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 of the Fake Hero RAW novel - Chapter (281)
가짜 용사 이야기-281화(281/310)
시즌 3 : 89화
기술, 마력, 법력…… 세상에는 근본적인 힘의 차이를 메우기 위한 여러 방편들이 발전해왔다.
그러나 역시…….
원시적인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데 중요한 것은 역시 선천적인 신장(身長)이 아닐 수 없다.
“힘, 키, 체격 따위의 부차적 결과물이 신장, 즉 체급(體級)으로부터 비롯되니 말이다.”
페이쿼리어 신장을 인체 개조로 과성장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 무서운 가설을 들어보자.”
만약 상대가, 어떻게 범접할 수 없는 신장을 갖고 있는데 결점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동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면?
상대를 어떻게 공략할 것이며, 아니, 그것이 공략이 되는 상대일 것일까?
“그때, <바네시스>으로 직행한 오우칸의 이름은 이르페롤. 도마뱀 군주의 축복을 받아 용암을 부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
당시 도마뱀 군주 네이갈라스의 봉인에 균열이 가고 있었고, 붉은 도시 <슈리가나큐스>는 네이갈라스 봉인의 요지였던 바.
‘왕의 축복’은 극대화되었다.
요컨대, 당시 이르페롤이 사용할 수 있던 ‘왕의 힘’은 당대 십석두 모두를 합친 것과 맞먹는, 고위 데몬에 필적하게 된다는 끔찍한 계산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르페롤은 <바네시스> 철도역을 노렸고, 혈마 병단은 <바네시스> 철도역을 사수해야 했으므로 둘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다. 카밀라 알터 아라다만텔은 이때 이 전장에 배치돼 있었다.”
반격전야, 화산 지대 고공 침투 (2)
오우칸이 접근해 오면서 1ㆍ2차 저지선에서 백린(白燐)이 솟아올랐다.
백린탄.
이 또한 만병기장 할바론의 걸작 병기 중 하나.
– 이건 백린을 이용하는 화학 연막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혈마 병단은 신형 스팀코어를 보급받게 되었다.
연결 호스가 2개 더 증설된 스팀코어는 증기총 하단에 부착된 유탄 발사기에도 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유탄 발사기에는 3발의 소형 백린탄이 제공되었는데, 이 백린탄은 화학 병기인 동시에 연막탄이며 또한 화공 무기였다.
– 트롤 같은 놈들에게 유효한 피해는 못 주겠지만, 그 감각기관을 마비시켜서 기동력을 상실시키는 데는 딱이겠지.
백린탄은 또한 특수한 마력 입자를 머금고 있어서, 저 멀리에서도 선명히 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각하, 백린탄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포격 원조 요청입니다!”
“보고할 것도 없다. 쓸어버려.”
“고도 측정 완료, 곡사각 계산 완료, 표적의 이동 속도에 따른 예상 도착지에 포격 실시! 발사!”
곧, <바네시스> 시가지 외곽을 초토화시키는 폭염과 폭연과 잔해가 정신없이 솟구쳤다.
이미 ‘철도 수호 작전’은 ‘오우칸 토벌 작전’으로 이름 자체가 뒤바뀌었다.
궤도 조절 장치가 있는 철도역은 반드시 수호해야만 했다. 철도는 단기간에 부설할 수 있지만, 철도역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목표, 저지 실패! 가속합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냐…… 전투공병대와 이동포 부대를 동시에 지휘하던 할바론은 마른침을 삼켰다.
백린탄과 집중 포격도 무시해?
방위 구역을 지키는 혈마 병단까지 무시하고 철도역으로 직행한다면, 대체 얼마나 고지능인 거지?
[할바론 : 저 망할 자식, 오우거답게 살육이나 식인에만 전념할 것이지, 왜 갑자기 전략 목표를 우선하는 거지?] [델프레드 : 지능이 높은 정도가 아닙니다. 더 높은 존재의 명령이라도 받는 게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죠.] [아이딘 : 오우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옛 귀족이나 <잊혀진 왕들>밖에 없습니다.] [크라우잔 : 그렇다면, 지금 이건 청성 각하와 옛 왕의 대리전이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겠군.]명령을 받은 건 오우칸뿐만이 아니었다. 또는 받은 명령을 놈이 재전파했을지도 모른다.
<바네시스> 전역에서 총성이 일고 있었다.
트롤을 위시한 마족 전력이 집결하고 있었으며, 홍련 병단은 놈들이 승강장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대대 단위로 쪼개져 방대한 영역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프베런 : 그만하고 가시오, 단장! 지금 용사가 있어야 할 전장은 이곳이 아니니!] [라미네아 : ……부탁할게요.] [에쉬르 : 총원 전투 준비!]<바네시스> 역사 건물 앞에는 역전 시가지 광장이 드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카밀라는 그곳에 있었다.
시계탑의 그림자 뒤에 숨은 채. 시가지 지붕 위에 은ㆍ엄폐한 채 호흡을 정돈하는 혈마 병단 단원들이 내려다보였다.
모두, 떨고 있었다.
돌파된 저지선으로부터 다급한 신호탄이 오르고 있었으며, 그 색색의 궤도조차 쫓지 못하는 속도로 놈이 오고 있었다.
[할바론 : 발포 준비 완료.] [에쉬르 : 백린탄 장전!]마침내, <바네시스> 시가지 전체를 짓밟고 짓이기던 악몽(惡夢)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암으로 창조된 인간…….
그 기괴한 첫인상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괴인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호흡이 메마르고 거칠어진다.
놈이 거느린 체온부터가 살인적이라, 놈이 가까워지면서 실외 온도가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할바론 : 3, 2, 1…… 발사!] [에쉬르 : 백린탄 발사!]할바론의 발포 명령으로부터 3초 간격을 두고, 혈마 병단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백린탄을 발포했다.
‘어차피 백린탄의 용도는 토벌이 아닌 제압……!’
‘잠깐만이라도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팔방에서 날리는 백린이다, 그 크기로는 절대로 못 피해……!’
화상 피해와 연막과 화생 효과를 동시에 노리기에, 우루크나 트롤을 상대로도 그 저지력은 입증되어 왔다.
순간, 놈이 백린에 시야가 차단되면서 주춤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에쉬르와 카밀라와 샤론과 로베리스가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요한 : 착탄까지 1초!]네 명의 검사가 칼에 마력을 집중시킬 때, 거신 7식의 포탄들이 정확하게 시가지 중심부에 내리꽂히며 폭음과 굉음이 일었다.
[에쉬르 : 마력시(魔力視) 켜!]광장 전체를 시커멓게 물들이는 폭연, 페이쿼리어를 제외하면 그 너머의 적을 정확히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력시를 사용한다면?
이능의 힘을 내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 실력자들은 이런 기척조차 숨기지만, 마족들은 이러한 것을 절대 숨기지 않는다.
‘감히 철도를……!’
‘너 이 망할 자식 때문에 고생이 배로 늘어 버렸다고……!’
‘가만 안 둬, 절대 가만 안 둬…….’
십일자도 제12식, 만월(滿月).
십문자도 제10식, 십자참수.
극주검법 제6식, 청영(淸影).
[에쉬르 : 내가 가는 궤도를 따라와!]만월의 빛이 폭연을 찢으며 길을 연다. 폭격 속에서 웅크린 채 머리를 손으로 가리고 있는 오우칸을 포착해냈다.
십일자도 연계식, ‘이지러진 달’.
만월에서 11식 반월을 거쳐 10식 현월로 날카롭게 이어지는 원참의 연계가 그 손목의 혈관과 힘줄을 끊어낸다.
요동치던 마력을 칼과 칼집 양쪽으로 분산시키면서 폭주시킨다. 칼과 칼집의 교차가 낳은 십문자.
그것이 곧 이 힘의 발출 형상.
십자참수의 힘이, 오우칸의 두피를 찢고 두개골 위에 십문자의 홈을 깊숙이 새겨 넣었다.
[카밀라 : 샤론!]마력 발판을 걷어차서 궤도 수정, 자신을 뒤따라오며 맹렬한 빛줄기를 흩뿌리던 친구에게 길을 비켜준다.
청영(淸影).
그림자의 혈조차 꿰뚫어 맑게 흩어버리는 초식이 십문자 각인 중심부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두개골이 분쇄되며 살(殺)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세 분 다 엄청나다. 이 무슨 연계의 속도가…….’
대열의 마지막을 이루던 로베리스는 잠시 순수한 감탄 속에서 집중력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얼마나…….
얼마나 오래…….
이 악몽과도 같은 곳에서 함께 싸워왔으면, 저런 엄청난 연계가 나올 수 있는 거지?
[샤론 : 로로!] [카밀라 : 끝장내!]시류검법(時流劍法) 제7식.
철산격(鐵山擊).
리스타 알터 쉬르팽이 고안하여 후임자들에게 계승되어온 이 검법은 꼭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 같다고, 시류검법이라 불린다. 그 초식이 소녀가 앳되게 쳐든 대검의 칼날 위에서 발현되었다.
[에쉬르 : 아니, 잠깐! 기다려!]암벽이 비틀리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문득 놈의 외피 전체에 균열이 일었다.
혈관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건, 그냥 혈관이 아니었다.
전신의 혈관이 끊어지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그 혈액…… 즉 용암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에쉬르 : 카밀라, 로로 챙겨! 어서!]그 한순간에 폭발하듯 일어난 혼돈이 뇌리에 남긴 짧고도 길었던 기록은…….
[요한 : 카밀라!]계란 썩는 유황의 악취.
용암을 저지하기 위해 사방에서 솟구친 빙벽(氷壁), 빙벽이 용암과 격돌하며 일으키는 화학 반응.
그 푸르고도 붉은 파도의 격동 속에서, 미친 듯이 마력 발판을 형성하고 또 박차며, 로베리스를 온몸으로 덮치듯 끌어안은 것.
[로베리스 : 으, 읏, 아아아……!]그 교차하는 소음 속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꿰뚫는 소녀의 비명.
소녀의 왼팔이 위팔뼈 아래로 용암에 녹아내려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본 순간, 공황에 가까운 충격이 뇌리를 때렸고.
그것 때문에 마력 발판을 헛디디고 말았고, 대검의 무게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더 거세게 받는 로로가 더 빨리 추락하지만 그 손을 붙잡지 못하고 말았고.
[카밀라 : 아, 안 돼!]새로이 마력 발판을 만들려고 했으나, 혈관이 다시 회전하며 용암을 또다시 사방으로 토해냈고.
[요한 : 걱정 마…….]용암의 돌입 경로를 차단하면서도 비스듬히 일어선 빙벽이 로베리스를 받아냈고, 저편 지붕으로 미끄러뜨렸다.
요한이 전신으로 피를 쏟았다.
이는 마력 과용의 부작용. 마력의 이해도와 실력은 일취월장했으나, 어린 나이이기에 마력의 절대량이 높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너 이 새끼…….”
로베리스의 무사를 확인하고 숨 돌릴 여유도 없었다.
“멈춰…….”
용암과 빙벽의 충돌에 휘말렸는지, 혼절한 샤론이 지면을 튕기며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멈추라고……!”
저 운동량 그대로 외벽에 충돌해도 죽고, 날파리 하나를 짓밟겠단 기세로 발을 높이 쳐든 오우칸의 공격이 성공해도 죽는다.
“내가 처음으로 사귄…….”
에쉬르가 이미 눈에 잔상을 남기는 속도로 샤론에게로 쇄도하고 있긴 했으나, 성공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 보였다.
“……친구 건드리지 마…….”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샤론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저기서 샤론을 밀쳐서 살려내고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거나.
“……이 망할 새끼야아아아아!”
그 죽음의 선택지조차도 오우칸이 유도한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놈이 그렇게나, 비열한 미소를 지을 리가 없었다.
또한 인간이…….
인간이라는 하등 생물이…….
동료의 죽음 앞에서 눈이 뒤집혀 모든 사고 회로가 엉망으로 된다는 것조차 계산 범위에 있었다.
[요한 : 카밀라, 안 돼……!]발을 내리찍는 동시에, 자신에게로 도약해오는 카밀라 쪽으로 정확히 손을 내밀었다. 면적이 최대한 넓어지게끔 손을 크게 펼쳐서.
[할바론 : 뭐냐?]어차피, 발치의 놈들은 딱히 궤도 수정을 안 해도 하나는 확실하게 죽인다.
[할바론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 어서 보고해라! 지원 요청을 하라고!]그렇기에 오우칸 이르페롤은 카밀라에게로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로 피한다 해도 반드시 죽이겠단 일념으로.
그 한순간.
심연(深淵)이 전율했다.
피조물의 미래조차도 엿보는 심연이 고동쳤다. 오우칸이 왕에게 받은 심연이 아니라, 왕이 절대자로부터 받은 심연의 편린이.
그것은 미래의 파편(破片).
그것은 미래의 위협(威脅).
그것은 미래의 절멸(絶滅).
유한(有限)의 시간 속에 무한(無限)을 수놓는 칼날, ‘절대자에게 미래에 닥쳐올 위험’이 소녀의 모습 위로 한순간 덧그려진 것이다.
‘……?’
소녀는 분명 아직 한 번의 참격도 행하지 못했건만, 오우칸은 한순간에 행해진 천만 번의 참격(사실,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이 서늘하고도 섬뜩한 감각으로 전신을 베고 저미고 도려내는…… ‘죽음’을 느꼈다.
오우칸은 모른다.
세상의 역사도 아직 모른다.
심연조차도 확실히는 몰랐다.
그 무한의 검이 누구로부터 비롯되고 또 누구에게서 행해지는지, 하지만 그 죽음의 감각만큼은 원초의 심연이 전율할 정도로 선명했다.
식별 번호, 엘디아 오메크(06).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몸을 움직인다.
오우칸은 즉시 팔을 뺐다.
두 벌레를 짓밟으려던 다리 또한 거두어 무게 중심을 새로이 설정했다. 몸을 움츠리면서 약점을 지키기 위해.
[페닐 : 지금이야, 빼!]도박이 성공해서 다행이야, 페닐은 겨우 숨을 헐떡였다.
뇌가 노출되었으므로, 저기에 직격타를 가하는 건 불가능해도 악몽의 저주를 직접적으로 심는 건 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의 환영을 보여주는 마법인데, 아무래도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사태를 파악하는 게 카밀라보다 오우칸 쪽이 두 배 정도 빨랐다.
방어 자세가 즉시 풀어졌다.
겁에 질리게 만든 것이 괘씸했을까? 본디 집중하던 전략 목표, 철도역 파괴를 등한시하더니 카밀라에게로 질주해온 것이다.
[에쉬르 : 카밀라, 샤론을 수습했어! 너도 어서 거기서 피해!]그 매서운 운동량에 시가지 전체에 어지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지반이 미친 듯이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어서야 하는데…….
젠장…….
도무지, 일어설 수가…….
그렇게 자세를 잡지 못하는 카밀라에게로, 요한이 다급히 소리치는 소리가 닿지 않고, 페닐은 황급히 마법을 재시전하려던 그때, 표준 열도보다 15배는 더 격렬히 끓어오르는 용암의 정권이 내질러졌다.
퍼어어어어억……!
먼저 바위나 뼈 따위의 근골이 으스러지는 굉음이 터졌다.
이어 용암에 의해 끓는점에 단숨에 도달한 유ㆍ무기물들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모든 소리의 끝에서 건물이 무참하게 붕괴해 내렸다.
[요한 : 카, 카밀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