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62)
가짜 용사 이야기-262화(262/310)
시즌 3 : 70화
“기원력 1674년 12월부터 청성 미른가디아가 결행한 작전은 ‘전승절 대공세’라고 불린다.”
“교수님, 테르시아 전승절은 4월이 아닌지요?”
“이듬해 4월 전까지 전쟁을 끝내서, 긴 전쟁에 피폐해진 장병들이 가족과 함께 전승절을 보내게 해주자는 뇌향 세츠넨의 취지에서 그렇게 명명되었다.”
7개월 동안 단행된 이 작전은, 후일 역사가들조차도 기적이라 평가하는 돌파력 속에서 서부 해안을 온전히 수복하는 데 성공.
3년 동안 빼앗겼던 인류 영토를 1675년 7월까지 9할 이상 탈환한다. 예언자의 출현으로 당초 계획보다 속도가 늦어졌는데도 그랬다.
기병ㆍ보병ㆍ포병ㆍ기갑ㆍ항공ㆍ공병을 일체로 적진 중심부에 화력을 집중시켜 돌파하고, 허물어지는 양익은 후위 부대가 해치우는 이 전략을 전격전이라 불렀다.
“청성 미른가디아가 선봉에 설 때 인류는 어떤 작전이든 해낼 수 있었다.”
“‘붉은 여름’ 시대에는 왜 이 전격전을 사용하지 못했는지요? ‘붉은 여름’에는 수비 전술이 극도로 발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성의 본체가 부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류의 작전에 치를 떨었던 마족들이 이를 흉내 내게 되지.”
3개의 방면군으로 잔적들을 소탕해가며,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잃어버린 땅을 수복한 인류는 마침내 고지를 눈앞에 두게 된다.
황색 도시, <라프타스>.
원시 저주의 사변으로부터 이 땅을 빼앗긴 지 어언 4년…… 이 도시를 눈앞에 둔 장병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675년 8월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남쪽 땅의 계절은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장병들의 마음에는 봄이 찾아들고 있었다.”
마지막 전투…….
저 전투만 끝내면 전쟁이 끝나고, 일상이 회복되며…….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춘몽(春夢)…….
“보급로를 확보하며 진군 대열의 후위를 맡던 제1방면군이 제2ㆍ3방면군과 합류하게 되던 이 1675년 8월의 이야기로 <라프타스> 탈환전의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중장의 종반전, <라프타스> 탈환전 (1)
서부 1번 철도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철길이 해안을 따라 끝없이 굽이친다.
저 보이지 않는 철도의 끝에, 황색 도시 <라프타스>가 있었다. 전운을 건 격전의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 내륙 병참로를 확보한 제1방면군은 서부 1번 철도의 시발역인 해안 도시 <타테로>에서 아인 강철함대와 만나게 되었다.
강철함대(鋼鐵艦隊).
아인 최정예 부대인 제3해상전투단ㆍ제3군수전단ㆍ제3특전단을 주축으로 편성되어 ‘333부대’라 불리는 백전불패의 함대.
– 강철함대 제독이 인류 방면군 지휘관에게
청성 각하의 <라프타스> 탈환령에 의해 필요한 물자를 보급받고자 한다. 이미 보급 명령이 하달돼 물자가 이곳에 도착했을 것으로 안다.
‘검은 여름’ 당시 강철함대의 함대장은 할바론 손 에베소였다.
만병기장, 할바론…….
‘붉은 여름’에서 영웅이 된 그는 ‘검은 여름’에서도 영웅이었는데, 그때 처음 만난 할바론은 30대의 젊음과 총기를 거느린 명장이었다.
“물론이죠. 다 하역장에 준비해 두었어요. 가져가기만 하시면 됩니다.”
할바론은 아인들의 고향인 킨덜란츠에서 ‘공화 혁명’이 일어날 당시에 왕당파의 유일무이한 희망으로서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
증기기관의 발명자, 프리스비아의 후손이기도 했는데 그 천재성은 증기 기술 발전을 100년은 앞당겼다고도 평가받을 정도였다.
아인은 인간을 은연중에 멸시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할바론 지휘하의 아인들은 최소한의 예절은 갖추었다.
외견은 미소년이었지만…….
카밀라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전투가 흉터와 관록으로서 그 얼굴과 몸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소년이 장성 제복을 입고도 저렇게나 위엄이 설 수 있단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저 나이에 벌써 함대장인 것이다.
할바론은 친히 연락선으로 갈아타서 도시 선창에 상륙, 제3방면군 군단장인 크라우잔과 스승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네, 땅개 친구들. 육지의 형편은 어떤가?”
할바론이 눈을 장난스레 찡긋했다.
여느 아인이었다면 마누키(Manuki; 아인의 언어로 원숭이, 인간을 무시할 때 사용된다)라는 말을 썼을 것이지만 할바론은 그러지 않았다.
스승님이 빙그레 웃었다.
“보다시피 쪄 죽을 것 같아요. 물개 제독님. 저희도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면 헤엄을 치면서 더위 좀 식혔을 텐데요.”
그러자 할바론이 크게 웃었다.
“핫하하하하하! 이번에 만난 페이쿼리어는 유머가 있군! 악의는 없었네. 그냥 인간들, 특히 페이쿼리어들은 세상 불행을 다 짊어진 표정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할바론은 속을 알 수 없는 괴짜였지만, 결코 인간관계의 선을 넘지 않았다.
‘검은 여름’ 당시, 인류와 아인이 친화적으로 합동 작전을 꾸릴 수 있던 건 대부분 청성과 할바론의 덕이었다.
제1방면군 지휘관들과 식사를 마친 할바론이 말했다.
“<라프타스> 대공세를 함상 지원하기 위해 이틀 뒤에 전 함대가 발진해야 해. 3군 6진을 먼저 박살내야 한다더군.”
“나가의 저항이 적잖을 텐데. 위험하지 않겠나?”
“청성 각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로 했으니 괜찮겠지. 그분이 자네들 곁을 떠나게 되는 셈이니 육지 쪽의 자네들이나 귀쟁이 놈들이 꽤나 피똥 싸겠구만그래.”
“뭣이! 귀쟁이들이 피똥을? 그거 아주 통쾌한 소식이구먼. 각하께서 육지를 도와주신다고 해도 내 극구 사양할 테니 걱정 말게나.”
“이거 완전 미친 남자로군!”
본디 괴짜와 괴짜가 만나면 이야기가 잘 통하는 법일까. 크라우잔과 할바론이 껄껄 웃었다.
“그럼 <라프타스>에서 보자고. 먼저 가겠네. 땅개 친구들.”
에쉬르는 남쪽으로 길게 일어났다가 새하얗게 부서지는 강철함대의 항적(航跡)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라프타스> 공략이 삼군(三軍; 인ㆍ요ㆍ아 통합) 연합 작전인 만큼, 해군이 먼저 전략 위치를 선점하러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옛 리스타 파티에게도 ‘시작과 끝의 도시’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쉬르와 혈마 병단에게도 <라프타스>는 ‘시작과 끝의 도시’가 될 곳이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장을 두고 왔던 그 땅으로.
그래야 멈춘 시간이 다시 돌아갈 테니까. 그것이, 혈마 병단 전원의 원(願)이자 한(恨)이었다.
그런 곳으로 먼저 진군하는 강철함대가 에쉬르는 심히 부러웠던 모양이다.
이튿날, 제2ㆍ3방면군도 <라프타스> 포위진을 구축하기 위해 남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쉬르는 혈마 병단도 <라프타스>로 진군하고 싶다는 뜻을 도원수에게 강력히 전했다.
“미안하지만 안 되네. 우리 제1방면군은 <라프타스> 포위진으로 이어지는 내륙 병참로를 확보해 군위(軍威)를 견고히 하는 것이 전략 목표라서.”
이렇다 할 적도 없고, 조무래기뿐인 잔적들을 소탕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혈마 병단은 짜증에 가까운 반응을 냈다.
“이런 젠장, <라프타스>를 앞에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멜레느 학파의 페닐이 투덜대자, 흑각검파의 맥케넌도 비아냥댔다.
“이제 완전 들러리 취급이군.”
붉은 순례자 레오네가 말했다.
“에쉬르, 더 강력하게 항의하면 안 돼?”
실망한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이다.
<라프타스> 공략의 선봉에 서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이.
“어차피 우리가 빠져도 될 정도로 홍련 병단은 강력해졌는데.”
전쟁 발발 초기에는 3천 명의 연대 규모였던 홍련 병단은 4년의 전쟁 동안 총원 12,265명, 즉 사단 단위로 증편되었다.
이때는 대부분의 병단들이 이토록 사단 단위로 운영되어 가고 있었다. 도원수의 재량에 따라 병단에 포병대나 기병대를 붙여줄 수 있었으니까.
아이딘이 통합 병단의 수석고문관으로서 부대의 움직임을 조율했으며, 인재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병단은 시끌벅적했다.
그들 모두 홍련 병단의 제복을 입었는데, 혈마 병단의 생존자들은 여전히 혈마 병단의 제복을 입었고 모두 그 의지를 존중했다.
혈마 병단은 <라프타스>에서 단장의 주검을 수습하고 복수전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야 신참을 받겠다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모두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어차피 우리가 가기 전까지는 공략전이 시작되지도 않을 거야.”
각 성채나 소도시에 혈국(血國)을 차려놓은 혈족으로부터 습격을 받긴 했지만 놈들은 제1방면군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제1방면군은 그렇게 소소한 저항마저 분쇄해가며 남진, 곧 제2ㆍ3방면군이 점령해 통합 사령부를 갖춰놓은 <비콘스타>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재회했다. 그동안 방면군 소속이 달라 못 만났던 친구들을.
“샤론!”
“후훗, 여기 좀 봐. 너무 멍청해서 죽지 못한 바보가 왔어.”
“뭐, 이 상놈아?”
“너 말고, 혹시 찔리니? 여기 우리 올리에르 말이야.”
또 일성칠검의 대표단에 소속되어 올리에르도 와 있었다.
청성의 총동원령에 따라 일성칠검 같은 명파들도 정예 병력들을 최전방에 파병한 터였다.
일성칠검의 대표단은 제3방면군에 배속되어, 페이쿼리어 병단에 버금가는 특무 전력으로 전승절 공세에 멋지게 종군해왔다.
“카밀라! 잊은 건 아니겠지! 네 라이벌은 바로 이 나라는 사실을! 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키가 왜 이렇게 큰 거야? 자칫 못 알아볼 뻔했다고!”
올리에르, 평생의 친구…….
4년 만에 다시 만난 올리에르는 불의 축복을 받은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숙녀가 되어 있었다.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기품마저 느껴졌다. 입만 다물고 있다면 말이다.
“후훗, 원시 왕국에서 키 크는 수술을 받았다지 뭐람. 우리 몰래 하려던 것 같은데 나한테 딱 걸리고 말았지.”
“뭐? 이, 이, 이런 비겁한 녀석! 평범한 실력으로는 날 이기지 못할 거라 판단한 거냐?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라이벌이 비겁한 수를 써도 정당한 승부로 대응할 테니까.”
“아니, 아니거든? 이것들아, 이건 불가항력이었어! 원해서 된 게 아니라고!”
“흠.”
“후훗.”
“꼬우면 함 뜨든가! 어?! 이제 너희 둘 정도는 코 파면서도 상대해줄 수 있거든?”
또래 친구들과 예전처럼, 예전과 똑같이,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고 있자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순간적으로…….
그때, 그 지검제(地劍祭) 우승의 날에, 그 이후의 날들에, 이 녀석들과 떠들던 날이 떠올라서. 이 풍경 위로 겹쳐져서.
‘아, 젠장…….’
그날에 흩어졌다가, 이렇게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전공을 세우면서 또 살아남아 다시 만난 것에 가슴이 뭉클해진 것일까.
‘이런 날이 항상 있다면…….’
올리에르는 또 대륙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그건 벨르윈 저택과 주고받던 편지로는 나눌 수 없는 신기한 내용이었다.
“벨체스터의 당주가 심근경색에 시달리다가 급사했거든. 그래서 발칸 그 나쁜 개자식이 새 당주가 됐어.”
“뭐?”
“이건 소문인데, 사이온 공작의 주선 속에 루드윅 가문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는데? 이번에 발칸이 전장에 안 왔잖아. 원래 용검제를 끝마치고 올 예정이었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지만, 납득이 안 가는 내용도 아니었다.
사이온 공작가로서는 카밀라 때문에 어긋났던 두 핵심 가문을 결속시켜야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다질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음, 어라, 발칸 오빠와 라디스 언니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별로 기분 나빠 보이는 것 같진 않네?”
“그야 뭐…… 서로 딱히 인물이나 가문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발칸은 올해 용검제에서 우승까지 했다며. 근데 자발 오빠가 그 혼담에 가만있대?”
“자발은 20대 초반에 대마법사로 등재된 것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 소식이 없어. 특무과에서 활약하는 마법사가 대개 그렇지.”
둘이 결혼하면 나는 발칸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스승님은 발칸을 매제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음? 어랍쇼?
핫…….
그런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자신을 보고 있자니, 스승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빛이라…….’
그래, 내가 여기에서 싸우고 있던 게 헛되지 않았구나. 발칸 오빠와 라디스 언니가 행복해져 가고 있구나.
충분해…….
그거면, 충분해…….
스승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심히 궁금했다. 손뼉을 마구 치시며 웃으신 스승님과 함께 양쪽 저택으로 보낼 편지를 썼다.
– 발칸 벨체스터에게
이번에 용검제에서 우승했다고 하니 특별히 라디스 언니를 허락하겠음을 밝히는 바임. 언니를 울렸다가는 뒤질 준비 하셈.
까불지 말라고?
오빠 겁나게 약하잖아.
그때 나한테 졌잖아.
지금도 오빠보다 최소 다섯 배는 강함. 납득 못 하겠으면 여기로 오든가.
그런 일상 너머로, 기원력 1675년 8월 5일, 청성 각하로부터 지휘관 소집 연락을 받고 스승님을 따라 사령부로 향했다.
「왕의 산성비에 가려 정확하진 않으나, 고도의 심연 수치를 가진 존재가 5기 포착되었다.」
청성의 시선을 받은 아이딘이 설명을 보충했다.
“필두 하이 쿤 타르크, 락트리그 클랜의 족장과 해석류(海石類) 트롤의 오우칸, 그리고 나가 해성팔족(海星八族)의 계랴, 시드균 일족으로 총 넷입니다. 다른 하나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오우칸은 오우거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언어로, 그 위험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석인(石人)이라고도 불리는 트롤은 신체의 근원이 되는 바위의 종류에 따라 집단이 분류되는데, 해석류는 바다에 근본을 둔 바위로 당연히 옛 왕의 축복을 받는 최고 집단이다.
해성팔족은 나가 일족 중 가장 위대한 여덟 일족을 지칭한다.
“이제 좀 총력전이란 느낌이 드는군!”
자카드린 알터 토오엘이 마음속의 불꽃을 태우며 힘차게 말했다. 메이트 알터 볼비에르가 물었다.
“병력 비율은?”
“요정병과 아인 강철함대, 즉 삼군 연합을 모두 합한다면 아군의 숫자는 400만이며 적의 숫자는 400에서 450만으로 추정됩니다. 즉, 비율은 1:1에서 1:1.2입니다.”
“1:1? 식은 죽 먹기잖아.”
지금 이 순간, 아인 사령부와 요정병 사령부에서도 미른가디아의 분신이 회의를 주재하며 똑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을 터였다.
「현재까지 파악된 적은 모두 옛 바다의 군주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이번에는 바다에 어떤 재앙을 감추어 두었을지 모른다.」
모두가 깊은 숨을 들이켰다.
그 누가 잊었겠는가.
<라프타스> 사변, 그 재앙, 그 재앙을 수습하기 위해서 밟아야만 했던 희생의 발자국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나와 넨은 바다를 집중적으로 경계하겠다. 해성팔족도 둘이나 바다 전선에 있을 테니 이게 맞을 것이다.」
“각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것이 모두 옳사오니.”
「이제, 작전명령 및 배치를 하달하겠다. 태산ㆍ선견ㆍ맹진ㆍ철성 병단이 주력을 맡아 북문을 돌파하고, 비격 병단과 필중 병단이 공중 지원한다.」
“예, 각하.”
「크라우잔, 북문 돌파의 현장 최고 지휘권은 자네에게 일임하겠다.」
“허허, 이 늙은 장수가 죽게 될 날에 손주들에게 할 이야기를 이렇게나 계속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지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각하.”
「주력에서 갈라지는 제5석 고산ㆍ제6석 홍련ㆍ제9석 음율 병단은 도시 서쪽으로 향하라. 이는 적의 해안 포대를 무력화하고 강철함대 기갑 특수전대의 상륙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카밀라가 몸을 기울여 스승님에게 속삭였다.
“저희 상대는 오우칸이겠네요.”
비네사 님을 두고 온, 두고 와야만 했던, 두고 왔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심 시가지로 향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오우칸의 상대가 우리인 거야.”
스승님이 방그레 웃으며, 얼굴을 살짝 움직여 귓가에 속삭이던 카밀라의 볼에 자신의 볼을 맞댔다.
그게, 좋았다.
그 온기가, 너무 좋았다.
계속 그러고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선임들이 지천에 깔려 있으니 서둘러 열중쉬어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기동력이 강점인 혈마와 흑장미 병단은 독립 예비대로 편성, 위급한 순간에 뇌향심공명진을 이용한 차원 전이로 사용하겠다.」
“예비대에는 가장 훌륭한 전력이 배치되는 법, 그러니 우리 흑장미는 필두 병단과 진배없다…… 이 말이죠?”
「나는 흑장미의 기동력을 고평가하고 있다.」
“하핫 참, 이렇게 인증 마크를 찍어주시니 황송해서 어째. 앞으로 우리 흑장미를 무시하는 건 청성 각하를 무시하는 거죠? 불경죄 같은 거로 고발해도 되죠?”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가 깝죽거리자 제자인 샤론이 곤혹감에 이마를 짚었고, 선후임 페이쿼리어들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젓거나 웃었다.
「인류가 방어가 가장 굳건한 북문을 돌파할 때, 요정병들은 동문과 남문을 돌파할 것이다. 각자의 맡은 바에 충실하여, 하루 안에 합공으로 끝낸다. 이 전투가 끝날 때, 전쟁이 끝날 것이다.」
모두가 예술에 가까운 전술 배치에 찬사를 보낼 때, 에쉬르는, 에쉬르 홀로 납득할 수 없단 기색으로 손을 떨었다.
“각하, 그럼 저희 혈마 병단은 도시 공략 일선에서 제외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