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4)
가짜 용사 이야기-274화(274/310)
시즌 3 : 82화
“<라프타스> 주둔군은 강철함대의 도움을 받아, 서부 해안을 따라 <타테로>까지 철수한다.”
가히, 처참한 퇴로였다.
뱃전 너머로 보이는 대륙은 화산재와 모래바람에 집어삼켜져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륙을 뒤덮는 침묵은 께름칙했다.
“항구이자 서부 철도 환승역인 <타테로>에는 피난민들로 바글거릴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려는 자와 열차를 타려는 자들이 뒤엉켜 옥신각신했는데, 강철함대를 보자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본래 남진의 거점이었기에, <타테로>에는 아인들의 땅 킨덜란츠로부터 공수된 열차며 병기들이 쌓여 있었다.
청성 미른가디아가 광범위한 열차 징발령을 내렸으므로, 이 열차들을 피난 작전을 위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때 느꼈던 비참한 심정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피난민들이 우리를 보며 우는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이때 만병기장 할바론이 제3군수전단과 제3특전대를 이끌고 상륙한다.
제3해상전투단을 제외하면 육상 병기마저 모두 하선시킨 셈인데, 부관들의 반대를 모두 물리치고 그 빈자리로 인류 피난민들을 8할 가까이 욱여넣었다.
강철함대 군선들마다 과적 인원을 두세 배 가까이 초과해, 흘수선에 해수면이 위태롭게 오르내릴 지경이었다.
– 제독님, 어째서 이런…… 장비들이 과부하를 받아서 정비가 끝도 없을 겁니다. 프리스비아 코어가 망가지는 군선들도 적잖을 것이고.
함대 부관 구스타프 율리우스가 창백한 표정으로 묻자, 할바론은 호탕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구스타프, 아느냐? 도구는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다시 만들 수 없다.
– ……!
– 이 선택은 우리 종족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배가 아까워 인명을 소홀히 했다고 사서에 기록되고 싶지 않다. 너는 이들을 이끌고 먼저 <오르벤하임>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군선들을 정비하고 있도록 해라.
제3군수전단과 제3특전단이 합류하면서, 주둔군 진용에 큰 변화가 일었다.
전체적인 화력이 말도 안 되게 보강된 것이다. 인류 포병대가 사흘 걸려 수행할 작전을 아인 제3특전단은 3시간이면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양측 사령관인 도원수 크라우잔과 제독 할바론은 이른바 ‘크ㆍ할 라인’을 형성, 도시 전체를 요새화하는 전략으로 방어선을 구축한다.
“당시 지뢰나 철조망, 참호로 방어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도시의 규모와 적의 전력에 비하면 병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전화에 휘말린 피난민들의 발길이 뜸해질 즈음, 수평선 저 너머가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화산재는 왕의 권능…… 심연(深淵)이 온 것이다.
전선의 긴장이 고조되던 그때, <라프타스>에서 주둔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후 연락 두절이었던 청성 미른가디아가 마침내 합류한다.
“당시, 청성께서 아드리온 대륙을 포기한다는 풍문이 나돌았으나 그분의 사고는 항상 인류를, 더 나아가 심연조차도 뛰어넘고 있었다. 오늘부터 설명할 내용은 기원력 1675년 연말 반격의 초석이 되는 ‘동부 5번 철도’ 방어전이다.”
반격의 초석, 동부 5번 철도 방어 (1)
“공화국은 왜 이렇게 약해빠졌지? 국토는 제일 넓으면서.”
카밀라가 해안가를 나뒹굴던 돌을 군홧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기원력 1675년 11월의 폭염은 가히 경이적인 수치였다. 대륙 전체가 녹아내릴 듯했다.
돌을 걷어찬 카밀라나, 그 앞에 앉아 있던 샤론, 로베리스는 요한이 걸어준 빙결 마법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내가 진짜, 준사관 교육 때 전쟁사를 공부할 때는 ‘공화국 군대’라는 말을 그냥 장난으로 생각하고 넘겼었거든? 근데 진짜 답도 없네.”
공화국, 즉 인류의 최대 영토를 차지하는 용인 공화국의 군대는 놀림거리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약해도, 너무 약했다.
공화국은 할테네(Haltene; 민병대)라는 민방위 체계로 국토가 상실되는 위협 상황일 때 전 국민이 군인이 되는 군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군제를 따르는 이들은 정말 극소수였다. 징병 대상이든 뭐든, 공화국 국민들은 죄다 짐을 싸고 도망치기 바빴다.
“심연의 진군이 아무리 맹렬하다지만, 이 함락 속도는 비정상적이야. 말도 안 된다고.”
“약해진 거야. 원래는 강했어.”
마도서에 시선을 고정한 요한이 정정해 주었다.
“한때 적룡 군단이 통치할 때는 엄청나게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어. 동란기를 막아냈던 것도 공화국 사람들이거든. 고마워해야 해. 단장님도 자주 말씀하셨잖아. 이건 그 사소한 보답이라고.”
공화국민은 자유를 숭배해 왔는데, 지금은 어떤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멋대로 살아간다.
의회는 군비를 최소화시켰다.
할테네 체계가 전력의 9할이 넘고, 적확한 훈련을 받은 상비군은 1할조차도 안 된다.
“옛날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인간에게 자유는 시기상조야.”
샤론이 카밀라의 짜증에 말을 보탰다.
“자유에는 권리와 의무가 따르는 법인데, 공화국 바보들은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무시하고 있거든.”
“……?”
“이상하지 않아? 현존하는 인류 국가 중에 국토도 가장 넓고 인구수도 가장 많은데, 이렇게나 약해. 아무도 군역을 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군인들을 깔보고 무시하기 바쁘니 당연하지. 대체 누가 군역을 지려 하겠어?”
그러고 보니 공화국과 제국의 문화 차이가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제국은 개인의 명망, 가문의 위신 등을 세우는 걸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페이쿼리어가 최고의 명예로 예우받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국 쪽에서는…… 페이쿼리어 배출 비율이 제국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었다.
“후훗, 군중은 우매해. 난세에 필요한 건 현명한 독재자야. 그 집중된 힘으로 위기를 타파해 나가야 해.”
요한이 마도서에서 시선을 들었다.
“공화정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계라고 했습니다. <온 것들>이 권장한 방향이기도 했고.”
“용인 공화국은 말만 공화국이지, 따지고 보면 가문이 있거나 부유한 인간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거 보면 귀족정이랑 다를 게 거의 없어.”
“권력이 승계되지는 않지요.”
“그렇지. 그래서 위정자들은 어떻게든 재선되기 위해 별짓거리를 다 해. 당선되면 군역을 축소시키겠다든가, 군비를 덜 걷겠다든가…… 그 결과가 이거지.”
카밀라가 입을 열었다.
“근데 예전에는 어떻게 강했지?”
“적룡 군단이 통치하던 그때도 말만 공화국이지, 신정일치의 사회였거든. 내가 말했잖아. 완벽한 지배자가 필요하다고.”
로베리스가 무표정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뇌향 각하께 비슷한 내용을 질문한 적이 있는데, 제르닉스 때문이라 하셨답니다.”
카밀라가 고개를 갸웃 저었다.
“제르닉스?”
요한이 안경을 치켰다.
“유명한 흑마법사지. 옛 대마법사이기도 하고. 동란기부터 용현의 시대까지의 흑막이야.”
“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길게 살 수 있어?”
“나야 모르지. 여하튼 수인족의 인식이 왜곡된 것도, 공화국에서 자유의 가치가 왜곡된 것도 다 제르닉스 때문이래. 거의 500년 동안 모든 걸 교묘하게 조작해 와서, 다들 그걸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어.”
도시에 소란이 번지던 것은 그때쯤이었다. 그 까닭을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암흑으로 물드는 수평선을 일직선으로 밝히는 순백(純白)의 광휘가 여기에서도 선명하게 보였으므로.
존재감만으로, 그 빛만으로도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존재.
드디어, 청성이 돌아온 것이다.
* * *
청성 미른가디아는 <타테로>에 도착하자마자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는데, 뇌향 세츠넨과 함께였다.
뇌향은 상태가 지극히 위독해 무의식의 혼절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도 어떻게인지 뇌향심공명진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물론 효과 범위는 매우 짧았다.
한 지역에 겨우 걸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황이 바뀔 정도의 도움을 주었다.
뇌향심공명진의 영향력이란 그런 것이다.
“백부님, 도대체 어쩌다가…… 왜 저 상처가 낫지 않는 거죠?”
「너도 잘 알 터, 진성검 요니울란의 힘이다. 재생을 담당하는 요소들이 파열되었어. 넨이 몸을 온전하게 다시 쓸 수 있으려면 족히 몇십 년은 걸릴 것이다. 홀로 뤼카엘을 막으려다 이런 참사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 세상에…….”
「모두 들어라. 뇌향이 펼칠 수 있는 건 지극히 작은 범위의 뇌향심공명진이고 공간 전이의 힘들은 발휘할 수 없다.」
모두가 난감하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저번 전투에서 뇌향심공명진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단 말이지. 여차할 때 그걸 대신할 장비를 고안해 봐야겠군.”
할바론이 턱을 긁으면서 한 혼잣말을 귀담아들은 사람은 카밀라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할바론이 그걸 실제로 개발해낸 장면을.
인류 중에서, 그 시제품을 처음으로 사용해보게 되는 건 카밀라의 제자 대영웅 샤릴리온이었다.
“각하, 각하의 명대로 이곳에 오자마자 일대의 모든 열차들을 징발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과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어떠한 통신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모라 강 동쪽으로는…….”
타르스 알터 쉬르팽의 말에 도원수 크라우잔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족 놈들이 <화염만리>를 돌파하면서 그쪽이 표적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네. 병력이 분산되는 것까지 노렸다니…… 제대로 한 방 먹었군. 이제 기존의 방어 체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구먼.”
홍의 사제, 아이딘이 말했다.
“마족은 모든 인류를 절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세력을 가다듬어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는 아군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청성 미른가디아가 말했다.
「이곳 <타테로>는 서부 1번 철도의 시발역이자 동부 5번 철도의 종착역…… 너희들은 열차에 타서 동쪽으로 향해라.」
“여기서 동쪽으로? <슈리가나큐스>로요? 백부님, 화산재가 자욱한 걸 보니 이미 거기까지도 적이 쫙 깔렸을 것 같은데…….”
「<슈리가나큐스>가 아니다. 태양성 <바라>로 향하라. 그곳은 <슈리가나큐스>로 통하는 동부 철도의 핵심 요충지다. <슈리가나큐스>에 갇힌 아이들을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는, <바라>를 반드시 사수해야만 한다.」
플로렛 알터 타스알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퇴각? 각하, 지금 퇴각이라 하셨습니까? <슈리가나큐스>는 천혜의 요새로 현재 동부 전선의 요충일 텐데, 퇴각이라 하심은……?”
「너희들은 줄다리기를 아느냐. 상대편이 지극히 강하다면,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게 될 뿐이다. 그러다 결국 넘어지게 되지. 반격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포위전 끝에 전멸할 뿐.」
청성은 늘 이런 식으로 카밀라 같은 돌대가리는 이해하지 못한 비유를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돌대가리가 있으면 천재가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맞는 법 아니겠는가?
홍의 사제 아이딘의 표정이 세 번은 가까이 변화하더니, 경이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 말씀하신 건, 설마, 아, 끌려가지 않고…… 아니, 적의 힘에 버티다가 끌려가느니 차라리 줄을 그냥 놓아버리잔 말씀이시군요. 아, 그거라면……!”
요한도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감탄의 탄식을 흘렸다.
흠…….
카밀라는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님들만 아는 이야기 그만하고 이제 그만 설명 좀 해주셈…….
「그때, 자기의 힘에 떠밀리다시피 넘어지는 것은 저쪽이 될 것이다. 다시 일어서기까지 일말의 시간을 얻으리니, 그때 재정비를 하고 반격의 준비를 마칠 것이다.」
나중에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지만, 청성 미른가디아의 계획은 이러했다.
적의 주력부대가 <슈리가나큐스>에 진입했을 때, 켈티무스 화산 지대가 폭발하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용암의 폭주를 가속시키는 것이다.
적들이 도마뱀 군주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용암은 무자비하다. 진정한 축복을 받은 놈들이 아니고는 뼈까지 녹아내릴 터.
‘과연…….’
필멸의 존재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계획을 수립해 적의 허점을 찌르는 청성의 지성이 빛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말을 이해하였다면 모두 서둘러라. 철도가 적에게 파손되기 전에 이곳을 떠야 한다. 작전 수행 일시는 바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