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64)
가짜 용사 이야기-264화(264/310)
시즌 3 : 72화
“황색 도시 <라프타스>가 가지고 있던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전략적 요충 따위의 실무적 평가가 아닌, 바로 상징성이었다.”
청성 미른가디아가 아드리온 대륙 남서부 해안 거주민들에게 베푸는 약속과도 같은 상징.
신변의 안전에 대한 약속.
일상의 평화에 대한 약속.
이 땅에서 살아가도 괜찮다고, 터를 잡고 일상을 쌓아가며 행복을 누려도 괜찮다는 무언(無言)의 약속.
“용현 레인 루드윅이 그러한 약속으로 세계에 ‘은(銀)의 시대’를 베풀었던 것처럼.”
<라프타스> 탈환은 단순히 군사적 거점을 되찾고 마족을 경계 너머로 내쫓는 게 아니었다.
그 상징을 되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검은 여름’ 초년부터 종군해온 모든 장병들에게 있어 이 도시는 옛 리스타 파티처럼 ‘시작과 끝의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이곳에서, 이제 모든 것을 끝맺음 짓는 것이다. 그 일념이 누구보다 컸던 건 당연히 ‘검은 여름’ 초년의 주역이었던 혈마 병단이었다.”
혈마 병단은 뿌리 깊은 자책과 증오 속에서 살아왔다.
단장을 이곳에 두고 자신들만 살아왔다는 자책과…… 상황이 그렇게 되도록 만든 락트리그 클랜에 대한 증오.
당대 최정예 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혈마 병단의 생존자 전원이 복수전을 위해 집결했다.
“기원력 1675년 8월 11일부터 <라프타스> 탈환전이 시작된다. 당시 18세였던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은 혈마 병단과 함께 <라프타스> 탈환의 선봉에 서게 된다.”
중장의 종반전, <라프타스> 탈환전 (3)
[청성 : 전 육군 부대, <라프타스> 공략 작전을 개시하라.]혈마 병단을 시작으로 선봉 부대부터 차원진의 빛에 휩싸였다.
‘가상의 <라프타스>’를 상대로 완벽하게 포위진을 이루고 있던 육군 부대가 군진 그대로 <라프타스> 외곽으로 이동한 것이다.
도시 전역에서 격렬한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만병기장 할바론이 개발한 신병기가 함상 포격으로 거듭 내리꽂혔다.
[할바론 : 극도로 발달된 기술은 기적과 다를 바가 없는 법. 불바다를 만들어줘라.]적룡이 대심연 항쟁사에서 자랑해온 파괴력…… 즉, 불의 힘에 주목한 할바론과 청성은 ‘꺼지지 않는 불’을 공동으로 발명해낸다.
그 이름, 소이탄(燒夷彈).
인류의 제식 폭발 탄약인 폭렬탄과 비교해 화염의 확산 범위ㆍ속도가 5배는 빨랐고, 물에서도 꺼지지 않는 특이점을 보였다.
이 불길이, 승리의 열쇠였다.
락트리그 클랜은 옛 바다의 지배자의 축복을 받은 부족답게 기괴한 방식으로 <라프타스>를 요새화해 두었다.
도시를 바다로 만든 것이다.
3군 6진을 비롯해, <라프타스>의 시가지도 고지대를 제외하면 모두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이 바다는 놈들의 영역이었다.
락트리그 클랜의 정예 친위대인 ‘호르킨’들은 육체적ㆍ정신적 변이가 일어나 아가미가 있고 지느러미가 있었다.
이건 놈들의 특기인 수중 전투를 극도로 발달시켰으며, 근해(近海)에서 배가 침몰되어도 인류 침탈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구스타프 : 전 함대 포격 완료, 제1대열부터 장전 절차에 들어가겠습니다, 각하!]그 모든 대비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옛 홍염의 아키레아가 선보였다는 것과 같은 막강한 화력.
또렷이, 들려온다…….
선명히, 풍겨온다…….
꺼지지 않는 불에 불살라져 죽는 자의 처절한 비명과, 그 피육이 타들어가는 누린내가.
[에쉬르 : 혈마 병단, 전진!]그런 상황이었건만 마족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도시를 향해 전진할 때, 상공에서 투환들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사방에 돌이 수없이 내리꽂히지만, 무녀 실라미네가 주술 결계로 혈마 병단을 온전히 지켜냈다.
물론, 파열음은 그대로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폭음 속에서 병단은 계속 전진하였는데, 여기저기에서 접전의 혼란이 밀려들었다.
[메이트 : 포병대, 여기는 비격 병단, 6-1-4-7 좌표에 포격 지원 요청. 목표를 신호탄으로 표시하겠다! 적의 대공포 진지다!]그리핀 편대가 상공을 날아, 성벽 위로 늘어선 투석기 위로 폭렬탄을 내던지는 것이 보였다.
[알토 : 비격 병단, 여기는 제1포병사단. 불가능합니다! 현재 포신 냉각 및 증기 재보충 중, 서둘러도 3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메이트 : 3분이면 편대 전체가 땅에 떨어지고도 남는단 말이다!] [청성 : 비격, 원조 요청 좌표로 내 분신을 보내겠다. 도착까지 40초. 편대는 활공 상태를 유지하라.]락트리그 클랜 휘하의 우루크들이 성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히고 밀려 나왔다.
우루크는 공성전이나 수성전에 흥미를 보인 적도 없고 강세를 가진 적도 없었다.
생지옥이 된 도시 내부에 있느니, 자신들이 잘하는 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처럼도 보였다.
[실라미네 : 전방에 적 다수! 에쉬르, 카밀라!]거의 동시에, 에쉬르와 카밀라가 등자에서 발을 떼고 안장 위에 쭈그려 앉았다.
이는 도약을 예비하는 자세.
또한 공중 전투를 위한 자세.
둘의 자세는 같되 달랐다. 에쉬르는 칼과 칼집 쥔 양손의 주먹으로 안장을 짚은 자세였고, 카밀라는 발(發)의 자세였다.
‘외형적 변이가 일어난 걸로 보아 락트리그의 친위대 전사인 호르킨들…….’
하이 쿤 타르크 제1위.
그 최정예 전사들인가.
‘문제없어. 적돌이와 함께라면.’
칼집 속에 격리되어 폭주하기 시작한 마력을 칼날에 오롯이 담아내는 느낌.
그 반발력이 낳는 파괴력.
칼자루 쥔 손바닥을 뒤흔드는 손맛…… 해자처럼 도시를 둘러싼 바닷속, 거기서 정신없이 솟구치는 모든 혼란을 향하여.
발도일섬(拔刀一閃).
그 참격의 번득임이 망막에 남긴 잔상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마력의 발판을 밟고 몸을 앞으로 튕겨 십문자도의 연계를 이어나간다.
철과 피의 향연.
철은 빛으로 반짝이고 피는 흩뿌려지며 그 빛을 붉게 반사한다.
“히햐, 엄청나군!”
“저 둘의 콤비는 이제 거의 신기의 영역이니까!”
공중 전투를 마치고 말로 돌아오던 도중, 기습을 가해온 적을 처리하느라 말을 바꿔 타버렸지만…… 이조차도 상정 범위 안이라는 듯 둘은 씩 웃었다.
[자카드린 : 여기는 맹진, 적의 포격 때문에 이 이상의 진군이 불가능합니다!] [청성 : 도착까지 10초.] [메이트 : 각하, 좌표상 위치에 붉은 신호탄을 남겨 두었습니다! 대공포 진지가 암술 결계로 방어되고 있습니다!]다음 순간, 순백의 광염(光焰)이 광폭하게 추락하며 세상에서 색채라는 개념을 앗아갔다.
그것은, 흑과 백의 세계…….
세계가 다시 섭리가 정한 색(色)을 되찾았을 때는, 대공포와 투석기가 늘어서 있었던 북쪽 성벽이 무참히 내려앉아 있었다.
[청성 : 이제 해결되었으리라 믿는다. 해안가의 교전이 격렬해 북부 전선에 이 이상의 시간 할애는 불가능하다. 너희의 건투를 기도하마.]그 대강하의 한복판에서 순백의 존재가 소복 자락을 새하얗게 나부끼더니, 다시 용의 형상을 입고 승천했다.
분신이 아니라 본체잖아…….
환성을 내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비현실적인 일을 목도하면 함성이 아니라 헛웃음조차도 겨우 나오는 법이다.
[자카드린 : 하하하핫! 마음속에서 불길이 타오릅니다! 단 한 방에 포병대 전원을 실직자로 만들어 버리시다니!]‘검은 여름’, 그 악몽의 나날 속에서…… 불가능이 타파되는 순간에는 늘 청성이 인류와 동행하고 있었다.
[라미네아 : 성문이 무력화되었다! 선봉대는 먼저 진입! 멜레느, 실라미네 님을 도와서 잔해를 최대한 말끔히 치워내! 본대 진출을 위해!] [멜레느 : 응…….] [에쉬르 : 혈마 병단, 잔해를 지나 먼저 내부로 들어간다! 이동!]<라프타스> 시가지는 광기(狂氣)의 산성비 속에서 부패해가고 있었다.
광(狂)?
광(狂)…… 광광(恇恇)?
지반이 바다에 잠긴 건물은 골조만을 앙상히 남겨둔 채 녹아내리는데, 반쯤 기울어진 성당 종탑이 기괴하게 보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수런거리는…… 슈우레 슈울…… 영혼 깊은 곳부터 울리는…… 끈적거리는 암청색 별의 지도자…… 수런거리는 광기, 슈’율큘라…….
[실라미네 : 환각 공간에 들어왔어! 서둘러! 빨리 중심지로 향해서 환각의 술사를 없애야 해!]다시 찾은 <라프타스>는 전에 알던 <라프타스>가 아니었다.
왜 청성 미른가디아가 모든 문화재와 시설을 파괴하면서까지 도시 ‘탈환’이 아닌 ‘멸각’ 전략을 세웠는지 돌입 직후 단번에 이해했다.
한 번도 <잊혀진 왕들>의 축복을 받은 존재와 싸우지 않은 이들에게 그 악몽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카밀라 : 어느 방향이에요?]<잊혀진 왕들>의 힘은 여느 마족들과는 다르다. 광인의 상상조차도 초월한다.
그 축복이 머무르는 곳에는 광란의 비명과 절규만이 가득한데, 도시 내부는 심해목(深海木)이라는 옛것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단순 나무가 아니라, 뿌리를 이용해 사람처럼 걸으며 인간을 꿰뚫어 잡아먹는 마물들이다.
[아이딘 : 환각 마법 때문에 방위가 뒤틀립니다! 나침반 확인! 1시 방향이 남쪽입니다!]놈들은 침묵의 사냥꾼이다. 퇴락한 도시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소리 없이 기어 나와서 사냥감을 붙잡는다.
그 군락은 지옥과도 같다.
그러한 지옥인데 환각 때문에 오감이 뒤틀리고 방위마저도 기괴하게 어긋난다.
북쪽이 서쪽이 되고.
서쪽이 동쪽이 되며.
남쪽이 북쪽이 된다.
평형감각에도 이상이 일어, 벽면을 달리다가 하늘을 달리기도 하고, 모든 감각에 혼란이 인다.
[라미네아 : 홍련 병단과 혈마 병단 전원에게 전파한다. 조심해! 산성비 때문에 사위가 곧지 않고 적의 전력이 완전히 파악되지도 않아!]그 악몽 속에서 확실히 알았다.
왜 필두 페이쿼리어가 회전(會戰)의 선봉에 서게 되는지…….
적도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 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에쉬르 : 소리 없이 다가오는 건 다 적이야. 암구호는 필요 없어.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숨죽이는 공포 속에서 소리 없이 밀려드는 광기의 흔적들을 해치워가며 혈마 병단은 전진했다.
[에쉬르 : 뭐 보이는 거 없어?]아이딘과 실라미네의 광역 결계가 아니었더라면 진작 진용이 저 혼란 속에 붕괴되고 광기의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딘 : 음, 없습니다. 산성비가 소리마저도 지워 버리는군요.]이미 전투 경력이 4년이 가까웠는데도 그 당시에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냥 에쉬르를 뒤따랐다.
뒤따르면서, 사방에서 나타나는 적을 닥치는 대로 베면서 그 뒤를 지키고 있었다.
[실라미네 : 사령부, 여기는 혈마 병단. 현재 ‘렘 11-2가(街)’를 지나고 있습니다.]<라프타스>의 대로들은 용현 일행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데, 렘은 그 전설적인 일행 중 하나였던 궁성이라 한다.
[청성 : 확인했다. 중심부에 가까워져 가고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고 주의하여 움직이도록. 심연 농도가 폭증하고 있다.] [아이딘 : 항룡 결계를 최우선적으로 무력화시켜서 각하께서도 중심부로 오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청성 : 뜻은 갸륵하나 전선 전역에서 환각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니, 인류 선봉의 위엄을 떨쳐 이를 속히 배제해라. 요정 선봉대도 중심부로 향하고 있다.]하이 쿤 타르크를 비롯해…… 왕의 축복을 받은 놈들이 두려운 이유를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강하기 때문이다.
축복을 받은 족장이나 수장 같은 놈들이 그 집단 전체에 버금가도록 강한 것이다. 락트리그 클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에쉬르 : 시청 청사 도착까지 3분, 골목을 잘 살펴!] [메이트 : 5시 방향, 심해목 군락이야. 우리가 처리할게.] [실라미네 : 12시에서는 락트리그 전사 출현…… 음? 산성비가 더욱 짙어진다. 대열 간격 주의해! 아무것도 안 보일 지경이야!] [에쉬르 : 혈마 병단! 교전에 대비해! 사방에서 적이 나타난다!] [아이딘 : 포격 지원 요청, 좌표 3-1-5-4-2, 사령부 외곽 담벽 건물입니다!] [할바론 : 우리 땅개 친구들한테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군. 자, 아인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이라고 복창하면 포격 지원을 보내주지.] [카밀라 : 아인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 [할바론 : 하하하하하하! 즉답이라니! 기특하기 짝이 없군!]할바론의 말장난은 단순히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장난이었고, 포격 지원은 이미 오고 있었다.
슈우우우…… 파바바바방!
사방에서 밀려들던 적들이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잿더미가 되어가고, 시청 청사 담벽이 허물어지며 샛길이 열렸다.
그것이, 광란의 시작이었다.
지면 곳곳이 불현듯 갈라지더니 집채만 한 문어발들이 솟구쳤다. 이는 옛 바다의 지배자의 힘…… 진영이 순식간에 무너질 뻔했다.
십일자도, 제9식 : 섬경(纖莖).
십문자도, 제6식 : 섬무참(閃舞斬).
극위성검 르노드가 포효한다. 대기조차 둥글게 베어내는 핏빛 원호(圓弧)를 가냘프게 뒤따르는 쇳빛의 일선(一線).
순간.
일순간.
모두가 반응할 수 없던 찰나에, 진영 중심부에서 반투명한 영체로 솟구쳤던 문어발들이 단칼에 끊어진다. 광입자로 허물어진다.
“……!”
“……!”
“……!”
참격의 끝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등을 맞대며 자세를 잡는 두 검사를 바라보며 아이딘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비네사 단장님.’
당신이 친히 가르치셨던 그 아이들이 지금 저렇게나 성장했습니다. 모두를 지킬 수 있게.
‘당신이 겹쳐 보일 정도로…….’
당신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저 광경을 보실 수 있었어야 됐는데.
[에쉬르 : 온다…….]들려온다, 찢어지는 선율로 빛과 어둠의 영역 너머로부터 광기를 끄집어내는 주구(呪具)의 목탁 소리가…….
그 소리를 끌고 나타난다, 광기의 근원이.
하이 쿤 타르크 중 필두, 락트리그 클랜의 족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