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60)
가짜 용사 이야기-260화(260/310)
시즌 3 : 68화
‘4년 전과 마찬가지군…….’
청성 미른가디아는 생각했다. 놈은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나,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이는 시공간 술식의 흔적…….
‘용사의 전당’ 앞에서 발견한 것은 절대 심연의 기척이었다. 우주적 존재가 개입했다는 증거였다.
「순백의 꿈에서 보았던 관측 정보와 각종 목격 정보를 취합했을 때, 상대의 정체를 유추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한 줌의 희망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희망이란 광룡 하라데리만이 내비친 소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분’일 리가 없다…….
‘그분’께서 그러셨을 리가…….
누군가가 진성검 요니울란을 탈취했으며 그 사용법을 익혔을 것이라 고려하고 있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게 완벽히 뒤집혔다.
「예언자의 정체는 옛 용사, 엘디아 뮤(04) 뤼카엘이 틀림없다.」
세계수의 정신 공간에서 제1위계 간부진이 전원 소집되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대 세 명의 도원수와 10인의 페이쿼리어였다(에쉬르를 포함한다).
11인의 페이쿼리어가 아닌 이유는 라미네아는 부상 상태로 몸의 거동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뤼카엘이라니……?”
“어센시쿼리어란 말씀입니까?”
“그럴 리가, 어떻게 그런?”
그 발언에, 백전노장인 도원수들과 페이쿼리어들조차도 냉정을 다잡지 못한 채 혼란에 빠졌다.
「나 또한 이번 목격 정보를 듣기까지는 이 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광룡께서는 어떠하셨으랴. 에쉬르, 네가 설명해라.」
에쉬르가 초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표정에 감정이 없었다.
그 무감정함이 어떤 슬픔보다도 큰 슬픔으로 모두에게 찾아왔다.
“자신이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라고 했어요. 그리고 알카이오스와 카듀엘에 대해 설교하고, <랑바르드>에서 그 둘을 모욕했다면서 분노했었습니다.”
“뭐?”
“제로니 선배님과 에이워디 선배님보다도 더 엄청났어요. 눈으로도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사복검을 분열시키고 합체시켰었거든요.”
제3석, 제로니 알터 플라디마르테가 눈썹을 치켰다. 제8석, 에이워디 알터 베룸페이라 또한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들의 본바탕이다 이건가?”
“하지만 어째서, 각하, 도대체 왜, 어센시쿼리어가 인류를 적대한단 말입니까?”
「그 진의를 누가 알겠느냐.」
에쉬르는 뤼카엘이 했던 궤변을 모두에게 전하지 않았다. 주먹이, 뼈가 비틀릴 듯이 꽉 쥐어졌다.
그 궤변은…….
모욕하는 것만 같아서…….
지금까지 스승님께서 해오신 모든 싸움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그분을 좇아온 자신의 삶까지도.
「병사들의 사기가 우려스럽다. 예언자의 정체는 제1지휘권 이상, 즉 도원수와 페이쿼리어만 알고 있도록 한다. 그 아래 지휘 체계에는 함구령을 내리겠다.」
“……!”
「열흘 뒤부터 제2ㆍ제3방면군은 진군을 재개하라. 제1방면군도 뒤따르라.」
크라우잔이 우려를 표했다.
“각하, 이 경우 라미네아를 포함한 부상자들은 뒤에 남겨집니다.”
「엘디아의 출현을 경계하며 부상자들을 돌보느라 진군 속도를 늦추는 게 목적일지 모른다. 그 목적에 휘말릴 순 없다. 홍련 병단과 혈마 병단은 차후에 개별적으로 합류하게 하라.」
“예, 각하.”
「전 부대가 뇌향심공명진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 있도록 각 방면군의 진군 경로의 간격을 최소화한다. 이는 뤼카엘이 다시 출현했을 경우에는 나와 넨이 합동으로 요격하기 위함이다. 이상이다. 물러가라.」
과거의 메아리, 영혼에 묻은 피는 씻어낼 수 없다 (1)
홍의 사제 아이딘은 평소와 같은 시각에 라미네아의 병실에 방문했다.
라미네아는 핼쑥해져 있었다.
요니울란의 파열의 힘을 페이쿼리어의 초재생 능력이 따라잡지 못해, 신체 기관과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던 것이다.
일반인이었다면 진작 죽었다.
처음에 보았을 때에는 살아남을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제자의 눈물 어린 통곡 속에서.
“재생 능력을 증폭시키고 심신 안정을 위한 성언도 읊어 드리겠습니다.”
“아이딘, 그러지 말고 여기 좀 앉아서 내 이야기나 좀 들어줘. 항상 병실에만 있으려니 따분해 죽겠어. 그거 알아? 난 아기 때부터 엄마 품에서 빠져나가서 꽃밭에서 구른 사람이거든.”
“앉을 수 없습니다. 짧게 끝내고 나가 보겠습니다.”
아이딘이 성서를 펼치려 한 순간, 라미네아가 그 손목을 움켜잡았다.
“왜 그렇게 항상 나를 피해?”
“피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 선을 긋는 겁니다.”
“왜?”
“저는…… 다른 누군가와, 특히 당신 같은 분들과는 어울릴 자격이 없는 놈입니다.”
아이딘이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비네사 선배님과는 엄청 좋아 보이더니만. 질투심이 날 정도야.”
“그분은 제 과거를 아는 분이시니 그렇습니다.”
“숨기고 싶은 과거라도 있는 거야?”
“예.”
특히 당신에게는 더더욱…….
아이딘이라고 어찌 라미네아에게 어떤 마음이 없겠는가. 굳이 따지자면 유독 크다고 해도 될 것이다.
사람은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고 했던가, 아이딘은 라미네아로부터 먼 과거의 자신을 볼 수 있던 것이다.
“그러면 그 과거를 나한테도 알려줘. 그러면 나랑도 비네사 선배님처럼 친해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해줄 때까지 이 손을 안 놔줄 거야.”
“진심이십니까?”
“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신조거든. 누가 이기나 볼까?”
아이딘은 라미네아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으나, 붙잡힌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종군 사제로서 병장기를 휘두르며 길러온 근력과 악력으로도 페이쿼리어의 힘은 거스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라미네아가 빙긋 웃었다. 그렇게 소리 없는 싸움이 몇 분이나 됐을까, 아이딘이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 과거를 이야기해 드리지요. 하지만 대신 저는 이 이야기를 끝마친 이후 혈마 병단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조건입니다.”
“그건 싫은데.”
“그러면 손을 놔주십시오.”
“대체 왜 그래? 어떤 과거를 갖고 있든 괜찮아! 누구나 후회하는 과거는 갖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 난 당신의 과거를 듣는다고 당신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든가 그러지 않아!”
“라미네아 경.”
“나 말이야. 이번에 죽을 뻔했잖아. 죽음의 문턱까지 가니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이 생각나더라고. 좋아하는 남자랑 서로 과거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해보고 싶고…… 막 그랬어.”
“페이쿼리어와 사제 양쪽 모두 금혼입니다.”
“무슨 소리야! 참 나! 설마 내가 친절하게 대해주던 순간 손자 계획까지 다 세운 거야?”
손목을 잡고 있던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맑고도 따스하게 웃는 그 미소가…….
너무 맑고…….
너무 따스해서…….
저 어린 날, 그 어촌 마을에서의 일상, 어려서부터 그물망을 잡아 손에 굳은살이 박인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미소가 떠오를 정도로 너무나도 맑고 따스해서…….
“내가 연애를 하자든가, 결혼을 하자든가, 그런 게 아니잖아? 그냥 서로의 삶을 좀 나눠보…… 어? 왜 그래? 왜 울어? 알았어.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너무 억지를 부렸나 봐.”
아이딘은 양쪽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서로 교제하고 또 사랑하라고 이성(異姓)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 또한 창세의 위로를 받기 위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비네사 님이 죽은 이후…….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던 과거의 슬픔을 이야기할, 그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라고 창세께서 허락하신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이 이야기가 끝나면 절 혐오하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미네아가 생긋 웃었다.
“약속할게. 어떤 과거를 갖고 있든, 내가 당신을 혐오하거나 경멸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 * *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 날 경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멸시하게 될 겁니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죽어 마땅했던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창세의 은혜를 분에 넘치게 누리고 있는 거니까요.
나는 올해 서른두 살입니다.
사제 안수를 열네 살에 받아, 역대 최연소 ‘선교 사제’라고 당시 종교계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었죠.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기원력 1656년.
열네 살의 저는 아드리온 대륙 남서부 해안, 바로 이 어촌 마을로 보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마을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습니다. 무덥기는 했으나, 소박하고 진솔한 미소가 넘치는 곳이었지요.
주민들은 저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서도 제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주며 웃곤 했습니다.
옛날에는 마녀들이나 사제들이 이런 벽촌마다 상주하며 빛의 가르침을 전했다지만, 다들 알다시피 도시 생활을 선망하는 현대의 성직자들은 이런 고생을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는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단언할 수 있는 건, 그 3년 동안의 삶이 제 평생 동안 가장 행복했단 겁니다.
제가 성직의 부르심을 받으면서 진실로 꿈꿔왔던 삶이었습니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웨른어와 성서의 이야기를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사제님, 이 아닌 선생님, 이라 부르며 눈을 빛내며 들었지요. 모두 좋은 학생들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저를 ‘꼬마 사제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래도 무시한 건 아니고 설교를 곧잘 듣다가, 나중에는 주일마다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며 삶의 고난을 함께했지요. 기적으로 그들을 해일로부터 지켜본 적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꿈을 꿉니다…….
지금 꾸고 있는 모든 것이 악몽이며…….
거기서 깨어나니 다시 이 마을에서 제게 내어줬던 오두막의 천장이 보이는…….
바닷바람이 파도 소리를 몰고 커튼을 어루만지는 동안…… 사제복을 차려입고…….
오두막을 나서서, 강렬한 햇살에 눈을 찌푸리고 있으면…….
아이들이 달려와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라고 웃으며 인사하는…….
악몽은 1659년에 시작됐습니다.
내 삶은 그해에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고, 모든 꿈과 희망은 짓밟혔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1659년은 우루크의 전설적인 족장 ‘바그카르 로그쿠스’가 락트리그 클랜을 이끌고 인류를 처음으로 침탈한 날입니다.
바그카르.
슈’율큘라의 장마 전선을 이용해 청성 각하의 감시망을 뚫고 해안에 상륙하는 항해법을 처음으로 고안하고 성공시킨 놈입니다.
그날, 놈과 놈의 부하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저는…….
아무도 지키지 못했지요…….
그래서, 이 마을의, 모든…….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무엇 하나 살아남지 못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존재는 모두…….
나는 잡혀갔습니다.
기적을 사용하는 게 신기하단 이유에서였고, 어눌하게나마 우루크 언어를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놈들은 고대어를 쓰는데, 대심연 항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장대비 속에서, 저 <화염만리> 아래로 끌려가던 날 바다가 굴곡지며 흔들리던 감각을…….
벌벌 떨며 기도했습니다.
이놈들에게 천벌을, 죽음을 구걸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잔혹한 천벌을 내려 주시라고.
천벌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바그카르 로그쿠스는 락트리그 클랜의 적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위로 형제들이 여섯인지 일곱인지 있었는데, 바그카르가 죄다 칼타케로 쓰러뜨려 죽이고 당당히 족장의 자리에 올랐지요.
하이 쿤 타르크 1위의 족장은 대족장이라 불립니다. 놈은 그 젊은 나이에, 모든 우루크들의 정점…… 대족장이 된 겁니다.
락트리그 클랜의 부락…….
제가 끌려간 그곳은 야만적인 곳이었습니다.
거리며 돌벽이며 심해의 현무암으로 지어져 거칠고 육중하며, 피비린내에 절어 있습니다.
바그카르.
놈은 영리한 놈이었습니다.
나를 족장의 집에 가두고, 인간의 문화와 인류의 세력 지도, 현황, 군세를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약탈로 바그카르는 해안 마을과 도시 수십 곳을 초토화시키면서 상당한 재보와 노예를 가져왔습니다.
이게 우루크 부족 사이에 퍼지면서 놈의 명망은 더 높아졌고 다음 원정에 동참하길 바라는 놈들이 줄을 섰죠.
나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알려 주었지요.
거짓 하나 섞지 않았습니다.
거짓이 걸렸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주(天主)로부터 천벌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내가 대신 심판을 내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놈들을 알아야 했습니다.
또 청성 각하와 뇌향 각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정보를 알려주어도, 그분들이 이놈들을 막아내길 믿었습니다.
사실, 그러기를 바랐지요.
아니, 스스로의 행동을 그렇게 변명하며 합리화한 걸지도 모릅니다.
저는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살아서, 이놈들의 정보와 세력도를 인류에게 알려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습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바그카르는 3차 원정까지 대성공시키며 이제는 공화국 칠대도시들까지도 놈을 두려워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사이 바그카르는 절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몸만 인간일 뿐, 노련한 우루크 전사가 됐습니다.
– 저놈은 인간이다. 빛의 똘마니다. 못 믿는다.
– 우리와 하나가 됐음을 증명하게 해야 한다.
– 그렇지 못하면 죽일 뿐.
물론 그 과정에서…….
놈들이 포로로 잡아온 다른 사람을 일곱 명을 죽였고…….
우루크의 전통 제사에서 포로의 배를 가르고, 그 피를 온몸에 바르고 웃어대야 했지만 말입니다…….
– 살려, 살려주시오…….
늙은 남자가 신의 자비를 구걸하던 게 기억납니다. 우루크들은 제게 도끼를 쥐여 주었습니다.
그 눈동자가…….
곧 딸의 결혼식이 있다며 생명을 구걸하던 그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머리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시뻘겋게 뿜어져 나오던 핏물과, 피 웅덩이에 쓰러져 경련하던 그 몸과, 다른 포로들의 비명과 우루크들의 환호성과 웃음소리도…….
– 이놈은 이미 빛을 버렸다.
그래요…….
그렇게 저는 5년 동안 우루크 부족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가며…….
– 그래, 나는 너희들의 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