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8)
가짜 용사 이야기-278화(278/310)
시즌 3 : 86화
“로베리스는?”
타르스 알터 쉬르팽이 물었다.
태산 병단 간부, 사라 슬레이드가 손가락으로 열차 천장을 가리켰다.
“아시잖아요.”
타르스가 못 말린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지치지도 않나 보군. 하긴 그 나이면 한창 뛰놀 때지.”
<타테로>에서 <바라>까지는 중계역을 거치지 않는 철도로 닷새가 걸린다.
카밀라는 이런 시간에도 검술 훈련을 즐겼는데, 로베리스는 창백한 준남작과의 승부 이후로 카밀라를 졸졸 따라다녔다.
무엇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더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자신도 스승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정말 괜찮겠어?”
카밀라가 검순이의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거만하게 턱을 치켰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열차가 대기를 꿰뚫으면서, 공기의 반향이 소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흩트려 놓는다.
“이제 너와 나의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으로 벌어졌는데.”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을 바람에 마구 나부끼던 샤론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장검의 칼자루를 어루만졌다.
“후훗,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잖니. 오늘 하루만 더러운 걸 감안하지 뭐.”
“뭐? 너 뭐라 했어, 인마! 좋아! 오늘 그 주둥이를 박살내 주겠어! 서열 정리다!”
에쉬르 에이진이 심판을 자청해 앞으로 나섰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승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둘 중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수!”
카밀라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 저은 반면, 샤론은 “네~” 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귀여움 대결에서는 샤론의 승리!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수!”
“네!”
“아름다움 대결에서도 샤론이 압승! 다음은─!”
마침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한 카밀라가 빽 소리쳤다.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 뭐 해! 누가 이딴 승부를! 언니는 빠져 있어! 지금 서열 정리를 할 참이었으니까.”
“안 돼, 안 돼! 모든 건 평화롭게 결정해야지.”
“아오, 좀 비키라니까!”
“다음 승부는 애교 승부입니다.”
“?”
“5전 3승제니까, 이것마저 샤론이 이기면 큰일이니 카밀라에게 선공을 주겠어!”
“???”
“자, 카밀라 선수! 애교 시작!”
“허, 헛소리 집어치워! 애교는 무슨 엿이나 바꿔먹을.”
“애교, 시이자아악!”
“아! 안 한다고!”
“시간제한, 3초, 2초, 1초! 아아아아아~ 카밀라 선수 부전패! 샤론과의 서열 다툼에서 패배! 앞으로 샤론이 카밀라보다 뛰어나다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에쉬르가 있지도 않은 메달을 걸어주는 시늉을 하자, 샤론이 양손을 번쩍 쳐들고 환호했다.
“후훗, 후후훗, 후후후후후훗!”
양쪽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로베리스의 입가에 고요한 미소가 번졌다.
“어? 어어? 야, 얘들아! 저것 좀 봐! 로로가 웃었어!”
“로로가요?”
“에이, 로로는 인형인데. 웃기는 무슨.”
“진짜라니까!”
그 시절의 세상은 파멸과 맞닿아 있었으나, 일상의 한 폭은 그토록 눈부셨다.
아니…….
파멸과 맞닿아 있었기에, 그런 사소한 일상조차도 그렇게나 눈부시고 찬란하게 느껴지던 것일까.
반격전야, 태양성 <바라> 방어전 (1)
114대의 열차는 동부 5번 철도를 따라 이동, 솔론드 왕국의 남서부 국경 초소에 속하는 <카메런>에 도착했다.
사태는 한눈에 봐도 화급했다.
국경에는 수비대 하나 없었고, 초소 내ㆍ외부에 낭자한 핏자국과 추깃물이 이곳에 있던 참변을 증언하고 있었다.
“누가 저 뼈다귀 소리 좀 안 나게 해봐. 대체 어디서 자꾸 들려오는 거야? 환장해 돌아가시겠네.”
플로렛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네크론이 <카메런>을 요새화해 두지 않은 것은 호재였다.
국경 심사대 역할도 수행하던 <카메런>은 역사 건물이 광대했기에, <라프타스> 주둔 병단이 어려움 없이 하차해 군진을 전개할 수 있던 것이다.
청성의 계책을 마족은 생각도 못 한 채 허를 찔린 셈이 되겠다.
“자자, 렛, 그만하고 어서 내려.”
닷새 만에 열차에서 내리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카밀라는 몸을 풀며 신체 상태를 점검했다.
「역시 솔론드가 원시 군대의 1차 목표가 되었군. 벌써 여기까지 초토화시켰다니, 실로 비정상적인 진군 속도다.」
청성의 말에 아이딘이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론드는 옛 사큔 왕국의 도읍 위에 대마법사 리그윈드가 건국한 왕국…… 네크론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솔론드 왕국 수도 <바라>와 <바라>의 승강장은 <슈리가나큐스> 철수 작전의 요체, 반드시 사수해야만 한다.」
“화력이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숫자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지면에 흉측하게 찍힌 원시인의 발자국과 손자국을 통해 적의 숫자를 대략적으로 헤아리던 타르스의 발언이었다.
「현재 인류군 중에 운용 가능한 포병대가 없으니 대신 강철함대 제3특전단과 합력하라.」
할바론의 명작 중 하나, ‘거신 7식 : H28 이동포(후일 폭식공 토벌전 때에는 33식으로 개량됨)’가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인류의 최신예 기갑 병기인 거신 17식이 구식 중의 구식으로 보일 정도였다.
흉부에 포신이 돋아나 있었다.
중형 전차포를 장비하며, 발포의 순간에는 4개의 보조 다리가 전개되어 몸체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용도란 것이다.
“예, 각하. 명에 따르겠습니다.”
“제독님의 특전단은 기갑부대 아니었나요?”
스승님이 놀란 눈동자로 묻자, 할바론이 씩 웃었다.
“기존의 기갑부대도 2개 대대 있지만, 다른 놈들은 전부 신형 거신이지. 쉽게 설명하자면 걸어 다니는 포병대라고나 할까. 이번에 시운전이 끝나면 병기 공장 1ㆍ2라인에서 제조될 거다.”
기체 내부에도 방열 장치가 확실하여, 냉각 순환수가 돌아서 조종석에 쾌적한 냉기를 제공한다.
그래도 그 여름의 폭발적인 열기 속에서 냉각 체계 또한 프로토타입이라 주기적으로 과열되어 말썽을 일으키고는 했다.
가까운 미래, 폭식공 토벌전 때의 33식은 이 냉각수 시스템이 보강되어 폭식공 체내에서도 조종사를 지켜내게 되었다.
“거신 흉부에 포신이라니…… 딱 봐도 엄청나 보이는데요. 이런 걸 어떻게 설계하는 거예요?”
카밀라의 질문에 할바론이 클클 웃었다.
“설명하기 힘들다. 거북이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알려준다고 거북이가 하늘을 날 수 있겠나?”
“쳇, 잘난 척.”
“카, 카미! 제독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죄송합니다, 제독님.”
“핫하하! 내버려둬. 친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까지 친해진 기억은 없었지만, 아인들은 오만하게 구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종족적 성격 자체가 오만해서, 비슷한 사람한테 동질감을 느끼나 보다.
“여하튼 걱정하지 마라. 난 원래 포병 장교였으니, 원거리 원조를 끝내주게 잘 해주지. 네크론 놈들이 방어망을 뚫을 기세로 몰려온다 싶으면 날 호출하라고.”
천재적 용병술로 일개 포병 장교에서 5년 만에 제독이 된 건 그가 유일할 것이다.
「순백의 꿈으로 세계를 비추니, 이미 <바라>는 전투 상황에 들어갔고 성문이 돌파되기 직전이다. 이대로 승강장과 철로를 파괴하게 두어선 안 된다.」
플로렛이 대답했다.
“명을 내려주시죠, 각하. 어떤 임무든 반드시 완수해낼 테니. 이 뼈다귀 소리만 안 들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 * *
문득, 어떠한 맥락도 없이, 불현듯, 원시의 사막이 ‘그들’의 시야와 의식을 뒤덮었다.
그것은 고대의 왕국.
들끓는 용암이 천지를 붉게 집어삼키고, 회오리치는 모래바람이 산하를 거칠게 찢고 할퀸다.
그곳에, 인간은 없다.
아니, 역사상 인간은 있었다.
지금의 인간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가축과도 같이 사육되는 인간들은.
그래…….
이곳은 본래 세계의 모습…….
세계가 응당 되돌아가야 할 모습으로서, 격렬한 향수를 자극하는 원시의 지변.
바로 그 세계의 중심에서, ‘눈’이 뜨였다.
용암이 눈의 형상을 갖춘 것만 같았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에서 피눈물과도 같은 용암이 흘러내린다.
‘그들’이 낮게 부복했다.
인류가 마족이라 부르는 족속의 대표자들이었는데, 우루크 하이 쿤 타르크와 혈족 오대성가며 트롤 십석두까지 십여 명의 요인(要人)들이었다.
이곳은 정신세계.
왕의 메아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그 축복을 받은 존재들의 의식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공간이었다.
「Sya…… Ka…… Duros…….」
왕의 메아리가 일의 형편을 물었다. 소환된 순간부터 몸을 떨던 창백한 준남작 시예트라가 이마를 모래밭 위로 찧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위대한 여왕이시여. 전력을 다했─!”
‘눈’이 격렬히 울부짖자, 시예트라의 육신이 불현듯 용암과 모래바람에 휩싸였다.
그 영혼이, 녹아내린다.
그 정신이, 찢어발겨진다.
이 세계에서의 죽음은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영혼과 정신이 소멸하고 삼켜지기에.
「La…… Suhebit…… Shigot…….」
왕의 메아리가 다시 천지를 흔들자, 옛 도마뱀 골격의 갑주를 입은 신관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살무사, 세르뷰트.
신비스럽고도 위험한 네크론 최고 3인의 신관, 팔크-샤 중 하나.
“왕을 실망시키는 저것들은 모두 시간의 군주를 섬기던 것들입니다. 진정한 왕, 네이갈라스를 섬기는 자들이 왕의 명령을 받들고 있나이다.”
「Arshis…… Doet…….」
“심려 마소서. 왕의 어전으로 곧 나아가겠나이다. 그 불경한 구조물들을 모두 허물고, 진정한 왕국을 회복시키기 위해.”
* * *
아드리온 대륙 중북부에 건국된 솔론드 왕국 지하에는 옛 사큔 왕국이 매몰되어 있다.
골공왕, 하이르칸의 원시 왕국.
한때 옛 왕국의 찬란한 영광을 수호했던 성탑들 또한 지하 깊숙이 파묻혀, 석굴(石窟)이 되었다.
“그 이름, 아로엘레 석굴이다.”
석굴은 총 13개가 존재하며, 성탑답게 왕성을 둥글게 에워싸며 전개되었다.
성탑들에는 힘이 깃들어 있다.
왕국을 타락시키고, 모든 백성을 도마뱀 군주에게 산 제물로 바치면서 받은 심연의 축복이.
“즉, 이곳이 저주의 모체였다.”
네크론 최고 신관, 즉 팔크-샤 서열 2위인 ‘검은 살무사 : 세르뷰트’는 <바라> 공략 전에 이 석굴을 모두 가동시켜 원시 결계를 왕국 전체에 발동시킨다.
“이는 지하에 매몰된 옛 왕국의 수도는 떠오르고, 그 위에 불경하게 세워졌던 <바라>를 그 자리에 생매장시키는 결계였다. 즉, 이 결계가 전개되면 청성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구조였지.”
인류와 마족 양측이 피차 다른 이유로 <바라>를 겨누었으나, 양측의 이유 모두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바라>는 격전지가 된다.
“청성은 직접 ‘검은 살무사’를 토벌하겠다고 천명하고, 기병대인 흑장미와 혈마를 이끌고 태양성 <바라>로 향한다.”
태산 병단과 홍련 병단은 강철함대 제3특전단과 연합, 아로엘레 석굴 공략에 나서니 이때가 기원력 1675년 12월 1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