이 함께 웃고 있거든…….
지금, 이 꼬맹이와 똑같이…….
동료를 사랑해서…….
동료를 죽기까지 사랑해서…….
동료 대신 죽고 동료를 살린…… 옛 동료의 마지막 목소리와 마지막 미소와 마지막 모습이.
‘슈르비엘, 너 이 바보 자식…….’
그래, 이 바보들이 잘못된 게 아니다. 슈르비엘과 마찬가지로 전부 속고 있을 뿐…….
“라미네아!”
“물러서세요, 선배님!”
예언자는 다음 순간 날아든 쉬르팽과 르노드의 참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냈다.
죽일 수 있었더라면 모두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다.
아니, 죽이질 못했다.
저 꼬맹이 때문에 갑작스레 출현한 옛 친우의 환영 때문에…….
예언자는 전당의 출입구 앞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너희 모두를, 이번 한 번만 살려주겠다.」
예언자가 몸을 돌렸다.
고대의 군화…….
강철보다도 더 견고한 것 같으나 더 가벼워 보이는 군홧발로 피로 물든 전당을 빠져나갔다.
「너희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야. 싸우다 죽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닥쳐……!”
「돌아가라. 돌아가서, 너희들이 어린 날에 꿈꿔온 욕망을 마음껏 이루고 원하는 이성과 사랑을 나눠라. 곧 세상이 온전히 바로잡힐 날이 오리니, 그때까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
에쉬르가 뛰쳐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타르스는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우리 셋으로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한 번만 검을 맞부딪쳐 봐도, 아니, 검을 맞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건 경고다. 다음에 전장에서 마주치면 베겠다.」
카밀라는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감히 쉬는 순간, 죽을 거라는 본능적 공포가 쇄도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감각을 경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기분 나쁜 불쾌감이 온몸을 적시고 몸 위에 걸쳐진 의복조차 젖게 만든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발소리의 간극이 점차 멀어지고, 그 대기가 짓눌리는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양쪽 다리에 힘이 풀리고…….
기도를 막고 있던 숨 덩어리가 찢어지듯이 토해져 나오며, 정지했던 심장이 지금까지의 심박을 보충하겠단 기세로 맹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스승님, 스승님 정신 차리세요, 스승님……!”
그제야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예언자와 격돌하던 순간에도 계속, 멈추지 않고,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로 스승의 몸을 흔들고 있던 류넬과 똑같이.
스승님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주검을 흔들고…… 타르스가 다급히 달려와 스승님의 흉갑을 박살내듯 뜯어냈다.
“에쉬르!”
“네!”
에쉬르가 카밀라를 뒤로 끌어내고는 용혈 혈청 주사기를 스승님의 몸에 몇 방이고 꽂았다.
목소리를 내주세요…….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어둠이 따스하게 불살라지는,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나는…… 그 목소리를.
“아이딘이나 실라미네를 찾아와, 에쉬르, 카밀라, 어서!”
카밀라는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 그때, 어머니처럼, 스승님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릴까 봐.
에쉬르가 전당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델프레드와 아이딘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예언자와 마주치지 않은 것인가?
“이런 미친, 이게 다 뭐야?”
델프레드가 말했다.
홍의 사제 아이딘은 치료를 위해 스승님 머리맡에 주저앉으면서도 넋이 나간 기색으로 이 죽음의 전당을 살폈다.
“믿기지 않는 실력이군요…….”
“……?”
“이것 좀 보십시오. 경내가 핏물에 잠길 정도인데, 동상에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았습니다.”
* * *
“야, 들었냐? 제1방면군에서 예언자가 떴다는데?”
“실키 알터 가우므리스가 실종이라고……?”
“에쉬르랑 홍련의 제자도 중상이라던데.”
“거신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대! 그 미친 묵직 단단한 거신을, 칼 한 자루로! 이게 말이 돼?”
주색 도시, <랑바르드> 참사는 파죽지세의 승전보를 엮어가며 목적지로 나아가던 통합군의 기세에 큰 제동을 걸게 된다.
청성은 대열을 정지시켰다.
촉각 기관을 드넓게 전개시키는 감각으로, 서캐를 잡듯이 수복 지역 전역을 세 번이고 샅샅이 탐지한 뒤에야 재진군 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 보름이 소모되었다.
청성 미른가디아가 작전 수립 당초 천명한 대로 일분일초가 시급한데도 말이다.
“카밀라, 벌써 걸어도 돼?”
카밀라는 페이쿼리어가 아니었는데도 용혈 혈청에 내성이 있어서 극소량의 사용이 가능했다. 즉, 극히 미량이지만 초고속 재생이 가능했다.
그런데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때 그 보랏빛의 신묘한 송곳니에 물어뜯긴 상처는 열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중상도 아닌데 뭘.”
목발을 짚어서, 성가퀴에 앉아 있던 요한의 옆자리로 갔다. 그 아래쪽에서는 송별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류넬이 울고 있었다.
죽은 스승의 성검을 받든 채.
친구이자 동기인 아레시아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면서도 류넬은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이 정도로 어떻게 아픈 소리를 낼 수 있겠어…….”
중요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몸의 상처는 언젠가는 낫게 될 테니까.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만약 실키 알터 가우므리스가 아니라 스승님이 저렇게 전사하셨더라면, 나는 버틸 수 있었을까?
“이제 류넬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 용광추법(龍光椎法)을 완전히 배우지 못했으니…… <위용검전>의 검술 비본을 보고 배우게 되겠지.”
“카밀라!”
그때 눈부시도록, 낯익고, 낯익기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싶더니, 샤론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어깨를 잡았다.
“살아 있었구나, 너, 살아 있었어. 세상에, 감사합니다.”
“뭐? 야, 너 왜 그래.”
“네가 죽을 정도로 중상이란 말이 나돌았단 말이야! 전군 대기명령인데도 여기 오느라고 스승님한테 얼마나 떼를 썼는지…….”
이야기가 먼 벌판을 가로지르며 와전되고 과장된 듯싶었다.
실키 알터 가우므리스가 전사했을 정도였으니, 중상이라는 의미가 ‘죽기 직전’으로 해석되었어도 이상하지는 않았으리라.
창세의 빛에, 섭리에 감사했다. 어쩌면 지금 저 자리에, 류넬과 아레시아의 자리에 내가 샤론과 함께 있었을지도 몰라…….
“예언자를 만나고 살아남다니, 어떻게 한 거야? 원시 왕국 성형외과에 소개시켜 주겠다고 꼬시기라도 한 거야?”
“아니야, 인마.”
“어땠어? 어떤 상대였어?”
“그게…… 뭔가 극위성검 플라디마르테랑 베룸페이라를 보는 것 같았는데……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돼.”
플라디마르테와 베룸페이라, 그 검들이 본래 취했어야 했을 형상을 갖고 있었다.
본래 가졌어야 할 힘.
응당 지녔어야 할 권능과 위엄, 그 모든 선천적 결여(缺如)를 본질적 충만(充滿)으로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인가.
‘마치, 위작과 진품의 차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