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65)
가짜 용사 이야기-265화(265/310)
시즌 3 : 73화
“바그카르 로그쿠스에게는 아홉 명의 자식이 있습니다.”
선봉 임무가 할당되기 전에, 군의(軍議)의 기억 저편에서 아이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로니 알터 플라디마르테의 심술 어린 비아냥도.
“새끼, 오지게도 많이 깠네. 짐승도 아니고 우루크란 것들은 뭔 새끼를 이리 많이 까?”
“전사의 숫자가 곧 부족의 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이어가자면 네 명은 4차 침탈 때 아비를 따라왔다가 죽었고, 살아남은 다섯 명이 이번에 복수를 하러 왔습니다.”
“하하하! 그 다섯 명 중 셋은 이미 우리 마음속의 불꽃으로 불태워 버렸지!”
자카드린의 발언에, 아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도 강적이었겠지만, 유아독존(唯我獨尊)을 장려하는 <잊혀진 왕들> 특성상 왕의 축복을 계승하는 건 족장의 자리에 오르는 존재뿐입니다.”
메이트 알터 볼비에르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 왕의 축복이란 것 말인데, 다른 하이 쿤 타르크와 비교하면 대체 얼마나 강하지? 필두 하이 쿤 타르크를 상대해본 적이 있어야지.”
4차 침탈 때는 청성의 지원을 받은 비네사가 바그카르를 해치웠으니 말이다.
“왕의 힘을 사용한다는 건 이미 필멸의 범주를 넘었다는 소리이니…… 통상 페이쿼리어의 전력을 1이라 가정하면 1.2에서 1.5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 별것 아니잖아. 다른 자식 놈들은 대략 우리랑 비교해서 0.6에서 0.8 정도였지?”
“라미네아와 에쉬르가 가면 어렵지 않게 물리치겠는데.”
페이쿼리어들의 낙관적인 전망에 제동을 건 것은 청성 미른가디아였다.
「모두 알다시피 전장에서는 상수라는 개념이 없다. 어떻게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느냐에 따라 그 힘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변수뿐. 이번 상대는 하이 쿤 타르크 중 필두, 결코 방심하지 마라.」
중장의 종반전, <라프타스> 탈환전 (4)
“Aku d raz ga, 아이딘, 이 증오스러운 배신자 놈.”
광기의 중심, 수런거리는 광란의 힘이 집약된 존재는…… 야만적인 승복을 걸친 우루크 무당이었다.
“이래서 두 발로 걷는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말했는데.”
뱀눈 이바요른…….
아이딘의 눈매가 좁아졌다.
아이딘이 바그카르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쳤으므로, 그 자식들도 인간의 말을 곧잘 했다.
‘6녀인 이 녀석이 족장직을 승계했단 말인가?’
백병전에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근력에 의존하는 우루크는 전사 선호 사상이 강하다.
그래서 주술 부족이 아닌 이상 족장직은 대체로 전사가 물려받는 전통을 갖지.
5녀 라그바우그의 능력이 뒤떨어지던 것이라면 납득이 가겠지만, 라그바우그는 바그카르가 후계로 점찍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진 놈이었다.
“이바요른, 라그바우그는 어디로 갔지?”
질문조차도 괘씸하단 듯이, 이바요른이 목탁형 주구를 흔들자 세계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오감(五感)의 광역 혼란…….
시각이 변동된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라프타스>, 죽어가는 도시의 시체라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의 표면에 어안(魚眼)이 돋아나고, 놈들이 일어서서 달려든다.
“뭐, 뭐야, 이건?!”
“전투 준비! 적들이 밀려온다!”
“건물을 무슨 수로 상대하지?”
눈에 비치는 건 건물이라 하나, 저 실체는 우루크 전사거나 심해목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투는 불가능하다.
상대가 무엇으로 공격해 오는지도 모르는 채 방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메이트 : 그 공역(空域)으로는 비행 불가야! 그리핀들이 환각을 이겨내지 못해서 추락사하겠어! 에쉬르? 에쉬르! 젠장, 통신이 끊어졌어!]그 옆을 활공하던 제11전투비행단의 니븐 알터 지에르다도 궁검형 성검 지에르다로 공대지 사격을 중단해야 했다.
[니븐 : 에쉬르, 우리 목소리가 들린다면 거기서 나와! 환각이 정리된 후에 들어가는 게 낫겠어!] [고르고티아 : 스승님, 통신이 안 돼요!] [니븐 : 이런 젠장…… 저 바다 안개는 대체 어디서 온 거지?]왕의 안개에 의해 통신이 교란되어 가고 있었다. 니븐의 제자, 고르고티아는 멍하니 침을 삼키며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뭐지…… 삼영룡 어르신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왕의 결계를 펼쳐놓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에쉬르 선배님, 카밀라 언니.
무사하신 거 맞죠?
[청성 : 슈’율큘라의 마우나 로아가 대거 출현했다. 나와 뇌향이 놈들을 저지하겠다. 비격 병단과 필중 병단은 해안 전선으로 이동하여 강철함대의 싸움을 지원하라. 이상.]망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도울 수도 없었다.
믿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들이 해낼 것이라고, 이길 것이라고, 살아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광역 환각을 무효화시키겠습니다. 1분! 실라미네 님, 저를 지켜 주십시오!”
“신애시편(信愛詩篇)을 쓰겠어. 나도 영창할 시간이 필요해.”
에쉬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의 지각으로는 왕의 환각을 견뎌낼 수 없으나, 용의 통찰로는 감당할 수 있나니.
용안(龍眼)이, 환각 너머 실체를 꿰뚫어 보게 해주는 것이다.
목탁 소리에 공명해서 솟구치는 문어발들을 르노드의 검광으로 베어내고, 또 베어내며 전진하는 그 장절한 위엄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가.
“…….”
카밀라는 눈을 닫았다. 환각뿐인 세계를 어둠으로 닫아내고, 그 어둠 속에 새로운 세계를 펼친다.
그것은 상상력의 세계.
절대적 기억력의 세계.
환각이 전개되기 직전의 세계를 완벽하게 기억해내서 시계(視界)를 구축한다. 온전한 청각과 촉각으로, 이변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의 모습을 수정시킨다.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에쉬르의 등을 노리던 문어발이, 쇳빛 연무 속에서 정확하게 찢어진다.
“!”
“!”
“!”
백전의 혈마 병단조차, 환각 속에서 정확하게 에쉬르를 보좌하는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일순간 침묵했다.
소리가 들린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진로(進路) 끝에서 이바요른이 환각을 연신 변형시키고 문어발들을 거듭 출현시켰으나, 둘에게는 의미가 없는 발악이었다.
‘닿는다.’
‘쓰러뜨릴 수 있어.’
‘하이 쿤 타르크 족장도, 단장님께서 양육하셨던 저 둘이 뭉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러나 그 순간 에쉬르가 먼저 이변의 전조를 감지했다.
‘응……?’
에쉬르와 카밀라가 육박해 오는데, 오히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홍소를 짓는 게 아닌가.
직감(直感)이 발동한다.
매서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직감이, 다리를 멈추게 만든다, 손을 멈춘다. 순간적으로 펼치던 검무를 중단시킨다.
“카밀라, 피해!”
에쉬르는 옆에서 내달리던 카밀라를 다급히 끌어안았다. 허벅지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지면을 나뒹굴었다.
그 순간, 베였다.
몸의 움직임을 온전히 따라오지 못하고, 반 박자 느리게 뒤를 쫓으며 너울거리던 머리카락이.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해일(海溢)이 참격의 형상으로 응집된 듯한 검푸른 검기가 맹렬히 내달려, 신애시편의 결계를 부수고 단원 수십 명의 몸을 도륙 내고 구조물들을 반으로 갈랐다.
“시, 실라미네 님!”
상반신의 절반이 해일에 삼켜져 절명한 실라미네의 사체를 바라보며 아이딘은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아무리…….
신애시편이 막 전개되던 터라 온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걸 이렇게나 쉽게 격파해 버린다고?
“Tabashi, 한 끗 차이로 빗나갔군. 다음에는 Pi shi te yaterau…… 널 죽여주마, 아이딘.”
그때, ‘검은 여름’ 중장의 마지막 악몽으로 출현한 존재가 바로 라그바우그 로그쿠스와 이바요른 로그쿠스 남매였다.
라그바우그는 여성형 개체였으나, 그 다부진 체격은 통상 우루크의 신장인 7척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옛 바다의 파도가 살아서 일렁이는 도끼날은 고대의 해석(海石)으로 제련된, 심연의 성물. 두 자루 성물을 양손에 하나씩 쥔 전사.
“라그바우그……!”
아이딘의 눈이 크게 열렸다.
남매가 쌍으로 왕의 힘을 계승했다고?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게나 슈’율큘라의 총애를 받았다고?
“그 전에 이 추악한 것들부터.”
에쉬르와 카밀라는 넘어진 순간부터 계속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마치 바다가 살아 있는 듯, 연체동물처럼, 두 사람의 사지를 집요하게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다.
‘숨이, 숨이 막혀…….’
페이쿼리어의 신체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카밀라는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머릿속이 캄캄해진다.
저 어딘가, 보이지 않는 바다의 밑바닥, 심해의 끝으로, 의식이 서서히 끌려 들어가는…….
“에쉬르!”
혈마 병단 간부 중 하나, 살수(殺水)를 다루는 멜레브 학파의 페닐이 바다를 물로 제압하려 했으나 늦고 말았다.
빨라, 너무나도 빠르다.
저 장대한 체격으로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속도란 말인가, 어느새 놈은 에쉬르 위에서 두 자루의 도끼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안 돼…….
단장님의 제자를…….
단장님의 마지막 유산을…….
빼앗기고 말아버려…….
아이딘이 환각 무효를 그만두고 둘의 위로 광휘의 방패를 일으켰으나…….
놈은 신애시편조차 깨트렸다.
저 방패는 죽음을 1초 정도 더 늦추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든 안 했든, 그 1초가 둘의 목숨을 구했다.
붉은빛이 보인다.
도라지꽃의 향기가 흘러온다.
다음 일순간, 고대의 파도를 머금은 도끼날과 홍련의 칼날이 교차했다.
찢어지는 금속성.
아스라이 흩뿌려지는 불티.
그 굉음이 울려 퍼지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세상은, 이 악몽의 암흑을 씻어버리듯 현현한 용기(勇氣)를 목도할 수 있었다.
라미네아.
라미네아 알터 아라다만텔.
긴 백발을 나부끼며 출현한 라미네아는 밤의 끝자락, 어둠뿐인 땅에 떠오르는 여명과도 같았다. 공황에 빠질 뻔했던 세상은 그 빛을 망연히 응시했다.
‘이 인간 계집…… 강한데!’
라그바우그는 도끼가 튕겨 나가면서 무너지려던 자세를 도리어 탄력으로 삼았다.
용수철처럼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켰다가 튕기며, 눈으로 좇기도 힘든 세 차례의 연격.
그러나 그 또한, 홍련의 형상으로 교차하는 칼과 칼집 앞에서 무력화되고…… 라그바우그가 자세를 수습하기 위해 두 발 물러섰다.
“!”
그러자마자 라미네아의 이마에 혈선이 그어졌고, 라그바우그의 손목에 긴 자상이 생겨났다. 찰나의 순간에조차도 살(殺)을 노리는 달인들의 공방.
“일어나, 에쉬르.”
라미네아가 기수식, 1식 원(圓)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한 번도, 스승님께서 이렇게 엄격하게 말씀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카밀라는 숨을 삼켰다.
내가 부족해서, 이렇게 엄격하게 말할 정도까지는 미처 성장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었구나.
“넌 용사(勇士)잖아.”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이 기염을 붉게 토해내자, 자매검 르노드가 그에 공명하여 붉게 타오른다.
그 불빛이 바다를 베어낸다.
르노드의 검광이 바다의 속박을 끊어내고, 물에 흠뻑 젖은 에쉬르가 일어나서 라미네아 왼쪽에 와 섰다.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질식사의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돌아온 카밀라도 숨을 헐떡이면서 스승님 오른쪽으로 가서 섰다.
“카미, 너는.”
“저는…… 용사의 제자고요…….”
그 대답에 라미네아는 기쁘고, 쓸쓸하고, 슬프고, 또 대견한 미소를 어렴풋이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다 해결할 테니 물러서 있으라고 멋진 척을 하고 싶지만, 방금 상대해보니 저 도끼 전사 하나를 이기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것 같아.”
“……!”
“델프레드와 멜레느가 주위를 제압하며 오고 있어. 요한은 이미 와 있고. 그러니 너희 둘이 무당 쪽을 맡아. 할 수 있겠지?”
에쉬르와 카밀라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저마다의 기수식 자세를 취했다.
“좋아, 그럼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