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6)
가짜 용사 이야기-276화(276/310)
시즌 3 : 84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적 미(美)의 기준으로 봐도 호화롭기 짝이 없는 가마를 타고 나타난 존재…….
창백한 준남작, 시예트라.
시예트라가 가마 위에서 꼬고 있던 다리를 고혹적으로 풀자, 혈노들이 그 아래 구차하게 부복하여 부교를 만들어냈다.
“축복이다. 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존재는, 우주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이 되지.”
시예트라가 힐 높은 구두로 혈노들의 육신을 꿰뚫다시피 하며 지면 위로 내려섰다.
아…….
이 무슨 비현실적 위압감…….
로베리스와 함께 일어서며 칼자루를 쥐는데, 원초적인 떨림이 손끝을 내달리며 칼끝이 떨렸다.
“천부적인 재능과 외모, 이 둘을 모두 갖춘 자들은 우주로부터 지극히 큰 축복을 받은 이들이니 이대로 생멸(生滅)의 굴레에 놔두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깝지.”
시예트라가 그 뽀얗고도 길고도 우아한 손가락으로 카밀라와 로베리스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런 연유로, 너희 둘에게 우리 일족이 될 기회를 주겠다. 영생이다. 영원한 아름다움, 영원한 힘! 진정한 여왕 안리달께서 베푸시는 축복을 받는 게다!”
영원한 아름다움과 영원한 힘?
순간적으로 솔깃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일고의 여지도 없이 거절한 것은, 뭔가 대단한 신조 따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저 속삭임에 넘어간다면, 스승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테니까.
“영생은 지랄, 엿이나 처먹으시지.”
그 제안을 단칼에 뿌리치듯, 검순이를 크게 휘두르며 소리치자 시예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 참으로 무지한지고.”
시예트라가 길고도 넓은 소맷자락을 펄럭이자, 오대성가 왕족 전용의 사술 혈사병이 공간 자체를 휩쓸며 내달려 들었다.
[플로렛 : 타르스 선배님, 어서 병단을 이끌고 열차에 탑승하셔야 합니다! 선로가 끊어지면 모두 끝장나요!]그 일순, 마력의 뒤틀림을 감지한 로베리스 로라디 페이지가 대검에 마력을 집속시키고는 그 서슬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마력이 강대하게 주입되다 못해 시퍼렇게 떨리기까지 하는 칼날은, 혈사병의 막강한 위력을 튕겨냈다.
이것이, 로로의 장기였다.
누구보다 마력 활용이 뛰어난 로로는 검술의 소질은 동기들보다 비교적 떨어져도 마력을 담은 참격과 또 마법으로 자신의 허점을 메울 줄 알았다.
“……!”
물론 이건 오대성가 왕족이 사용하는 혈족의 사술, 현재 로로의 실력으로는 궤도를 슬쩍 비껴내는 게 고작이었다.
퍼어어어어엉……!
서슬이 승강장 우측 기둥 두 개를 자르고 지나가면서, 발차 플랫폼의 지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밀라는 눈을 멍하니 떴다.
‘로로, 이 녀석…… 아직 열여섯 살 생일 안 됐지? 근데 혈족 왕족의 사술에 맞서다니,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로베리스의 실력을 보니, 본인이 성장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로로와는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포근한 생각에 잠겨 있을 여유는 그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타르스 : 기관사, 발차까지 남은 시간은?] [기관사 : 15분입니다!] [타르스 : 15분 안에 처리한다.] [플로렛 : 선배님! 상대는 혈귀 왕족이에요! 15분이라니!] [타르스 : 놈을 안 쓰러뜨리면 열차도 온전하지 못해. 병단, 창백한 준남작과 나를 중심으로 태산진을 전개하라. 사라, 비구엔, 로로, 너희들은 놈이 태산진을 노리면 방금처럼 흘려내 줘.] [사라 : 예.] [비구엔 : 맡겨주시죠.] [로베리스 : 네.] [타르스 : 카밀라, 아주 위험한 임무겠지만 너는…….]반격의 초석, 동부 5번 철도 방어 (3)
“병단, 군가를 제창한다! 군가는 태산가(泰山歌)! 하나 둘 셋 넷!”
태산 병단이 혈노의 공세를 정면으로 분쇄하며 전진, 시예트라와 타르스를 중심으로 원진을 형성해냈다.
“드높은 태산~ 깊은 골짜기~ 눈 내린 태산은 우리의 영혼~!”
그 군가 속에서, 일당백의 저력으로 혈노들을 압살하면서 진용을 유지하는 실력은 가히 필두 페이쿼리어 병단다웠다.
“너는 필요 없느니라.”
시예트라가 타르스에게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으로 추해. 그 주근깨부터 주먹코, 두툼한 입술까지…… 미(美)의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는 우주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같지. 피의 축복은 아름다움과 힘을 모두 갖춘 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아니, 아름다움과 힘은 사명이다. 창세의 순간 받게 되는 사명의 크기지.”
아름답거나 강한 이의 발언에,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더 큰 무게가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난 지금 이 힘만으로도 내 사명의 크기가 버거워 죽겠거든.”
그렇다면 아름답고 강한 이들은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여기에서 예쁘기도 했으면 큰일이지.”
그렇지 않다. 섬기기 위해 그러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용사가, 용사가 되지 못한 이들을 섬기듯.
“너희 혈족들은 그 축복을 군림하기 위해서만 사용하지. 그렇기에 공포와 굴종의 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아. 인간에게는 말이다. 존경의 관계라는 게 있다. 공포나 권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되는 거지. 너희 같은 한심이들은 모르겠지만.”
문득, 시예트라가 손을 휘둘러 혈사병을 시전하려 한 순간 타르스의 육신이 공간 자체에서 소멸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
‘일정 시점’까지 대기명령을 받은 카밀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빨라.
저렇게나 빠를 수 있단 말인가? 대검을 사용하고 있는데?
“!”
진성검 샤릴리온의 아류작인 쉬르팽이 가진 힘은 ‘체내 시간 가속’.
리스타 알터 쉬르팽이 창안한 시류검법은 바로 그 특수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는 검법.
시간의 순류를 타고 흘러 속도를 가속시키거나, 그 속도를 한순간에 집중시켜 위력을 증폭시키는 데 사용한다.
시류검법, 제4식.
시폭(時爆).
대검의 칼날이 시예트라의 목을 꿰뚫기 직전, 그 육신이 안개로 흩어졌다.
‘역시 왕족, 안개로 변하나……!’
타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예트라가 불현듯 등 뒤에서 출현하여 사술을 발산하였다.
상하좌우 전 방위의 탄막, 단숨에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
‘체내 시간 가속.’
시류검법 제8식.
‘시안염천(時眼炎泉).’
타르스의 양손에서 커다랗게 휘둘러진 쉬르팽의 궤도 위로 시공간이 꿈틀거리며 붕괴했다.
그 시공간의 균열이 곧 장막이 된다.
탄막을 이루며 짓쳐들던 혈사병을 일시에 묵살시키고, 단숨에 공수를 강제로 교체한다.
“안타깝군, 실로 안타깝구나!”
공간을 절단하다시피 베며 나아오는 쉬르팽의 칼날을, 시예트라가 육신을 안개로 분산시켜서 다시금 피해냈다.
“그런 힘을 잠깐이라도 휘두르기 위해 시한부를 자청하다니, 힘과 영생 모두를 받은 우리와 비교하면 처절하기 그지없구나.”
찰나조차 안 되는 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절정 고수들의 공방.
‘어떻게, 끼어들 틈조차 없어.’
그 창백한 준남작을 상대로…….
우루크로 치면, 하이 쿤 타르크 2위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존재와 일대일 승부에서 호각이야…….
‘<라프타스> 탈환전 때 홍련&혈마 병단에게 선봉 자리를 양보해 주셨던 것뿐이구나…….’
타르스의 검무로부터, 그 뒷모습으로부터, 카밀라는 비네사를 겹쳐볼 수 있었다.
필두 페이쿼리어.
인류 희망의 중심.
눈 깜짝할 사이에 참격과 사술이 맞부딪치는 격돌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타르스가 토혈을 쏟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로베리스 : 스승님!]태산 병단의 간부, 사라 슬레이드와 비구엔 팬튼이 타르스를 보위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둘은 쌍둥이라 불렸다.
두 가문이 추구하는 마법의 방향성은 비슷하기 때문인데, 양쪽 다 깅(Wing) 타입 마법사들로 마력을 통한 신체 개조로 마법과 무술의 조화를 꿈꾸었다.
[사라 : 비구엔!] [비구엔 : 알아.]초고속으로 돌진한 깅 타입 마법사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창백한 준남작을 압박한다.
[타르스 : 3초만 더 버텨라. 그리고 다시 대열로 돌아가.]타르스는 칼자루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 안개 변신술을 타파하려면 공간 전체를 파열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절원(切願)을…….
쉬르팽이 백광으로 눈부시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칼날이 놓인 수평선이 요사스럽게 구물거리기 시작한다. 시공간 전체가 명동하는 것이다.
‘무슨……?’
시예트라의 미소에도 당혹의 빛이 일순 스쳐 지나갔다.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다.
지금 이건, 섭리의 영역조차도 절단해내는 위험의 전조라는 걸.
‘하지만 즉발형은 아니군. 그런 거라면야……!’
시예트라의 전신에서 타혈(唾血)이 솟구쳐 나왔다.
피의 형상은 각양각색이었으나 대체적으로 살육에 적당한 서슬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무수한 뱀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핏물이 타르스에게로 쇄도해들 때 무언가가 시예트라의 배후에서 출현했다.
카밀라.
이 위치에 도달하느라 사용했던 각력과 마찰의 힘을 하나로 엮기 위해서 칼집으로 지면을 내려친다.
십문자도 제5식, 돌발격.
지면에 꽂힌 칼집이 참격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회전축으로 설정된다.
– 카밀라, 시공섬을 써야 할 순간이 올 거야. 그걸 쓸 때 창백한 준남작의 주의는 분명 내게 집중되겠지.
창백한 준남작과의 실력 차이는 천지 차이다.
알고 있어.
하지만 허점을 노리는 게 가능하다면, 한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이 녀석을 시공섬의 궤도 위에 붙잡아둘 수 있다면……!
– 창백한 준남작은 일반 혈족이랑은 힘의 차원이 달라. 한순간만 실수해도 죽어. 할 수 있겠어? 자신 없으면 말해. 강요하는 게 아니니까.
그 부탁을 받았을 때, 전신이 공포로 떨리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반응이지, 머리나 마음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기에 카밀라는 타르스에게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그게 용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비네사 님이 말씀하셨거든요.
타르스의 눈이 크게 열렸다.
그 눈동자 속에서, 그리움과 존경심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그 눈동자 너머, 소녀의 머리 위로 그려지고 있었으니까. 두 선배, 비네사 알터 르노드와 미자리 알터 아라다만텔의 얼굴이.
“음……!”
시예트라가 술식 전개를 멈추고 피 안개로 위상을 변이시켜서 돌발격의 참격을 피해냈다.
“안 놓쳐!”
그러나 이미 발동시킨 술식이 무효화된 건 아니다.
피의 짐승들이 타르스의 갑주와 살갗을 녹이고 혈관 속으로 파고들어 타락한 피를 주입시킨다. 기생충과도 같은 핏덩어리들이 혈관을 타고 찢으면서 뇌로 향한다.
그때, 타르스는 부동자세였다. 아니, 시예트라를 겨누는 쉬르팽의 각도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안개의 형상에서 다시 인간의 형상을 취하자마자, 카밀라가 즉시 뒤쫓아와 칼날을 휘둘렀다.
“──무엄하게 감히!”
카밀라의 칼날을 어렵지 않게 쳐내고 그 목숨을 취하려던 시예트라는 다시 안개의 형태로 위상을 변이시켜야 했다.
시공간의 균열 때문이다.
한 공간에 조금이라도 오래 머무르는 순간, 시공간에 금이 일면서 파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일대일이었다면 나는 창백한 준남작의 상대가 될 수 없어.’
하지만 시공섬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계속해서 압박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형식상 돌진하고 있을 뿐.
돌진 속에서 취하는 초식은, 상대의 심장을 취하는 공세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지키는 극한의 수세이기에.
“이야아아아아아─────!”
빨리 뒤쫓아.
절대 놓치지 마.
조금이라도 늦어져선 안 돼. 휘둘러, 휘둘러, 베어, 베어, 베어.
“─────아아아아아아앗!”
시예트라는 거듭 카밀라가 뒤쫓기 힘든 공중에서 위상을 되돌렸으나, 카밀라는 그 위치를 기어이 뒤쫓아왔다.
‘이 꼬마 계집…….’
모두 비네사의 가르침 덕분이다.
‘……상당히 날래잖아.’
마상 전투를 위해 훈련받았고 4년 동안 갈고닦았던 공중전의 기백이 지금 이 자리에서 눈부시게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이년을 죽이지 않고서는 결착이 나지 않겠다.’
다음 위상 전환 때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 순간, 갈기갈기 찢어발겨지기 직전이었던 카밀라의 육신이 문득 빛에 휩싸이더니 사라졌다.
[타르스 : 잘했어, 로로!]로베리스의 공간 전이 마법.
뇌향 세츠넨처럼 대다수의 인원을 정확한 공간에 전이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저 죽음의 일격으로부터, 그리고 수평선 위로 그어진 시공의 붕괴로부터 카밀라를 건져내는 데 있어서는.
“절원(切願), 시공섬(時空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