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2)
가짜 용사 이야기-272화(272/310)
시즌 3 : 80화
“데몬, 옛 언어로 마우나 로아. 이를 직역하자면 ‘왕들의 화신’이라 한다.”
데몬이란 <잊혀진 왕들>의 잔재(殘滓)가 육신을 입고 출현한 악몽의 집합체로, 왕들에 따라 그 형상이 달랐다.
네이갈라스의 데몬을 한 줄로 설명하라면 ‘걸어 다니는 화산’이라 할 수 있었다(폭식공 베헤─리크는 화산 지대가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화산이 두 발로 지축을 흔들고, 꼬리로 산하를 휩쓸며, 두 손으로 생명을 압살하고, 아가리로 용암을 토해낸다.
“기원력의 모든 전쟁사에서, 데몬의 출현은 곧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했다.”
12세기의 동란기에는 화룡 벨’다키둔과 리스타 파티가 슈’율큘라와 네이갈라스의 데몬과 그 권속들을 격퇴하고 <화염만리(火焰萬里)>를 일궈 평화를 일궈냈다.
15세기 아쉬론 사변 때에도, 용현이 거미 군주와 그 심복 오본위(五本位)들을 봉인하기 전까지 아쉬론의 데몬들이 이 인류를 학살했다.
16세기 안리달 사변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공허의 사도 아르젠과 홍염의 아키레아가 시간의 군주의 데몬들을 격멸해야만 했다.
“당시, ‘검은 여름’의 초ㆍ중기에도 바다 군주의 데몬들이 출현했으나 뇌향과 청성, 두 분이서 그 짐을 짊어지셨으므로 인류는 데몬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1675년 전까지는 말이다.”
노교수는, 그날, 그 시대…… 그때의 악몽이 뇌리로 밀려들어 잠시 안경을 벗고 손가락으로 두 눈꺼풀을 누르고 있었다.
“제군들은 섭씨온도가 30도만 넘어도 고통을 호소한다. 관심 있는 이성에게는 일부러 다가오지 못하도록 짜증을 내지 않나. 자신의 땀 냄새 때문에 말이다.”
생도들이 웃었다.
“그러나 네이갈라스의 데몬이 출현했을 때는 그 온도가 40도나 50도는 우습다. 60도를 넘어 70도, 80도까지도 쉽게 올라간다.”
방열 마법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초고열 속에서, 인류는 생존의 극지로 내몰리게 된다.
“탈수증이 밀려들고, 폭주하는 아지랑이 속에서 환각이, 신기루가 나타나지. 숨을 쉴 수조차 없는, 폐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제대로 된 전투는 물론 생각조차 불가능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때의 악몽을 이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찬란한 평화의 시대에…….
그 모든 희생과 헌신의 끝에서 겨우 꽃피워낸, 영원한 봄 가운데서 태어나고 또 자라온 이 ‘봄의 아이들’에게…….
패퇴일로(敗退一路), 희망은 절망의 뒷면 (2)
‘검은 여름’ 말년의 전투는 지금까지 경험해온 전투와는 완전히 새로운…… 요컨대 낯선 악몽(惡夢)이었다.
“언니, <화염만리(火焰萬里)>가 소멸하면서 적 대부대가 북상 중이래! 해안 지대로 집결해서 강철함대 상륙함에 타야 한대!”
누구도, 그 누가 그 낯섦을 비난할 수 있을까. 누가 그 낯섦을 예지하고 방비하지 못했다고 청성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 시대에, <화염만리>라는 개념은 바다나 산과 같이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 ‘내일 바다가 사라진다는데요’라고 하면 누가 ‘오, 그거 무서운데요’라고 하겠는가? ‘미친놈’이라고 하고 말 것이다.
“<화염만리>가 소실……?”
홍의 사제, 아이딘이 멍하니 그 진실을 소리 내어 되짚었다.
그런……?
그 짧은 탄식에,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받아들일 수가 없는 고뇌가 담겨 있는 듯했다.
“거기에다 뇌향 각하와 청성 각하 모두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에쉬르가 혈마 병단의 술렁거림을 감지하고는, 극위성검 르노드를 발도해 그 동요를 단칼에 끊어냈다.
“확인했어. 혈마 병단, 시가지 구획에 남아 있는 비전투 인원을 모두 수습하는 게 목표야! 말에 한 명씩은 꼭 태운다고 생각하고!”
당시의 전황을 악몽의 일부로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데몬(Demon)이었다.
한 번도 데몬을 상대하지 않아본 이들과 여름에 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데몬은 통상 마족과 다르다.
광인의 낙서장에서 튀어나온 재앙이 실체를 입고 날뛰는 것만 같다.
처음 놈과 직면했을 때, 카밀라는 심장이 멎을 뻔한 충격마저 느껴야 했다.
“해안 지대에서 푸른 신호탄! 부단장, 저쪽으로 데몬을 유인하라는 것 같습니다!”
그놈 때문에…….
그놈 하나 때문에…….
모든 방어 전술이 무의미하게 변한다. 고정 진지를 선점하고 우위를 점하는 방어 전략을 백지로 만들어 버린다.
“타르스 선배님께서 처리하시겠다는 건가? 좋아, 데몬과 조우하면 괜히 관심 끌지 말고 가게 내버려둬!”
적의 기세는 노도(怒濤)였다.
계획대로라면 도시의 성벽 중 그나마 온전한 남문에서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그것이 1차 저지선이었다.
그러나 그 발악은 데몬에 의해 어처구니없도록 쉽게 분쇄되었다. <라프타스> 구시가지를 말을 타고 달리며 본 절망이란…….
“데몬이다! 직접적 충돌을 피해! 카밀라, 너는 아이딘과 같이 저쪽으로 가! 여기서 흩어졌다가 생존자들을 규합해서 남서쪽 구시가지에서 다시 집결!”
그러나 절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루크 내륙 부족과 조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하필 최악이게도, 처음으로 만난 상대가 내륙 부족 중 최강인 키랄이었다.
놈들은 해상 부족과 달리 괴물 늑대인 블라쉬우르프를 집단 사육하여 기병대로 운용한다.
– 키랄, 쥴라드 평원의 지배자입니다. 그 넓은 평원을 지배한다는 건 그만큼 부족 구성원들이 강하고 또 숫자가 많단 소리죠.
블라쉬우르프는 그냥 늑대와는 다르다. 그 호랑이나 숫사자보다도 더 크고, 더 잔혹하며, 인육(人肉)을 탐했다.
전장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군마들은 놈들과 조우하면, 거품을 물고 기수를 내던지면서까지 도망치기 일쑤였다. 원초적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 경험을 토대로 ‘붉은 여름’의 군마들은 블라쉬우르프와 조우해도 미치지 않게끔 망아지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이때는 그딴 것 따위는 없었다.
“Ki ga shi! 진격, 진격! 하하하하하하! 두 발로 걷는 것들은 모두 먹어도 좋다!”
아이딘의 설명에 의하면, 키랄에는 ‘키란즈키 가가’라고 불리는 최강의 여섯 전사가 있다 한다.
선발 기준은 오직 ‘힘’.
키란즈키 가가가 아니었던 자가 칼타케를 신청해 승리한다면, 그 자리를 그대로 빼앗는 제도로 운영되었다.
한마디로, 키랄 최강의 전사들.
그때 카밀라가 일직선으로 내달려 상대한 놈이 바로 그 키란즈키 가가 중 하나, 골카른이었다.
키란즈키 가가 서열 5위.
기원력 1675년 9월 침탈에서 키랄 클랜 선봉대로 인류 학살에 앞장서고 있던 놈이었다.
“GraHahahahaha! Rin Hobukume Shku ku du baha(인간 계집년이 무서움도 모르고)!”
골카른은 긴 사슬 끝에 철퇴가 매달린 기괴한 무기를 사용했는데, 키랄 전사들의 무기는 다른 클랜과 비교해도 개성적인 게 많았다.
– 내륙 부족 중에서 누위긴과 함께 병력 체계나 병참 생산 체계가 가장 잘 잡힌 곳입니다.
그 무기를 빙빙 휘두르니 살인적인 선풍(旋風)이 일어나면서 놈 주위에 살육의 장막이 펼쳐졌다.
십문자도 제3식, 둔(鈍).
그 장막의 틈새, 태생적 원(圓)이 아닌 원운동으로 원을 이루는 물체라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선형(線形)의 틈새, 그 틈새를 넓히기 위해 둔(鈍)을 사용한다.
– 또 키란즈키 가가를 주의하셔야 합니다.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
십문자도 발도술, 장작 패기.
– 하나하나가 천장(千長)급 실력자입니다. 중소 클랜에서라면 족장도 맡을 만하죠.
저 힘에 힘으로 맞서려 했다가는 이쪽이 먼저 무너진다. 호흡을 마지막으로 가다듬는다.
가장 빠르고…….
가장 민첩하게…….
저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서 발도술을 선택한다. 최소한의 위력은 갖춰야 하기에 칼날에 뇌룡(雷龍)을 두른다.
‘초고속 원운동 때문에 원으로 보이지만.’
발도(拔刀).
‘저것은 면(面)이 아니라 선(線)이다. 그 선을 노릴 수 있다면.’
붕, 붕붕, 붕붕붕, 붕붕붕붕붕붕붕붕붕붕붕…… 붕붕붕붕붕붕부우우우우…… 채애애애앵!
블라쉬우르프와 적돌이가 교차할 때, 고막을 찢어발길 만한 쇳소리가 터지고 불티가 나부꼈다.
‘쳐냈다……!’
하지만 손목이 부서질 것 같은 감각, 몸은 버틸지언정 칼날이 버티지 못해. 장기전에서는 승산이 없다.
“적돌아!”
적돌이가 편자 박힌 발로 지면을 내리찍으며 몸에 제동을 걸었다.
관성이 몸을 잡아당길 때, 카밀라는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안장을 밟고 뛰어올랐다.
적돌이가 모래밭 위로 마찰을 일으키며 정지할 때, 카밀라는 마력 발판 다섯 개를 형성.
챠챠챠챠챠챵……!
사위에서 밀려들던 키랄 늑대 기병대를 공중전으로 고꾸라뜨리고는 다시 안장 위로 안착했다.
“시간이 없어. 이번 승부로 끝내자, 적돌아.”
안착할 때, 적돌이는 이쪽으로 선회하는 골카른과 그 블라쉬우르프를 상대로 이미 달려 나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
힘에 힘으로 맞서려 하면, 절대적 물리력이 낮은 쪽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
‘그렇다면 반대쪽 힘이 닿기 전에, 그 본체를 처리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십문자도 제9식, 절뢰도.
모든 십문자도 중에서 가장 빠른 시전 속도를 가져서, 번개를 베었다거나 번개처럼 벤다는 이름이 붙은 초식.
‘이걸 십문자도 제4식, 발(發)로 연계한다면.’
그 속도는 최소 1.8배 더 빨라진다. 필멸의 몸으로, 음속의 영역에는 들지 못해도 그 잔상을 흉내 낼 수 있게 된다.
납도 : 일섬(納刀 : 一閃).
한순간, 카밀라가 적돌이의 안장을 박찬 한순간,
검광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다.
사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 너머 피육을 찢고 경추를 쪼갠 다음, 또 다음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촤아아아아악……!
태도를 납도하며 모래밭 위로 착지, 군홧발로 마찰을 길게 일으키며 관성을 억누르는 카밀라의 뒤쪽에서, 골카른의 목이 절단된다. 절단면에서 선혈이 솟구친다.
‘뭐냐…….’
‘골카른을 일격에……?’
‘이딴 꼬맹이가…….’
골카른을 뒤따르던 수십 명의 키랄 기병이 카밀라를 에워싸던 그 순간, 뇌명(雷鳴)의 창이 내리꽂혔다.
시야가 새하얗게 물든다.
무엇 하나 분간할 수 없는 빛 속에서, 심연에 침식된 육신을 불살라 버리는 태고의 빛…… 테르벨의 창천극이다.
“카밀라! 괜찮습니까!”
아이딘이 뒤늦게 말을 몰아왔을 때, 카밀라는 망연히 적돌이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설마, 이렇게 되다니…….
골카른을 처리하고 뒤돌아섰을 때, 적돌이는 골카른의 블라쉬우르프에게 목덜미가 뜯겨나가고 있었다.
‘비네사 님이…….’
창천극이 작렬했을 때, 다급히 지면을 박찼다.
블라쉬우르프의 그 질긴 털가죽을 베고 또 베어서 쓰러뜨렸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적돌이는 피거품을 물고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비네사 님께서 주셨던 선물인데…….’
4년 동안 카밀라의 곁을 지켜온 또 하나의 친구였다.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고.
그 성장의 과정, 혈마 병단에 임시 배치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여정의 시작과 끝에서 항상 곁에 있던 녀석이었다.
죽던 그 순간까지도, 죽어가는 눈으로 카밀라를 고요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안, 미안해, 적돌아…….”
괜찮다고 말하고 싶던 것일까, 적돌이가 피거품을 그륵, 그르륵, 쏟아내면서 닳은 편자 박힌 발을 힘없이 휘저었다.
아이딘이 군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황금의 빛이 깃든 손으로 적돌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더니, 그 눈을 닫아주었다. 고통 없는 안락사(安樂死)였다.
“카밀라, 신호탄 명령을 따라 이동해야 합니다. 제 뒤에 타시죠.”
아니, 안 돼요.
어떠한 가망도 없어 보였지만 지금 죽은 게 아니라 잠든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마차를 어디선가 가져와서 데려갈 수만 있다면…….
“카밀라.”
그 생각을 간파한 것일까.
아이딘이 어깨를 힘주어 잡고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죽었습니다. 가야 합니다. 해안 쪽에서 철수의 신호탄이 올랐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지도 못한 채, 그 화산재에 오염되고 용암에 녹아내리는 장소에 적돌이의 시체를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애통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상황에, 말 하나의 죽음 때문에 아이딘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자신의 마음에는 의(義)라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집결 신호탄입니다. 혈마 병단에서 온 겁니다. 일단은 저기로 갑시다.”
그러나…… 신호탄의 위치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혈마 병단은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있긴 했다.
이미 죽은 시체였는데, ‘살아 움직이는 악몽(惡夢)’의 꼬리에 뇌를 꿰뚫린 채 전신이 조종당하고 있었다.
‘저게, 바로 저게…….’
6대 마족 중 최강.
마우나 로아.
‘공기가 무거워…….’
온 세상의 극열이 놈을 중심으로부터 발산되는 것만 같았다.
‘폐가, 뇌가 파열할 것만 같아.’
네이갈라스의 데몬은 비정상적인 열량을 토해 냈으므로, 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신기루와 아지랑이가 일렁여 오감을 교란시켰다.
‘저번에 상대한 이바요른 로그쿠스 이상이야.’
호흡이 미친 듯이 튀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대충 봐도 놈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그때 마주한 것은 왕의 분신과도 같은 ‘화신급 데몬’도 아니며, ‘고위 데몬’도 아니고, 분류상 하급에 속했는데도 그랬다.
“놈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여러분은 생존자들을 이끌고 해안 지대로 향하─!”
마우나 로아가 그 주둥이를 크게 벌려 일갈(一喝)을 터뜨리자, 아이딘이 탄 군마의 뇌가 별안간 폭발했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돼…….
당혹에 잠겨 있을 틈도 없었다. 데몬이 지반을 붕괴시키며 도약, 날개를 펼치며 단숨에 코앞까지 날아들었으므로.
‘홍의 사제님은 사제라서 나처럼 빠르게 못 움직이는데…….’
혼자서만 피한다면 피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아이딘이 데몬의 손아귀에 움켜잡혀 사망한다.
상상 영역, 망라(網羅).
일순간에 상상력이 펼쳐낸 미래의 일부로부터, 지금 이 순간 해야만 하는 행동 중 최고의 방법을 선택한다.
‘움직여.’
십문자도 연계식, 4-7-11.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다.
십문자도 제4식, 발(發).
십문자도 제7식, 진뇌룡.
십문자도 제11식, 뇌격단(雷擊斷).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뇌격단은 참격의 궤도 위에 전류 형태의 검기를 형성시키는 기술이었다.
‘놈의 손의 궤도를…….’
이 참격은 한 번의 참격으로는 베어낼 수 없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초식.
‘조금, 아주 조금만이라도 비틀 수 있다면……!’
절기에 달하면, 십여 개의 전격이 궤도 위에 맥동하며 수천 개의 마력 전류가 대상을 덮치나 카밀라는 두 개의 전격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충분해, 이것만으로도!’
발광하며 튀어 오르는 전류를 휘감은 칼날이, 아이딘을 움켜잡기 직전이었던 마우나 로아의 상완에 내리꽂혔다.
“이야아아아아아아───!”
무거워, 단단해, 칼날을 통해 전해져오는 감각 자체가 이질적이다.
이건 꼭 바위를 벤 듯한?
아니, 화산을 벤 듯한 감각.
요컨대, 벨 수 없는 것에 칼을 휘둘러서, 칼날이 부러지고 양쪽 팔뼈들이 부러질 듯한 절망감.
“────아아아아아아아앗!”
그 절망감을 떨쳐내기 위해, 그 중압감을 벗어내기 위해, 카밀라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알아, 안다고. 벨 수 없단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 아니었거든?
자신의 힘을 과신한 적 따위는 없는 것이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첫 참격과, 그 참격이 이끌고 온 뇌격의 절삭력이 마우나 로아의 팔의 궤도를 조금 뒤틀었다.
조금, 아주 조금.
그러나 그 하찮기 그지없는 수준의 ‘조금’이 생명을 살렸다.
“크읍!”
마우나 로아의 손톱이 아이딘의 홍의(紅衣)를 찢고 그 안쪽 사슬 갑주를 부쉈으나, 근골은 범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딘이 지면을 나뒹굴었다.
마우나 로아의 목표가 바뀌었다. 반대쪽 손이, 자신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참격을 내리꽂은 소녀 검사에게로 향한다.
‘칼이, 칼이 안 빠져──!’
칼을 놓고 도주한단 것도 늦어버린 그 절체절명의 순간, 황금의 역장이 카밀라와 마우나 로아의 사이에 펼쳐졌다.
한순간에 무려 다섯 장이 중첩되는 빛의 방패.
기도문의 초고속 영창, 아이딘의 장기 중 하나. 카밀라는 죽는 날까지 평생 아이딘만큼 기적을 자유자재로 신속하게 다루는 사제를 본 적이 없었다.
────챙, 챙, 챙, 챙, 챙!
빛의 역장은 마우나 로아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청음과 함께 깨어져 나갔으나 확실하게 그 힘의 진로에 유예를 부여했다.
카밀라는 데몬의 팔에 양발을 붙였다. 근력과 마력, 양쪽의 힘을 전력으로 발휘해 칼을 빼냈다.
박혀 있던 것을 빼내는 순간 발생하는 탄력을 각력으로 치환, 단숨에 놈의 품에서 빠져나와 모래밭 위로 착지했다.
“하아, 하아, 하읍, 하아…….”
목울대를 거대하게 막고 있던 숨 덩어리를 간신히 토해내며 자세를 추스른다.
‘아무리 사제님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해도 나름 전력을 다한 거였는데, 생채기 하나 못 남기다니…….’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도대체 어떡해야 이런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거지?
‘어?’
호흡의 틈새였을까.
“카밀라!”
아니면 극열이 대기에 일으키는 신기루 때문인가, 또 아니면 뇌에 일으키는 현기증 때문인가.
“피하십시오!”
분명 저만치 멀리 있던 마우나 로아가, 그 꼬리가 문득 카밀라의 시야를 거대하게 메우며 치받쳐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