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3)
가짜 용사 이야기-273화(273/310)
시즌 3 : 81화
패퇴일로(敗退一路), 희망은 절망의 뒷면 (3)
단숨에 목전까지 치받쳤던 죽음을 베어낸 것은, 붉게 포효하는 칼날이었다.
십일자도 제11식, 반월(半月).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울부짖으며 회전하는 칼날이 데몬의 꼬리뼈를 말끔하게 절삭해낸 것이다.
“언니!”
에쉬르 에이진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저만치 옆에 착지할 때, 꼬리뼈도 바닥을 나뒹굴면서 지면이 진동했다.
“자세 잡아, 카밀라! 아직 안 끝났어!”
위험은 진동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꼬리의 절단면에서 솟구치는 피…….
그것은 창세의 법칙에 의해 창조된 생명체들이라면 마땅히 가지는 선혈이 아니라 용암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패악의 힘이었다.
“페닐!”
제국 팔대학파, 멜레브 학파는 수 속성 마법의 대가들이다.
물이 없는 지역에서 어마어마한 양으로 솟구친 물이, 시가지 전체를 뒤덮는다.
용암은 산 것들을 삼키지 못하고, 물과 만나는 화학 반응 속에서 시커먼 고체를 형성해갔다.
“레오네, 양각 잡아!”
에쉬르가 마우나 로아를 겨누고 왼쪽으로 내달리면서 말했다.
“좋지!”
언제 도착했는지, 붉은 순례자 레오네가 도복 자락을 펄럭이며 오른쪽으로 내달렸다.
“흑각검 제14식, 흑운검우(黑雲劍雨).”
마우나 로아가 그 움직임에 대적하려 했을 때, 갖가지의 비수들이 검은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는다.
혈마 병단 정찰대장 맥케넌은 일성칠검, 흑각검파 출신이다. 독과 비수로 검의 길을 연마하는 검파.
그 검파가 자랑하는, 최고ㆍ최대의 살상력을 자랑하는 초식이 바로 제14식이다.
이는 단순한 비수가 아니다.
모든 비수에는 살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독(毒) 속성 마력이 주입되어, 그 서슬들이 사특한 초록빛으로 타오른다.
「──────!」
빗발치듯 쏟아지는 비수 앞에서, 마우나 로아의 전신이 붉게 타오른다.
용암의 폭주.
전신의 화산암이 붕괴하면서 폭발한 용암들이, 비수들을 모조리 격추시킨 데에서 더 나아가 에쉬르와 레오네의 진로를 차단한다.
“전신에서 용암이라고……?”
“사람 미쳐버리게 하는군…….”
“아니, 애초에 내 공격은 아이딘 님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뿐이었어. 계속 가!”
아이딘이 테르벨의 성서를 펼쳤다. 그 입에서는 창세의 방언(方言)이 쏟아지고 있었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
극소수의 성직자들만이 받는 것으로, 방언을 얻은 이들은 일반 영창과는 비교하면 생략 수준에 가까운 초고속 영창이 가능했다.
청천뇌우(靑天雷雨).
창세와의 소통에서 비롯된 빛의 군주, 테르벨의 힘이 악(惡)의 화신에게 쏟아진다. 광입자들이 빗발치고, 그 틈새로 빛의 벼락이 내리꽂힌다.
「JUAAAAAAAAAAAA!」
심연의 천적은 창세, 즉 빛이다.
마우나 로아가 고통에 겨운 신음을 쏟아낼 때, 에쉬르와 레오네가 동시에 양쪽에서 도약했다.
“십일자도 제8식, 뇌염검무.”
“비의, 삼중극점(三中極點).”
홍염의 아키레아가 연마하고 또 정립한 천화권법(天火拳法)은 폭발이 생성하는 위력의 연쇄 증강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극점권법이라고도 불린다.
마우나 로아의 체외에 새겨지는 화염의 표식, 저 표식들은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그 충격력을 몇 배로 증강시키며 폭발한다.
“하나!”
표식 하나당 대략 두 배.
“둘!”
한 표식이 두 배의 위력으로 폭발하면, 그다음 표식이 그 두 배의 위력을 또 두 배로 증강시키며 폭발한다.
“셋!”
요컨대 삼중극점은 통상 위력에서 여덟 배의 피해를 더 입히는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데몬의 살점을 도려내던 뇌염검무의 위력이 여덟 배나 폭증되면서, 칼날이 그 근골에까지 닿게 되었다.
일순간에 행해지는 36번의 참격이, 데몬의 육신을 마구잡이로 토막 낸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어…… 데몬의 육신이 붕괴할 정도로!’
뇌염검무의 위력을 삼중극점으로 극대화시키는 연계에 카밀라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걸…….
저런 식으로 쓰는구나…….
물론 감탄하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라프타스>가 일소될 때 기적적으로 그 골조가 무너지지 않은 시계탑으로 전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페닐 아저씨, 준비됐어요?!”
그런 질문을 담은 신호탄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물론이다.”
페닐이 위치한 곳에서, 저런 대답을 담은 신호탄 응답이 온다.
“요한, 너는!”
요한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진다.
“시작해.”
다음 순간, 허리춤의 검순이를 굳게 움켜쥔 채 시계탑 중추와 가까운 지붕에 긴 그을음을 남기며 착지했다.
하자…….
해보자…….
납도 상태에서 한정된 공간에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던 마력에 착지의 힘까지 치환시켜 포갠다.
드드드드드득……!
마침내 극한까지 압축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칼집이 부서질 듯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십문자도 제6식, 섬무참.
착지하면서 그 충격도 관성도 무엇 하나 죽이지 않고, 몸을 옆으로 빙글 돌리며 단숨에 발도, 절단 목표는 시계탑의 중추.
“섬(閃)─────!”
하늘로 솟는 구조물들은 모두 골조를 끊어버리면 중력의 영향권에 오롯이 놓인다.
가로로 넓게 퍼진 참격이 시계탑의 골조를 절삭하면서, 시계탑 위쪽이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지더니 이내 급강하했다.
그 밑에 위치한 존재는, 빛의 뇌우와 화염의 폭발과 비수의 쇄도와 성검의 검압에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마우나 로아였다.
「AkazuaaaaaaaaaaaaaAAA!」
그때 데몬이 양손으로 지면을 내리찍자, 지면이 화산처럼 울긋불긋 솟구치더니 문득 용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광범위 용암? 이런 미친, 지각 자체를 바꿔버렸어!”
“이건 제가─!”
“아니, 다들 물러나! 카밀라가 뭔가를 했어!”
그 용암을 억누른 것은, 제국 팔대학파 중 하나 멜레브 학파의 비전 룬.
루(漏).
멜레브 학파가 추구하는 사상법학(死傷法學; 마법의 중점을 죽이거나 해치는 것에 두는 학칙)을 대표하다시피 하는 룬이었다.
“룬 주입, 루(漏).”
수 속성 마법은 본래 파괴력이 가장 낮은 룬으로 꼽힌다.
마법의 정점에 도달해도 해일을 일으켜 그 외력으로 상대를 지면이나 외벽에 꽂는 것이 전부였는데, 멜레브 학파는 달랐다.
비전 룬으로 수 속성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루(漏; 스며드는) 룬은 표적의 체내로 물을 주입시키고 그 핵심 기관들을 파괴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 룬은 물을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 즉 붕괴하는 시계탑 같은 곳에도 스며들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 가능하죠? 페닐 아저씨.
– 해봐야 알겠지. 하지만 될걸.
데몬이 자신에게로 급강하하는 시계탑을 꼬리를 휘둘러 부순 순간, 그 내부에 침투해 있던 물이 바가지로 쏟아졌다.
물이, 그 육신을 적신다.
대부분의 물들이 비정상적인 극열에 의해 기화되었으나, 내부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물 또한 존재했다.
– 요한, 너는?
– 해볼게.
물은 빙결 마법의 가장 강력한 촉매다.
그런데 지금처럼, 물이 표적의 핵심 기관에 이미 도달한 상태라면?
표적의 약점의 좌표를 계산할 필요가 없이, 그 촉매제의 위치를 따라 빙결을 일으키면 되는 것이다.
“빙산응결(氷山凝結)!”
데몬의 체내에서, 그 체내의 모든 것을 찢고 뚫으며 튀어나온 무수한 얼음송곳들이 눈 입자 형태로 펼쳐졌다.
그렇게 노출된 것은 핵(核).
흉부의 중심, 용암이 구체 형태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초현실적인 열량으로 아지랑이가 들끓는다.
‘저거다.’
‘나왔다.’
‘핵이다.’
사람이 치부를 감추듯, 순식간에 재생되는 육신이 그 핵을 감추려 했으나 이미 에쉬르가 진각으로 지면에 균열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도약한 뒤였다.
십일자도 제7식, 향월(向月).
십일자도 중에서, 회전 반경이 가장 짧으나 그만큼 확실하게 하나의 표적을 가르는 회전 참격.
“어디 막을 테며어어언───!”
신체를 재생하는 동시에, 핵을 지키기 위해 데몬이 양손과 꼬리를 휘둘러 에쉬르를 요격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발악을 쳐내고 또 베어내면서, 극위성검 르노드가 눈부시게 포효한다.
“────막아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원류, 진성검들이 옛 왕들을 토벌하고 사냥할 때의 투기를 이어받은 극위성검이 찬란하게 울부짖으며 마침내 그 핵(核)을 찢어낸다.
일섬(一閃).
핵 위로 일선이 그어진다. 그 선을 따라, 무수한 금이 핵 전체로 퍼져나간다. 금이 점차 벌어지고, 그 틈새로 빛이 넘쳐난다.
빛이 극에 달한 순간.
데몬의 육신이 붕괴하며 온 세상을 녹여버리는 용암으로 일대를 뒤덮으나 싶었으나, 아이딘의 빛과 페닐의 물과 요한의 얼음이 세 겹으로 그 폭발을 둥글게 감싸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
“하아, 하아, 하아…….”
충격을 줄이기 위해 착지하면서 옆으로 서너 바퀴는 더 회전한 에쉬르는 그 광경을 망연히 돌아보았다가, 이내 르노드의 칼자루를 꽉 쥐며 환성을 내질렀다.
“데몬 토벌, 성공……!”
에쉬르는 르노드를 납도하면서 카밀라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승리의 기쁨을 나눌 여유 따위는 없었다.
즉시 진용을 갖춰서, 철수 작전이 수행 중인 해안 지대로 다급히 향해야만 했던 것이다.
“태산 병단, 태산진(泰山陣)!”
필두 페이쿼리어 병단, 태산 병단이 해안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었다.
태산 병단의 분대장은 모두 대검병(大劍兵)이며, 단원들은 모두 도끼창병이었다.
태산진은 일종의 별명이었다.
태산 병단이 군진을 갖추면, 그 대검의 칼끝과 도끼창의 창극이 끝도 없이 늘어선 모습이 꼭 산맥 같다고 하여 붙은 별명.
“병단, 군가를 제창한다! 군가는 태산가(泰山歌)! 하나 둘 셋 넷!”
그 태산진으로 해안 부두를 완벽하게 방어하고 있었으며, 필두 페이쿼리어 타르스 알터 쉬르팽은 플로렛과 라미네아의 조력으로 고위 데몬을 토벌해둔 상태였다.
“드높은 태산~ 깊은 골짜기~ 눈 내린 태산은 우리의 영혼~!”
매섭게 달려드는 키랄 기병대가 그 대검의 일률적인 휘두름과 도끼창의 찌르고 잡아당김의 힘 속에서 격쇄되어 가는 광경.
“드높은 태산의 넋~ 절망의 산하를 일으켜 세우니~ 아아~! 놀라워라~ 상처 입은 노목들도 노래하기 시작하는도다~!”
그 어떤 병단도 전투 중에 군가를 노래하지 않건만, 타르스는 흥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일류 음악가를 고용해 전용 군가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단원들도 그 군가를 참으로 좋아했다. 딱 한 명, 로베리스를 제외하고.
로베리스는 군가가 제창될 때는 침묵 상태였다. 입을 뻐끔거리는 시늉조차 안 한다. 익숙하지 않거나, 부끄러운 것이리라.
“맑은 물~ 푸른 숲~ 노래하는 태산의 영걸~ 봄이 오기까지 우리는 노래하리니, 피가 흘러도 피가 스며도 우리는 가리라~!”
뭐래도 좋았다.
태산 병단이 한계까지 버텨준 덕에, 혈마 병단이 필요한 보급 물자와 생존자를 데리고 상륙함에 탈 수 있었으니까.
버려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카밀라?”
카밀라는 뱃전을 붙잡고, 스러져가는 옛 도시의 잔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친구에게 샤론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플로렛이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샤론도 곧, 카밀라가 당연히 고삐를 쥐고 있어야 할 군마 적돌이가 없단 걸 깨달았다.
“아…….”
그러나 카밀라는 적돌이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무언가 헤아릴 수 없는 절망감에 <라프타스>를 망연히 보고 있던 것뿐이었다.
‘데몬…….’
하급 하나를 잡는 데 현대 최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혈마 병단 간부진과 나와 요한의 힘까지 필요했어.
‘청성 각하와 뇌향 각하가 다 처리해 주셔서 이렇게나 위험한지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하급이 이 정도라면…….
고위 데몬은……?
그보다 몇십 배는 더 강력하다는 화신급은……?
‘그때는 이 전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이날, 강철함대 제독 할바론은 함대의 포탄을 전부 소모하는 한이 있어도 인류의 철수를 지원하라 명령한다.
강철함대의 무자비한 함상 포격에 힘입어 주둔 병단은 해안 지대에서 상륙함을 통해 군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날 그들이 본 게 <라프타스>의 마지막 풍경이었고, 리암과 샤릴리온이 모든 전쟁을 끝낼 때까지 이 땅을 다시 밟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