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79)
가짜 용사 이야기-279화(279/310)
시즌 3 : 87화
[라미네아 : 홍련 병단, 우리 임무는 왕궁 주위의 아로엘레 석굴 중 제13석굴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거야.]거신 7식이 사용하는 전차포는 포탄조차 신형이었다(이 또한 할바론의 걸작 중 하나다).
지중굴진식(地中掘進式; Bunker Buster) 포탄.
렙틸리언의 지배를 받던 원시인들은 그 싸움법마저 교육받았는지, 지대를 사막화시킨 후 땅속 깊숙이 은폐하는 전술을 즐겼다.
[라미네아 : 저걸 서둘러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바라>가 지하에 파묻혀버려. 제2기갑대대가 선봉에서 도와줄 거야! 자, 가자!]이 포탄은 놈들의 그런 전술을 정면에서 처단하는 신병기였다.
가히 걸작이라 할 만하다.
막대한 질량으로 지면 깊숙이 처박힌 뒤에 폭발하는 성질을 가진 이 포탄은 이번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용도로 쓰였다.
[할바론 : 13개의 결계 중 11개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2개는 저주의 힘이 강한 건지, 아니면 더 깊은 곳에 있는 건지 내 포탄이 닿질 않는군.]지하의 아로엘레 석굴을 아예 초토화시키는 용도로 말이다.
본래 솔론드 왕조는 석굴에 봉인진을 새겨 원시의 힘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이것조차 사라지면서 후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인류가 입각해야 할 건 현재였지, 미래가 아니었다. 청성은 이미 이때 아드리온 대륙을 포기할 생각을 한 듯하다.
[타르스 : 이미 11개나 초토화시킨 걸로 군공이란 군공은 죄다 독차지한 것 같은데, 아인 제독. 당신은 좀 쉬어도 되겠어.] [할바론 : 그래, 원망하지는 말게나. 원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지 않나. 나머지 둘은 자네들이 피똥을 싸며 없애 줘야겠군그래.] [라미네아 : 저 포탄을 개발하는 동안 제독님이 싸셨을 피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뭐.] [할바론 : 네 제자가 혓바닥을 어찌나 그리 잘 놀리나 했더니만 사실 다 너한테 배운 거였군.] [카밀라 : 틀렸어요. 스승님이 저한테 배웠거든요.]이런 배경에서 태산 병단은 제1석굴로, 홍련 병단은 제13석굴로 향하게 되었다.
지하는 암흑천지였다.
제3특전대 예하 제3기갑대대가 조명으로 전방을 비추며 전진했고, 델프레드와 멜레느가 사방에 불을 켜서 시계를 밝혔다.
[쿤하 : 여기는 예르거 1, 놈들이 환풍구에 달라붙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라미네아 : 분대! 거신들을 사수해! 원시 군대가 달라붙지 못하게 막아!]석굴은 매끄러운 암벽이 아치를 이루었는데, 거신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광대한 크기였다.
타락한 왕국의 문명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숙연해지는 건 사실이었으나 감상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원시인이 어느 곳에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나타나는 건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병단을 사방에서 포위하며 밀려드는 것이다.
또 지하는 놈들의 영역이었다.
지하 공간에서의 사격은 도탄에 의한 아군 피해가 우려되었다. 그렇기에 사격은 금지되고 총검 전투만이 허용되었다.
[그리프베런 : 원시인이오! 11시 방향!]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준 것은 수인병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모든 사물을 똑바로 보는 눈과, 살기(殺氣)를 감지하는 후각과 청각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라미네아는 그리프베런에게 본대를 맡기고, 카밀라와 함께 최전방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라미네아 : 카미!]아라다만텔의 검광 너머, 라미네아를 피해 거신 7식에게로 내달리는 원시인 무리 앞으로 카밀라가 솟구쳤다.
십문자도 제10식, 십자참수.
원시인이 거신의 환풍구 속에 부식성 점액을 토해내기 직전, 칼날의 쇳빛과 마력의 푸른빛이 한 궤도 위에 포개지며 놈들의 육신을 네 토막으로 절단한다.
[쿤하 : 여기는 예르거 1, 대단한 실력이군. 도움 고맙다. 계속 전진하며 길을 열겠다.]착지하는 동시에 태도를 휘둘러 진액과 살점과 지방을 털어내는 카밀라에게 라미네아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냥, 그런 것만으로도…….
그런 사소한 손길만으로도…….
왜 매순간 눈물이 날 것만 같던 것인지, 스승님은 모든 걸 이해해주고 계셨던 것 같다. 원시인이나 혈노를 벨 때의 자책감조차도.
[할바론 : 여기는 제3특전단, 지상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지하의 상황을 보고하라.] [타르스 : 무슨 일이지?] [할바론 : 땅속에서는 지진이 느껴지지 않나? <바라>의 매몰 절차가 시작됐다.] [라미네아 : 지금 최대한 서둘러서 전진 중이에요!] [할바론 : 대략 1시간 정도가 한계치일 것 같다. 그 이상 진행되었다가는 철도가 전부 끊어져버릴 테니까.]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무리하고 있건만, 그래도 이렇게나 급박한 상황이란 말인가.
사실, 모든 작전이 그랬다.
‘검은 여름’ 말년의 모든 작전은 모두 이처럼 1초 단위의 시간 싸움이었던 것이다.
근데 돌이켜보면…….
할바론의 신병기가 11개의 석굴을 미리 초토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이 작전은 애초에 성립되지도 않았을 듯싶다.
석굴 깊숙이 내려갈수록, 어떤 교차로에 닿을 때마다 위기도 동시에 왔다.
베고…….
베고, 찌르고, 또 베고…….
원시인의 살점과 핏덩이가 된 아군의 시체를 넘어서 계속 전진, 또 전진하다 보니, 마침내.
[쿤하 : 여기는 예르거 1, 홍련 병단에게 알린다. 목표가 가시거리에 들어왔다.] [요한 : 술식으로 이루어진 원시의 종양…… 확실해요!] [할바론 : 어림잡아 1분쯤 남았다. 철도가 뒤틀리기 직전이야. <바라> 쪽은 어떨지 모르겠군.] [그리프베런 : 놈들이 출현한 굴을 지나서 측면을 공격하겠소.] [라미네아 : 델프레드, 좌표 읽어서 포병대한테 송신해!] [델프레드 : 심도가 너무 깊고, 또 저 결계가 폭주하고 있어서 좌표를 읽을 수가 없어! 직접 처리해야 해!]일순간, 라미네아는 사랑하는 제자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고는 한숨을 토해내듯 뱉어냈다.
힘을…….
삶을…….
조금이라도 온존하고 싶지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지만, 결국 어쩔 수가 없구나.
“가자, 아라다만텔.”
반격전야, 태양성 <바라> 방어전 (2)
라미네아는 지반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박찼다. 발자국이 도랑처럼 깊숙이 파일 정도로.
체내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는 마력이 신체의 시간을 가속화.
역설적으로 주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나, 둘, 셋.’
그 진로를 가로막는 수백의 원시인들은 홍련의 포화(泡花) 속에서 말끔하게 베어지고, 절단면이 그을려지다, 잿더미로 불살라진다.
‘넷, 다섯, 여섯.’
한 번의 참격이 펼쳐내는 핏빛 수평선, 그 위에 놓인 존재들의 생(生)이 멸(滅)로 바뀐다.
‘일곱, 여덟, 아홉.’
힘의 과부하, 섭리상 허용되지 않은 힘을 과용하면서 육신이 비명을 내지르고…… 부족한 힘을 끝내 미래로부터 끌어온다.
수명(壽命)의 소진.
머리가 탈색되고 또 탈력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라미네아는 멈추지 않았다.
한순간에.
정말 한순간에.
아라다만텔의 참격이 처음에 남긴 핏빛 궤적이 아직 카밀라의 망막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한순간에.
‘대단해…….’
꽃향기만을 남긴 채 결계 앞까지 도달한 라미네아는 칼집을 내던지면서, 아라다만텔의 칼자루를 양손으로 붙잡고 그 칼날을 높이 쳐들었다.
‘스승님은 엄청나게 대단해……!’
아라다만텔의 도신에서 붉게 포효하던 힘이 검극으로 집중되며 절호조의 파괴력을 얻는다.
[라미네아 : 타르스 선배님!]원시의 종양을 에워싼 결계를 단숨에 꿰뚫고, 그 너머 원시의 핵을 꿰뚫으며 검광이 폭발한다.
[라미네아 : 저희 쪽은 끝나기 직전이에요! 선배님 쪽은요!]핵 자체가 생명을 갖고 있던 것일까?
우우우우……!
뒤틀린 원시의 비명이 끔찍하게 울리나 싶더니, 소멸과 동시에 중력을 뒤흔드는 막대한 충격파를 발산했다.
[요한 : 카밀라, 이쪽으로 와!]요한이 그렇게 외치기도 전에, 라미네아와 함께 선봉을 섰었던 카밀라는 이미 그 충격파를 정면으로 맞았다.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힘이 네크론이 아닌 다른 마족의 힘이었더라면.
원시화(原始化)가 진행되다 멈추었던 육신이 그 힘에 영향을 받았다.
세상에, 시상에 균열이 인다.
의식이, 소집되어, 불려간다.
원시의 군대를 통솔하는 완전무결한 독재자…… 최고위 의식, 옛 사막의 메아리, 팔크-샤, 세르뷰트 앞으로…….
[와라, 이곳으로 와라, 나의 적을 쓰러뜨려라…….]군집 의식의 소집 명령…… 카밀라는 머리를 고통스럽게 움켜잡고 주저앉았다.
그 명령은 비열한 함정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비상 상황에서 내려진 명령이었다.
군집체, 즉 검은 살무사 세르뷰트와의 의식이 동기화되었기에 그 상황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백열(白熱).
태양성 <바라>를 몰락시키기 직전이었던 세르뷰트의 눈앞에 강림한 빛, 그 빛의 신성한 열량 속에서 원시인들이 소멸된다.
「세르뷰트.」
청성의 미른가디아.
그 고결한 광휘 속에서 원시의 저주는 사라지고, 저주에 속박됐던 이들이 빛 속으로 돌아가며 눈물을 흘렸다.
도마뱀…… 아니, 옛 살무사를 본뜬 투구 안쪽에서 세르뷰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앞에서는 경어를 써라, 천하고 또 불경한 것아. 용납할 수 없도다. 감히 불경스럽게도 심연의 절대자의 형상을 본떠 창조된 너 같은 존재들을.”
원시 개체 수백 개를 날려 버렸다고 한들 놈들은 애초에 잡병, 무엇 하나 위협이 되지 않는다.
세르뷰트의 손바닥 위에서, 강령의 사념(邪念)이 폭주했다.
뱀처럼 똬리를 틀던 그 사념이 무언가를 토해내자, 그 토사물 속에서 백 개의 형상이 일어섰는데 저마다 형상이 달랐다.
그들은 투사(鬪士).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열린 기원의 시대 이후, 마계에서 벌어졌던 모든 전쟁에서 명망을 떨쳤던 투사의 망혼(亡魂)들.
“진정한 강령술이란 생전의 힘과 능력과 기술과 기예 모두를 부릴 수 있어야 하나니, 나는 이 힘으로 마계 남방을 평정했노라!”
팔크-샤 서열 3위, 누런 전갈 차칼로네.
<라프타스> 사변의 원흉이었던 놈이 다수의 원시인을 부리는 게 강점이라면, 세르뷰트는 소수정예의 강령술이 특징이었다.
세르뷰트의 강령술은 특이해서, 망자의 원시화를 ‘필요한 만큼’만 진행시킨다. 생전의 힘과 기술을 사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100인의 투사.
세르뷰트는 오직 100인의 투사만을 부렸으며, 만약 더 강한 투사를 찾는다면 기존의 100인 중에서 하나를 버렸다.
“흐흐흐흐흐, 그래, 너 정도라면 이 100인의 수집품에 능히─?!”
그 순간, 그 한순간에, 청성이 취한 행동이라고는 우아하게 긴 눈꺼풀로 눈을 닫고, 조용히 하란 듯 오른손 검지를 입술 앞에 세운 게 전부였다.
그런데…… 변했다.
세상이, 세상 전체가, 아련하도록 푸르고, 또 슬프도록 하얗고, 그렇기에 고요한…… 호수와 나무의 세계로.
「제1심계(心界), 창명식 : 유량세존(彰明式 : 流量世尊).」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시의 저주도 없고 저주의 슬픔도 없고 슬픔을 느낄 만한 마음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잠기고 또 투영되고 또 반사되는 세계, 호수의 호면에 세르뷰트의 당혹스러운 심상이 모조리 비치고 있었다.
‘뭐냐, 이 공간은……?’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곤혹감은, 전율은, 공포는, 더 원초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심연(深淵)…….
그의 영혼에 깃든 심연이 격동하고 있었다. 심연에 깃든 기억, 즉, 세르뷰트에게 힘을 내린 심연의 주인의 기억이 순간 청성 위로 겹쳐진 것이다.
그것은…….
빛의 군주 <온 것들>…….
검은 태양, 카렌덴…….
이 힘은 본래 카렌덴의 심상, 유량세존(流量世尊). 용현 레인 루드윅에게로 계승되었고…… 그 정신적 후계자인 청성이 물려받게 되었다.
창세칠편 중 하나.
창명시편의 힘과 결합된 것.
창명시편의 힘의 형상은 본디 사슬이며, 그 사슬로 창세 섭리에 어긋나는 존재를 구속하여 저 공간 너머로 추방하는 것이다.
청성의 창명은 조금 달랐다.
이 세계, 이 심계의 중심부에 세워진 세계수…… 그 세계수의 뿌리가 사슬 대신 표적을 휘감는다. 그 구성 성분이 창명시편의 구절, 즉 문자열이란 것은 같다.
“뭐냐, 이건, 힘이, 능력이…… 아니, 안 돼! 나의 군대여! 나의 투사들이여! 나의 적을, 지금 여기 있는 이 불경한……!”
그것이…… 그렇게나 허무한 그걸로 끝이었다.
뿌리에 전신이 휘감긴 세르뷰트는 호수 속으로 끌려 들어갔고, 곧 조용해졌다.
놈의 패착은 항룡(抗龍) 결계를 미처(또는 오만해서) 펼쳐두지 않았단 것이 전부였다.
청성의 계위는 신룡이 아니라 진룡이었지만, 수룡 예리세리카의 힘을 대부분 계승하였으므로 그의 힘은 광룡보다는 미약하나 법황청 오주를 모두 합한 것보다는 강대했다.
또롱…….
세르뷰트가 존재했던 흔적은, 호수 위로 고요하게 퍼지는 파문 하나뿐이었다.
그 파문의 끝에서,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고 카밀라의 의식 또한 군집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육신으로 돌아왔다.
카밀라는 라미네아의 품에 안긴 채 석굴을 빠져나오던 참이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스승님의 얼굴이 울상으로 무너지셨다.
“카미!”
카밀라는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하려 했다.
청성의 그 활약을, 온몸이 다 떨려오던 그 힘을 모두에게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단 한마디로 족했으니까. 뒤이어 들려온 저 한마디만으로도.
[청성 : 끝났다.]청성은 힘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는다.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통보할 뿐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청성을, 그 힘을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히 상상하게 된다.
용현 레인 루드윅이 이 땅의 기쁨과 슬픔을 어루만졌단 시대에, 세상의 모습이 어떠하였을지.
[청성 : 전 부대, 태양성 <바라> 승강장으로 집결. 할바론은 제3군수지원단에게 명해 <카메런>에 대기 중이던 열차를 인솔해오게 하도록,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