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80)
가짜 용사 이야기-280화(280/310)
시즌 3 : 88화
“태양성 <바라>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바라>가 이 정도 공격을 받을 정도라면 <슈리가나큐스>는 이미 포위전이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각하, 어떻게 활로를 뚫어야 하겠습니까?”
홍의 사제, 아이딘이 물었다.
「그 어떤 두꺼운 덩어리라 해도 넓게 펼치면 펼칠수록 얇아지기 마련, 그걸 상대로 힘을 집중시킨다면 한 곳에 구멍을 뚫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청성의 대답에 할바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야 워낙 유식하니 다 알아듣습니다만, 이 눈을 끔뻑거리는 거북이 친구들의 지능을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군요.”
「현실을 짚어주니 기쁘군. 부대를 나누겠다. 침투전이다.」
청성이 소맷자락을 흔들자, 그 새하얀 바람 속에서 탁상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탁상 위에서 새싹들이 움트고 엮이고 나무로 장성하나 싶더니, 어느덧 <슈리가나큐스>의 상공 지도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카밀라는 멍하니 그걸 위아래로 훑다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슈리가나큐스>는 본래 켈티무스 화산 지대의 분화구 위에 건립되었다. 주위에 총 여섯 봉우리가 존재하고, 그 봉우리마다 위성도시가 존재하고, 위성도시마다 철도역이 존재한다.」
켈티무스 화산 지대는 상공에서 바라보면 차륜 모양이라 한다.
그 차륜 꼴의 봉우리들과 <슈리가나큐스>를 고대의 기술력으로 지어진 현수교가 연결했다.
그 현수교의 중심부로 철도가 지난다.
「<바라>와 <슈리가나큐스>, 양쪽을 철도로 연결시키는 북동부 봉우리의 위성도시 <바네시스>를 점거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도, 즉 <슈리가나큐스>와 봉우리를 잇는 현수교 철도도 사수해야만 하지.」
도원수 크라우잔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각하, 허나 이미 성문과 현수교 쪽의 철도는 공성전의 여파로 파손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위해 제3특전단 휘하 전투공병대를 예비해둔 게다.」
“<온 것들> 도시의 철도 인테리어 공사를 저희에게 맡겨주시니 너무 기쁘군요, 각하.”
할바론이 익살맞게 대답했다.
라미네아가 킥킥 웃었다. 둘은 엉뚱한 데서 웃음이 터지는 결이 비슷했던 것이다.
플로렛이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은 봉우리와 현수교를 동시에 점거하고 또 피난이 끝날 때까지 지켜내야 한다, 이 말씀이죠?”
「그렇다. <바네시스> 침투는 혈마 병단에 맡긴다. 이를 위해 각 부대에서 제자들을 차출한다. 카밀라, 샤론, 로베리스를 혈마 병단에 임시 배속시키니 침투 및 점거에 유용하게 쓰도록.」
“네, 각하.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소중히 잘 쓰고 돌려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에쉬르가 동생들…… 즉 제자 후배들에게 눈을 찡긋하자, 카밀라와 샤론은 멋쩍게 웃었고 로베리스는 고개를 공손히 숙였다.
요한은 이미 배속돼 있었다.
무녀 실라미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청성의 결정이었는데, 당시 성장이 그 누구보다 빨랐던 요한은 어느덧 스승 델프레드에 맞먹는 영향력을 전장에 떨치고 있던 것이다.
「홍련 병단은 <바네시스> 외곽에서 은폐한 채 대기하다가 혈마 병단이 철도역 안전을 확보하면 진입한다. 적이 우리 의도를 알아채고 철도역을 부수게 해선 안 된다.」
“네, 백부님. 걱정 마세요.”
「태산ㆍ흑장미 병단은 현수교의 적들을 토벌한다. 양쪽 작전이 모두 끝나면, 흑장미와 혈마는 <슈리가나큐스> 진입의 선봉에 서고, 홍련 병단은 <바네시스>로 돌아와 방어 임무에 나선다.」
필두 페이쿼리어, 타르스 알터 쉬르팽이 발언했다.
“저희는 그다음에 어쩔까요?”
「제3특전단 전투공병대와 함께 마지막 열차가 떠날 때까지 현수교를 사수하라. 그것이 네 임무다. 아주 어려운 임무가 될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병단 총지휘는 크라우잔, 다시 네게 맡긴다. 강철함대 포병ㆍ기갑ㆍ공병 부대 간의 연계는 할바론과 하도록.」
“예, 각하.”
크라우잔이 대답하고 할바론이 물었다.
“각하께서는 어쩌실 겁니까?”
「나는 먼저 <슈리가나큐스> 상공으로 진입해 도시 수비전을 피난 호위로 바꾸는 총지휘를 맡겠다. 줄다리기에서 줄을 놓았을 때, 상대방이 넘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청성이 문득 두 눈을 감았는데, 그러한 침묵조차도 고귀하게 느껴졌다. 청성이 침묵하면 대기(大氣)조차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항상 너희들을 지옥으로 내모는구나.」
그러자 에쉬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용사라고요.”
라미네아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맞아요, 백부님. 이건 지옥의 축에도 못 끼죠. 사우나라고 하면 모를까. 다들 그쵸?”
할바론이 씩 웃었다.
“실수 조금 한다고 머리통이 깨지는 사우나는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었지만 말이지. 용사들의 사우나 문화는 특이한 셈 치지.”
화석계 오우칸 토벌전, 화산 지대 고공 침투 (1)
[에쉬르 : 로로, 페이쿼리어 병단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병단에 온 걸 환영해.]에쉬르가 말했다.
혈마 병단 전체가 ‘백란(白卵)’ 속에 들어간 채, 청성의 날개 아래서 비행 중이었으므로 육성을 통한 소통은 불가능했다.
백란이란 용언이 하얀색 알처럼 뭉친 것으로, 청성이 고안한 고고도 침투 작전의 핵심이었다.
충격 상쇄.
중력 통제.
궤도 조절.
이 세 가지 용언은 착륙의 순간, 지금까지 받은 모든 대공 피해와 낙하 피해를 전방위로 폭발시켜 적들을 무력화시키기까지 했다.
[카밀라 : 영광인 줄 알아. 예전 같았으면 너 같은 코흘리개는 절대 못 오는 곳이었어.]에쉬르와 간부진들이 미친 듯이 웃었다.
[맥케넌 : 크크크크크크.] [레오네 : 아하하하하하하하!] [페닐 : 나 원, 어이가 없어서.]샤론이 비웃음인지 진짜 웃는 건지 모를 웃음을 흘렸다.
[에쉬르 : 아무렴. 가장 위험한 전투가 죄다 우리의 전투였거든. 옛날에 막 열네 살이 된 누가 억지로 들어왔었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 [로베리스 : 방금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샤론 : 선생님, 여기서 열심히 활약하면 원시 왕국 일타 성형외과에 데려가서 성형수술도 시켜준다는 게 정말인가요?] [에쉬르 : 미안하지만 그건 영업 비밀이란다. 큭큭큭. 샤론이 흑장미가 아니라 우리 병단에 오겠다고 하면 슬쩍 알려주고.] [카밀라 : 얌마! 그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라 했지! 너 진짜 뒤진다!] [에쉬르 : 여하튼 병단 규모가 1할도 채 못 되게 축소됐지만, 보다시피 영향력이 높은 전장에 투입되는 건 예전과 다를 바 없어.]백란 내부에는 천리안(千里眼)의 상이 맺혀 있다. 그걸 통해 외부 상황과, 강하 예상 지점의 상황을 면밀히 살필 수 있게 된다.
적은 강적(强敵).
십석두(十石頭) 중 화석계 트롤과 하급 마졸들이 포진됐는데, <슈리가나큐스> 공방의 위험 요소인 하이 쿤 타르크 누위긴 클랜은 남문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쉬르 : 그렇기에 우리 혈마 병단의 활약 여부가 전투의 승리와 패배에 큰 영향을 줘.]천리안 우측 하단에 숫자 ‘60’이 떠오른다.
[크라우잔 : 할바론, 청성께서 목표 고도에 도달하셨네.]이는 60초를 뜻한다.
강하 초읽기가 시작된 것이다.
[할바론 : 이동포 포격 위치 선점 완료, 스팀코어 예열 완료, 최대치 낙하 궤도 계산 완료.]동시에 상공 기류가 요동친다.
[청성 : 포격 시작하라. 이제 총지휘권은 너희 둘이 맡는다. 나는 강하 작전 직후 곧장 <슈리가나큐스> 상공으로 진입하겠다.]강하 지점에 먼저 제3특전단의 포격이 시작된 것인데, 봉우리를 에워싼 하급 마족들의 진용을 그야말로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에쉬르 : 로로, 너를 하나하나 가르쳐줄 시간은 없어. 하지만 네가 앞으로 휘하 병력을 어떻게 지휘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려줄 수 있지.]봉우리 상공에 도착한 청성이 고도를 낮추면서, 초읽기 숫자는 ‘10’ 아래로 내려간다.
[에쉬르 :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 용기를 뒷받침하는 실력도 중요한 법이야. 이제 시작이야. 잘 보고 배워봐.]청성의 날개 아래 고정시켜 주던 광선들이 일제히 끊어지면서, 백란이 지면으로 급강하했다.
[청성 : 혈마 병단, 경로 3-1-3이다. 강하 개시.]백란이 지반에 내리꽂힌 순간, 충격의 파문이 백란 전체로 물결치며 퍼지더니 순간 백광(白光)으로 폭발하며 사위를 물들인다.
그 빛이 물결처럼 흘러, 주위에서 대기하던 적들과 작전 수행에 지장을 줄 만한 요소들(불길, 잔해) 따위를 소멸시킨다.
[에쉬르 : 점호 끝. 전 부대, 이상 없음! 혈마 병단 강하 투입 성공을 보고합니다.] [크라우잔 : 혈마, 청성 각하께서 생존자의 기척을 확인했으며, 이들을 구출하는 것 또한 작전목표로 올리셨네. 물론 최우선 목표는 철도역임을 잊지 말게나.] [청성 : 전 병력, 현재 <슈리가나큐스> 상공 진입 5초 전이다. 고위험 심연 인자가 관측되나 화산재가 짙어 정확한 위치 확인이 불가능하다. 태산과 흑장미 병단에게 토벌을 맡기겠다.] [타르스 : 태산 병단, 토벌 명령을 확인! 흑장미 병단과 함께 목표 지역으로 이동 중입니다!]곧 청성이 뇌향심공명진 범위 밖으로 나가면서 그 고고한 존재감이 마음속에서 끊어졌다.
이제, 시작된 것이다.
켈티무스 화산 지대 북동부 봉우리, 위성도시 <바네시스> 공략이.
[에쉬르 : 페닐, 철도역 주위를 요새화시켜!] [페닐 : 십석두 화석류 트롤 두 기가 철도역 정문을 지키고 있다. 저 돌대가리들이 철도역을 부수지 않은 게 용하군.] [에쉬르 : 몸 풀기 딱 좋은 상대네! 철도역에 피해가 가니 마법은 쓰지 마. 왼쪽은 카밀라! 샤론은 오른쪽! 하체를 제압해두면 내가 둘 다 한 번에 숨통을 끊겠어! 로로는 처음이니 관전!]카밀라는 안장에서 몸을 솟구치자마자 허공에 마력의 발판을 형성했다. 간격을 초고속으로 좁히기 위해 각력을 증폭시킨다.
목표까지의 간격, 30보.
그 30보의 거리를 한 번에 줄이는 비정상적인 각력, 태도는 칼집에 납도하여 기(氣)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결시킨다.
표적이 움직인다.
십석두에 속하는 트롤들은 지능이 떨어지는 종족적 특성은 공유하나, 전투에 있어서는 그 움직임이 훨씬 날랜 편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화석계(火石界).
표피를 구성하는 것이 가죽이 아니라 화석인 것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육신 전체가 바위와 같으니, 그 질량과 무게와 강도 모두가 트롤의 강점이다.
그러나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거구를 움직일 수 있도록, 관절 부위의 경도(硬度)는 다른 부위에 비하여 약한 편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십문자도 제4식, 발(發).
화석계 트롤이 카밀라의 돌진 궤도로 팔을 육중하게 휘둘러왔다. 회피 기동을 위해 마력 발판을 다시금 형성.
궤도를 틀 때, 칼집을 쓴다.
군홧발로 발판을 차는 게 아니라, 납도된 채 기운이 집중되던 칼집으로 발판을 후려쳐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 반동.
뼈가 흔들릴 정도의 반동.
그 반동조차도 칼에 담는다. 이제는 칼집 표면이 쪼개질 기세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 방출의 방식은 뭐로 할까.’
십자참수도 단일 개체에게 강력하긴 하나, 참격의 갈래가 종횡으로 흩어지다 보니 트롤을 상대할 때는 옳지 않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단일 개체를 상대할 때 최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제11식, 뇌격단을 사용한다.
사실 최강은 12식, 영멸섬이다.
십문자도의 모든 초식의 정수와도 같은 그 기술의 습득 난이도는 아직 카밀라가 건드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섬(一閃).
칼집으로부터 눈부신 쇳빛을 뿌리며 미끄러져 나온 칼날이, 화석계 트롤의 발목을 깊숙이 긋고 나갔다.
그 입출(入出)의 과정에서.
화석 너머 가죽과 힘줄과 세포와 핏줄을 모두 끊고, 뼈는 베어내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카밀라 : 왼쪽 끝!] [샤론 : 오른쪽도요!]극주검과 십문자도가 각각 겨누어 취한 것은 발목으로 똑같았다.
기우뚱…… 하체가 그 무식한 질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트롤의 육신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 기울어지는 각도로 예리하고도 눈부시게 회오리치는, 붉은빛의 소용돌이. 현월(弦月)이 수없이 겹쳐지며 소용돌이를 이루어낸 것이다.
극위성검 르노드의 검광.
그 빛의 포화 속에서, 명(命)이 멸(滅)로 뒤바뀐다.
르노드의 칼날이 왼쪽 트롤의 경추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아 뇌를 베어냈고, 이어 오른쪽 트롤의 목을 경추째로 끊어냈다.
[에쉬르 : 완벽해! 이제 승강장 주위를 요새화한다! 신호탄 체계는 2-1-1!]두 개의 거구가 고꾸라진 충격으로 지축이 뒤흔들리는 가운데, 각자의 군마 위로 착지하는 세 여걸이 시시덕거렸다.
[카밀라 : 내가 더 빨랐지? 이 느림보 녀석.] [샤론 : 후훗,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먼저 해냈지만 안 그래도 실력이 어설픈 카밀라의 집중이 깨지면 그 실력이 더 어설퍼질까 봐 기다려준 것뿐이야. 내 서열이 더 높은 걸 잊었니?] [카밀라 : 이게 웃기고 있어!] [에쉬르 : 자, 조용! 둘 다 잘했는데 또 왜 그러니.] [카밀라 : 아 몰라! 내가 더 빨랐는데 쟤가 억지 부리잖아!] [에쉬르 : 카밀라, 무슨 애도 아니고! 나중에 과자 사줄 테니 그만해!] [샤론 : 저런, 우리 카밀라를 달래려면 과자로는 안 되고 원시 왕국 성형외과에 한 번 더 데려가줘야 할 것 같은데요?]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로베리스는,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두 눈을 크게 벌렸다.
‘대단해…….’
트롤은 마족의 단일 개체 중에 가장 강력하다(데몬은 6대 마족이긴 하나 규격 이외의 존재다). 그런데 무려 십석두에 속하는 트롤을 상대로, 저런 참격을.
순수한 감탄…….
그리고 동경…….
그때 선배들이 소녀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단순히 칼의 지평이 아니었다. 긴 시간 속에 함께 쌓아온 세월의 무게였던 것이다.
[에쉬르 : 본부, 철도역 근방 확보 및 요새화 완료했습니다!]청춘의 전부를…….
전장 제일선에 바쳐온…….
[에쉬르 : 이제 다음 목표를 수행하겠습니다.] [크라우잔 : 잘했네, 혈마. 청성 각하께서 보내신 정보에 의하면 인질들이 잡혀 있는 곳이 여섯 곳이나 되네. 어떤 건물인지 알려주겠네.] [에쉬르 : 본대는 에밀과 멜레느에게 지휘권 위임! 철도 확보해! 별동대를 3개 분대로 나눈다, 1분대, 나를 따라라! 2분대, 카밀라를 보조해! 3분대, 샤론을 보좌하고! 로로는 숫자가 제일 적은 2분대를 따라가! 자, 가자!]제자들의 대견한 활약과 또 우스꽝스러운 잡담, 타르스와 플로렛은 현수교 확보 임무를 수행 중에 미소를 주고받았다.
[타르스 : 우리도 어서 임무를 마무리하자.] [플로렛 : 네. 그나저나 고위험 심연 개체가 등장할 때가 됐는데? 음? 뭐지?] [바로브 : 화산재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립니다. 엄청난 물량의 트롤이 출현한 것 같은……?!]아니, 아니었다. 그것은 단일 개체였다.
트롤? 오우거?
필두 페이쿼리어 타르스조차 저렇게나 날렵한 체격에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트롤은 처음 본 것이었다.
‘빨라, 뭐 저리 빠르지?’
그 이유를 보니, 표피를 이루고 있어야 할 바위가 거의 없었다. 필요한 부위만 감싸는 경갑처럼 느껴졌다. 검붉은 살가죽이 갑옷의 틈새로 드러났다.
다른 점은 둘.
그 신체의 체고가 여느 오우거와 마찬가지로 50척에 달할 정도란 것과, 굵직한 혈관에서 용암이 흉포하게 맥동한단 점이었다.
[바로브 : 목표, 대열 정면으로 속도를 올려 쇄도해 옵니다!]정체가 무엇인가.
알 수 없지만, 또 알 수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강대한 심연, 고위험 심연 개체다.
이놈이 화석계의 오우칸이다. 그런데 이건, 이 심연의 농도는, 고위 데몬에 맞먹는데?
[타르스 : 대열, 양쪽으로 흩어져! 플로렛, 네가 왼쪽, 내가 오른쪽이다.] [플로렛 : 저 망할 자식, 철도를 죄다 짓밟으면서……!]타르스는 즉시 극위성검 쉬르팽을 세워 절원(切願)의 자세를 취했으나, 그 궤도 위에 놈을 포개어둘 수가 없었다.
단지 빠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진영 중심을 돌파해온 놈은 태산과 흑장미를 무시하고 저 너머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타르스 : 저놈, 설마…… 플로렛, 저 자식 움직임을 막아! <바네시스> 쪽으로 가게 두지 마!]그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플로렛은 이미 마력 발판을 몇 번이고 박차며 고도(高度)로 올라선 뒤였다.
극위성검, 타스알포의 포효.
어둠을 푸르고도 선명하게 찢는 검극의 궤적은 광선(光線)의 급강하처럼 보였다.
[플로렛 : 멈춰, 이 개자식아!]그 검극이 오우칸의 허점을 꿰뚫어야 했건만…….
닿지, 않아.
닿지를, 않아.
페이쿼리어를 외면하고 전력으로 질주하는 오우칸의 허점을, 칼끝은 한 끗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놈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뭐야, 이놈…… 청성 각하의 작전을 꿰뚫어 본 건가? 철도를 무력화시키면서 그대로 <바네시스>까지 직행이라고?’
플로렛은 그 망연한 생각 속에서, 마력을 이용한 낙법을 취하는 걸 깜빡해 자칫하다가는 다리가 부러질 뻔했다.
[타르스 : 각하, 오우칸입니다! 근데 이상합니다! 저희를 무시하고 그대로 <바네시스>로 향했습니다! 그 위험성이 고위 데몬에 필적할 것 같습니다! 추격을 허락해 주십시오!]크라우잔은 순간 멈칫했다.
여기서 고위험 심연 개체가 이상 행동이라고?
태산 병단과 흑장미 병단이 그 뒤를 추격한다? 어쩌면 그게 놈의 노림수가 아닐까?
[크라우잔 : 불허하겠네. 자네는 현수교 확보 임무를 마무리하게.] [할바론 : 철도는 현재 내가 전투공병대를 지휘해 규격에 맞는 걸로 새로이 축조 중이다. 죄다 부서졌으면 오히려 편하지. 아예 치우고 새로 깔아버리면 되니까.] [플로렛 : 아니, 그럼 저걸 그냥 냅두라고요?] [크라우잔 : 내버려두는 게 아니지. 계획을 조금 변경하지. 홍련 병단의 투입을 앞당기겠어.] [라미네아 :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만, 절대 시간 안에 못 맞출 거예요.] [크라우잔 : 그걸 위해 선견대가 있는 거 아니겠나? 혈마 병단, 이제 자네들의 활약이 중요하게 되었군. 오우칸을 저지하게. <바네시스> 철도역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네.]뇌향심공명을 듣고 있었을 뿐인데, 등골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이 문득 생겨난 굴곡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느껴졌다.
오한? 소름?
샤론의 표정이라고 다를 건 없었는데, 에쉬르도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그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에쉬르 : 확인했습니다. 마침 철도역 앞에 시가지 광장이 펼쳐지기에 놈을 유인 섬멸하기에 적합하거든요.]미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저것은 용기(勇氣).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두를 향해, 모두를 위해 웃는, 용사(勇士)의 미소.
[에쉬르 : 선배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고위험 심연 개체 토벌 군공은 저희 혈마 병단이 가져가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