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69)
가짜 용사 이야기-269화(269/310)
시즌 3 : 77화
개선식의 끝은 붉은 성역(聖域)에서 이루어졌다.
<슈리가나큐스>의 중심지에 웅대하게 세워진 15층 대성당으로, 슈리간이 <온 것들>의 기술력으로 건축했다는데 건물의 골조와 짜임새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인 듯 아름다웠다.
총사령관이었던 청성의 미른가디아가 개선식의 끝을 마무리했다.
「혼란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으니, 여기 살아 돌아온 자들과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무훈이 실로 크다. 역사는 그들 하나하나를 기억하지 못하겠거니와 우리는 기억하리니, 그것이 그들의 죽음으로 대신 살아남게 된 우리가 가진 책무이다.」
이후에는 수훈에 따라 훈장이 수여되었는데, 청성은 늘 이런 식으로 군공을 크게 포상했다.
공화국의 실태와는 대조되는 부분이었는데, 청성은 군대의 노고와 희생을 신성하고도 불가침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군인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냈다.
짧고도 장려한 미사여구와 함께 훈장이 거듭 수여되었는데, 마지막 수여식은 설명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용사를 뒤따르는 제자들의 활약도 실로 갸륵하였으나, 그중에서도 두각을 보여 늘 제일선에서 본이 되었던 제자가 있어 이에 따른 훈장을 내리고자 한다. 라미네아의 제자 카밀라는 앞으로 나오라.」
여기저기서 함성과 휘파람과 갈채가 터지는 와중에, 카밀라 본인은 목이 막히는 걸 느꼈다.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그래, 꿈이야. 그야말로 개꿈.
훈장 받는 걸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나 봐. 그러니까 환각을 듣게 된 게 분명해.
“카미, 백부님이 기다리시잖니.”
스승님께서 토닥이듯이 등을 앞으로 밀어준 순간에서야, 이게 현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크윽, 카밀라! 혼자 훈장을 받았다고 해도 네 라이벌은 영원히 유일하게 나라는 걸 잊지 마라!”
음……?
으음……?
으으으으으음……?
“후훗, 훈장이라니, 군사 문서를 얼마나 위조한 거니.”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겨우 단상 위로 오르자, 대기(大氣)조차도 새하얗게 물들이는 고귀한 존재감이 긴장을 가라앉히는 걸 느꼈다.
「어려서부터 노고가 컸다. 후일 네가 선도할 용기의 발자취가 실로 기대되는 바다.」
“네? 아니, 아뇨, 전, 그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 심신을 안정시킨 뒤 <위용검전>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고 나오너라. 이 훈장으로 너를 2계급 특진시키니, 내 너를 크게 쓰겠다.」
청성이 카밀라의 가슴팍에 훈장을 친히 달아주었다. 청성이 수여하는 훈장은 모두 이 세상의 금속이 아니었다.
그 또한 광금(光金)인 것이다.
오주 추기경들이 제자들에게 수여하는 것과 같은 재질이나, 청성의 것은 황금의 빛이 아니라 순백의 빛으로 빛났다.
「거룩한 창세의 섭리가 낮이나 밤이나 영원무궁토록 네 길을 보살피시기를 기도하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을 들은 만할 업적 하나 없는데, 이런 자리에 설 자격 하나 없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그저 망연히, 저편, 저 수많은 군중의 틈새를 뚫고 스승님에게로 시선을 보냈는데 스승님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고 계셨다.
– 페이쿼리어의 삶은 짧아. 스승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순간이 얼마 안 되는 거야…….
저 예전에, 아직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던, 가난하고 궁핍하던 유년기의 날에…… 샤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귀청이 떨어질 듯한 함성과 갈채, 그 소리들이 품은 열기, 그 소리들이 벅차게 자아내는 기쁨.
‘나는 지금…….’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瞬間)을 나와 스승님의 마음속에 추억(追憶)으로 새긴다.
악몽전야(惡夢前夜), 춘몽의 끝과 늦여름의 시작 (1)
「4년 동안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을 재건해야 하나, 피폐해진 건 땅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그러하니 그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개선식의 끝에서, 뇌향은 병사들을 전부 고향으로 돌려보내길 원했으나 청성은 현실에 입각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아직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예언자(預言者)가 언제 다시 출현할지 모르니 최전선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해.」
원래는 청성이 주둔 병단을 지명할 예정이었으나, 라미네아가 먼저 손을 들어 지원했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백부님. 그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다고…… 제 병단 부하들도 찬성할 거예요.”
물론 모두 찬성한 건 아니라, 사단급으로 운영되던 병사들 중 3천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아니, 안 되지. 그런 건 주인공의 몫이라고. 그리고 그 주인공은 <라프타스> 공략 때 각하께서 ‘최고의 병력’인 예비대로 지명한 바로 우리 흑장미 병단이고.”
스승님과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를 보며, 서임 동기가 어떠한 것인지를 배웠다.
모든 순간,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나눌 수 있는 존재…….
플로렛이 그렇게 나오자마자, 그 제자인 샤론이 싱긋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후훗, 혼자 멋진 척하게 둘 수는 없지. 또 혼자만 훈장을 받으려고?”
그때 샤론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한 꿈이 하나 있었다.
나도…….
나도 언젠가는…….
샤론에게 그런 존재가 되게 될까? 함께 어떤 슬픔이건 고통이건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이것들이 위신 안 서게 하네. 각하, 이건 당연히 필두 페이쿼리어의 사명입니다. 태산 병단도 주둔 병단에 합류하겠습니다.”
태산 병단의 여론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였다.
고향에 갔다가 다시 소집되어 이 땡볕에 오게 되느니, 먼저 주둔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게 백번 낫단 것이다. 그건 아주 논리적인 생각처럼 들렸다.
다음에 지원한 건 에쉬르였다.
“스승님께서 지켜내시려 했던 도시, <라프타스>가 재건되어 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싶어요. 그걸 모두 눈에 담은 뒤, <위용검전>에 가서 ‘에쉬르 알터 르노드’가 되겠어요.”
누구보다 고귀한 뜻을 품고 있어서 선임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이게 혼자 멋진 척이야. 진짜 좀 맞아야지.”
플로렛이 먼저 에쉬르의 정강이를 장난스럽게 찼고, 타르스는 그 굴강한 팔을 에쉬르의 목에 두르며 미소 아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에쉬르, 지금 나는 도시 수복할 때 활약을 많이 안 했다고 꼽 주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절대 아니지?”
“악, 아악! 아니에요! 선배님들!”
“그런 것 같은데? 선배님, 요 녀석 100% 그런 것 같은데요? 비네사 선배님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합니다!”
“아, 아니에요! 진짜요!”
“진실의 방으로 가보면 모든 걸 알게 되겠지.”
라미네아가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다가, 에쉬르에게 고요한 미소를 보내던 아이딘에게 다가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고 있지만 말고 스승 역할을 대신 해주지그래?”
“경,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리 내서 칭찬해주란 거지. 저 나이 여자애들은 칭찬에 아주 민감하거든.”
“비네사 님께서도 딱히 소리 내어서 칭찬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한 마디를 안 지네, 한 마디를. 그냥 계속 과묵한 남자 캐릭터로 멋진 척이나 하겠다 이거야? 괘씸해. 에잇, 에잇, 에잇.”
“페이쿼리어의 신체 능력은 그런 가벼운 장난조차도 폭력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니…… 그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밀라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저 두 사람…….
왠지 더 가까워진 듯한…….
허튼짓을 하면 응징(?)하기 위해 거길 주목하고 있는데, 로베리스가 무표정으로 소리 없이 다가왔고 샤론이 법석을 떨었다.
“우리 로로! 한동안은 바빠서 신경 못 써줬지만, 앞으로는 잔뜩 귀여워해줄게.”
“필요 없습니다.”
“검술을 좀 가르쳐 주겠단 소리였는데?”
“……그렇다면 필요합니다.”
“카밀라, 우리 로로 똑 부러진 것 좀 봐! 귀여워라.”
샤론이 그 양쪽 볼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는 와중에도 로로는 무표정이었다.
“로로가 많이 빡친 것 같은데 슬슬 그만해라.”
“안 빡쳤습니다.”
“뭐야. 좋아? 좋구나, 우리 로로! 알았어. 앞으로 잔뜩 해줄게.”
“빡쳤습니다.”
예전의 로베리스는 이런 구수하고 저렴한 서민적 언어를 쓰지 않았으나, 녀석 또한 전장에서 구르며 많은 것에 익숙해진 뒤였다.
“아하하…… 무서워, 무서워! 우리 로로 너무 무서워!”
샤론은 세 명이서 모일 때 스승이 가르쳐준 ‘어른스러운 웃음’을 잃고 맑게 웃곤 했다.
카밀라, 올리에르, 로베리스…….
이 셋 중에서 두 명 이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카밀라는 친구의 웃음소리가 참 좋았다.
「보병대 2개에 기병대 2개 병단…… 본래는 공군 병단을 남겨둘 계획이었으나 이 또한 적절하리라.」
그렇게, 총사령관 청성 미른가디아의 인가도 떨어졌다.
발칸 벨체스터와 라디스 루드윅을 잔뜩 골려주는 게 늦춰지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에쉬르와 샤론과 로베리스와 함께 보내는 1년도 나쁘지 않으리라.
주둔 부대는 열흘의 피로연 후에 보급 물자를 가지고 <라프타스>로 복귀하고, 나머지 부대는 순차적으로 열차를 타고 <오르벤하임>으로 북상해서 바다를 건너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했니?”
피로연의 어느 날이었다.
연무장에서 검순이(부러진 날을 수리한 것만 어느덧 158번)로 십문자도를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 극위성검 르노드가 검순이의 궤도를 가로막더니, 에쉬르가 저렇게 물어왔다.
“뭘?”
십문자도와 십일자도가 교차하며 잠시 멀어진다.
“페이쿼리어가 될지, 말지. 전장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 아냐.”
“생각?”
“나는…… 스승님과 함께해온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 계속 꿈을 꾼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시, 쇳빛이 십문자로 번득이고 붉은빛이 십일자로 작열하며 연무장 중앙에서 격돌의 불티가 흩뿌려졌다.
“나는 용사가 뭔지 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 스승님이 죽고 나서 4년 동안…… 이건 절대 평범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길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
다시, 다시, 다시.
칼이 맞부딪칠 때마다 서로의 마음이, 심장의 떨림이 손끝으로 흐르고, 칼끝으로 전해져온다.
“예전에는 뭣도 모르고 카밀라한테 나중에 ‘에쉬르 알터 르노드’와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이 되자고 그랬지만…… 만약 지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런 무책임한 제안은 절대 안 했을 거야.”
“언니는…… 용사가 싫어졌어?”
“그건 아니야.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도 나는 스승님의 제자가 될 테니까. 스승님은 높은 곳을 바라보고 또 그런 곳으로 올라가시려 하는 분이라,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으셨지만…… 제자만은 돌아봐 주셨거든.”
십일자도, 그 냉철한 스승의 소리 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연마된 검술이 카밀라에게 쇄도해든다.
언제쯤…….
도대체 언제쯤…….
그분처럼 눈부신 별이 될 수 있을까. 이 한밤중에 잠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별이.
“하지만 너는 달라, 카밀라. 네가 제자가 아니게 된다고 해도 라미네아 선배님은 너를 계속 사랑해주실 거야.”
“제자이길 포기하라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해.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다음 제자를 기르실 시간도 충분히 있고.”
“싫어. 언니, 나는 스승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곁을 떠나란 소리가 아니야. 이번 일성칠검의 제자들처럼 네가 전장에서 계속 선배님 곁에 있으면 되지 않겠니?”
“그런 식으로……?”
“물론 용사의 제자라는 건, 모두가 꿈꾸고 바라는 고상한 일이야. 하지만 실제는 동화와 달라…… 모두가 평화롭게 누리는 일상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단 걸 너도 깨달았을 것 같은데.”
그 별처럼 빛나는 투지가, 십문자의 견고한 자세에 막히며 튕겨나간다.
잠시, 춤이 멈추었다.
카밀라는, 스승님이 선물로 주었던 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언니 말대로…… 나는 원래 용사보다는 그런 일상을 꿈꿨었어. 칼을 휘둘렀던 것도, 사실 용사가 되고 싶은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
“나는 언니나 스승님처럼 말을 잘하지도 않고, 지능도 높지 않아. 칼을 휘두르는 것만 유일하게 잘하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스승님이랑, 그리고 비네사 님 같은 분들과 동행하면서…… 이런 칼로도…… 누군가를 지키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단 걸 알게 됐어. 그게 너무 눈부시게 보이더라고.”
“……그래?”
“뭐, 물론? 가정을 꾸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지만 그러면 낙원에서 기다리고 계신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게 되잖아. 스승님도 마찬가지고.”
스승님도 언젠가 어머니처럼 죽게 되겠지만, 내가 그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대신 그 향기를 이 땅에 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그분의 향기는, 내가 받게 될 제자를 통해 다시 이 땅으로 흘러가게 되겠지…….
“나는 멍청해서 많은 걸 생각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 삶만큼 가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해.”
연무장 정문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라미네아가 백발을 흩날리며 자리를 떴다.
그 발치로 눈물이 떨어졌다.
저 앞에서 제자를 지도하며 기다리고 있던 플로렛이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었다.
“짬 좀 찼다고 후배한테 이상한 일 좀 시키지 마, 짜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